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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자토이치의 순례 (1966) 그 유명한 자토이치 시리즈 중 수/걸작. 스포일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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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자토이치 시리즈들 중에서도 수/걸작이다. 

자토이치역을 맡은 가츠 신타로는 실제로 대단한 검술의 명인이다. 칼이 손에 쩍쩍 달라붙어서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검술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대충 서서 칼을 휘둘러대는 것과는

척 봐도 수준 차이가 난다. 액션의 동선을 짜는 것조차, 실제 자토이치가 무술감독을 했다면 나왔을 

동선이라고 한다. 

 

자토이치를 보면, 바보가면이 생각난다.

늘 억압받고 무시당하던 일본민중들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자기들보다 더 약한 동네바보를 골라

이지메하고 괴롭혔던 것이다. 검술의 명인 자토이치가 이 영화에서 담당하는 역할도 이것이다. 

자토이치는 대단한 검술을 지녔지만,

그런 검술도 자토이치를 그의 운명으로부터 구해주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산적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마을사람들은,

자기들이 뭘 할 생각은 안하고 자토이치를 산적 앞에 희생양으로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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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토이치는 이런 설움에도 불구하고 담담하다.

처음에는 자토이치가 굉장히 성숙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전혀 안 그렇다. 

자토이치는 자기가 살아가야 할 세계가 컴컴하고 암울함 그 자체라고 믿는다.

지독한 페시미즘 속에서 한 줄기 구원도 바래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엄청나게 가난한 사람도 어느날 갑자기 가상화폐 돈더미가 쏟아질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자토이치는, 자기에게 그런 빛줄기가 스며들 리는 없다고 믿고,

그런 빛줄기가 실제 다가와도 외면해 버린다. 

이런 자토이치에게도 구원이 찾아올 수 있을 것인가?  

 

이 영화 처음에 각지에 있는 절을 찾아 순례하는 자토이치가 보여진다.

왜 갑자기 뜬금없이 절로 시작하는가? 이것은 전작을 보아야 한다. 

전작에서 자토이치는 장님들을 만난다. 그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각지에 있는 절을 찾아 순례하고 있다. 뭐가 그리 좋고 즐거운지 웃고 떠들면서......

그들은 자토이치더러도 함께 가자고 한다. 자토이치는 피식 웃으면서 나중에 가겠다고 대답한다. 

나중에 자토이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탈진상태에서 길을 나서다가 

아까 그 장님들을 다시 만난다. 그들은 함께 손을 맞잡고 왁자지껄 웃으면서 순례의 길을

가고 있었다. 자토이치는 아까처럼 당당하게 나중에 가겠다고 대꾸하지 못한다. 

그는 저만치 물러서서 그들이 멀어져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에게는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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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편이 이 영화다. 혼자 각지에 있는 절을 순례하는 자토이치에게 벌어지는 

구원의 손길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검술영화를 빙자한 종교영화라고 보아도 될 정도다. 서부극의 걸작 하이눈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자토이치가 나무다리를 건너는데, 어떤 젊은이가 칼을 들고 덤벼든다.

알지도 못하는 젊은이가 죽인다고 덤벼드는데,

척 보아도 칼이라고는 부엌칼 하나 잡아본 적 없는 사람이다.

슬쩍 피하면서 가버리려고 하는데, 젊은이가 다리에서 떨어져 물에 빠지고 죽어 버렸다.

자토이치는 충격을 받는다. 사람을 숱하게 죽였어도, 야쿠자나 칼밥을 먹는 사람이나 죽였다.

지금 어벙벙하고 순박한 젊은이를 죽여 버린 것이다.

절을 순례하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이것이 부처님 법력인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젊은이가 타고 다니던 말이 자토이치를 쫓아온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자토이치는 사람에게 하듯

"내게 뭐 할 말이 있냐?"하고 묻는다. 말은 자토이치를 인도하듯 어느 마을로 그를 데려간다. 

 

시작부분이 절묘하다. 아무 신비한 일이 안 벌어진다. 하지만, 관객들은 안다.

지금 여기에는 부처님의 법력이 작용하고 있다. 자토이치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려는 법력이다. 

영화 내내 자토이치는 시련과 선택의 갈림길을 겪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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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토이치는 말을 따라 어느 시골집에 들어간다. 거기에서 어느 젊은 여자를 만난다. 

젊은 여자는 집을 나가 버린 자기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여자의 영혼이 너무 순결하고 

새하얗다. 이렇게 순결한 영혼은 만나본 적 없다. 자토이치는 서서히 그녀에게 마음이 끌리지만, 

살인자에다가 도박꾼인 자기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절대 아니다. 

혼자 아무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살아가던 여자는 

자토이치에게 마음이 끌리게 된다. 칼잡이이지만 자토이치는 자기가 아는 누구보다도 더 성실하고 

성숙하다. 세상물정을 잘 알아서, 늘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애가 탄 여자가 먼저 고백해도, "당신처럼 영혼이 새하얀 사람을 본 적 없습니다. 그런 당신을 나같은 사람이

어찌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하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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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잔잔하게 스토리가 흘러가면서도,

늘어지거나 느슨해지지 않고 팽팽하게 전개해 나간다.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은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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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토이치영화는 다 수작 이상이다. 그 긴 시리즈 동안 쉬어가는 영화가 없다.

