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케인>(Citizen Kaen, 1941)
<시민 케인>(Citizen Kaen, 1941)
<시민 케인> : True America(n)
‘예술의 목적은 몽상도 건설도 아니다. 그렇다고 예술이 진실을 묘사하는 것도 아니다. 진실은 알려질 필요도, 묘사될 필요도 없다. 진실은 자기 스스로조차 알지 못한다. (…) 예술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자. 더 이상 ´나´라고 말할 수 없는 자. 그와 동시에 이 세계, 저 세계의 진실을 상실한 자. 그 유형에 속한 자들. 훨덜린이 말했듯이 신들도 더 이상 존재 하지 않는 신들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이 비탄의 시간에 속한 자들의 상황을 묘사한다.’ - [문학의 공간] 중에서, 모리스 블랑쇼 -
당신이 만약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손 웰즈가 고작 27살 때 만든 데뷔작 <시민 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영국의 영화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에서 매 10년마다 선정하는 영화사상 최고의 영화 순위에 50년 간 1위로 올라와있었던 영화.(이 기록은 2012년 조사 때 처음으로 깨졌는데, <시민 케인>이 영화 평론가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영화 2위에 올랐고, 1위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이 차지했다.) 거의 모든 ‘영화 사상 최고의 걸작’ 순위에 빠지지 않는 영화. 영화를 입문하는 사람들에겐 영화 자체보다 영화를 설명하는 온갖 수사를 더 많이 알고 있을 영화. 그렇기에 <시민 케인>은 흔히 정전의 영화가 겪는 오해와 그 오해의 해소까지 어느 정도 감당한 이른바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영화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홍성남 평론가가 언급한 말처럼, <시민 케인>에 대해 또 하나의 비평을 추가하는 것은 <시민 케인>에 대한 또 하나의 핑계 거리를 추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 <시민 케인>은 여전히 많은 영화 학도들과 시네필들에게 <시민 케인>이라는 영화는 때론 너무 난해하거나(도대체 이게 왜 걸작이란 말인가!) 때론 너무 가소로운(이 정도의 영화가 영화 사상 최고의 걸작이라니!) 영화로 오해 받는 경우가 많다. 전혀 철학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오해이든, 영화에 대한 수사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논평하는 오해이든, <시민 케인>에 대한 적합하지 않은 생각들은 이 영화에 대한 수많은 비평 글이 존재하는 오늘 날까지도 유효하다. 이 글은 그런 소란스런 오해들로부터 잠시 벗어나 이 영화를 둘러싼 광범위한 논평을 통해 얘기를 진행해보려고 한다.
<영화에 들어간 뮤지컬 장면>
<시민 케인>은 영화의 다양한 측면에서 이중적이면서도 다중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시민 케인>이 지금까지도 단순히 혁명적인 영화의 측면에 머물지 않고 여전히 연구되고 흥미롭게 영화를 보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다양한 다중적인 측면 중에 우선적으로 눈여겨 볼 것은 영화의 스타일적, 장르적 중층성이다. 헐리우드 스튜디오들은 무성 영화 시절부터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유럽의 많은 감독들을 자신의 스튜디오로 초청하였는데, 특히 <시민 케인>이 만들어진 1941년 당시엔 유럽 대륙에선 세계 2차 대전이 진행 중이었고, 전쟁의 포화를 피해 많은 유럽의 재능 있는 감독들이 헐리우드에 도착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별한 감독들은 자국에서 만들던 영화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가지고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로 인해 스칸디나비아의 환상주의, 프랑스의 인상주의, 독일의 표현주의, 러시아의 몽타주 기법이 미국 영화 속으로 포섭되기 시작하였다. <시민 케인>은 이 유럽 각국의 다양한 영화 형식을 한 편의 영화에 다채롭고 풍부하게 사용했다. 물론 <시민 케인> 이전에도 이런 유럽의 형식적 실험들을 끌고 온 영화들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영화도 <시민 케인>처럼 다양하게 이 형식들을 차용하지 않았다. 또한 <시민 케인>은 수많은 장르들을 차용하고 있다. 케인이 죽은 후 등장하는 ‘뉴스 온 더 마치’는 전형적인 뉴스릴식의 다큐멘터리이고,(이 영화 속 영화는 스크린의 형태로 영사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한 편의 영화처럼 등장한다.) 오프닝에 제너두 저택을 비추는 모습은 영락없는 호러 영화이며, 크로니클 기자들을 자신의 신문사로 스카웃 한 후 진행되는 파티는 뮤지컬. 그리고 케인이 수잔과 처음 만났을 때는 코미디 장르를 채용하고 있으며, 수잔이 공연하는 오페라를 통한 시대극. 더 나아가 케인의 그림자 놀이까지 다양한 장르들이 한 편의 영화 안에서 뒤섞이고 있다. 그리고 영화학자 토마스 샤츠의 지적처럼 이 영화의 다양한 스타일적 특징과 내러티브 구성은 같은 해 등장한 <말타의 매>와 함께 필름 느와르 장르의 원형으로 평가 받는다. 다시 말해, <시민 케인> 한 편의 영화 안에는 유럽 영화의 형식적 전통과 장르라는 미국 영화의 시스템적 특징이 한 데 뒤섞여 있는 것이다.
