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살인] 이동진의 라이브톡 메모본
아마도 다음 영화 매거진(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에 올라오겠지만 혹시 모르니...
급하게 막 쓰느라 잘못된 부분 분명 몇군데 있을건데, 라이브톡 들으신 분들은 지적 좀 해주세요ㅠ
영화는 진짜 좋네요. 끝나고 저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습니다. 올 해 본 영화 중에서 세손가락에 꼽힐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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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라이브톡은 내년 1/3 또는 4 [원더풀 라이프]
이 영화는 열린 결말. 이전 작들과는 달리 영화 끝나고 옆사람이랑 이야기 나누고싶은 영화.
바로 직전 두 작품은 감동적이고 최고의 작품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굳이 두 작품을 연달아낼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함. 그전까지의 작품들은 가족영화는 아니었는데, [걸어도 걸어도]부터 가족영화 위주로 만들면서 고레에다 영화=가족영화, 따뜻한 결말로 여기게 됨.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은 기대반 두려움반. 이 영화에 실망해서 감독이 싫어지면 어쩌지? 그런데 [세 번째 살인] 보고 정말 좋은 작품. [걸어도 걸어도] 이후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이전(가족영화)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고레에다의 작품들은 원래 부정형. 매번 다른 주제.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절대 움직이지 않겠다. [원더풀 라이프] 영화와 다큐를 섞은 중간의 그 어딘가. [디스턴스] 핸드 헬드라서 다큐멘터리 느낌. [아무도 모른다] 정해진 시나리오 없이 리얼 다큐처럼 찍고 편집하면서 아역들의 연기 끌어내는게 탁월함. [어쩌면~기적] 아역 연기 끌어내는 방식이 또 다름. 그런데 최근 두 작품은 비슷한 스텐스라서 '이 감독도 여기까지인가' 싶었음. [세 번째 살인] 보고 다행.
끝나기 10분 전에도 결말 예측 불가능. '짜잔, 이 사람이 범인이었습니다'로 뒤통수 때리지않고, 기묘한 여운 남기면서 끝.
후쿠야마 마사하루. 가수로도 배우로도 최고 중의 최고 스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도 [세 번째 살인]에서도 배우가 기본적으로 차갑고 가라앉은, 시크한 이미지를 잘 활용함. 이 영화에서 태도가 변화하는 단 하나의 인물이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인데, 미스미 역을 맡은 야쿠쇼 고지가 그랬으면 이런 느낌 못줬을 듯.
야쿠쇼 고지는 일본의 안성기. 실제로도 두 배우가 친분 있음. 관록있는 배우이기 때문에 연기하는 역할에 믿음이 감.
이 영화 개봉 후 고레에다 감독의 인터뷰는 단 하나, 그나마 영화 이야기는 극도로 피함.
정적인 장면을 꺼리는 경향이 있음. 법정에서는 별다른 사건이 없고, 면회 장면이 핵심. 최초 시나리오에서는 면회 장면이 적은 편이었으나, 리허설 중 시게모리와 미스미의 에너지를 보고 면회가 정말 동적이구나 라고 느껴서 면회 비중 높임.
히로세 스즈. 어린 나이임에도 독특한 표정으로 관객을 움직이는 힘이 있음.
일본은 사형제 유지 중. (199개국 중 43개국)
영화 시작하자마자 범인 제시. 후반부 가면 '감독이 우리를 속였나?'라고 생각함. 객관적으로 보여준 프롤로그 성격의 도입부가 과연 감독의 사술(비겁한 속임수)인가?
홋카이도 가는 기차 안에서 꾸는 꿈. 엽서 내용을 내레이션으로 하며 꾸는 꿈.
엽서 쓰기 5일 전 사키에와 미스미의 만남. 이 사건이 없었다면 엽서를 쓰지 않았을 것.
엽서의 내용은 4살 딸 메구미와의 추억. 그런데 꿈 영상은 미스미와 사키에, 그리고 시게모리.
모든 이야기의 연결고리는 세 딸의 관계.
1) 미스미의 딸 메구미. 딸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x 그러나 아버지는 o. 미안하지만 닿을 수 없는 딸.
2) 사키에. 메구미와 같이 왼발을 절음. 성폭행 사실 듣고 든 생각 = 딸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죄책감 + 아무것도 못하게 한 사회에 대한 분노.
여기서, 엽서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원망의 표출.
