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클럽] - 이토록 완벽한 섹스디스토피아여.

※ 스포일러 대거 포함.
브래드 피트의 팬들에게 브래드 피트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나오는 대답은 <파이트 클럽>이다. 이 영화는 사실상 그 당시에는 흥행하지 못 했지만 컬트 무비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이며 데이비드 핀처의 걸작으로 불리는 영화이기도 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브래드 피트의 팬이기도 한데, 처음에 vod로 이 영화를 봤을 당시 이상하게도 이 영화의 매력을 느끼지 못 했다. 아, 진짜 더럽다. 아무리 집이 낡았다고 하더라도 저런 섹스가 어디에 있어? 반전은 멋있군. 어, 저 자식은 왜 안 죽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필자가 이 영화를 재개봉의 기회로 다시 봤던 이유는 브래드 피트의 얼굴을 큰 화면으로 보고 싶었던 사심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보고나서 알았다. 왜 내가 이 영화의 매력을 그 당시에 느끼지 못 했는지, 왜 지금은 보이는 건지. 이유는 간단했다. 하나로 꼬집기에 각각 자랑하는 매력은 너무나도 컸고, 이것은 나에게는 과부하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중 필자는 하나를 꼬집어서 말하고 싶다. 이 영화는 지나치게 성적이다. 선정적이 아닌, 성적이다.
각을 잡고 다시 봤을 때 들었던 인상은, 이 영화가 굉장히 남성스러운 영화라는 것이다. 단순히 남자들이 많이 나와서, 그리고 폭력적이었기에 남성스러운 영화라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해 많이 나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ball&penis, 즉 남성기이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고환암 환자 모임부터 시작하여 영화 끝에 핀처 감독의 장난으로 보이는 듯한 거대한 페니스의 등장까지 이 영화는 남성기로 생겨났으며 남성기로 끝을 맺은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타일러가 영사기사로 일할 때 장난을 치는 것도 거대한 페니스의 등장이며 그들이 지하 권투 테러 클럽을 파헤치려는 경찰청장을 협박할 때도 고환을 잘라버리겠다는 말을 한다. 또한 잭(에드워드 노튼의 이름은 확실하게 등장하지 않지만 본인을 ‘잭의 OO이다.’ 라는 표현을 자주 하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타일러와 구분하기 위해 잭이라고 표현하겠다.)이 자수를 하려 들 때 파이트 클럽의 멤버들이었던 경찰들 역시 잭의 고환을 잘라버리겠다는 말을 한다. 고환을 자르는 것은 남성성을 잃는 것이다. 죽음 보다 더 두려워했던 ‘Cut the balls.’라는 문장은 어쩌면 제법 재밌는 문장인데, 이 남성기가 살아났던 시기는 딱 한 번이다. 그 한 번은 여러번에 걸쳐서 나타난다. 바로 말라 싱어와 타일러 더든의 베드씬이다.
여태껏 성기는 죽어있거나 활동이 없다. 그 성기가 활동을 하려면? 답은 간단하다. 그 성기를 세워야한다. 문지르거나, 혹은 삽입을 하거나. 그러기에 말라 싱어는 아주 최적의 상대―노파심에 말하지만 필자는 여성을 단순한 성적 도구로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이다. 섹스의 관계로 볼 때 이 둘은 대등하다. 쉽게 말하자. 정력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폐가라고 하더라도 집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몰아치는 남녀가 다음날 아무런 피곤함 없이 돌아다닐 뿐 더러 제법 둘의 성관계의 주기는 잦다. 또한 말라 싱어는 성기가 활동을 하게 하면서도 방해를 하게 하는데, 그것은 타일러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 여자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마. 타일러는 말라가 자신의 거대한 군단을 조직하는 파이트 클럽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즉 파이트 클럽의 유일한 대항마는 말라 싱어라는 것이다. 대등한 관계라는 것은 이길 수 없는 상대이기도 하지만 질 수도 없는 상대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성을 다루는 방법은 삶과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필자는 생각을 했었다. 대표적인 모습으로 잭이 수없이 다닌 암 환자 모임들 중에서 죽음이 두려워지지 않았다고 발표를 하던 클로이를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클로이가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죽음을 목도에 두니까 이상하게도 ‘그게’ 하고 싶어졌어요. 집에 포르노 무비도 있고, 윤활제도, 흥분제도 있어요.” 물론 이 말을 하던 도중에 저지를 당하기도 하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클로이의 이 말은 용기가 있으면서도 굉장히 절박한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섹스라니! 쉽게 할 수 있을 거 같지만 병색이 완연한 얼굴을 한 채로 하는 섹스가 쉽지 않을 것이다. 클로이는 제 마지막 용기를 ‘섹스’에 가져다댔다. 그리고 그 후에는? 클로이는 말라의 입으로 통해 근황이 전달된다. ‘클로이는 죽었어.’ 암환자 모임 멤버들 중 파이트클럽에 가입한 밥을 제외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물의 근황이 전달되는 사람은 클로이 밖에 없다. 그 흘러가듯이 ‘클로이는 죽었어.’라고 하는 말을 듣자마자 필자의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안 됐다, 불쌍하다도 아니다. 과연 클로이는 섹스를 했을까? 라는 것이다. 섹스를 했으면 굉장히 격정적으로 했겠지. 하지 못 했다면 포르노 테이프와 윤활제, 흥분제는 그대로 그녀의 관에 함께 들어갔을 것이고.
