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랑종 후기 입니다 (랑종과 곡성 스포주의, 긴글주의, 랑종사랑주의)
일단 무속신앙과 각종 괴담과 고대 설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저는 랑종이 엄청나게 좋았고, 진짜 간만에 잘 만든 공포영화가 나왔구나 싶어요. 저는 종교가 없지만 진짜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과연 신은 무조건적인 선한 존재인가라는 궁금함을 항상 갖고 살아서 이 영화가 더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후기가 엄청 길 예정입니다 ㅎㅎㅎ 당연히 랑종의 스포 다량 함유 되어있고, (곡성 스포도 있어용!) 글도 길고 나홍진 감독님과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님에 대한 애정 가득한 글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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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로는 저는 랑종을 믿음과 의심과 불신에 중점을 두고 봤습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용한 무당 할머니 인터뷰 내용 중 하느님이 힘이 센 이유는 그만큼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라는 것이 영화 보는 내내 생각 나더라구요.
영화 초반 님은 바얀신은 좋은 신이다라고 확언하고 바얀신의 힘을 빌어 마을 사람을 치료해주기도 합니다. 노이는 자신의 속옷을 님에게 주고 싸구려 부적까지 써가며 무당이 되는 것을 동생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하느님을 믿으며 무당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바얀신을 기만하는 행위와 동시에 바얀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배신입니다.
밍의 경우 무당 자체를 믿지 않습니다. 그 모든게 연극이라고 하면서 조롱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외가가 대대로 반야신을 섬기고 이모인 님도 무당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저는 신이 자비롭고 선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있기에 반야신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믿음에 부응하는 이에게는 복을 주고 이를 의심하고 불신하는 이에게는 처절하게 보복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실제로 무당이 되기 전에 신내림을 거부하면 신은 자비없이 고통스러운 신병을 앓게 합니다. 신병을 앓게 하는 것 뿐 만 아니라 무당이 될 사람의 주변 사람들도 고통스럽게 하죠. 이것을 피하고자 자살을 시도해도 신은 그것을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결국 인간은 신의 권능에 무릎을 꿇고 신과 인간의 중개자가 됩니다.
노이는 바얀신을 거부하고 하느님에게 기도해 무당이 되지 않았고 방직공장을 운영하는 남편을 만나 이쁜 딸과 잘생긴 아들을 낳았습니다. 노이가 가장 행복할 때 반야신은 가차없이 노이의 행복을 뺏어가고 마지막에는 불에 타 죽게 합니다.
노이가 대대로 저주받은 아싸반야 가문의 남자와 결혼한 것도 바얀신의 계획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당들은 굿을 하기전에 육식을 삼가고 몸을 깨끗이하고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이는 아싸반야 가문에 시집을 가서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아 법으로 금지된 개고기를 판매하고, 밍과 그 오빠 맥은 근친상간을 저지르고, 밍은 문란한 성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본디 바얀신을 섬기는 핏줄인 밍은 영적인 존재를 받아들이기 쉬운 몸일테고, 무속신앙에서 금지하는 것들을 저질렀으니 밍은 악귀가 들기 딱 좋은 환경인 것이죠. 여기에 모든 종교에서 금지하고 있는 자살을 한 맥이 발화점이 되어 온갖 악귀들은 밍의 몸에 들어갔던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님은 바얀신은 좋은 신이니 언니가 용서를 구하고 바얀신께 기도하면 밍이 나을 수 있을 거라 말했지만, 님이 섬기던 바얀신 석상의 목은 잘라져 있고 님은 오열하죠. 퇴마하기 전 언니가 넌 실제로 바얀신을 봤니 라는 물음에 님은 한번도 본 적 없지만 느끼고 있다고 말하죠. 그리고 마지막 인터뷰에서는 결국 자신이 믿고 있는 신에 대한 믿음이 깨져 있고 의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믿음이 깨지니 바얀신의 힘이 약해져서 밍을 악귀로 부터 구해주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힘을 믿지 않고 배신한 이들에게 벌을 주는 바얀신의 계획의(=우리는 이것을 운명이라 합니다) 일부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앞서 말한 신의 힘이라 함은 사람들의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무당 할머니의 말을 기억하시나요?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빨간 차가 절대 아니지만 차 후면에 "이 차는 빨간 차이다" 라고 쓰여 있는 장면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결국 모든 것은 믿음에 달려 있다는 것이며,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속신앙이든, 종교든 그 원천에는 인간의 믿음에 있습니다. 의심하고 불신하는 순간, 여러 신화에서도 그렇고 성경에서도 그렇고 신은 불신하는 자에게 철저하게 벌을 내립니다.
+추가+ 밍이 꾼 꿈을 빼먹고 쓰질 않았더라구요! 굉장히 중요한 장면인데!🤣
밍이 왠 상하의 빨간 옷을 커다란 남자가 혀를 낼름거리며 칼을 들고 목을 베고 뭐라고 중얼거리는 꿈을 꾸었다고 말하죠
(하루 지나서 기억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본 분들은 알려주세용)
이 장면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일단 태국에서 빨간 옷을 걸고 이 집에는 남자가 살지 않는다며 귀신을 속인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빨간옷을 입은 커다란 남자를 악귀로 볼 수도 있고, 오히려 바얀신으로 볼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커다란 악귀로 봤을 때는 해석이 쉽죠. 원혼과 악귀가 거대한 존재가 되어 대대로 그들을 지켜주던 바얀신의 목을 베어버리는 것이죠. 점점 반야신에 대한 믿음은 약해지고 있고, 아싼티야 가문에 대한 저주와 원혼은 강해지니까요. 남자가 빨간 옷을 입은 것은 빨간 옷을 집 앞에 거는 행위와 같은 귀신을 속여 피하는 행위로는 너희들은 결국 나를 피할 수 없다라는 의미이구요.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라 만약 빨간옷을 입은 남자가 바얀신이라는 생각도 했는데요, 이 경우 자신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밍에게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었고, (님은 한번도 바얀신을 본 적이 없었고, 노이의 말에 흔들려 바얀신의 존재에 의구심을 품고 다음날 죽은채로 발견되지요) 빨간 옷을 입은 것은 밍의 엄마 노이가 원래 무당이 되어야했으나 바얀신을 속이고 님이 무당이 된 사실을 바얀신은 이미 다 알고 있으며, 너희를 지켜주던 바얀신은 숲속에서 집안 대대로 모시는 바얀신 석상의 목이 잘려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이제 신을 기만한 죄를 묻겠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재밌더라구요!