<딥 포커스를 구사한 장면>
또한 스타일적으로도 이 영화의 이중성을 엿볼 수 있다. <시민 케인> 하면 곧바로 연상되는 ‘딥 포커스’와 ‘롱 테이크’. 그리고 천장이 보이는 세트 등은 이 영화의 리얼리즘적인 측면을 강력하게 부각시키는 스타일이다. 화면의 전경과 후경에 있는 피사체 모두에 초점을 맞추는 기법인 ‘딥 포커스’ 기법은 기존의 헐리우드 영화처럼 감독이 쇼트의 분할을 통해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을 제시하는 방법이 아니라, 쇼트 분할을 최소화 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전경과 후경에 있는 피사체를 선택해서 볼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영화 평론가 앙드레 바쟁으로부터 ‘영화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한 숏’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하였고, 이 쇼트 분할을 최소화 하는 미장센을 통해 웰즈는 시-공간의 연속성을 부여하는 롱 테이크 화면을 구사할 수 있었다. 이처럼 리얼리즘을 구현하는 스타일을 구사한 <시민 케인>이지만, 이 영화에는 동시에 표현주의적인 화면 양식들 또한 다수 사용하고 있다. 흔히 호러 영화에나 볼 수 있는 로우 키 조명, 몽타쥬 편집, 광각 렌즈의 사용에 따른 왜곡된 화면, 극단적인 앙각 앵글 등은 리얼하다기 보다는 과장된 영화의 스타일을 부여하고 있는데, 웰즈는 리얼리티와 표현주의라는 두 극단의 스타일을 한 영화에 뒤섞어 놓으면서 익숙하지 않은 것과 익숙한 것의 충돌을 가미하고 있다. 스타일 뿐만 아니라 영화의 내러티브의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당대 기존 영화들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을 택하고 있다. 기존의 영화들은 19세기 문학의 전통을 이어 받아 서사적이고 연대기적인. 이야기 위주의 내러티브 방식을 고수했다면 <시민 케인>은 거기서 벗어나 중심 없는 서사를 택한 최초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케인이 죽기 전에 말한 ‘로즈버드’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케인의 지인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듣는 이 영화의 기본 플롯은 총 다섯 번의 플래쉬 백을 통해 케인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탐구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영화의 이야기가 감독이 이미 판단하여 정의내린 케인의 일대기가 아니라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사적인 기억과 증언을 통해 구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케인에 대한 인류학적인 접근이 아니라 케인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을 시도한 영화이며,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정신분석학의 훌륭한 텍스트로 손꼽힌다.
영화가 이토록 다양한 관점으로 케인의 일대기를 묘사하며, 이중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며 다양한 장르와 형식을 차용한 것은 영화의 주인공 찰스 포스터 케인의 삶 자체가 바로 이 영화의 형식적 특징들처럼 모호하며 중심이 없는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케인은 영화의 초반부에 그의 삶을 요약한 뉴스릴의 다양한 자료 화면들처럼 원본의 순수성이 사라진 채, 불분명하며 인공적인 삶을 산다. 케인은 신문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보이지 않는 권력을 손에 쥐었고, 그 권력을 통해 마치 유럽의 성을 연상시키는 제너두를 미국에 지었으며 그 성 안에는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유물들을 자신의 성에 수집하면서 그 정체성의 불분명함을 과시한다. 또한 그는 애국자인 동시에 파시스트이고, 재벌인 양부 대처가 돈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 혐오하지만 자신 역시 대처와 같은 삶을 살게 되며, 순수함과 탐욕 사이의 집착에서 괴로워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 수잔이 떠나자 수 십개의 거울에 똑같은 모습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케인의 이미지는 이런 이중적인 동시에 분열적인 케인의 비참한 모습을 상징하는 훌륭한 알레고리이다. 이처럼 <시민 케인>은 영화의 전반에 걸쳐 영화 자체의 다중성을 실험하고 있다. 이 영화의 이런 형식적인 특징을 두고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중심이 없는 미로’라고 극찬했으며, 이 영화를 통해 영화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진정한 출발 지점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 케인>은 유럽 영화의 스타일과 미국 영화의 시스템이 하나로 뭉쳐 탄생된 영화이며, 이제까지 영화가 선보인 모든 테크닉(딥 포커스도 이미 <시민 케인> 전에 몇 편의 영화에서 구현되었었고, 딥 포커스에 대한 거의 최초의 시도는 찰리 채플린과 오즈 야스지로의 무성 영화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을 이용하는 동시에 어떤 영화에서도 사용되지 않은 내러티브 방식을 채택하며, 웰즈의 의도 그대로 익숙한 것들의 조합으로 영화를 낯설게 만드는 경지에 다다랐다.