그럼 신체를 즉각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신체를 따라하는 도구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남성기를 본 딴 도구, 즉 딜도이다. 이 영화에서는 딜도의 등장이 두 번 나온다. 두 번 나오는 딜도 보다 차라리 지겹도록 나오는 비누 이야기가 더 영화에 관련이 있을 것 같지만 필자는 딜도가 제법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을 했다. 비행기에서 타일러를 만난 이 후 짐을 잃어버렸을 때 안에서 진동이 느껴지는 짐은 무조건 압수를 한다는 경비는 안에 딜도가 들었을지 어떻게 아냐며 어깨를 으쓱인다. 나에게는 그딴 게 없다며 반박을 하던 잭은 그 후에 타일러와 함께 타일러의 페이퍼 스트리트에 있는 집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것은 말라 싱어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원룸텔에서 약을 먹었다며 잭에게 전화를 한 말라에게 타일러가 간 장면을 기억해보면, 타일러는 말라의 집에 들어섰을 때 서랍장 위에 놓인 딜도를 보며 서랍장을 쓰윽 밀어버린다. 그리고 그 후에는? 말라 역시 페이퍼 스트리트에 있는 타일러의 집에 들어서게 된다. 가짜 성기는 페이퍼 스트리트에 있는 타일러의 ‘집’으로 오게 하는데, 이 ‘집’이라는 공간 역시 사실은 허상이다. 이 공간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려운 말 쓰지 말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답은 쉽게 나온다. 타일러 더든이 진짜가 아니었기에, 이 공간 역시 허상인 것이다. 이 공간은 타일러가 잭을 꾀어내고, 군대를 만들어낸 것은 진짜였으나 이 공간은 지속적인 존재를 하지 않고 심지어 누구의 공간인지도 모른다. 가짜 인격 타일러 더든, 가짜 성기, 가짜의 공간.
<파이트 클럽>은 명확하게 주어진 것이 없다. 심지어 필자가 쉽게 이야기하는 ‘잭’의 이름 역시 드러난 것이 없지 않은가. 루퍼트, 코렐리우스, 타일러 기타 등등 페이크 네임은 많지만 그의 진짜 이름은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엔딩 크레딧조차 에드워드 노튼의 역은 나레이터라고 되어있을 뿐이다. 타일러의 개똥철학과 맞물리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을 놓을 때 비로소 자유가 된다는 그의 말은 심지어 이름조차 포함되고 있었다. 모든 게 가짜인 공간인데 섹스는 진짜다. 타일러 더든이 두려워한 실체는 섹스 속에 있었다.
앞서 이야기한 타일러와 말라의 이야기를 더 이끌어가보자. 짐승들의 교합이 어울릴 것 같은 베드씬을 상상해보면 그 베드씬은 야하기 이전에 뭔가가 좀 이상하다. 베드씬이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보다는 남녀의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와 집안을 울리는 덜컹거림, 진동으로 보여줄 뿐 타일러가 말라의 몸 위에서 허리를 침대가 부서져라 흔드는 그런 장면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필자가 영화를 볼 당시에 같이 갔던 지인이 ‘둘이 싸우냐?’ 라고 중얼거렸었는데, 필자는 그 때 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흔히 폭력을 몸의 대화라고도 하지만 섹스를 다른 말로 몸의 대화라고 하지 않는가. 말라 싱어와 타일러 더든이 한 것은 격렬한 섹스다. 물론 섹스는 맞는데, 이것은 다툼과도 같았다. 어느 한 쪽도 밀려나는 것 없었고, 교성이 난무한.
파이트 클럽의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룰을 기억하라. You do not talk about FIGHT CLUB. 그리고 말라 싱어와 타일러 더든의 관계에 있어서 타일러는 늘 잭에게 ‘저 여자에게 절대 내 이야기를 하지 마.’라는 말을 한다. 그렇다. 말라 싱어와 타일러 더든은 남녀버전의 파이트 클럽인 것이다. 말라 싱어는 (잭의 얼굴을 한)타일러에 대해서 알아내고 싶어 하고 타일러는 절대적으로 그녀를 피하려 든다. 어쩌면 이 관계에서는 말라 싱어가 훨씬 더 우위에 있을지도 모른다. 타일러 더든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모습을 보일 때는 말라 싱어와의 섹스 후에 있는 그 모습이다. 그랬기에 타일러는 더욱 더 그녀를 없애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타일러를 대등하게 밀어낼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파이트 클럽>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셀 수 없이 많다. 물질에 집착하는 사회, 이중인격, 스트레스를 풀지 못 해 엉뚱한 방향으로 풀고 있는 현대인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살고 있지만 그만큼의 노예로 살고 있는 현대인 등등. 많은 것들 중에서 <파이트 클럽>에 대한 리뷰를 쓸 때 어떤 관점에서 쓸까 생각을 하다가 내 눈에 가장 띠는 것을 주제로 잡기로 하고 초고를 작성했다. 해방이라는 유토피아에 살기를 바라면서 디스토피아를 걸어가고 있는 <파이트 클럽>과, 그것을 주로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의외의 주제가 바로 성(性)이었다. 성을 다루고 있는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갖고 있는 성에 대한 색체가 이렇게 강력할 수가 있다니, 실로 멋진 영화다. 섹스와 디스토피아. 이쯤 되면 제법 멋진 주제가 아닌가.
샐리와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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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유 감사합니다 ㅠㅠㅠㅠㅠㅠ 스포 모르시는게 더 재밌었을텐데 ㅠㅠㅠㅠㅠㅠㅠ 에구 죄송하기도 하고 그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