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립반윙클의 신부' 초간단 리뷰
1. 오래전 영화잡지에서 줏어들은 잡스런 지식 하나: 이와이 슌지의 영화세계, 즉 '이와이월드'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그것은 '밝은 이와이'와 '어두운 이와이'다. 첫사랑의 풋풋한 추억과 소녀들의 예쁜 우정을 보여주던 '밝은 이와이', 극악의 디스토피아에서 잡초처럼 외롭게 피어있는 사랑과 희망을 노래하던 '어두운 이와이'.
2. 사람들은 '밝은 이와이'로 대표되는 '러브레터'같은 영화를 좋아한다. 당연히 예쁘고 아름답고 풋풋한 영화는 매력적이다. 그런데 이와이 슌지의 칙칙한 영화들도 사실 대단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관객이라도 보고 있으면 '중2병' 걸리게 만드는 '다크 이와이월드'는 그 감성을 이해하고 알아간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좀 멋있지"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그게 '중2병'이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언듯 보면 '밝은 이와이'같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이것은 실로 오랜만에(사실상 거의 처음) 국내에 소개된 '어두운 이와이'다.
3. '립반윙클의 신부'는 실상을 알고 보면 굉장히 무시무시한 영화다. 아무로(아야노 고)는 마시로(코코)의 의뢰를 받고 '같이 죽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나나미(쿠로키 하루)에게 접근한다. 그러니깐 아무로가 나나미의 결혼생활을 망가뜨리고 불행하게 만든 것은 마시로의 의뢰에 따라 나나미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건 인신매매 내지는 장기밀매만큼 오싹한 설정이다. 이 영화를 '어두운 이와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도 이 지점 때문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위기의 나나미가 꾸역꾸역 살아나는 과정이다.
4.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은 나나미가 변해가는 과정이다. 나나미는 학교 선생이지만 목소리가 작아서 수업이 안 될 정도로 수줍어하는 성격에 사람을 잘 만나지도 못해서 맞선 사이트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하고 SNS에 고민을 털어놓는게 일상인 조용한 여자다. 영화의 시작은 나나미가 남자와 처음 만나는 지점에서부터다. 즉 관객은 '혼자 살던 나나미'를 본 적이 없다. 관객이 목격한 '혼자 사는 나나미'는 결혼생활이 무너지고 난 후부터다. 그때부터 '나나미'의 자립은 시작된다.
5.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나나미는 점점 목소리가 커진다. 아마 관객들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나나미는 변해가고 있었다. 특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에서 나나미는 혼자 남겨졌지만 SNS를 보지 않는다. 이제 겨우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전이라면 쭈뼛거려서 악수도 못했을텐데 먼저 나서서 악수를 건넨다. 또 떠나는 아무로에게 큰 소리로 잘 가라고 인사도 한다. 꽤 지독한 과정이지만 이것은 나나미가 SNS를 접고 세상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6. 나나미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4월 이야기'에서 니레노 우츠키(마츠 다카코)다. 홋카이도 시골에서 상경한 이 외로운 여대생은 도쿄에 진학하면서 홀로 지내게 되고 우여곡절의 4월을 겪으며 첫사랑 선배에게 말을 건낼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부러진 우산 너머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도쿄의 생활과 시작될 사랑에 대한 설렘도 갖는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인터넷에 의존하던 소심한 나나미의 달라질 일상에 대한 설렘을 갖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츠키와 나나미의 성격이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영화를 보면 안다).
7. '립반윙클의 신부'가 '어두운 이와이'인 또 다른 이유는 마시로 때문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AV배우를 하며 막 살아대는 이 여자의 설정은 충격적일 정도로 절망적이다. 마시로는 자신이 서 있는 세상의 끝으로 나나미를 초대한다. 원래 마시로는 죽음의 문턱을 함께 넘을 길동무로 나나미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녀를 아끼는 마음이 커지면서 나나미가 삶의 희망이 돼버렸다. 마시로는 미처 다 살지 못한 자신의 삶을 나나미에게 맡긴 셈이다. 이 슬프고도 애절한 인물은 '밝은 이와이'에게서는 볼 수 없다.
8. '어두운 이와이'의 특징은 마냥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적인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초기작이었던 '언두'나 '피크닉',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의 경우는 어둡다 못해 약간은 미쳐버린 세상에서 희망과 사랑을 말한다. 이와이 슌지는 마치 사랑의 양면을 각각 보여주려는 듯 필모그라피를 뒤집어버린다. 아마 그게 이와이 슌지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9. 돌이켜보면 이와이 슌지의 영화에서는 되게 이상한 캐릭터들이 종종 등장했다(심지어 '러브레터'에도 이상한 애가 한둘 있었다). 이들의 이상함은 다소 극단적인 캐릭터 설정에서 비롯된다. 이번에도 그런 인물들이 종종 등장한다(사실 마시로도 그런 인물일 수 있다). 이런 인물들 덕에 이야기도 이상해질 수 있다. 그래서 '러브레터'의 이와이 슌지만 알던 사람에게 '립반윙클의 신부'는 당황스런 영화다. 하지만 당황하지 말자. 이와이 슌지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10. 결론: 이와이 슌지가 바라 본 SNS시대의 세상(근데 일본 애들도 SNS 많이 하나? 인터넷도 느리다던데...).
추천인 7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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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츠 다카코 땜시 관심 있었다가 쿠로키 하루를 알게 된다는 '작은 집'이라는 작품인 듯.. (요걸로 쿠로키 하루가 베를린 영화제인가?에서 상 받지 않았나요?)