3) 유카(시게모리 딸). 유카가 지금 14살 = 사키에가 성폭행당하기 시작한 14살. 시게모리의 마음 속에는 자신과 미스미, 사키에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음. 그런데 유카의 절도행각을 보고, 누군가 케어해주지 않으면 사키에처럼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됨.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시게모리는 자신을 미스미와 동일시.
시게모리는 유카를 질책하지 않고 계속 미안하다고 함. 그리고 사키에에게 증언 거부를 요청하면서 힐난받을 때에도 미안하다고 함.
사형만 피해도 유능한 변호사, 피고인과 친구 될 것도 아닌데 친해질 필요 × → 판사(아버지) 시게모리에게 배운 사고방식일 것임. 그래서 변호사(아들) 시게모리도 아버지와 똑같은 말을 미스미에게 하며 화를 냄. (사람은 변하지 않고, 태어날 가치가 없는 인간이 존재함)
똑같은 이야기를 심판자 입장에서 들으면 '저런 부류와 어울리지 말자', 죄인 입장에서 들으면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이것이 엔딩까지 이어짐.
믿을 수 없는 화자를 활용한 영화. ex) [유주얼 서스펙트]. 미스미는 끊임없이 증언을 번복. 추측 1) 감형에 관심이 없음. 삶에 대한 집착을 잃었기 때문. 추측 2) 치밀한 계획. 세상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도록 스스로 계획함. 추측 2)라고 생각함.
현재의 사법체계는 개인주의에 주목.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사회 시스템의 잘못 vs. 저 녀석이 나쁨. 전자를 믿는다면 판사는 개인을 처벌할 수 없음. 후자를 믿는다면 판사 시게모리의 입장.
시게모리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의 법에 대한 생각은 모두 다름.
세츠: 미스미 사건에 학을 떼고 시게모리에게 떠넘김. 애당초 미스미를 믿지 않음. 판사 시게모리 + 검사와 동일한 마인드.
검사: 처음에는 정의로웠음. "당신같은 인간 때문에 죄인이 죄를 마주하지 못함." 그런데 진술 번복의 순간에서 재판장이 눈치를 주자 + 동료 검사의 언질을 듣자 '소송경제' 논리를 따라가면서 법적 절차 무시.
후배: 휴머니스트. 관객과 비슷한 스텐스. 하지만 끝까지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하지는 않음.
1. 사법체계의 비인간성 / 2.대부분의 상황에서 진실은 불가지론인데, 사법체계 하에서 진실 여부를 다투고 결정짓는게 무슨 의미인가.
미스미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카나리아 대화에서, "제가 그랬던 것처럼 생명을 쥐락펴락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 판사 시게모리를 동경하는 이유,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잖아요". 즉, 감독이 보기에 미스미와 판사는 다를게 없음.
영화 속 진실. 미스미의 진실과 사키에의 진실.
사키에는 증인의 입장에서 진실을 말할 것인가, 미스미의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침묵할 것인가. 어머니처럼 침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지만, 시게모리의 설득을 듣고 침묵함.
사키에 클로즈업, 빅사이즈. 좌측 밝고 우측 어둡게. 이것은 부엌에서 엄마가 말하던 장면과 동일. 설거지 하는거 토닥이다가, 뒤로 물러나면서 증언하지 말 것을 넌지시 강요함. 그 순간의 앵글과 동일.
미스미의 입장에서, 사형 당해도 상관없으니 진실을 말하고 싶다. 그 후 법정에서 자신의 진실을 말하고, 사형선고 후에도 담담함. 하지만 과연 미스미의 번복은 진실이었는가? 이동진은 거짓이라고 생각함. 그래서 사키에는 '이 법정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어요'라고 말함. 시게모리가 이 말을 받는 행위를 통해 영화적으로 이 발언 강조.
이 영화는 인물들의 입이 아니라 손을 따라가야 함. 감독 입장에서, 관객들이 이것을 놓칠까 노심초사한 듯. 그래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 일화를 통해 손을 은연 중 강조. 천변 플래시백에서 왼손으로 피를 닦는 사키에, 왼손으로 피를 닦는 미스미 / 사형선고 후 미스미와 시게모리의 악수 클로즈업하고 시게모리의 손을 카메라로 계속 잡음 / 면회 유리에 손을 맞댐 / 제발 진실을 말해달라며 손으로 유리 꽝.
4살 딸의 손에 장갑 없어서 미스미 장갑 한짝 줌=온기 전달=면회 유리에 손을 맞댐
카나리아 일화. 1마리 병들자 4마리도 아플 수 있으니 자신의 손으로 죽이기.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인간이라서 죄책감 x. 그런데 나중에 카나리아 1마리 살려줬다고 말하면서 하늘로 날려보내는 손돗작+시게모리의 시선도 손동작 따라감.
