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수상이 늦었다고 주장하는 일본 평론가
좋은 글 있어서 옮겨봤습니다.
리얼사운드라는 사이트 글이에요.^^
https://realsound.jp/movie/2020/02/post-505792.html
봉준호는 시작부터 봉준호였다.... <기생충>으로 아시아 영화 첫 위업을 달성하기까지
봉준호 선풍이 불어 닥치고 있다. 감독작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도 쾌거지만, 그 기세를 타고서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의 주요 4개 부문을 수상했다고 하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 영화로서의 첫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특히 아카데미상 수상은, 그것을 계기로 한국영화를 비롯한 아시아 엔터테인먼트가 널리 세계에서 승부를 할 수 있을 가능성을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공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에는, 한국영화 자체의 종합적인 약진과 한국의 재벌 CJ그룹의 원조 등 다양하게 이야기되고 분석되는 여러 요소들이 관계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요 요인은 작품 그 자체일 터이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낸 것은 봉준호 감독의 압도적인 재능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봉준호 감독의 대단함에 관해, 과거의 주요 작품들을 되짚어보면서 다뤄 보도록 하겠다.
대학에서 사회학과를 다녔던 봉준호는 단편영화에서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한국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한 경력을 갖고 있다. 거기서 불과 1년 동안 공부하고 연출한 단편 작품이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일이 벌어진다. 봉준호는 시작부터 봉준호였던 셈이다.
장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 시점에서 이미 봉준호의 압도적인 재능은 크게 꽃을 피웠다. 그 작품으로 이미 몇몇 세계적인 상들을 수상했는데, 당시에 세계 3대 영화상의 주요 상을 수상한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수준의 작품이다.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따지면 (수상이) 20년이나 늦었던 것이다....!
아파트에서 벌어진 강아지 연쇄 실종 사건을 배두나가 연기하는 경리직 여성이 파헤친다는, 이후에 나온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조금은 흐뭇함이 느껴지는 미스터리 작품인데, 거대한 아파트를 기하학적으로 포착한 촬영과 비탈길에 굴러가는 두루마리 휴지의 움직임 등의 아티스틱한 영상미가 탁월하다. 이미 이 작품에서 <기생충>에 도달하게 되는 바탕이 완성됐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3년 뒤 봉준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두 번째 작품이자, 당시 미해결 상태였던 연쇄살인사건을 기초로 한 <살인의 추억>(2003)이 공개된다. 이 작품을 감상한 대부분의 관객이 같은 기분일 거라 생각되는데, 고작 두 번째 작품으로 이 정도의 영역에까지 도달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 힘들 지경이다.
중후함이 느껴지는 촬영, 탄탄한 인간 드라마, 관객의 심리를 컨트롤하는 연출, 시니컬한 유머, 한국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그리고 전체를 아우르는 미스터리한 분위기 등, 모든 요소가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 너무나도 만능적인 재능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이름을 꺼내며 격찬한 이는 개봉 당시에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이 두 작품으로 이미 국제적인 상들을 수도 없이 받았지만, 세계 3대 영화제의 최고상과 아카데미상까지 도달하기에는 아직 한참 더 남아 있었다. 이 <살인의 추억>을 최고 걸작이라고 말하는 관객도 많지만 이후 봉준호 감독은 더욱 더 진화해 간다.
이전 작품들의 요소가 어딘지 <기생충>과 연결
<괴물>(2006)은 조금 색다른 괴수 영화이다. 봉준호의 출신지이기도 한 수도 서울에 흐르는 웅대한 물줄기인 한강 지역을 무대로 송강호와 배두나가 연기하는, 어딘지 미덥지 못한 가족이 모여서 의문의 괴물에게 잡혀간 가족의 소중한 아이를, 한국정부에게 쫓기는 가운데서 수색한다는 내용이다. 미지의 바이러스로 인한 소동과 거기에 관련된 정보의 혼란이 일으키는 인권 탄압 등 사회적인 측면이 심화되고, 복잡하면서 입체적인 이미지를 연결해 간다. 약품이 살포되는 장면의 아름다움도 잊히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 속 여러 장면들이 인상에 남는 것은 화면의 아름다움, 재미가 돌출돼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감독 본인이 원래부터 만화가를 지망했던 점이 크게 작용한다. 일본 만화나 프랑스의 예술 만화(방드데시네)를 참고할 정도로 만화광인 점이 보다 구체적이면서 입체적이고 치밀한 화면 설계를 가능케 했다. 그 기술에 따른 산뜻한 화면이야말로 거대한 무기인 것이다.
다음에 소개할 작품은 전율을 느낄 정도의 걸작 <마더>(2009)이다. 필자가 그러하듯 이 작품을 봉준호의 최고 걸작이라고 여기는 관객들도 많을 것이다. 소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된 청년과 그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이 간단한 줄거리를 들은 관객이 예상하는 전개를, 작품은 아득히 초월하여 먼 곳으로까지 날아가 버린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인간의 깊이와 무서움이다. 관객이 언뜻 보고서 등장인물의 특징을 이해했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 각자에게서 예상치 못한 다른 얼굴이 엿보인다. 그런 양면성이 만드는 인간 드라마가 얽혀 들어가고, 복잡하면서도 훌륭한 각본과 음영 및 색다른 구도 등 인간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이 탁월하다. ‘한국의 국민 어머니’로 불리는 김혜자를 주인공인 어머니 역할로 캐스팅함으로써, 특히 한국 관객들은 아비규환의 경지를 맛보았을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도로에서 노상방뇨 중인 아들에게 어머니가 손수 한약을 마시게 하는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로 잡은 장면은 영화사에 남을, 좋은 의미에서 그야말로 미친 컷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장면을 다른 영화에서 본 적이 있던가. 이런 천재가 과연 또 있을까 싶다.
