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6
  • 쓰기
  • 검색

'표류교실'(1987) 초간단 리뷰

수위아저씨
6132 5 6

drifting-classroom.jpg

 

1.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1977년작 '하우스'는 괴상하기로 굉장히 유명한 영화였다(그걸 '악명'이라 불러야 할 지 뭐라 불러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하우스'를 본 것은 몇 년 전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때 였다. 21세기의 소년소녀들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럽고 같잖은 영화였다. 말 그대로 낄낄대며 보기 딱 좋은 영화였다. 그날 이후 한동안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영화를 볼 일은 없었다. '하우스'는 내겐 그저 독특한 경험으로 남은 작품이었다. 그러다가 그의 1987년작 '표류교실'을 보게 됐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각효과는 1977년에서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1977년과 1987년 사이에 혁신적인 기술발전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2. '표류교실'은 서점 한쪽 구석에 두툼한 만화책으로 본 기억이 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림이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읽진 않았다. 우선 영화의 이야기는 대단히 간단하다. 어느 평범한 아침의 고베, 주인공 쇼는 부모와 말다툼을 하고 등교를 한다. 미국에서 자란 쇼는 고베에서도 국제학교에 다닌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그날 아침, 갑자기 태풍이 몰아치고, 학교가 통째로 사라진다. 학교의 학생과 선생들은 모두 이상한 사막 한 가운데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제 이들은 이 낯선 사막 한 가운데서 생존해야 한다. 

 

3. 일본인들이 언제부터 '타임슬립'이란 소재를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타임슬립'을 언급한다. 그러니깐 이 국제학교는 시간여행을 해서 아주 먼 미래로 갔다는 이야기다. 영화가 그린 아주 먼 미래는 온 사방에 사막밖에 없고 바퀴벌레를 닮은 괴물들만이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먼 미래에 떨어진 아이들의 생존기를 그리기에도 대단히 벅찰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 와중에 쇼의 엄마를 중심으로 현재의 이야기를 할해한다. 현재에 머무르는 어른들과 황량한 미래에 떨어진 아이들의 이야기가 교차돼 펼쳐지는 것이다. 

 

4. 사막화 된 미래는 분명 어떤 계기로 인해 몰락한 문명을 보여주고 있다. 고베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지진'을 언급할 수 있지만 이 정도 사막화라면 핵전쟁이나 환경오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원폭 이후의 도시를 떠올리기에도 충분하다. 이는 어른이 아이들에게 남겨준 세계가 결국 사막과 바퀴벌레 뿐인 황폐한 땅이라는 의미다. 그 땅에서 아이들은 혼란을 겪고 좌절을 하다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새로운 시대에 어른(선생)들은 사라지고 흰 옷을 입은 아이들은 아담과 이브처럼 그 자리에 서 있다. 

 

5. 영화의 결말은 현재까지 나온 그 어떤 재난영화보다 흥미로운 지점이다. 웬만하면 아이들이 현재로 돌아가서 부모의 품에 안기겠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결말을 거부한다. 결국 쇼와 아이들은 사막에 머문다. 그리고 쇼의 엄마는 쇼와 아주 먼 거리(시간)에서 작별인사를 한다. 쇼는 엄마를 향해 "여기서 잘 살게요"라는 다짐을 한다. 영화가 별 다른 티를 내진 않지만 이는 굉장한 새드엔딩이다. 이 과감한 새드엔딩은 작가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아이들에게서 찾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영화가 만들어진(혹은 이야기가 씌여진) 70~80년대 일본의 모습을 알 순 없지만 미래에 대해 꽤 불안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지금 보면 아이들에게 가혹한 짐을 지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 아이들은 결국 버블 이후 어려워진 시대에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6. 다소 무책임한 이야기와 별개로 나는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도전이 참 멋있어 보인다. 그의 영화를 본 것이라고는 '하우스'와 '표류교실' 밖에 없다.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실소가 터져나올 정도로 조악한 시각효과에 있다. 영화 '표류교실'과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는 '로보캅'이 나왔고 일본에서는 '천녀유혼'이 나왔다. 이들 두 작품에 비하면 '표류교실'은 웃음이 터져나올 지경이다. 하지만 '표류교실'이 구현한 시각효과를 살펴보면 여기에는 굉장한 상상력이 깔려있다. 도시를 덮친 회오리바람, 사막에 떨어진 학교, 시간의 터널을 탐험하는 아이들, 바퀴벌레 괴물. 이런 상상력은 '하우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마 2018년에서도 사람 잡아먹는 피아노를 상상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7. 나는 몇 년 전 본 영화 '7광구'를 기억한다. 당시 감정은 못 만든 영화라며 화를 내는 것보다 이런 결과물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이었다. 이야기를 만들고 장면을 그리는데 있어 상상력이 너무 부족했다. 이는 한국영화에 있어 고질적인 문제다. 나는 한국영화가 시각효과를 구현해낼 기술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한다(적어도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월등히 뛰어나다). 다만 그 안에 담아낼 상상력은 대단히 부족하다. '신과 함께'가 기가 막힌 상상력으로 지옥을 구현하긴 했다. 그런데 꽤 많은 관객들이 "공룡이 저기서 왜 나와?"라며 아쉬워했다. 솔직히 '신과 함께'에 만족하기엔 배가 고프다. 