그리고 이 영화는 운명처럼 영화 외적으로도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지워버렸다. <시민 케인>이 개봉한 1941년에 이 영화를 본 신문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권력을 이용해 이 영화의 개봉을 저지시키려 하였다.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허스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 십 개의 신문 체인에 <시민 케인>에 대한 어떠한 홍보나 언급도 하지 말라는 엄포를 놓았고, <시민 케인>은 그런 허스트의 철저한 방해 공작 속에 개봉 당시 처참히 흥행에 실패했다. 허스트가 이 영화의 개봉을 막으려고 한 것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찰스 포스터 케인이 자신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스트는 신문사 [이그재미너]를 성공시킨 이후 케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미국의 주요 도시에 언론사를 설립하며 황색 언론의 기수 역할을 하였고, 역시나 케인이 그러했던 것처럼(그리고 영화에서의 케인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미국-스페인 전쟁을 부추기는 선정적인 기사를 실었으며, 말년엔 케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캘리포니아에 거대한 저택 ‘허스트 캐슬’을 건립하며 역시나 케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젊은 아내(허스트의 아내는 마리온 데이비스라는 신인 배우였다)와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허스트에게 <시민 케인>은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된 풍자극이었다. 영화는 현실을 모방했고, 그 영화를 본 현실은 영화에 반응한다. 그리고 그 영화를 만든 오손 웰즈 본인도 천재로서 화려하게 헐리우드에 입성 했으나 <시민 케인>의 실패 이후 영화의 제작비를 벌기 위해 3류 영화 출연도 마다하지 않으며 평생을 떠돌이로 지냈으며, 케인이 영화에서 숨을 거둔 70세의 나이에 사망한다. 영화와 현실의 끊임없는 모방과 변주. <시민 케인>의 최초의 제목은 <아메리칸>. 즉, 미국인 이었다고 한다. <시민 케인>을 둘러싼 이 모든 다성적 측면과 모순들은 이 영화의 최초 제목이었던 미국인. 나아가 미국 그 자체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유럽에서 건너온 수많은 이민자들의 수많은 문화가 뒤섞인 미국(인)의 다성적 측면. 그러나 이 대륙에 이미 정착해있던 인디언들을 학살한 후 거대한 제국을 형성한 미국(인)의 모순이 <시민 케인>이라는 한 편의 영화를 통해 폭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어쩌면 진정한 미국적인 영화이며, 오직 미국에서만 만들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 영화를 정식으로 배운 적 없는 오손 웰즈에게 평론가가 <시민 케인>을 찍기 위해 어떤 공부를 했냐고 물어보자 오손 웰즈는 간단히 ‘촬영하는 내내 존 포드의 <역마차>를 수 십 번 보면서 영화를 공부했다.’라고 말했다. 존 포드가 서부를 횡단하는 공동체로 미국 영화의 영토를 넓혔다면, 오손 웰즈는 한 개인의 야누스적인 모습을 통해 미국 영화를 규정지은 것이다. 오손 웰즈는 <시민 케인>에서 ‘로즈버드’로 상징되는 순수함이 그저 개인의 유품 중에 하나이며, 그것은 불타서 영화 속 그 누구에게도 ‘로즈버드’라는 단어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은 채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결론을 내린다. 오손 웰즈는 그렇게 수많은 자본(이것은 <시민 케인> 마지막에 쌓여있는 엄청난 수의 유물로 상징된다.) 속에 함몰된 영화에서의 순수함의 시계를 불태우며 영화 예술의 순수성을 다시 제로로 돌린다. 현대 영화의 역사는 그럼으로써 <시민 케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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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로 처음 국내 출시되었을 때 빌려보면서 너무 유명한 클래식이라서 재미는 없을거야 하고 봤다가
이야기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깜놀했던 기억이 나네요.

보석은 자주 닦여야 빛을 내듯, 걸작은 자주 회자되어야 그 가치가 빛나는 법이죠.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한 번 봐야겠거니 하는 영화였는데 좋은 정보 얻었네요.

오손 웰즈는 시대가 낳은 "천재"였지요.

심도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ㅎㅎ
앞으로 이런 영화가 또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딮 포커스고 뭐고 먼저 이야기가 재밌는 영화였어요.너무 유명해서 손해보는 영화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