자토이치역을 맡은 가츠 신타로는, 일본영화사상 다섯손가락에 꼽는 대배우다. 살벌한 검객에서부터

영혼에 상처를 입는 장애인, 약자인 농민들로부터도 학대받는 사람,

젊은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면서도 자기의 범죄경력 때문에 갈등하는

캐릭터들을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하며 이음새 안 보이게 연기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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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산적떼들이 이 마을을 접수하려고 몰려들고, 자토이치 혼자 그들에게 대적하게 된다.

마을 농민들은 자기들이 싸우기는 싫고, 자토이치를 희생양으로 내세운다. 자토이치가 이기면 그것으로 좋고,

자토이치가 지면 그때 가서 혼쭐 난 산적들과 협상을 하면 그것도 좋다는 것이다.

자토이치에게는 고마움은 커녕 바보라고 비웃기나 한다. 

 

그들은 산적 앞에서 속내를 숨기고 멍청이인 것처럼 예 예 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현명하고 똑똑하게 행동한다고 착각하지만,

산적들도 자토이치도 그들의 속내를 꿰뚫어보고 있다. 

산적들이 떼거지로 몰려드는데, 마을에서 그들을 막아서는 사람들은 자토이치 밖에 없다. 

 

자토이치는 자기가 사랑하는 순결한 젊은 여자를 위해서인지, 

야쿠자들이 정직하게 살아가는 농민들을 괴롭히면 처단해야 한다는 평소 철학을 견지하기 위해서인지, 

자기를 이곳으로 인도한 부처님에게 자기 희생을 바치기 위해서인지, 

아무튼 복잡한 이유로 혼자 산적떼들을 막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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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처절하고 잔인한 전투가 벌어진다. 

자토이치와 백명은 가까이 될 산적떼들의 전투다. 정말 처절 그 자체다. 

이것만 보아도 장관이다. 가츠 신타로가 진짜 검술의 명인이어서, 검술 장면도 영화적 연출이 아닌

아주 실감난다. 싸우다가 서서히 자리를 옮기며 우물가에 가서 물을 마시려 하는 목마른 자토이치의

모습을 전투 중간에 보여준다. 자토이치가 겪고 있는 엄청난 피로와 갈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으로 아주 인상이 깊었다.  

집에 숨어서 "아무나 이겨라"하면서 바라보는 농민들의 모습이 교차된다.

마침내 자토이치가 산적두목을 비롯한 산적떼들을 모두 몰살시키자, 멍청한 척하던 농민들은 교활한 눈을 빛내며

하나하나 집에서 나온다. 

 

자토이치가 산적들과 혈투를 벌일 때, 마을 젊은이 한명이 자토이치를 도우러 뛰어나온다. 

싸움 한번 해 본 적 없는 젊은이는 곧 죽임을 당하지만, 자토이치는 갑자기 힘이 난 듯

남은 산적떼들을 칼질 몇번에 다 죽여 버린다. 자토이치는 젊은이의 희생을 통해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된 것일까? 이 장면이 영화 전체의 주제를 집약한 듯 하다.

아주 강렬하게 표현된다. 

 

자토이치는 숨 한번 돌리지도 않고, 그냥 몸을 돌려 마을 바깥으로 사라진다.

여자에게도 마을사람들에게도 한마디 말도 않는다.  

그저 몸에는 수없이 많은 상처를 입고 절뚝이며 석양 바깥으로 사라져간다.

동네바보에게는 이것이 어울리는 퇴장이다.

 

강렬하고 비극적이고 처절한 자토이치 캐릭터를

절절하게 구현해낸 가츠 신타로의 명연기가 아주 훌륭하다.

산적떼들과 자토이치의 대결은

아주 실감난다. 텅 빈 동네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일대 다수의 혈투가 벌어진다. 장관이다. 

마지막에 남은, 무술의 고수인 산적두목과 자토이치의 대결도 강렬하다. 

 

 

 

 

 

 

BillEvans
25 Lv. 68303/698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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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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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golgo 12시간 전
60년대 영환데 때깔이 좋아 보입니다.
BillEvans 작성자 9시간 전
golgo
지금 보면 다 수작 걸작들입니다. 때깔만 좋을 뿐 아니라 연기나 액션 등 흠잡을 데 없습니다. 자토이치 대 요짐보라는 영화는 특히 걸작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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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갓두조 11시간 전
자토이치를 볼때마다 원피스의 후지토라가 생각나는 ㅋㅋ
BillEvans 작성자 9시간 전
갓두조
두 캐릭터들이 아주 많이 닮았나 보군요.
21C아티스트 9시간 전
갓두조
후지토라가 자토이치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원피스 인물들 대부분 실존인물 원형이 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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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두조 6시간 전
21C아티스트
네 사실 알고 있어요 ㅋㅋ 삼대장과 로쿠규도 과거 유명한 일본 배우들 모티브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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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 카란 4시간 전
명성은 익히 들었는데 기회되면 보고 싶네요
항상 유익한 작품 소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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