 

8. 소재의 한계에 부딪혔다고 하지만 아직은 더 기발한 것들을 상상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실제로 여러 곳에서 화수분처럼 자라고 있다. 다만 우리의 영화는 자본의 논리를 앞세워 상상보다 기호에 투자하고 있다. 우리는 늘 헐리우드를 노리고 있다. '어벤져스'같은 초대박 영화들이 우리에게도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시각효과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다만 기술의 발전 뿐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와 상상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이 그릇이라면 상상력은 거기에 담을 내용물이다. 우리의 그릇은 매우 뛰어나다. 그런데 담을 요리가 부족하다. 적어도 사람 잡아먹는 피아노 정도가 담긴 걸 보고 싶다. 

 

9. 오바야시 노부히코는 1938년생이다. 그런데 그는 무려 작년에도 '하나가타미'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나는 이 사람의 어떤 위치의 인물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일본의 로저 코먼 같기도 하고 에드우드 같기도 하다. 그의 영화들 중에는 기발한 영화가 참 많다(1983년에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실사 영화화 했다). 당시의 영상기술로 구현하기 어려울 수 있는 것들을 꾸역꾸역 해낸다. 확실히 이 사람은 저지르는데 있어 두려움이 없는 사람같다. 한편으로는 멋있다. 뭐가 어찌됐건 이런 결과물을 내놓는다는게...

 

10. 결론: '표류교실'은 2002년에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화를 다 보고 상상해보건대, 이 이야기 그대로 2018년의 기술을 입혀 영화로 만든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묵직한 재난영화가 탄생할 것 같다. 그 정도로 끝내주게 재미있다.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5

  • 그래
    그래
  • 알폰소쿠아론
    알폰소쿠아론
  • 락키
    락키
  • 셋져
    셋져

댓글 6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만화원작의 영화들이 줄줄이 실패하는 요즘같은 상황에서 <표류교실>도 이걸 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봐요.

참고로 <표류교실> 만화책은 명씨네 라이브러리에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시간날 때 보시길 ^^

00:03
18.09.03.
profile image 2등

우메즈 카즈오 만화가 원작인 걸로 아는데 궁금하네요.

00:20
18.09.03.
profile image 3등

영화는 못 보고 드라마만 봤는데 드라마는 청춘스타들이 대거 등장하는 재난물로 나왔던 기억이 있네요.

그냥저냥 토키와 다카코랑 야마삐 보는 맛에 볼만했었던 거 같아요

00:39
18.09.03.
profile image

만화도 안봤지만, 이 짤은 엄청 유명하죠. 웃긴걸로 많이 패러디 됐었는데... 

