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랜드] 관람평(스포x)
어제 관람한 <노매드랜드>는 아마도 제가 두고두고 순례할 영화가 될 듯합니다. 내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를 때, 브레이크가 필요할 때, 이 영화는 부드럽게 저를 부를 것 같습니다.
아래는 스포일러 없는 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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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지대 네바다 엠파이어의 정경을 보다 보면, 영문학에서 유명한 퍼시 비시 셸리의 소네트 <오지만디아스>가 떠오른다.
고대 지역 이집트에서 온 여행자에게 들은 얘기일세.
돌로 만들어 거대하지만 몸통은 없던 두 다리가
사막에 서 있었네. 그 옆의 모래밭에는
부서진 두상이 반쯤 묻혀 있었는데, 찌푸린
얼굴과 입술에 차디찬 조소를 띠고 있었네.
그 조각가에게 말하더군, 죽은 돌덩이임에도
그가 자신의 손과 마음을 바쳐 새긴 열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남아 드러난다고.
그리고 그 주춧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네.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이라.
이 몸의 위업을 보라, 강자들아. 그리고 절망하라!
그 곁엔 아무것도 없었네. 무너져 닳아버린
그 거상의 곁에는 외롭고 한결같은 모래밭이
그저 머나먼 곳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
‘두 다리’는 이 영화에서 다른 곳에 등장하는 (생뚱맞게 거대하게 서 있는)25m짜리 공룡 상 같기도 하다. 거기서 데이브(데이비드 스트라탄)는 펀(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사진을 찍어준다. ‘엠파이어’는 몰락하고 황무지만 남았다.
<노매드랜드>의 인물들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동시에 영화 자체가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를 느슨하게 연결하고 있다. 이 세미 다큐멘터리 같은 <노매드랜드>는 무브먼트로 가득 차 있다. 유목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대지는 순환하고, 계절도, 직업도, 관계도, 집도 변화하고 움직인다. 모든 것이 동적인 여로의 기록. 노매드들은 순환을 통해 영속을 꿈꾼다.
한때 유목민(nomad)이란 말은 퍽 낭만적으로 들렸다. 20세기 말에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자크 아탈리의 <21세기 사전>같은 책(필자도 지난 세기부터 소장 중)에서는 ‘디지털 노마드’란 용어로 첨단 정보화 사회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신인류의 도래를 예고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노매드는 그와 다르다. 가상의 세상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세상에서 모여든 문자 그대로의 유목민들. 첨단의 환상이 아니라 실존에 부딪히는 방랑자들의 세상. <노매드랜드>의 아메리카.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경제적 블랙홀이었다. 미국에서도 수많은 시민의 터전이 검은 저편으로 사라졌고, 마치 화이트홀처럼 떠도는 사람들을 뱉어냈다. 08년 이후로 그 사람들을 기록한 영화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노매드랜드>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감독인 클로이 자오는 현명했다. 동정하는 대신 귀 기울였고, 그들과 동행했다. 물론 미국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던 감독이 이 영화에서 정치적, 사회적 담론을 배제한 건 아니다. 그러나 <노매드랜드>는 논쟁하자는 영화가 아니다.
<노매드랜드>는 선택하는 영화. 거시적 경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터전 밖으로 내몰렸지만, 노매드들은 포기를 선언하지 않는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나름대로 대안적 선택을 내린 것이다. 풀소유를 꿈꾸는 시대에서 무소유의 선택지를 환기한다.
동선을 그려보자면 <노매드랜드>는 ‘횡단’의 로드무비다. 네브라스카, 네바다, 그리고 북캘리포니아의 해안까지 가로지르는(물론 중간에 남쪽으로 한 번씩 튄다). 정주하지 못하는 삶을 기록한 또 다른 영화, <흔적 없는 삶>이 포틀랜드와 시애틀의 숲을 잇는 ‘종단’의 로드무비인 것과 대비된다.
테렌스 맬릭의 자연주의적 스타일에 영향을 받은 것(특히 <뉴 월드>)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연출의 리듬이 돋보인다. 롱쇼트와 미디엄 쇼트, 클로즈업의 변화가 리드미컬하다. 아마존은 하이테크 플랫폼 기반 산업인데도 그 거대한 창고 속에서 일하는 펀의 모습은, 마치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기계의 부속품 같다. 시간의 리듬은 홀연한 계절적 점프로 나타난다. 2년의 시간은 부드럽게 흘러간다. 연기가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살아낸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한동안 회자될 것이다. 나에겐 언제나 <본> 시리즈의 노아 보슨인 배우 데이비드 스트라탄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아마 영화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장면을 찍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나리오상 계획되지 않은 우발적 씬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삶을 판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판단은 자연에 맡겼다. 노년과 노동의 문제에 관한 화두가 녹아있지만 치밀하게 밀어붙이진 않는다. 이 영화의 주된 관심은 마치 물처럼 흐르는 사람들(펀이 나신으로 물에 스며들었기 때문이 아니라)의 삶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 그리고 멀리 돌아와 우리에게 묻는다. 숨 막히게 살아가는 우리 영혼의 쉼터는 어디인지를.
"순환하는 대지를 따라. 당신의 영혼을 누일 집, 어디인가요?“
★★★★
텐더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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