드니 빌뇌브- 듄을 보고 나서
드니 빌뇌브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이 아니다.
아마도 박찬욱,폴 토마스 앤더슨, 베넷 밀러, 핀처,레오스 카락스 등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기는 하다.
드니 빌뇌브의 영화가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드니 빌뇌브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애정을 품느냐 라고 한다면 내가 할 대답은 단순하다.
드니 빌뇌브의 영화는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드니 빌뇌브 영화의 그 무엇에 매혹될까 라고 고민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건 새로운 세계의 실재감에 있다고 생각한다.
드니 빌뇌브의 영화들은 모두 압도적인 실재감이 있다. 시카리오의 후아레즈, 어라이벌의 외계인, 블레이드 러너 2049의 La, 듄의 아라키스까지 드니 빌뇌브의 최근작들은 이질적인 세계를 생생하게 시각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다른 세계에 대한 감각이 내가 드니 빌뇌브를 좋아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서 듄은 드니 빌뇌브에게 잘 어울리는 프로젝트다. 문자 그대로 완전히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지 않은가. 원작을 읽은 기억을 토대로 추측하자면 그 이전의 드니 빌뇌브 작품과도 공통된 요소들이 있는 텍스트이다.
그의 전작들은 이질적인 존재들의 만남 혹은 대립을 다루고 있거나 주인공들이 운명에 무력하거나 순응하는 듯한 모습이 많다.
듄은 이 두 가지의 특성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작품이다.(드니는 인터뷰서 어린 시절부터 이 영화를 좋아했다고 밝혔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작품에 큰 기대가 있었다. 이야기의 특성,규모 모두 드니 빌뇌브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종류였고 어쩌면 개인적으로 원작에 느낀 불만까지 해소할 수 있는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듄은 매우 아쉬웠던 작품이였다.
물론 영화가 엉망이라든가 혹은 연출적으로 실패했다 라는 의견은 아니다.
연출은 아름다우며 장엄하다. 한 장면마다 오랜 팬으로서 영화화를 꿈꾼 장인의 정성이 가득 배여있다. 마치 정성껏 로스팅한 원두같은 풍미를 자랑하며 아마 원작팬들은 본인들이 상상에 그렸던 이미지들보다 생생하고 강렬해서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드니 빌뇌브 영화가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면 느린 호흡과 비어있는 화면일 것이다.
더 빠르고 큰(too fast! too strong!) 연출을 지향하는 할리우드서 드니는 독특한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드니는 화면을 구성할 때 채운다기보다는 비우는 편을 선호한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극대화된 미니멀리즘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는 스크린에 정보와 감정을 압축시켜서 담기보다는 여백이 있는 이미지를 창조하는 감독이다. 이를 통해 드니가 구현하고자하는 것은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드니가 집중하는 요소는 나는 정보가 아니라고 본다.(그런 면에서 전지적인 카메라를 사용해서 정보를 중요하게 담는 핀처와 반대된다. 화려하고 탁월한 편집과 느린 편집도 그렇다. 물론 조디악에서도 드러나듯이 핀처는 느린 호흡에서도 완벽하다.)
드니 빌뇌브는 세계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세계의 일부를 보여줄 뿐이다. 시카리오에서부터 듄까지 드니는 분위기와 뉘앙스를 우선순위로 삼았다. 그의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의 분위기와 리듬에 녹아들거나 지루해지거나 둘 중 하나이지 않을까(이거야말로 취향차이다) 그의 편집리듬이 긴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다. 길게 보여줄 때 분위기가 산다. 드니가 익스트림롱숏을 자주 구사하는 것도 결국에는 분위기를 위해서이다. 더군다나 그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멀리서 넓게 잡는다.
대표적으로 시카리오에서 삽입된 인서트샷들(사막의 풍경들 등등)이 이런 분위기에 대한 드니의 열정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는 의외로 세계를 만들 때 세세한 설정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세계를 정보로 이해시킨다기보다는 분위기로 전달시키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그는 전체 세계를 보여주기 보다는 일부분만 체감하게 만든다. (cg가 아닌 실제 세트와 소품에 힘을 기울이는 이유도 이런 실체감에 있지 않을까)
영화 듄 역시 분위기와 무드는 대단하다. 촉감과 질감이 화면에서 느껴질 정도이며 사막 장면은 목이 마르다. 원작에 대한 악명과 달리 이 작품의 이야기는 이해하기 용이하며 의외로 별 내용이 없다. 그럼에도 영화러닝타임이 살인적인 이유는 이 작품의 목적이 아라키스의 분위기표현에 있기 때문이다. 관객이 세계에 몰입하고 녹아드는 시간의 필요성을 드니 빌뇌브는 간과하지 않는다.
영화는 하나의 세계에 대한 실재감과 분위기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이야기는 작고 생략되어있는 편이다.
거기서 이 작품의 결함들이 발생한다. 영화 속 이야기는 미진하고 완결성이 매우 부족하다. 오페라로 치면 서곡과 같다. 그러니까 재밌어질 것 같기만 하다가 2시간 43분이 지나간다. 재밌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움직이는 현대미술전시관에 온 것같은 화면에 취하면 더없이 만족스러운 영화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별 것 아닌 이야기와 주제를 반복한 작품에 불과하다. 그 과정서 아트레이드 가문이 무너지는 이유는 매우 어처구니없이 설명된다.
무엇보다 듄의 결정적인 단점은 인물과 세계가 공명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가짜와 진짜, 감정과 인간, 세계와 개인, 인간다움 등등의 생각을 안겨주는 장면)
이런 장면이 없다. 세계와 인간이 상호작용하고 주제와 감정이 만나는 장면이 부재한 영화다. 그렇기에 인물들은 관객과의 접착력이 부족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붕붕 떠다니는 듯 느껴진다.
내가 이 작품에 미지근한 평을 내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극단적으로 이 영화에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세계와 분위기밖에 없다. 인물과 감정,주제는 희미하다. 누군가에게는 그 분위기 하나만으로 일생의 체험이 될 수도 있지만 또다른 이들에게 따분하기 이를 데가 없는 관람이였으리라.
지속적으로 등장하지만 관습적인 연출로 아쉬운 꿈장면, 허술한 격투액션은 역시 (사소하지만) 흠이다.
어쩌면 part 2가 이 자기완결성이 부족하고 결정적인 무언가가 없는 이 작품의 단점을 보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작품은 드니의 팬인 나에게만큼은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길 수 없었다.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렇게 진지하게 적는 리뷰는 오랜만이네요.
혹평하는 걸 싫어해서 보통 호평만 쓰는 데 좋아하는 감독이여서 써보았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였어요.ㅠㅠ
추천인 7
댓글 2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톤 & 매너..
드니 감독님의 장점이죠.
시카리오의 테일러 쉐리던 작가와 로저 디킨스 카메라 감독과의 앙상블이 그립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