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은 어떻게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나. 일본 칼럼 번역
<기생충> 때도 좋은 칼럼을 써냈던 일본의 영화평론가 '오노데라 케이'의 글입니다.
다짜고짜 <오징어 게임>이 표절작이라고 해버린 다른 일본 찌라시 기사 보고 혀를 찼다가...
이글 보고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옮겨야겠다 마음 먹었는데, 글이 좀 어려워서 애먹었습니다. 의역이 꽤 좀 들어갔어요.
잘못된 부분 지적해주시면 확인해보겠습니다.
https://realsound.jp/movie/2021/10/post-878490.html
<오징어 게임>은 어떻게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나. 데스게임으로서의 새로운 접근법.
한국의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 게임>가 쾌거를 이뤘다. 한국 드라마로선 최초로 미국을 포함해 모든 (국가들의) 넷플릭스 랭킹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이다. 자국 콘텐츠가 강하다는 인도에서도 인기를 얻었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작품 세계를 맛볼 수 있는 팝업 스토어에 많은 인파가 몰리는 등, 아시아권 드라마로서는 드물게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시리즈가 이렇게까지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걸까? 이 글에서는 그 수수께끼를 가능한 한 깊게 파고들어 보고자 한다.
총 9화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데스게임’이라는 장르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그것은 등장인물들이, 패하면 죽을 수도 있는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큐브>(1997), <쏘우>(2004) 등 ‘솔리드 시츄에이션 스릴러’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은 장르다.
영화 등 영상 작품으로 <배틀로얄>(2000), <카이지> 시리즈와 <인랑 게임> 시리즈, <신이 말하는 대로>(2014), <리얼 술래잡기>(2015), 넷플릭스 시리즈 <아리스 인 보더랜드>(2020) 등이 있듯이, ‘데스게임’ 장르에 있어서 일본산 작품은 전 세계에서 대단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데스게임 작품에 관한한 세계에서도 톱이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산 작품이 이렇게까지 히트한 현상은, 일본에게 있어서는 ‘자존심을 빼앗긴’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이렇게나 데스게임이 인기 장르가 된 것에는 몇 가지 요소가 존재한다. 우선 <카이지>나 <라이어 게임>으로 대표되는, 거액이 걸린 게임을 소재로 한 만화 작품들이 히트하고 있는 토양이 형성돼 있다는 점. 그와 동시에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배틀로얄>의 개봉을 통해 학생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과격한 내용이 물의를 빚으면서도 화제가 됐듯이, 만화나 영상분야 등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데스게임 장르의 인기를 끌어올려왔던 것이다.
그런 작품들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버블 붕괴 후 경제 침체로 가라앉은 분위기가 일본 사회 전체를 뒤덮고 있는 상황이 된 점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때는 ‘총중류 사회(인구 대부분이 중산층)’로 불렸던 일본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경제 양극화 사회로 변해가는 가운데, 데스게임에 참여해 거액을 손에 쥐려는 창작물 속 등장인물에게 절실한 리얼리티가 부여되고 만 것이었다. 극소수의 승자와 빈곤에 허덕이는 대부분의 패자들.... ‘데스게임’ 장르는 점점 힘겨워지는 사회 상황과 현실 속 사람들의 인생을 응축한 것으로서, 한층 스릴 있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물론 다른 나라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일본처럼 데스게임이 히트할 수 있는 배경이, 사실은 이미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외에서 리메이크된 <카이지> 시리즈 등 일부 작품을 제외하곤, 일본의 영상 작품이 세계적으로 상영될 기회가 드물었던 것이, 일본 작품이 세계적인 붐으로 이어질 기회를 얻지 못한 요인이었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징어 게임>과 같은 조건으로,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아리스 인 보더랜드>는 왜 지금과 같은 붐을 일으키지 못했던 걸까. 그것을 단순히, 종합적인 작품의 질적 측면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있었다고 해버리면, 너무 쉬운 결론이 되어버린다. 그 대신에 내용물을 자세히 음미해보면 일본의 많은 데스게임 작품이 달성하지 못했던 점을, <오징어 게임>이 실현시켰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애당초 데스게임 장르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드라마 부분의 빈약함이었다. 그렇게 된 이유로는, 여러 일본의 데스게임 작품들의 공통점인, 구조상의 문제가 관련돼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게임의 내용 그 자체와 그것을 극복하는 멋들어진 계책이 볼거리가 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데스게임이기 때문에 게임 그 자체의 묘사가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주인공이 놀라운 발상으로 수많은 함정과 심리전을 돌파해 나가는 것을 카타르시스로서 그려나가는 내용은, 현실 사회 속 약육강식의 구조를 인정해 버리는 흐름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물론 여러 작품들에서 게임의 주최자는 최종적으로 규탄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게임에서 살아남아 승자가 된 주인공 역시 고통스런 사회를 만드는 세력에 가담하게 될 위험성도 있는 것이다.
