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기생충’의 美 흥행이 의미하는 바 (이문원 문화평론가)
영화 ‘기생충’ 미국성과에 대해 한국미디어에서 주로 언급되는 건 아카데미상 후보지명 및 수상 가능성 차원이다. 아무래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으로 시작된 ‘명예’ 이슈여서 이후로도 같은 맥락으로 화젯거리가 설정되는 듯하다. 뉴욕비평가협회, LA비평가협회, 골든글로브상 등등 아카데미상까지 이르는 전초전 격 영화상들 소식이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 사실 ‘기생충’은 ‘이미’ 미국서 믿기 힘든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북미 흥행성적 차원에서다. 지난 주말 드디어 북미흥행수익 2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정확히는 2035만204달러다. 상영 스크린 수는 가장 많았던 시점보다 절반 이상 빠진 306개 수준이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하락폭이 워낙 적어 이대로만 가도 2500만 달러 돌파가 가능할 듯 보이지만, 큰 전환점이 돼줄 아카데미상이 아직 남아있다. 여기서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부문 후보지명이 이뤄지면 관심도도 그만큼 높아져 상영관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주요부문 수상이라도 하면 더 볼 것도 없는 일이다. 총수익 3000만 달러 이상도 바라볼 수 있다.
비교를 통해 좀 더 정확히 짚고 넘어가 보자. 일단 ‘기생충’은 역대 한국영화 북미흥행수익을 ‘가볍게’ 경신한 상황이다. 기존 기록은 2007년 ‘디 워’의 1097만7721달러였다. 그 사이 입장권 가격상승을 고려해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디 워’는 애초 북미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삼았던 ‘영어 영화’이기라도 했다. 한국어 80% 이상으로 진행되는 한국영화 중 기존 최고기록은 2014년 ‘명량’의 258만9811달러였다. 차이가 무척 크다.
나아가 ‘기생충’은 2010년대 북미시장서 개봉된 ‘비영어’ 영화 중 역대흥행 2위다. 1위는 2013년 작 멕시코영화 ‘사랑해, 매기’다. 다시 말하지만, 아직 아카데미상 후보지명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비영어 영화들 최대승부처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저 정도 성과란 얘기다.
쉽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후광효과라고 해석해볼 수 있다. 그런데 실제적으론 그렇지가 않다. 북미시장에서 칸 등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 수상작은 오히려 흥행수치가 많이 떨어진다. ‘어렵고 재미없는 영화’란 인상은 한국서나 미국서나 마찬가지다. 비영어 영화라면 더 볼 것도 없다. 2000년대 통틀어 비영어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에서도 ‘기생충’이 역대 북미흥행 1위다. 황금종려상 여세를 몰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후보까지 올랐던 2012년 작 프랑스영화 ‘아무르’도 북미 총수익은 673만9492달러에 그쳤다.
결국 지금 상황은 엄밀히 ‘‘기생충’이기 때문’이란 측면이 상당히 크단 얘기다. 이를 ‘한국영화’로 확장시켜 생각해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영화는 2000년대 들어 꾸준히 미국서 큰 주목을 받아왔다. 봉준호 감독은 물론이고, 박찬욱 감독과 이창동 감독 등도 이젠 북미 영화애호가들 사이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이제 한국영화가 메인스트림 급으로 뜨는 데 있어 마지막 ‘터치’, 최종적으로 분위기를 띄워 푸시해 줄 이벤트적 홍보요소가 필요하던 시점이었다. 한국영화의 경우 그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란 상징적 홍보탑이었던 셈이다.
한국영화가 ‘기생충’ 이전부터도 2차 시장 중심으로 ‘숨은’ 인기를 누려왔던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영화는 일종의 ‘경계상품’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 대중 문화강국들에선 일반상업영화시장과 아트 하우스영화시장이 다소 엄격히 나뉜 형태다. 그런데 한국선 아트 하우스영화시장이 사실상 거의 붕괴돼있고, 대신 ‘그런’ 개성적이고 도발적인 경향을 일반상업영화들이 일정수준 이상 흡수한 형태다. 한국영화 특유의 ‘작가주의적 상업영화’ 노선이 그렇게 탄생됐다.
‘기생충’에 대한 미국 등지 서구 언론들 입장은 일목요연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치곤’ 상당히 엔터테이닝하단 설명이다. 그런 영화제에서 주로 상을 타가는 아트하우스영화들보다 훨씬 대중 친화적이고 그만큼 상업적 성과도 기대할 수 있으리란 예측이었다. 오히려 이런 영화들이 서구영화계에선 ‘잘 없는’ 패턴이었단 얘기다. 그만큼 특별한 ‘경계상품’으로서 독보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효과가 지금 북미나 프랑스 등지에서의 놀라운 흥행성과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좀 더 큰 차원에서 보자면, 어찌 됐건 지금은 한국 대중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뜨고 있는’ 시점이란 점도 있다. 방탄소년단을 중심으로 한 K팝은 이미 하나의 지배적 현상이다. 한국 TV 드라마 역시 그간 한국영화와 마찬가지로, 잘 포착되진 않지만 수면 아래서 조용히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본래 특정 국가 대중문화란 같은 시기에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함께 뜨게 돼 있다.
1960년대 일본대중문화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주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사무라이영화들 중심으로 일본영화가 미국서 뜨자 일본대중음악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져 사카모토 큐의 ‘스키야키’가 빌보드 핫100차트 1위로 오르고, 이후 고질라 등 각종 서브컬쳐 상품들까지 시장에 쉽게 안착하는 효과가 나왔다. 다른 나라들 경우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잉그마르 베리만 감독이 아카데미상 단골후보가 되니 팝그룹 아바도 쉽게 받아들여져 인기를 얻은 스웨덴 등 예가 무척 많다. 그리고 그 차례가 이제 드디어 한국까지 왔다. 여러 다양한 대중문화 장르들이 한꺼번에 떠서 북미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시점이다.
어찌 됐건 ‘기생충’의 놀라운 흥행선전은 미국미디어에서도 크게 주목하는 분위기다. 그럴 수밖에 없다. 2010년대는 미국시장에서 비영어 영화들이 유난히 흥행에서 맥을 못 추던 시기다. 그나마 ‘사랑해, 매기’, ‘노 만체스 프리다’ 등 남미권 영화들 선전이 눈에 띄었지만, 이들 성공은 원인이 뚜렷했다. 어느덧 미국 내 히스패닉인구가 흑인인구를 추월하는 수준까지 성장하면서 벌어진 현상, 불법 이민자들 포함 본국 영화에 애착을 지닌 이들 시장도 함께 부풀어 오르며 일어난 현상이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이 투 마마’,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판의 미로’ 등 히트로 증명돼오던 흐름이다.
그런데 한국영화는 그런 경우도 아니다. 그야말로 영화 자체가 지닌 매력과 독보성으로 ‘여기까지’ 뚫고 올라올 수 있었던 경우다. 방탄소년단과 정확히 같은 흐름이다. 당연히 주목도도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젠 이 같은 흐름을 이어나갈 ‘다음번 ‘기생충’’을 기대해봐야 할 시점이다. 드디어 팝음악뿐 아니라 영화도, 세계대중문화 메카 미국까지 갔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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