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트] 단평(스포x)
신사숙녀 여러분.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조금만 인내를 가지고 자리를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은 올해 가장 정겨운 작별 인사를 보게 될 겁니다.
아래는 스포일러 없는 단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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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열렸던 칸 영화제의 무대.
스튜디오 부스에서 세상으로 무대를 확장하며 시작하는 <아네트>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건 이상한 일도 아닐 것이다.
뮤지컬 장르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 필자는 영화 보기를 약간 망설였다.
오랜만에 귀환한 레오 까락스지만 뮤지컬, 그것도 송스루 뮤지컬이라고?
<쉘부르의 우산>정도가 아니라면 리스크가 큰 도전이다.
그러나 다 보고 나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이 양반이 영화를 가지고 온갖 실험을 했다는 것을 알았으니.
레오 까락스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독창적인 시네 아스트 중 한 명임을 증명한다.
미국 록밴드 스파크스가 그에게 창작적 ‘불꽃’을 일으켰나보다.
<아네트>는 아버지가 된 예술가가 써나간, 딸을 향한 참회록이다.
연극과 오페라, 록 음악, 스탠드업 코미디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전 세계를 휘젓고,
영화의 품 안에서 경계를 허문다.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매서운 농담으로 진실과 환상은 여러 레이어로 중첩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술가이자 아버지의 심연을 목격한다.
아마 영화의 메인 컬러인 녹색에 대해 환상성과 연결시켜 말하고 싶은 유혹이 들 것이다.
하지만 레오 까락스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큰 의미를 둔 건 아니다.
단지 ‘영화적으로’ 옛날에 잘 안 쓴 색이라 쓰게 된 것일 뿐.
그린이 이 영화를 채색하며 하나의 균일한 정조를 형성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3~4명의 인형 조종사가 마리오네트를 움직였는데 CG를 통해 지웠다고 한다.
이제 CG는 영화에서 마법의 다른 이름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왜 마리오네트를 사용하였는가?
안전상 어린아이를 스타디움 높은 곳에 드론으로 띄울 순 없지 않은가.
슈퍼볼도 아닌 하이퍼볼 무대에서.
농담이다.
자동차도 슈퍼카 위에 하이퍼카가 있다.
이 기괴한 초현실성을 충분히 겪은 후,
우리는 마음이 움직이는 극적인 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아네트>는 슈퍼 뮤지컬을 넘어선 하이퍼 뮤지컬이다.
바나나를 먹던 신의 유인원, 헨리(아담 드라이버)는 아버지가 되었다.
아네트는 빛의 아이다. 달빛이든 전등이든 빛이 들어올 때만 노래한다.
노래만 부르던 아이는 처음으로 ‘말’을 내뱉는다.
희극과 비극이 뒤섞여 얽혀버린 세상.
자신을 안아주던 고릴라는 이제 자신의 품안에 있다.
끝없이 내면의 자신을 죽이는 아버지에게 남은 건 무엇인가.
거부하기 힘든 커튼콜이 기다리고 있다.
현대의 예술은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고도 한다.
다만 새로운 조합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레오 까락스가 가볍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마약적 리듬을 조립하며.
‘심연에서 고공으로. 슈퍼 뮤지컬이 아닌 하이퍼 뮤지컬’
★★★★
텐더로인
추천인 8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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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클래스에서 짧게 본 입장에서 레오 까락스는 정말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그래서 과작하는 감독이라고 볼 수 있죠)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작품을 내놓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