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사랑이 진짜가 되는 순간,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1992) 리뷰

귀가 들리지 않는 시게루의 유일한 낙은 하나뿐인 여자친구와 서핑보드를 들고 매일같이 해변으로 가는 것이다. 두 사람은 말이 없지만 늘 함께 시간을 공유한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울 것 같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없는 시게루의 감정을 지켜보는 것이 여자친구에게는 행복한 일상이다. 결국 일상이 반복된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행복이 반복되는 것이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턱없이 이상적이고 감상적인 말 같지만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서는 진짜가 된다. 아니 진짜가 될 수밖에 없다. 귀가 들리지 않으면 장애가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소통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사교성과 감정 표현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장애가 있는 남자친구를 만나는 여자친구에게는 지켜보는 것이 가장 가능한 행복 중 첫 번째일 것이다. 그렇게 지켜보는 것이 행복이 된다. 물론 여자친구의 성격 탓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 다 감정 표현력은 떨어지지만 그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인다. 말하지 않아도 거짓 없이 마음이 전달되는 순수한 눈빛이 그들에게 있다. 붐비는 시간대에 서핑보드를 들고 버스를 타려다 승차를 거부당한 시게루는 덤덤하게 여자친구만 버스를 태워 보내고 자신은 걸어 집으로 간다. 시게루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여자친구는 자리가 비어도 앉지 못한다. 정류장에 도착하여 내린 뒤 시게루가 돌아오는 방향으로 전력을 다해 달려간다. 계속 달린다. 그 정도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 표현이다. 그 둘의 순수한 사랑이 여과 없이 전달되는 가장 멋진 장면이다.
영화 속 등장하는 서핑 가게 사장님, 쓰레기 수거 회사 동료, 서핑하는 사람들 등 시게루 주변에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영화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소탈하고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담아내는 유머와 감동이 잔잔하지만 힘이 있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 너무 비슷해서 너무 우리 같아서 더 깊게 바라보게 된다.
시게루가 매일 같이 해변에 앉아 바다를 보는 눈빛은 망설임이 없고 직관적이다. 들리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한 가지를 깊게 바라보게 된다. 저런 눈빛은 나를 포함해 주변에서 볼 수 없는 눈빛이다. 우리는 한순간에도 여러 가지를 바라보고 생각한다. 수많은 소음, 자극과 유혹들. 제정신으로 버티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용하다. 시게루처럼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가만히 있는 것이 오히려 불안한 우리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시게루의 눈빛을 보다 난 고개를 떨군다. 정처 없이 떠도는 마음속 불안감이 그제서야 조용히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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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서아시에서 봤던 기억이 나네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


특히 첫 장면 두 주인공이 바닷가로 걸어갈때 길게 나오는 경음악 좋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