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 진실과 애국 사이의 간극
황우석, 적어도 20대 이상의 우리나라 사람 중에,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황우석 사건이 벌어졌을 때, 저는 당시 고작 중학생이었습니다. 중학생이었던 저한테도 이 사건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는데, 아마 제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당시 국민들이 황우석 박사에게 보내는 지지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진실이 까발려진 후에 얼마나 배신감도 컸는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벌써 그를 소재로 한 영화가 나올 줄 몰랐는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영화로 나온 것 같습니다. '제보자'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이미 연출력을 인정받은 임순례 감독님의 작품인데, 워낙 많은 분들이 알고 있으신 사건이라, 잘못 다뤘다가는,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높은 소재의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실화를 영화로 잘 옮긴 사례로 오래도록 남을 것 같은 작품입니다.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한 이장환 박사(이경영)의 연구 결과가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PD추적 윤민철(박해일)PD는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얼마전까지 이장환 박사와 함께 줄기세포 연구를 해오던 심민호(유연석)팀장은 윤민철 PD에게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줄기세포 실험과정에서 벌어진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 양심 선언을 하게 됩니다. 제보자의 증언 하나만을 믿고 사건에 뛰어든 윤민철 PD는 이장환 박사를 비판하는 것은 국익에 반하는 것이라는 여론과 언론의 거센 항의에 한계를 느끼게 되고, 결국 방송이 나가지 못하게 되는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앞서 말씀드렸듯, '제보자'는 황우석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사실 '제보자'는 황우석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닌, '진실과 애국사이'라는 핵심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실제 소재를 끄집어 낸 작품입니다. 영화는 시간적 배경과 캐릭터의 이름 정도를 다르게 설정한 것 말고는, 실제 사건과 영화는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저는 당시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는 알고있어도, 사건 당시 제가 중학생었이다보니, 어떤 근거와 경로를 통해 이 사건의 비밀이 모두 밝혀졌는지는 잘 몰랐는데, 영화를 보고나서 당시 기사와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를 찾아봤더니, 사건을 있는 그대로 영화로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빼다 박았습니다.
영화 초반만 놓고봤을 때, '제보자'는 제 기대에 못미치는 영화였습니다. 다 아는 사건을 영화로 똑같이 담아낸 그저 그런 작품같았으며,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조금 과장되게 표현한 것 같은 부분들도 상당 부분 눈에 띄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전개될수록 영화의 단점이 거의 눈에 띄지 않을만큼 영화의 몰입도가 상당히 높아진다는 점인데요, 만약 제가 이 사건에 대해 잘 몰랐다면, '제보자'는 작위적인 영화라고 치부해버렸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몸소 겪었고, 영화 속 영화같은 상황들이 실제 있었던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참 기분이 묘하더군요.
이미 다 아는 사건, 결말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긴장감이 이렇게 상당할 수 있었던 까닭을 곰곰히 고민해봤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이 영화는 황우석 사건 그 자체가 아닌, '진실과 애국사이'라는 명제가 핵심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언론인들은 진실한 것이 애국이 아니냐고 이야기합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시 여겼던 명제가 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일차적으로 확인했고, 이게 단순히 영화뿐만 아니라 실제 사건을 통해 '진실한 사람 = 매국노'라는 명제를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충격이 배가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사건이 워낙 드라마틱하기도 했지만, 후반부로 가면서도 긴장감을 놓치 않고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의 역량이 워낙 대단한 것 같습니다.
박해일씨는 시나리오도 읽지 않고, 임순례 감독님의 제안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무조건 승낙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감독님은 왜 박해일씨를 캐스팅했는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박해일씨는 조용한 미소년같은 느낌을 풍기는 배우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뒤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달려가는 캐릭터에 최적화 된 배우인데, '제보자'에서는 후자의 모습을 다시금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해일씨와 제대로 '대결'하는 인물은 이경영씨로, 이경영씨가 연기한 이장환 박사라는 인물은, 전형적인 악역이 아닌, 겉으로는 누가 봐도 신뢰할 수 있는 무게감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성공을 위해 밑도 끝도 없는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경영씨는 그냥 이장환 박사 그 자체로 보일만큼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 개봉할 미개봉작까지 합해서 이미 올해 그가 출연한 작품만 9편을 관람했는데, 그 중 단연 최고의 연기는 '제보자'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원상, 권해효, 류현경 등의 조연은 역시나 영화에 상당한 무게감을 부여하고 있으며, 그에 비해 유연석씨가 연기한 캐릭터는 영화의 전개상 상당히 중요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연기력을 평가하기엔 생각보다 비중이 적었네요.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제보자'는 흥행하기 힘들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은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뚝심있게 전달하면서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영화는 상업 영화의 궤도를 밟아가는 작품이네요.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하면서도, 스릴과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 작품이라, 입소문만 제대로 퍼진다면, 추석 시즌 이후 비수기를 끝내고,10월을 뜨겁게 달굴 수 있는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순례 감독님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흥행과 비평 면에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이후, 이렇다 할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는데, '제보자'의 흥행 유무를 떠나, 임순례 감독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실화 이야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에는 특출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왔네요. '제보자', 적극 추천드립니다!
* 박해일씨 옆에 따라다니는 에이스 기자... 찾아보니 송하윤이라는 배우네요! 연기를 잘한다는 느낌까지 풍기는 배우는 아닌데, 수지와 구하라의 분위기를 풍기는 외모의 배우라 계속 눈이 가더군요. 이쁘네요 ㅎㅎㅎㅎㅎ
* '제보자'의 주인공들은 지금 뭘하고 있을까요? 유연석 역할의 제보자는, 현재 강원대 의대 교수로 일하고 있으시며, 박해일씨가 연기한 실제 PD는 한학수 現 MBC PD입니다. 박원상씨가 연기했는지 권해효씨가 연기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 황우석 사건을 보도할 수 있도록 도와준 MBC 최승호 부장은 김재철 前 MBC 사장을 퇴진을 요구하는 파업으로 인해 해직을 당하셨군요... 영화를 보고 나서 실제 인물을 찾아보니 더 씁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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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실제 사건이 아니었음...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스토리로 영화를 만들지?? 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영화만의 힘이 부족하고 다소 좀 재현 드라마 같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그 당시 일이 진실이 아니기만을 간절히 바랬던 1인 입니다.
물론 그 사건으로 황우석 박사는 서울대에서 파면당하고 지금은 수암생명공학연구원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얼마전에는 미국특허 등록도 마치셨더군요. 그 사건으로 인해 파문을 일으키긴 했지만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진행해서
결실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램을 항상 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