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태양의 노래' 초간단 리뷰
1. 한국형 신파영화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많지 않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좋아하진 않는다. 어린 시절 신파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혔던 '편지'나 '약속'(공교롭게도 둘 다 박신양이 주연이다)은 나름 재밌게 봤다. 그러나 두 영화 모두 보면서 울진 않았다. 어릴때부터 '울라고 등 떠미는 영화'에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정통 신파영화는 남녀간의 사랑에서 비롯됐다. 둘 중 하나가 시한부인데 사랑에 빠졌다거나(혹은 둘 다 시한부인데 사랑에 빠지는) 환경적 요인으로 헤어지는 연인의 비극적 운명을 다루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가족애가 신파의 소재로 자주 쓰인다. 어느 쪽으로 가도 별 차이는 없다. 다행스러운 점은 'K-신파'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나름의 진화라도 보였다. 그렇다면 'K-신파' 못지 않게 강력한 'J-신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2. 뮤지컬 '태양의 노래'는 2006년 일본영화 '태양의 노래'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15년전 영화인 '태양의 노래'가 'J-신파의 최신 경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태양의 노래'를 보고 오랜만에 인지하게 된 'J-신파'의 최신 경향을 되짚어보니 '태양의 노래'에서 크게 진화하진 않은 듯 하다(나는 영화 '태양의 노래'를 보지 못했다). 당장 생각나는 '최신 J-신파'라면 '나는 내일 어제의 너를 만난다'와 '양지의 그녀' 정도다. 이들은 여전히 남녀간의 사랑에서 신파를 찾고 있으며 여기에 약간의 판타지를 더하고 있다. '태양의 노래'에서는 색소건피증을 겪고 있는 주인공 해나(김지연)가 등장한다(공연에서는 구체적으로 병명이 언급되지 않는다). 실제 존재하는 병이긴 하지만 증상에 대해서는 대부분 판타지다(실제 나타나야 할 증상은 안 나타나고 낮은 확률로 나올 수 있는 증상이 나온다. 영화적 허용으로 넘길 수 있는 부분이다).
3. 앞서 언급한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나 '양지의 그녀'에도 판타지 요소가 포함돼있다. 이것의 원조는 역시 '러브레터'다. "'러브레터'는 판타지다"라는 명제에는 선뜻 동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러브레터'에는 타임리프도 없고 동물이 사람이 되는 경우도 없다. 감기가 의외로 무서운 병이 되긴 하지만 감기는 흔한 질병이다. '러브레터'의 판타지는 끊임없는 우연에서 비롯된다. 이름이 같은 두 학생이 등장하는데 그 중 남학생이 어른이 되고 만난 연인이 이름이 같은 여학생과 똑같이 생길 확률을 구한다면 공학계산기도 시름시름 앓을 것이다. '러브레터'는 대단히 낮은 확률의 우연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확률 자체가 판타지라는 의미다. 여기에 일본작가들의 만화적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J-신파'의 원형을 갖추게 됐다. 그리고 '러브레터'의 클라이막스인 "오겡끼데스까" 장면도 사실은 "여기서 울어라"라고 배치한 장면이다.
4. '태양의 노래'는 다른 'J-신파'에 비하면 대단히 직접적이다. 일단 시한부 주인공이 등장하고 연애에 많은 핸디캡을 부여해 특별한 사랑이야기를 만든다(비슷한 소재의 드라마 '1리터의 눈물'이 있다는데 못 봤다). 이는 색소건피증이라는 희귀질병이 갖는 핸디캡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색소건피증은 피부건조증과 피부암을 유발하기 때문에 예쁘게 죽을 수 없는 병이다. 해나처럼 마비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확률은 대단히 낮다. 또 암 발병률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신경계 이상증상이 생기기 전에 암으로 죽을 가능성이 높다. '태양의 노래' 역시 낮은 확률에 기대고 있다. 이는 이야기의 극적 허용을 위한 장치다. 희귀병에 대한 극적 허용과 직접적인 신파가 만나면서 '태양의 노래'는 'J-신파'의 정점에 머물러 있다. 영화가 얼마나 잘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만 두고 본다면 이 이야기는 가장 직접적인 신파극이다.
5. 한동안 대학로 공연을 보다가 오랜만에 대학로가 아닌 곳에서 공연을 봤다(압구정 광림아트센터). 큰 공연장에서 아이돌이 나오는 공연을 보니 대학로와는 스케일이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거대한 무대는 대학로 공연처럼 작은 공간에 초현실적으로 꾸며진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화려하고 웅장하다. 최근 공연보면서 세트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런 스펙타클한 디자인을 보니 그 나름대로 새롭다. "뮤지컬이라면 노래 가사가 잘 들려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에는 노래 가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좀 지나고 나니 "그런가보다"하고 맥락에 맞춰서 보게 된다. 내가 봤던 공연은 갓세븐 영재가 남자주인공 '정하람'을 연기했고 러블리즈 케이가 '서해나'를 연기했다. 아이돌답게 노래를 잘한다. 그런데 해나의 친구 '봄'을 연기한 주다은 배우('마리 퀴리', '히드클리프', '정글라이프' 등 출연)가 너무 잘해서 그쪽에 좀 꽂혀있었다. 영화와 달리 뮤지컬인 만큼 많은 노래가 등장한다. 대체로 무난한 뮤지컬 넘버라고 생각하면서 듣다가(어떤 곡은 CCM 느낌이 강하긴 했지만) 유독 좋은 노래가 있어서 "오, 저 노래 좋다"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에도 나온 유일한 노래('Good Bye Days')라고 한다.
6. 결론: 뮤지컬 '태양의 노래'를 재밌게 봤다고 유이가 나온 일본영화나 아놀드 주지사 아드님이 출연한 미국영화를 보고 싶진 않다. 그냥 이대로 남겨두는 게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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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오리지널 원작은 93년 홍콩 영화 <신불료정>이었다고 하네요.
돌고 돌아서 뮤지컬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