이렇게 호평하시니 관심이 생기네용

1.jpg

 

01:06
18.09.03.
profile image

원작은 봤는데 영화 드라마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02:12
18.09.03.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HOT [거룩한 밤] [썬더볼츠*] [파과] 호불호 후기 모음 3 익스트림무비 익스트림무비 3일 전23:08 8817
공지 [로데오]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7 익무노예 익무노예 5일 전11:58 1825
공지 [케이 넘버]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8 익무노예 익무노예 25.04.24.11:24 4139
HOT 롯데시네마 5월 개봉 영화 소개 1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시간 전13:01 360
HOT 남겨진 문제들에 관하여 - 썬더볼츠 2 이자락 1시간 전12:32 594
HOT MCU 페이즈4 로튼 비평가 + 관객스코어 순위 1 NeoSun NeoSun 1시간 전12:24 579
HOT 루이스 풀먼, 아버지의 그림자를 넘어 자신의 길을 걷다 3 카란 카란 3시간 전10:35 818
HOT 마동석 서현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무대인사 월드타워 3 e260 e260 6시간 전07:27 802
HOT 마블, 흥행 부진의 늪…[썬더볼츠*] 북미 첫날 매출 442억원 3 시작 시작 3시간 전10:35 1675
HOT 에드워드 펄롱 “<터미네이터 2>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3 카란 카란 3시간 전10:22 820
HOT 케빈 파이기, 이후 마블 작품들 관객들이 MCU 사전 지식 없... 3 NeoSun NeoSun 5시간 전09:00 1039
HOT 제임스 카메론, ’아바타: 파이어 앤 애시’에서 조 샐다나 경... 2 NeoSun NeoSun 5시간 전08:56 749
HOT <야당> 2025년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TOP2 등극   3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시간 전08:51 783
HOT MCU 차기작들 개봉일자 25-27년 2 NeoSun NeoSun 5시간 전08:46 911
HOT 아만다 사이프리드 🦚 1 e260 e260 6시간 전07:28 810
HOT 2025년 5월 3일 국내 박스오피스 2 golgo golgo 14시간 전00:01 1872
HOT 클로이 세비니, 루카 구아다니노의 신작 <아메리칸 사이... 카란 카란 15시간 전23:12 1155
HOT <동반자살 일본의 여름>을 보고 나서 (스포 O) - 오시... 1 톰행크스 톰행크스 15시간 전22:31 660
HOT 'Flat Girls'에 대한 단상 2 네버랜드 네버랜드 16시간 전21:17 738
HOT MCU 버키의 번천사 8 시작 시작 17시간 전21:06 2514
HOT 라이언 존슨 감독 "극장이 구식이라는 넷플릭스 CEO에 ... 3 시작 시작 17시간 전20:53 1925
HOT 물들어오는데 노젓는 파라마운트 6 golgo golgo 19시간 전19:15 3767
1174698
image
NeoSun NeoSun 47분 전13:29 269
1174697
image
NeoSun NeoSun 53분 전13:23 294
1174696
image
NeoSun NeoSun 56분 전13:20 271
1174695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3:16 193
1174694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3:12 274
1174693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시간 전13:01 360
1174692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2:51 233
1174691
normal
이자락 1시간 전12:32 594
1174690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2:24 579
1174689
image
카란 카란 3시간 전10:35 818
1174688
image
시작 시작 3시간 전10:35 1675
1174687
image
카란 카란 3시간 전10:22 820
1174686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09:14 683
1174685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09:13 1077
1174684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09:00 1039
1174683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08:56 749
1174682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08:53 654
1174681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08:51 454
1174680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시간 전08:51 783
1174679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08:46 911
1174678
image
e260 e260 6시간 전07:29 556
1174677
image
e260 e260 6시간 전07:28 810
1174676
image
e260 e260 6시간 전07:27 802
1174675
image
e260 e260 6시간 전07:25 389
1174674
image
e260 e260 6시간 전07:25 413
1174673
normal
내일슈퍼 13시간 전00:46 3288
1174672
image
golgo golgo 14시간 전00:01 1872
1174671
image
카란 카란 15시간 전23:12 1155
1174670
image
NeoSun NeoSun 15시간 전22:55 1211
1174669
image
hera7067 hera7067 15시간 전22:42 488
1174668
image
hera7067 hera7067 15시간 전22:39 951
1174667
image
hera7067 hera7067 15시간 전22:37 435
1174666
image
hera7067 hera7067 15시간 전22:36 382
1174665
image
hera7067 hera7067 15시간 전22:35 456
1174664
image
톰행크스 톰행크스 15시간 전22:31 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