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후기 - 뜻밖의 취향저격 로맨스

우물쭈물하다가 놓칠 뻔 했는데, 다행히 오늘 극장 관람했습니다. 아마 높은 확률로 올해의 영화 TOP 5에 들어갈 영화를 만났네요.
< 도시에 사는 젊은 남녀가 우연한 계기로 만나 마법 같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고단한 현실에 치여 한 때의 설렘과 열정은 빛을 바래고 둘 사이에 벌어지는 간극을 메우지 못한다. >
이렇게 거칠게 요약하면 뻔한 레퍼토리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지만, 역시 영화는 이야기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한 예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영화의 각본은 정말 아기자기하면서도 섬세합니다. 개인적으로 후반부를 향해 갈수록 그 짜임새에 감탄하게 되었는데, 남녀의 연애가 타올랐다가 시들어가는 기승전결을 간단한 소재나 상황 몇 가지의 대비를 통해 간결하고 쉽게 보여줍니다.
영미권이나 한국의 멜로처럼 서로의 감정과 입장이 격하게 충돌하고 부서지는 장면이 없다는 것도 좀 특이했는데, 이것이 더 현실감 있다고 느낀 지점 같습니다. 서로 안 맞아서 답답해하고 살짝 다투면서 점점 거리를 두게 되는... 서로 존중은 해주지만 선뜻 이해하려고는 하지 않는... 이런 현실적인 멀어짐이 제게는 참 와 닿았습니다. 참 요즘 세대에 맞는 연애의 일면이란 느낌이었구요.
이렇듯 다소 담백하고 소박한 각본에 맞게, 시종일관 과한 느낌 없이 적정선을 지키는 연출도 참 맛깔나더라고요. 후반부 딱 한 번, 연출이 감정적으로 크게 울림을 주면서 튀는 장면이 있는데, 막상 저도 그 장면 보면서 울먹거리고 찔끔거렸기 때문에 단점이라고 말하기는 민망하네요ㅠㅠ
촬영에 대해서도 한가지 덧붙여보면, 막 연애를 시작한 커플의 행복을 비출 때는 판타지처럼 환하고 화사하게, 반면 현실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부분에서는 다소 어둡고 명암이 확실한 식으로 직관적인 시각적 인상을 남기는 조명의 쓰임이 기억에 남네요. 생각해보니 굉장히 정석적인데, 이번 영화에서 유독 눈에 띄었네요 ㅎㅎ
나름? 영화 매니아로서 재미있었던 건 일본의 서브컬쳐 레퍼런스가 홍수처럼 쏟아진다는 겁니다ㅋㅋ 주인공 커플이 일련의 대중문화에 심취해 있다는 공통점으로 이어져서 그런지, 들떠서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는 장면이 많거든요.
문학이나 만화. 영화, 드라마, 게임, 대중음악 등 갖가지 분야에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콘 같은 이름들이 틈만 나면 언급되는 게 의외로 상당한 잔재미를 주더라구요. 그런데 이 중 가장 많이 나온건 소설 작가들인데, 거의 20여명 정도 이름이 언급됐지만 제가 아는 이름은 겨우 한명이어서 슬펐던... ㅠ
극중에 <마녀 배달부 키키> 실사판을 비롯한 일본의 무분별한 만화 원작 실사화를 깐다던가, '신카이 마코토'가 어느새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가 되었다는 내레이션이라던가, 종종 귀여운 힙스터 기질이 느껴지더군요ㅋㅋㅋ
심지어 실제 본인 역으로 짧게 등장한 유명인사도 있어서 놀랐는데, 저는 처음 봤을 땐 긴가민가했지만 나중에 극중 언급으로 확인했습니다. 나도 주인공 커플처럼 오타쿠 인증인건가 싶어서 속으로 웃었어요ㅋㅋ
마지막으로 주연 배우 스다 마사키와 아리무라 카스미는 청춘 멜로의 두 주인공으로서 정말 모범적이라 할 만한 호흡을 선보였습니다. 서로에 대한 애정을 주체 못하는 귀여운 모습들부터 서로의 존재에 익숙해지다가 결국 무감각해지는 권태기까지, 러닝타임 내내 각자의 역할을 120% 이상으로 해냈습니다.
일본 멜로나 드라마 영화의 연기 톤을 떠올리면 왠지 과장되고 감정적으로 격하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간만에 참 현실감 넘치고 편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즐길 수 있었네요.
아리무라 카스미는 이전에 영화 몇편으로 본 적 있지만 특별히 연기가 뛰어나다거나 매력적이라는 느낌을 못 받았는데, 이번 영화에서 제대로 설렜습니다ㅋㅋㅋ 감정 연기도 너무 잘하고...
스다 마사키는 이름만 많이 들어봤지 작품으로 보는건 처음인데, 딱 보자마자 우리나라 박정민 배우랑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외모도 닮았고 (맞죠?) 연기 스타일도 좀 비슷한 것 같고... 아무튼 이 분도 눈에 확 꽂혔어요.
최근에 본 청춘 멜로 영화들은 제 취향의 문제인지 실패의 연속이었는데, 진짜 오랜만에 너무 좋은 로맨스를 보게 돼서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요 ㅎㅎ
웬만해선 취향 안타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수작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 영화를 강하게 추천하신 많은 익무인 분들에게 감사하고, 저도 그 강추에 살포시 숟가락 얹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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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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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낚시 같은걸 해보려고 했는데 첫댓부터 싸해서 아무래도 안되겠네요ㅋㅋ 죄송합니당...


후기 잘 읽었습니다.^^ 일본 영화계를 걱정하는 대사 등 과장해서 하나도 버릴 대사가 없는 거 같아요~^^; 기대는 했지만 이정도로 잘 나올거라 생각은 못했는데, 정말 기쁘더라구요~ 항상 마주치는 신호등 볼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은, 한동안 여운에 잠길 듯 합니다. ㅎㅎ





요 영화는 지인들한테 영업 많이했는데 보신분들이 다들 호평하시더라구요.
올해 본 일본영화중에 3손가락에 꼽습니다.


음 불호가 아니신거 아니어요??
아 시작에 불같호를 못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