3. 헉. 저랑 지인은 나오면서 '시어머니의 음모 아냐?'하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아주 처음부터 그럴 계획이었다고 생각하니 소름. -_- 음 정말 그럴 수도..
6. 에이~~ 그래도 우츠키랑은 성격이 다르죠. 우츠키는 그냥 '수줍은 정도(풋풋)'인데다가 오프에서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짜증 유발도 없...)
10. 일본 인터넷 느리단 건 오래전 이야기.. (물론 여전히 전체적으론 한국보단 느리지만) 그리고 이건 참 신기한데.. 얘들은 왜려 전화보다 SNS를 더 많이 하더군요. (뭐...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통화 안하기.를 거의 완벽하게 지키고 있기에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남이 자기 말하는 거 듣는다거나 스맛폰 화면 보여지는 걸 극히 싫어하는 것도 있고..)
지독한 소심쟁이 사이버가 온 세상인 한 인간이 그 껍질을 ㄲㅐ는 ㄱㅖ기는 그 만큼 혹독한 시련 아픔..그것이 오ㅎㅣ려 성숙시키는 힘이되는군요

저는 '밝은 이와이'만 생각하고 영화를 보러 간 듯 합니다 ㅎㅎ

후기 잘 읽었습니다
글을 보고 나니 이 영화가 뭔 영화였는지 좀 알 것 같네요. 처음부터 나나미를 망치기 위한 아무로의 계획이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좀 돋는것 같기도 하고, 다시 보고싶어집니다. 후기 감사합니다!.
초감독님 추천으로 좋은정보 잘보고 갑니다...어두운 이와이를 모르는건 아니었는데 이렇게 제대로 당한게 첨이네요 ㅎㅎ
10..일본의 인터넷은 전혀 느리지 않습니다...ㅎㅎ
호주가 느리죠..아직도 랜선을 쓰는지역이 있으니.ㅡㅡ;
안 느려요??? 느리다고 들었는데 다 거짓말이었군요. ㅎㅎ 호주는 랜선이라...후....힘들게 사네요 ㅎㅎ
쥐꼬리만한 섬에도 4g lte가 터집니다. ㅋㅋ
오홋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나나미와 우츠키
....뭔 영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