앞에서의 두 번의 살인을 보면, 미스미는 범죄자가 맞음. 그런데 카나리아 한 마리 살려주는 면모도 보임. 카나리아=사키에
유카와 니모(물고기) 일화. "설마 변기에 버리진 않았겠지?"라는 물음에 "갑자기 아빠처럼 구네?"로 답변. 기르던 생물이 죽으면 무덤 만들어주렴 = 카나리아 무덤과 오버랩되는 것임.
마지막 면회 장면.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동질감 확인(동향 사람). 시게모리는 본격적으로 '왜 죽였는가'라는 질문을 직접 묻지는 않고 자신의 생각(사키에가 힘들어하지 않도록)을 말하는 것으로 돌려서 말함. 그 말을 들은 미스미는 "저한테 질문한거에요?", "참 좋은 이야기네요"×2,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함. 죽어 마땅함."
무죄 주장은 거짓말. 그런데 왜 거짓말했는가에 대한 견해가 서로 다름. 마치 [올드보이]처럼 '왜 죽였는가'가 아니라 '왜 번복했는가'가 핵심.
미스미가 말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은 판사 시게모리에 의해 주입된 관념. 마지막 거짓말(증언 번복)은 자기자신을 벌하기 위한 것. 변호사 시게모리 때문에 자신이 무기징역이 될 것 같으니까.
세 번째 살인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추측 1) 사법체계에 의한 살인. 추측 2)미스미가 스스로를 벌하는 살인.
추측 2)를 위해 앞에서 증언 계속 번복하는 큰그림을 그린 것임. 그래야 마지막 거짓말이 자신을 사형으로 옭아맬 것이기 때문. 이동진의 생각에, 미스미 입장에서는 사키에를 감싸는 것은 정말 생각하지 못한게 아닐까? 미스미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 자체는 사키에를 위한 심판, 그러나 증언 번복은 사키에를 위한 번복이 아님.
"당신은 그릇이었다는 건가요?" / "그릇이요? 무슨 뜻이죠?"
첫 번째 살인 에피소드에서, 형사가 말하길 범인의 살해 동기는 원한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건 형량 감소를 위한 것이고 진실은 자신도 모름.
시게모리 왈, "사람은 텅 빈 그릇 같아요". 그릇은 무언가를 채웠을 때 가치있는 것인데, 텅 비었다는 것은 앞의 두 살인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 & 사람이 태어날 때는 백지 상태인데 사회가 그를 선하거나 악하게 만듦.
시게모리의 사고 변화
- 쓸모없는 인간은 끝까지 쓸모없으니 진실이고 뭐고 감형 받을 궁리나 하자. → 미스미를 과대평가함.
- 성악설 → 성선설
- 엔딩에서 인간은 성선설도 성악설도 아닌 중간의 그 어딘가라는걸 깨닫게 된 것임.
마지막 엔딩시퀀스 3개.
하늘을 보여줌. 전깃줄로 막 꼬여있음.
그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게모리.
사거리의 왼쪽도 오른쪽도 멈추시오 표지.
→ 영화 내내 하늘을 바라보던 미스미와 오버랩. 어디로도 갈 수가 없는 처지.
최초의 면회 장면: 세 변호사가 미스미 기다리고, 입장하는 미스미의 모습을 유리창의 반영으로 보여줌. 즉, 미스미에 대해 전혀 관심 없음.
최후의 면회 장면: 미스미의 입장을 카메라로 잡음 -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화 - 미스미와 시게모리의 반영이 겹침(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빅클로즈업).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서로 앞으로 다가가게 되는데, 오히려 그럴 수록 미스미와 시게모리의 반영은 멀어짐. - "그릇"을 말하면서 서로 완전히 멀어짐.
이전 면회에서는 시게모리의 모습에 미스미의 반영이 겹침(사법체계 공격하는 장면). 감옥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시선을 표현.
☞ 대단한 미학적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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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영화 보고 다시 읽어봤야겠어요^^







1월 3,4일경 다음 라이브톡이군요. 중계관 사운드가 잠시 먹통돼서 못 들었네요.
정리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 받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어제 태블릿으로 열심히 메모한다고 했으나
놓친 게 많네요. 덕분에 감사합니다!

저도 방금 듣고 가는길인데 엄청난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메모를 다 적으셨군요! 몇번이고 다시 읽어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