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를 보고 나서 (스포 O, 추천) - 홍상수 감독 작품

홍상수 감독의 인간에 대한 고찰. 꽤나 흥미로웠고 재밌었다.
인생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준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뭘 해도 준비, 저걸 해도 준비, 거기서 한 남자는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 준비가 되어 있는 인생은 없다고 한다. 그냥 해야 하고, 그냥 살면서 하나씩 하나씩 해결할 뿐이라고 한다. 준비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말한다.
효도, 효심에 대해서. 어머니를 위해서 산에 집을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고, 산을 이쁘게 가꾸고 한 곳에 죽은 어머니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산 하나를 가꿀 정도로 어머니를 위한, 그에게 느껴지는 뜨거운 효심. 이 정도로 그는 어머니를 사랑했고, 이게 진짜 순수한 사랑의 체험이라고 말한다. 그걸 들으면서 감동을 느낀 자신의 딸 남자친구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그가 절을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자신이 사랑으로 키운 딸을 나만큼 사랑하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이면 얼마나 기분이 뿌듯했을까.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우리가 왜 병들고 죽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일어나는 것이고, 이에 대해 아무리 알려고 해도 영원히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냥 무언가를 통해 많이 느끼고 감사하면 된다. 그게 끝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이 말을 듣고 왜 너는 그렇게 단정 짓냐고 물어보면 당사자는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그것마저도 누군가에겐 그냥 '모르겠어' 한마디로 도피하는 것 같다고 보인다.
과거에 지었던 잘 만든 탑은 남아있지만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는 탑이 있다.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지만 이걸 지은 사람은 이름도 모른 채 탑만 남아있는 모습에서 어떤 이는 웃긴가 보다. 하지만, 저걸 지은 사람들이 사라진 것처럼 너도 사라질 거라는 말에 웃음이 사라졌다.
왜 콧수염을 기르는 것인지, 왜 변호사인 아버지의 도움을 안 받고 사는 것인지, 오래된 기종의 차는 왜 안 바꾸는 것인지, 왜 쓸 돈만 버는 게 좋다는 것인지, 왜 넉넉한 게 좋지 않은지 등 왜 그렇게 행동하냐고 물음에 대답은 뚜렷하게 줄 수가 없었다. 그냥 내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내 신념이 그런 거니까, 남이 어떻게 하면서 살고 있다 한들, 보편적으로 어떻게 사는 게 좋든 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내 삶이니까.
계속 누군가 변호사인 아버지 얘기를 계속 꺼낸다. 아니면 계속 맥을 끊는, 내 삶이 잘못됬다고 보는지 태클을 걸고 조롱을 하는 사람이 있다. 결국 나는 폭발했고, 반문을 한다. 당신이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를 아느냐, 당신이 내 삶의 만 분의 일이라도 아느냐,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내 신념에, 삶에 모욕을 준 사람에게 그동안 겪었던 울분을 토내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나의 여자친구를 사랑한 것부터였고,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고 그녀의 언니를 만나고 그녀의 어머니를 만나면서 왜 자꾸 내 삶이 잘못됐다는 식으로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같이 있는 자리에선 말로는 너의 삶 멋있다, 너의 시도 멋있다 등 좋은 얘기만 늘어 놓고서 자기들끼리 있는 대화에선 상반된 말을 하며 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겉으로는 좋은 척 괜찮은 척, 안에서는 나를 한심하게 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말에 동의할 수 없고 공감할 수 없었다. 나는 꿋꿋이 내 신념을 지키며 내 삶을 살아가기로 하고 그 집을 나서는데, 차가 퍼지고 보험회사와 연락을 하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담배 한 대를 물고 내뱉은 말은 '차를 바꿔야 하나'였다. 그들과 있을 땐 절대로 내 신념 하나를 꺾지 않으면서 있었지만 결국 나 스스로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뭔가 잘못된 게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던 거 아닐까.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차였고 차의 사랑이 남달랐고 누가 뭐래도 차를 안 바꿀 것처럼 말하더니, 이렇게 쉽게 생각이 달라지는 모습. 인간이란 원래 이런 것일까.
자연이라 하면 그 집에 있던 개와 닭과 노을 지는 거나 달이 생각난다. 여기서 개를 키우면 누가 오면 짓으니 키우고 있는 것이고, 닭은 달걀을 얻을 수 있고 그들을 통해 맛있는 닭요리는 먹을 수 있고, 노을 지는 거는 특정한 시간에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고, 달은 밤하늘 속에서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자연이면 자연은 늘 자신의 신념이라면 신념, 할 일이면 할 일을 늘 하고 있다. 어떤 불평도 없다. 그런 자연이 우리 인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남한테 이런 저런 말을 하면서 기분을 좋게 해주거나 나쁘게 해주고, 겉과 속이 다른 모습 등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홍상수 감독이 바라본 인간의 모습에서 참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물 안에서'만큼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흐릿하게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 영화의 화질도 마치 720p처럼 깔끔하진 않았는데, 홍상수 감독 본인의 흐릿해진 초점을 나타내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볼 때는 몰랐는데 흐릿한 초점으로 보니 인간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인지, 이것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다행이 모든 장면이 흐릿하진 않았기에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아무리 감독에 의도여도 모든 장면이 흐릿했던 '물 안에서'는 그것 때문에 보기가 쉽지 않았었다.
물 오른 연기를 보여 준 하성국 배우가 주가를 올리더니 이번 영화에서 절정을 보여 준 게 아닌가 싶다. 평온한 연기부터 감정을 폭발했던 순간까지, 하성국 배우는 이제 홍상수 감독 작품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배우가 되었다. 권해효 배우와 조윤희 배우의 호흡은 두말할 필요 없이 좋았고, 강소이 배우도 '여행자의 필요' 때부터였는지 꾸준히 등장하더니 이번엔 좀 분량도 있고 좋은 연기를 보였다. 박미소 배우의 연기는 영화의 긴장감을 더했고 계속 인물들 간에 마찰을 일으키며 영화를 더 재밌게 만든 감초 역할을 잘 해냈다.
이번 영화엔 유독 원래도 많이 사용하는 감독이지만 '진짜', '정말', '너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도 좀 의미심장했다.
언제까지 이 감독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새로웠고, 특히나 그 새로움 속에서 다른 작품들보다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터라 더욱 재밌게 봤던 것 같다.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된다.
최고였다.
톰행크스
추천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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