이후 감독으로서 익숙지 않은 할리우드 진출작으로서 고전했음에도 빈부의 격차 문제를 알기 쉽게 시각화한 <설국열차>(2013), 넷플릭스 제작으로 착취의 구도를 잔혹하면서도, 약자 쪽에 대한 공감을 갖고서 그린 <옥자>(2017)를 통해, 봉준호의 재능은 국경을 넘어서도 문제없이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갖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작품들에 담긴 요소가 어딘지 <기생충>과 연결돼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한 요소가 포함돼 있기에 <기생충>은 매번 작품의 내용에 놀라움을 느꼈던 봉준호 감독의 팬으로서, 사실은 의외성이 적은 듯 느껴지는 작품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즉 <기생충>은 감독 자신의 셀프 오마주적인 작품이며,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완성도가 높아져서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처음 접한 관객이라면 그 충격이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을 터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 일장일단, 어느 쪽이 더 뛰어나다고 즉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봉준호 감독의 굉장한 점은 <기생충>이 그 퀄리티만을 따졌을 때 (기존 작품들과 비교해서) 특히나 특별한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한,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규격 외의 재능을 지닌 사람이 처음으로 ‘기적’이라 불릴만한 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받으려면 훨씬 전에 받았어야
유일한 문제는 봉준호 감독이 미국에서 명성을 얻을 때까지, 역시나 너무나도 오랜 기간이 걸렸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상을) 받으려면 훨씬 전에 받았어야 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오늘날의 쾌진격은 ‘기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렇게나 명백한 재능의 소유자를 오랜 세월 동안 알아채지 못한, 혹은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했던 쪽의 잘못이 아닐까. <기생충>은 그런 의미에서 나를 포함한 열광적인 일부 팬들에게 있어서는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조금 복잡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인기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떠한 입장에 있건 공통적인 것은 봉준호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모두가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까지 단기간에 주목을 받고 기대를 받는 영화감독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압도적인 힘을 손에 넣고서 다음에는 무엇을 그려 보일 것인지. 그 엄청난 재능이 어디까지 도달할 것인지. 이 이상으로 자극적인 일이, 지금의 영화계에 과연 또 있을 것인가 싶다.
영화평론가 오노데라 케이
golgo
추천인 40
댓글 48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넷플릭스 접근성이 쉬웠기에 그런듯
맞아요 진짜 명연기 지금은 고인이 된 키키 키린도 마더를 보고 김혜자씨 처럼 혼자 극을 이끌고 나갈수 있을지
김혜자 선생님 연기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당시 마더가 비공식 초청작이어서 여우주연상은 받지 못한것 같은데요
두고두고 명작으로 거론할겁니다 혹시 모르죠 봉준호 감독님이 차기작에 김혜자 선생님을 다시 또 출연시킬지 ;;;
설국열차 개봉했을 때 봉준호 감독 작품을 상암이었나? 에서 쭉 다 틀어주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는데... (비였나 눈이 엄청 온 날..)
전 '플랜더스의 개'를 선택해서 봤는데, 그때 봉감독이 와서 '이 작품은 (너무 망해서) 본 사람이 거의 없을텐데... 오늘 이 작품 선택해 주신 분이 진짜배기 팬!' 뭐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했던 게 문득 떠오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좀 딴 얘긴데....
원빈.. 일본에서 '한국 초미남' 정도로 인지하고 있던 사람들. 이 기회에 마더의 원빈을 보면 어떤 느낌일지 쓸데없이 궁금해지네요 ㅋㅋㅋ
엄청난 극찬인데 표현이 참 일본스러워서 웃겼네요 ㅋㅋㅋ
번역하면서 넷플릭스 켜서 직접 캡쳐해봤는데 굉장한 장면이긴 하더라고요. 엄마가 몸에 좋은 보약이라면서 억지로 떠먹이는데.. 그게 바로 아들의 오줌이 돼서 흘러내리는 듯한 모습이 영화 전체를 상징하는 듯했습니다.
정말 머리속이 궁금해지는 양반입니다...
충숙이 죽어가며 변기에 토하는 장면과 기정이 역류하는 변기 위에서 담배를 피는 장면이 교차편집될 때...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서 개들을 고생을 좀 시키기는 했어도 실제론 잘 보호했다고 해요.
그리고 "플란다스의 개"가 개봉할 당시(2000년) 기억나는 한국영화를 들어보면 봉준호의 성장이 얼마나 눈부신지 느낄 수 있습니다.
박하사탕(이창동),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류승완), 단적비연수(박제현, 영화는 별루지만 은행나무 침대 후속격이라 화제성만큼은 으뜸이었던),
오 수정(홍상수), 반칙왕(김지운), 공동경비구역JSA(박찬욱), 인터뷰(변혁) 등...
만약 한국영화가 오스카를 더 일찍 탔다면 어떤 영화가 탔으면 좋았을까 생각해보면
"밀양"이었음 어땠을까 생각 해보게 되네요.
아무튼 이후 영화는 정말 다 대단한건 인정.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옥자도 조금 아쉽긴했어요. 지금껏 봉준호 영화에 조금 마이너스 같은 느낌이 들었음. ㅎ
차기작이 너무나 궁금합니다
글 잘보고 갑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