데스게임에 따라붙는 모순된 문제를 그대로 테마로 삼아 그리다.
데스게임 장르에서는 주인공을 어디까지나 약자의 편에 서게 하거나, 일방적으로 게임에 말려들게 하는 설정을 함으로써, 윤리적인 문제를 커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륜을 저버린 게임에 참가하여 승리한 주인공에게 일정한 공감대를 갖고 방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접근법은 정반대이다. 즉, 주인공이 게임에서 이기는 것의 꺼림칙함 그 자체를 강조해 드라마의 주축으로 삼는 식으로, 데스게임에 따라붙는 모순된 문제를 그대로 테마로 삼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정재가 연기하는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성기훈은, 다른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고 현실적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사정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건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이 시리즈는 먼저 그러한 캐릭터의 배경 묘사에 주력한다. 데스게임 장르치고는 늘어진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 잘 생각해보면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인간을 그리는 것인 만큼, 배경 묘사를 최소화시키는 접근 방식이야말로, 오히려 너무 '성급'한 묘사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오징어 게임>의 차분한 태도야말로, 데스게임 장르에 필요로 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일본에서도 친숙한, 한국의 옛날 ‘아이들 놀이’를 응용한 이 시리즈의 게임 자체는, 매우 단순 명쾌해서, 주인공이 복잡한 계책들을 끄집어낼 여지가 없게끔 돼 있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그 대신에 <오징어 게임>에서는 참가자들의 심리 상태 그 자체에 접근해 간다. 그리고 이겨낼 때마다, 게임의 내용은 참가자들을 비인도적인 행위의 공범자로 만들어 간다.
시체들이 쌓여나가는 가운데, 극소수의 사람이 막대한 금액을 챙기는 게임. 그것은 현대의 약육강식 자본주의 경제가 도달하게 될 막장의 세계이며, 거기서 살아남은 강자는 간접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죄를 짊어지는 존재가 된다. 이 신랄한 경제 격차 표현은 진상이 밝혀지는 에피소드에서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인용하면서 고전적인 문학성마저도 끌어들이려 한다. 지향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왜곡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거기에 사는 인간의 존재를 그리는 것이다.
상징적인 것은 비참한 처지의 외국인 노동자가 더욱 착취당하는 구조를 그리는 부분이다. 일본에서도 <카이지> 시리즈의 원작 만화에서 외국인을 등장시키는 시도가 있었지만, <카이지>에서는 어디까지나 주인공과 함께 싸우는 약자로서 그려져 있고, 주인공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에 비해, <오징어 게임>에서는 그와는 반대의 묘사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작품 속 여성의 묘사도 포함하여, 자국의 이미지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부분까지도 통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뼈를 깎는 자세’가 있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는 정치적인 면에서도 전 세계에서 공감하고 받아들이기 쉬운 균형성을 갖고 있다.
연출 및 각본을 쓴 황동혁 감독은 복지시설에서 벌어진 아동 성학대를 그린 <도가니>(2011)의 감독이기도 하다. 약자가 계속 희생당하는 사회의 왜곡된 구도를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오징어 게임>에서도 볼 수 있는 황감독의 강한 문제의식을 포함한 풍자적인 자세가, '데스게임'이 본래 지니고 있던 잠재력을 기존의 어떤 작품들보다도 정확하게 잡아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껏 이야기한 대로, <오징어 게임>은 기존의 여러 데스게임 작품들을 흡수, 그것들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고, 탄탄한 드라마를 준비함으로써, 장르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지위를 획득한 세계적인 작품이 되었다. 앞으로는 이 <오징어 게임>이 데스게임 장르를 판단하는 하나의 큰 기준이 되고, 후발 작품들은 그로 인해 깊은 고민에 빠질 것이다.
허나 일본의 창작자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불행한 일이 아니다. 영상 분야에 있어서 데스게임 장르에는 국경을 초월할 수 있는 큰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지금, 하나의 큰 이정표로서, 그리고 작품 제작의 참고용으로 <오징어 게임>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시에 전 세계 창작자들 역시 데스게임 장르에 적극적으로 도전할 것이고, 아마도 할리우드 역시 움직이게 될 것이다. 데스게임에 기대를 품은 관객, 시청자에게 있어서 이러한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도 흥분되는 일일 것이다.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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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게임의 본거지(?) 답게 일본쪽에서 장르 이해를 잘 하는 거 같고요.
아래 일본 필자의 글도 놀라웠습니다.
https://extmovie.com/movietalk/68905474
100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