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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마을 (1965) 수정처럼 투명한

BillEvans
1873 0 0

 

 

 

거장이란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고 볼 때, 문예영화의 거장 김수용은 분명 거장이다. 그의 영화는 수정처럼 투명하고 티가 없다. 심지어는 비극을 다룰 때나 코메디를 다룰 때나 수정처럼 투명하다. 이 영화 갯마을은 어느 갯마을의 소녀 과부 해순의 인생역정을 다룬 것이다. 분명 비극인데도 영화는 참 투명하다. 흑백화면이 아주 아름답다. 

 

어느 바닷가 마을. 바다로 나가 고기 잡이하는 사람들의 특성 상 남자들의 수명이 짧다. 그래서 갯마을에는 과부들이 넘쳐난다. 이십대, 삼십대 과부들이 혈기왕성(?)할 나이인데 과부가 되어 독수공방한다. 밤이 되면 할 일 없는 과부들은 자연스럽게 해변으로 모인다. 달을 보고 바닷소리를 들으며, 몸을 비비 꼬며, 풀릴 길 없는 스트레스(?)를 입으로 푼다. 김수용 감독에게 어떻게 연기할까를 묻는 이민자에게, 김수용 감독은 "당신들은 과부인데 밤에 별이 밝고 파도소리 처량하고...... 왜 그것 있잖아요?" 하니까 이민자가 "감독님, 알겠심더. 야들아, 그거 있지?" 했다고 한다. 그 장면을 보며 자꾸 김수용 감독의 그 일화가 생각났다. 

 

영화 처음 결혼한 지 며칠 밖에 안 지난 해순의 남편이 사고로 사망하고, 소녀 과부 해순도 이 대열에 합류한다. 

 

 

영화 처음 폭풍이 몰아치고. 고기잡이 나간 아들 그리고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그려진 장면은 아주 역동적이다. 그렇게 격렬하고 힘찬 화면은 별로 보지 못했다. 김수용 감독 영화에서 자주 보지 못했던 역동적인 장면인데 스크린이 덜덜 떨리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격렬하다. 해순의 시어머니 황정순이 아들의 안전을 기원하며 몸부림치는 장면과 해순이 엄청난 불안감에 떠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황정순은 이런 장면을 너무 많이 보여줘서 당연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괜히 대배우가 아니다. 이 장면만으로도 김수용 감독이 왜 대가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해순에게 과부로서 갯마을에서 살아가는 단조로운 일상이 보여진다. 서정적 리얼리즘이라는 단어가 이 영화를 지칭하는 데 적합할 것 같다. 나이 어린 해순을 귀여워하는 과부들은 해순을 이것저것 도와준다. 해순의 시어머니 황정순과 시동생 이낙훈은 해순을 아껴준다. 재혼한다고 집을 나갈까봐 걱정하면서. 

 

 

 

 

 

 

 

이 영화에서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별 의미 없다. 해순과 갯마을 과부 해녀들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러나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녀들의 비참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흐르는 것은 비참함이 아니라 서정시이다. 서정시지만, 센티멘털하거나 감정적이거나 과도하게 해순에게 몰입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센티멘털함과 감정 과잉을 산뜻하게 배제한, 아주 세련된 서정시를 말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것이 불만일 지도 모른다. 분명히 현실적인 비극인데도 서정시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시적 리얼리즘은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 

 

레즈비안 씬도 등장한다. 과부 둘이 몸을 꼬다가 "에이 씨" 하더니 서로 껴안고 주무르고 키스하고 한다. 그러자 같이 있던 과부들이 까르르 웃는다. 한 과부가 "계속 그렇게 해봐라. 뭐가 나오나."한다. 흠,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보였던 장면이 아닐까? 1960년에 이미 최초의 레즈비안 영화가 이미 나오기는 했지만.

 

해순을 사랑해서 계속 쫓아다니던 신영균이 있었다. 자기가 해순을 좋아했었는데, 친구가 해순과 결혼하는 바람에 단념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해순이 이제 과부가 되었으니 대놓고 구애하고 다닌다. 어린 해순은 신영균에 대한 자기 감정이 무언지 잘 모른다. 해순의 시어머니와 시동생은, 어린 해순을 과부로 늙게할 수 없어 신영균과 함께 떠나보낸다. 과부 그룹도 해순이 잘 되길 바라며 전송해준다. 

 

해순은 신영균과 함께 산으로 갔는데, 해순은 늘 바다를 그리워한다. 신영균과의 삶은 늘 고단했다. 신영균은 해순을 고생시키는 것도 모자라서, 그냥 죽어버려서 해순을 다시 과부로 만든다. 못난 놈.

 

해순은 혼잣몸이 되어 갯마을로 돌아간다. 나는 이 영화 마지막 장면이 아주 아름답고 좋다. 해순이 과부 그룹에게 "행님들. 나도 이젠 행님들이랑 살래요." 하자 과부 그룹에서는 "그래. 남자가 뭐가 좋노? 고생만 시키지. 우리랑 살자." 하고 환영해준다. 황정순도 돌아온 해순을 반가와하며 마치 딸에게 하듯 "잘 왔다. 이제 우리랑 살자."고 말해준다. 

 

해순은 이제 이 갯마을에서 조촐하게 늙어갈 것이다. 해순은 이 갯마을로 돌아옴으로써 소속감과 행복을 되찾는다. 그것은 고독이다. 이 마지막 장면은 아주 큰 여운을 관객들에게 안겨준다. 

 

우리나라 문예영화에 걸작은 많지만, 내 개인적인 선호 1순위는 이 갯마을이다.

 

P.S. 착하게 예쁜 고은아의 내성적인 연기가 일품이다. 고은아의 아름다움과 내성적인 연기가 이 영화 갯마을을 걸작으로 만드는 데 50% 정도 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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