두번째는 금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아마 이것 때문에 많은 분들이 불쾌감을 느끼시고 자극적이다 생각할 것 같아요. 남매는 근친상간을 하고, 남동생이 자살을 하고, 헐리웃 영화에서는 개와 어린아이를 절대 죽이지 않지만 이 영화에서는 키우던 개를 죽이고 그것을 심지어 먹기까지 하고, 유아 살해까지 벌어집니다. 내장이 다 드러나게 식인을 하는 잔인한 장면이(카니발리즘) 묘사되며 마지막 부분에서는 존속살해로 마무리 되구요. 여성의 생리를 직접적으로 보여줘서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직장에서 여러 남자들과 성관계를 맺기도 하고, 삼촌에게 대놓고 너 어린 여자 좋아하잖아 하면서 자신의 옷을 찢고는 성행위를 유도 하는 등등 진짜 수위가 높아서 진짜 미친 영화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터부시 되는 모든 점들이 영화에 나오니, '와 이 영화 진짜 각잡고 사람들 불쾌하게 하려고 작정했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오히려 모든 금기를 저질러버리니 표현이 이상하긴 한데 시원하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더라구요.
세번째는 무속신앙에 관한 부분입니다. 종교는 없지만 오컬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각종 미신에 빠삭한 편이라 감탄하면서 영화를 봤어요. 신내림에 관해서 그냥 태어나 보니 무당 집안이어서 무당이 되어야 하는 운명인 것, 그것을 피하려하지만 피할 수 없는 무당들의 일생을 잘 표현한거 같아요. 밍이 악귀에 들리고서 각종 쓰레기들을 집에 가져오죠. 귀신들은 정리되지 않는 더러운 방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저도 방을 잘 못 치우는데 낼 방 정리를 깔끔하게 하려고요 ㅎㅎ) 언니가 자신의 속옷을 동생에게 주었다고 하는 장면도 신기했어요. 신당에서 굿이나 제사를 지낼 때 실제로 입던 속옷을 가져오라고 하거든요. 그리고 밍네 집이 개고기를 판매하지만 럭키라는 흰 개를 키우잖아요. 흰 개는 예로부터 악귀를 쫓는다고 알려져있고, 럭키는 악귀들을 내쫓으려 열심히 짖지만 결국 악귀에 씌인 밍이 럭키를 잡아 먹죠.
후반부에 퇴마에 실패한 후 노이가 자신에게 반야신이 들어왔다고 하죠. 일단 저는 바얀신이 아닌 허주로(신이 아니지만 신 행세를 하는 거짓된 귀신) 봤습니다. 밍에게 붙은 여러 원혼들과 악귀들의 퇴마에 실패하고 그 중 하나가 신가물인(신내림을 받을 수 있는사람) 노이에게 씌인 거고 노이는 그걸 바얀신이 자신에게 내려왔다고 하는 거죠. 이 때 노이의 손가락은 검게 물들어 있습니다. 신이 아닌 악귀가 씌였으니, 그나마 남자 무당의 제자들을 지켜주던 향을 꺼트리고 그 제자들 또한 악령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그러나 밍에게 씌인 강력한 악귀 앞에서 무당 흉내를 내다 쪽도 못 쓰고 결국 불에 타 죽은 것이라고 봤습니다.
이것외에도 진짜 무속신앙 고증 잘되었다고 생각한 부분이 정말 많았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ㅎㅎ
네번째는 실의 상징성 입니다.
저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를 시각화 한 것으로 봤습니다. 님의 신력과 남자 무당의 신력을 이어주기도 하고, 실을 통해 악귀에 씌인 밍의 행동을 저지하기도 합니다. 영화 보다 문득 생각난 설화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거미를 한번 살려 준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지옥에 갔을 때 부처님은 거미줄 하나를 내려서 그 사람을 구원해주려 했으나, 마지막까지 욕심을 내고 이기적으로 굴다 결국 거미줄이 끊어져 지옥으로 떨어지는 내용인데요, 앞서 말한 믿음도 이 실과 같이 끊어지기 쉽고, 한쪽에서 놓아버리면 이어지지 않습니다. 신과 인간의 관계도 이와 비슷한 것 아닐까요. 믿지 않으니 내가 지켜주고 보호해 줄 필요가 없는 것이죠
다섯번째로 밍은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상상입니다. 영화 초반 태국에서는 모든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일본에서도 이와 같이 모든 만물에 신이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기독교의 유일신과 다르게 선과 악의 구분을 하지않습니다. 밍을 보니 곡성의 외지인이 떠오르더라구요. 외지인도 원래는 사람이었으나, 악령에 사로잡혀 악령 그 자체가 되어 사람들을 홀리고 잡아먹어가며 영겁을 사는 악한 신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기독교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경한 상상을 했네요 ㅎㅎ 밍에게도 강한 원귀가 깃들었고, 밍도 종래에는 곡성의 외지인과 같은 길을 걷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ㅎㅎ
마지막으로 영화보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적어보자면 곡성에서처럼 관객들을 현혹시키는 부분도 넘 좋았구요, 무명의 배우들이 열연을 펼친 것도 정말 좋았지만, 밍 배우분 연기 보고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어요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공포영화는 시각적 연출도 중요하지만 사운드도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으로써, 사운드도 진짜ㅋㅋㅋㅋ 태국의 묘한 음악은 당연하고요, 밍이 이 흔드는(?) 소리서 부터 악귀들이 속삭이는 소리들까지 너무 리얼하게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생생해서 바지에 오줌 쌀 뻔했어요ㅋㅋ
영화 보면서 곡성은 당연히 생각나고, 캐리도 생각나고, 엑소시스트도 생각나고, 파라노말 액티비티도 생각났습니다 ㅎㅎ
영화 끝나고서 내적박수를 엄청치면서 감탄했는데, 같이 본 친구는 찝찝하고 불쾌하다고 하더라구요 ㅋㅋㅋㅋㅋ 저는 오히려 상쾌한 기분까지 들었는데 말이죠 ㅋㅋㅋㅋㅋ 여튼 2021년에 본 영화 중 가장 마음에 든 영화였습니다!
추천인 32
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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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에 잠깐 스치듯 지나가더라구요!! 😆


