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교실'(1987) 초간단 리뷰
1.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1977년작 '하우스'는 괴상하기로 굉장히 유명한 영화였다(그걸 '악명'이라 불러야 할 지 뭐라 불러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하우스'를 본 것은 몇 년 전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때 였다. 21세기의 소년소녀들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럽고 같잖은 영화였다. 말 그대로 낄낄대며 보기 딱 좋은 영화였다. 그날 이후 한동안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영화를 볼 일은 없었다. '하우스'는 내겐 그저 독특한 경험으로 남은 작품이었다. 그러다가 그의 1987년작 '표류교실'을 보게 됐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각효과는 1977년에서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1977년과 1987년 사이에 혁신적인 기술발전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2. '표류교실'은 서점 한쪽 구석에 두툼한 만화책으로 본 기억이 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림이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읽진 않았다. 우선 영화의 이야기는 대단히 간단하다. 어느 평범한 아침의 고베, 주인공 쇼는 부모와 말다툼을 하고 등교를 한다. 미국에서 자란 쇼는 고베에서도 국제학교에 다닌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그날 아침, 갑자기 태풍이 몰아치고, 학교가 통째로 사라진다. 학교의 학생과 선생들은 모두 이상한 사막 한 가운데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제 이들은 이 낯선 사막 한 가운데서 생존해야 한다.
3. 일본인들이 언제부터 '타임슬립'이란 소재를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타임슬립'을 언급한다. 그러니깐 이 국제학교는 시간여행을 해서 아주 먼 미래로 갔다는 이야기다. 영화가 그린 아주 먼 미래는 온 사방에 사막밖에 없고 바퀴벌레를 닮은 괴물들만이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먼 미래에 떨어진 아이들의 생존기를 그리기에도 대단히 벅찰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 와중에 쇼의 엄마를 중심으로 현재의 이야기를 할해한다. 현재에 머무르는 어른들과 황량한 미래에 떨어진 아이들의 이야기가 교차돼 펼쳐지는 것이다.
4. 사막화 된 미래는 분명 어떤 계기로 인해 몰락한 문명을 보여주고 있다. 고베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지진'을 언급할 수 있지만 이 정도 사막화라면 핵전쟁이나 환경오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원폭 이후의 도시를 떠올리기에도 충분하다. 이는 어른이 아이들에게 남겨준 세계가 결국 사막과 바퀴벌레 뿐인 황폐한 땅이라는 의미다. 그 땅에서 아이들은 혼란을 겪고 좌절을 하다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새로운 시대에 어른(선생)들은 사라지고 흰 옷을 입은 아이들은 아담과 이브처럼 그 자리에 서 있다.
5. 영화의 결말은 현재까지 나온 그 어떤 재난영화보다 흥미로운 지점이다. 웬만하면 아이들이 현재로 돌아가서 부모의 품에 안기겠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결말을 거부한다. 결국 쇼와 아이들은 사막에 머문다. 그리고 쇼의 엄마는 쇼와 아주 먼 거리(시간)에서 작별인사를 한다. 쇼는 엄마를 향해 "여기서 잘 살게요"라는 다짐을 한다. 영화가 별 다른 티를 내진 않지만 이는 굉장한 새드엔딩이다. 이 과감한 새드엔딩은 작가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아이들에게서 찾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영화가 만들어진(혹은 이야기가 씌여진) 70~80년대 일본의 모습을 알 순 없지만 미래에 대해 꽤 불안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지금 보면 아이들에게 가혹한 짐을 지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 아이들은 결국 버블 이후 어려워진 시대에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6. 다소 무책임한 이야기와 별개로 나는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도전이 참 멋있어 보인다. 그의 영화를 본 것이라고는 '하우스'와 '표류교실' 밖에 없다.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실소가 터져나올 정도로 조악한 시각효과에 있다. 영화 '표류교실'과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는 '로보캅'이 나왔고 일본에서는 '천녀유혼'이 나왔다. 이들 두 작품에 비하면 '표류교실'은 웃음이 터져나올 지경이다. 하지만 '표류교실'이 구현한 시각효과를 살펴보면 여기에는 굉장한 상상력이 깔려있다. 도시를 덮친 회오리바람, 사막에 떨어진 학교, 시간의 터널을 탐험하는 아이들, 바퀴벌레 괴물. 이런 상상력은 '하우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마 2018년에서도 사람 잡아먹는 피아노를 상상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7. 나는 몇 년 전 본 영화 '7광구'를 기억한다. 당시 감정은 못 만든 영화라며 화를 내는 것보다 이런 결과물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이었다. 이야기를 만들고 장면을 그리는데 있어 상상력이 너무 부족했다. 이는 한국영화에 있어 고질적인 문제다. 나는 한국영화가 시각효과를 구현해낼 기술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한다(적어도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월등히 뛰어나다). 다만 그 안에 담아낼 상상력은 대단히 부족하다. '신과 함께'가 기가 막힌 상상력으로 지옥을 구현하긴 했다. 그런데 꽤 많은 관객들이 "공룡이 저기서 왜 나와?"라며 아쉬워했다. 솔직히 '신과 함께'에 만족하기엔 배가 고프다.
8. 소재의 한계에 부딪혔다고 하지만 아직은 더 기발한 것들을 상상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실제로 여러 곳에서 화수분처럼 자라고 있다. 다만 우리의 영화는 자본의 논리를 앞세워 상상보다 기호에 투자하고 있다. 우리는 늘 헐리우드를 노리고 있다. '어벤져스'같은 초대박 영화들이 우리에게도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시각효과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다만 기술의 발전 뿐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와 상상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이 그릇이라면 상상력은 거기에 담을 내용물이다. 우리의 그릇은 매우 뛰어나다. 그런데 담을 요리가 부족하다. 적어도 사람 잡아먹는 피아노 정도가 담긴 걸 보고 싶다.
9. 오바야시 노부히코는 1938년생이다. 그런데 그는 무려 작년에도 '하나가타미'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나는 이 사람의 어떤 위치의 인물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일본의 로저 코먼 같기도 하고 에드우드 같기도 하다. 그의 영화들 중에는 기발한 영화가 참 많다(1983년에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실사 영화화 했다). 당시의 영상기술로 구현하기 어려울 수 있는 것들을 꾸역꾸역 해낸다. 확실히 이 사람은 저지르는데 있어 두려움이 없는 사람같다. 한편으로는 멋있다. 뭐가 어찌됐건 이런 결과물을 내놓는다는게...
10. 결론: '표류교실'은 2002년에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화를 다 보고 상상해보건대, 이 이야기 그대로 2018년의 기술을 입혀 영화로 만든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묵직한 재난영화가 탄생할 것 같다. 그 정도로 끝내주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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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메즈 카즈오 만화가 원작인 걸로 아는데 궁금하네요.

영화는 못 보고 드라마만 봤는데 드라마는 청춘스타들이 대거 등장하는 재난물로 나왔던 기억이 있네요.
그냥저냥 토키와 다카코랑 야마삐 보는 맛에 볼만했었던 거 같아요

만화도 안봤지만, 이 짤은 엄청 유명하죠. 웃긴걸로 많이 패러디 됐었는데...
이렇게 호평하시니 관심이 생기네용

원작은 봤는데 영화 드라마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하우스 재미있게 본 영화네요
만화원작의 영화들이 줄줄이 실패하는 요즘같은 상황에서 <표류교실>도 이걸 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봐요.
참고로 <표류교실> 만화책은 명씨네 라이브러리에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시간날 때 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