애정 어린 글 잘 읽었습니다 :)
앗!!! 조언 감사해요!!! 긴글 읽어주셨어요 😊


잘 정리하셨네요~~~

저도 비슷하게 정말 야심이 큰 영화로 봤어요! 아쉬운 점도 많지만, 끝에 한시간가량 지속되는 공포의 향유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 속에서 죄에 대한 선과 악의 입장도 특이하게 그려졌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밍 얘기는 인상적이네요. 정말 그럴수도 있겠네요.

후기 잘 봤습니다. 생각해볼 수록 더 무서운 영화죠.^^

리뷰 너무 잘 봤습니다!
미리 읽어 보길 잘 한거 같네요. 길고 꼼꼼한 리뷰 고맙습니다^^
밍이 사라졌을 때 친구가 밍의 행방을전 남자친구들에게도 물어봤다는 장면과, 술에 잔뜩 취해서 인력사무소 소파에서 잘 때 전화로 친구가 '너 내가 찜한 그 남자 데려갔어?' 라고 하는 모습들을 통해 유추한 것이기는해요! (남자친구를 많이 사귀었다고해서, 클럽을 간다고해서 문란하다는 게 아니에요!!!! 밍이 악귀에 씌이기 좋은 몸이다는 설정을 이해하려다보니 제가 꿰어 맞춘 것일 수 있어요ㅎㅎ)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밍이 악귀를 통해 그 문란함이 극대화 된 걸로 봤습니당!

2차를 보기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글 잘 봤습니다~!
그리고 반야 신이 아니라 바얀 신입니다 😉
와...멋진 리뷰네요... 찬찬히 정독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