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드라이버>,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혼재
어떤 영화가 고전의 반열에 들어갈까? 나는 나이 들어서 다시 봤을 때 또 다르게 읽히는 영화가 고전이 된다고 생각한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 속에 수많은 층위가 겹겹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며, 많은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몇 년 전에 왕가위 감독 특별전에서 <화양연화>와 <중경삼림>을 다시 봤다. <중경삼림>을 볼 때는 예전에 봤을 때의 감성과 추억이 그대로 다시 느껴졌다. 그러나 <화양연화>는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읽혔다. '전에 나는 뭘 본거지? 이건 정말 명작이었잖아?'
인간의 마음이란 표면일수록 다양성이 드러나고, 깊이 들어갈수록 보편성이 드러난다. 젊었을 때는 다양성에 심취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깊은 마음의 우물에서 퍼올려진 보편성에 공감하게 된다. 고전이란 트렌디한 다양성에만 머물지 않고, 시간에 제약되지 않는 보편성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영화관에서 옛날 고전들을 자주 재개봉해주어서 너무 좋다. 나는 <택시 드라이버>를 티브이에서 몇 장면만 본 기억이 있을 뿐,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 영화관에서 제대로 보고, 옛날에 봤으면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이건 정말 명작이었잖아?'
1. '상지(上知)'와 '하우(下愚)', 그 사이의 수많은 '악의 평범성'
트래비스 버클(로버트 드 니로)은 해병대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1973년에 제대한다.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다 못해 야간 택시 운전을 하며 뉴욕 밤거리를 누빈다. 12시간을 일하고도 잠을 자지 못하며 얼굴은 피로가 가득하다. 유일한 취미는 포르노 영화를 보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다.
그는 인간쓰레기가 넘쳐나는 이 세상을 혐오한다. 큰 비가 와서 남김없이 쓸어버려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트래비스는 폴 토마스 엔더슨 감독의 <마스터>에 나오는 전역 군인인 프레디 퀠(와킨 피닉스)을 연상시킨다. 트래비스와 프레디는 전쟁을 겪고 나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트래비스는 야간운전을 12시간씩 하고도 잠을 자지 못한다.
<마스터>, 전역 후 프레디는 사진사로 일하지만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이 못마땅하다.
<택시 드라이버>는 토드 필립스 감독의 새로운 <조커>와 많이 비교된다. 오리지널 조커는 배트맨의 반대지점에 있는 절대악의 화신에 가깝다. 그러나 토드 필립스의 조커와 트래비스는 개인적, 사회적인 고립감으로 인해 망상적 신념을 갖게 된 보통 사람에 가깝다.
공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唯上知與下愚不移(유상지여하우불이).
오직 최상의 지혜를 가진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만이 변하지 않는다.
<論語, 陽貨 03-01>
'최상에 지혜에 도달한 자(上知)'는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에 변할 것이 없다. '아주 어리석은 자(下愚)'는 양심과 수치심이 없기 때문에 변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극소수이며, 대부분의 사람은 '상지'와 '하우' 사이 어디쯤에 속한다. 이들은 좋게도 나쁘게도 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오리지널 조커가 '하우'에 속한다면, 트래비스와 토드 필립스의 조커는 상지와 하우 사이에 있다.
우리가 만나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많은 '하우'들은 사실 그냥 '소인(小人)'이다. 소인을 변하게 하는 것은 아주 쉽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利)과 관련되면 빛의 속도로 태세 전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을 관찰하면서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한다. 평범한 사람도 사유 없이 외부 압력에 순응한다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주장은 우리를 섬뜩하게 한다. 더 이상 도덕적으로 우월한 곳에 앉아서 그들을 비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3년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에는 유태인 수용소를 관리하는 평범한 나치 장교의 가족이 등장한다. 홀로코스트를 집행하는 자들이지만, 이들은 평소에는 아이를 사랑하고 정원을 가꾸고 잡답을 하는 등 평범하고 다정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이념을 갖게 되었을 때 갖가지 희비극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2. '애지욕기생, 오지욕기사'를 실행하다.
1>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혼재
트래비스는 <마스터>의 프레디처럼 삶의 무의미와 무기력에 빠져있다. 동시에 세상에 대한 혐오감은 점점 커진다.
택시를 운전하면서 보는 거리의 난장판 풍경과 여러 손님들을 보며 그의 혐오는 더 커진다. 사실 그는 이미 세상에 넌더리가 나 있기 때문에 혐오에 확신을 주는 증거들만 보는 것이기도 하다. 토드 필립스의 조커도 자신이 뉴욕에서 전혀 배려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트래비스의 내면에는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며 그를 잠 못 들게 한다. 에로스(Eros)는 자기 보존적 욕망이며, 타나토스(Thanatos)는 자기 파괴적 욕망이다. 에로스는 살고자 하는 욕구이며 성적 욕망으로 나타난다. 타나토스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생명 없는 무기질로 환원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트래비스는 무의미함과 의욕상실에 짓눌리며, 끊임없는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 죽음의 충동은 여러 장면에서 나타난다.
그는 위험한 흑인 구역에도 거침없이 택시 운행을 한다. 그가 권총을 구입해서 거울을 보고 연습하는 것은 사실 자기 자신을 겨냥하는 것과도 같다. 아이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이 편지를 받을 즈음에 나는 이미 없을 것이다'라고 쓴다. 테러를 하고 자살하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트래비스는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이 상황을 탈피하고 밖으로 나갈 계기가 필요함을 느낀다. 실제로 체력 단련과 식단 관리도 하며 자기를 향상하려는 노력을 하기도 한다.
2> 그는 자신이 지켜야 할 '선(善)'을 만난다. - 베시와 아이리스
트레비스는 두 명의 서로 상반된 여자를 만나게 된다.
베시는 유력한 대선 후보인 팔렌타인 의원의 선거 캠프에서 일하는 엘리트 여성이다. 트래비스는 천사처럼 때 묻지 않는 베시와 동질감을 느끼며, 근자감을 가지고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예의 바른 베시는 약간의 이질적 호기심을 느꼈는지 의외로 승낙한다. 그러나 트래비스는 첫 데이트에서 그녀를 포르노 영화관에 데리고 가는 바람에 대차게 까인다.
아이리스는 12세의 미성년 매춘부이다. 트래비스는 그녀를 구해줘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지만, 정작 아이리스는 트레비스의 과도한 관심과 도움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트래비스의 뮤즈 - 베시와 아이리스
트래비스에게 이 여성들은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이것을 제대로 해석하는 것이 이 영화의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3> 애지욕기생(愛之欲其生), 오지욕기사(惡之欲其死)
전쟁터에서의 유일한 생존 전략은 선과 악을 확실하게 구분하여, 자신을 선과 동일시하고 악인 적군을 뿌리째 뽑아 응징하는 것이다. 중간에서 머뭇거리다가는 바로 죽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몸은 전쟁터에서 돌아왔지만. 트래비스의 정신은 여전히 전장을 배회한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뉴욕에서 살기 위해서 그의 본능은 혐오해야 할 악과 그것으로부터 수호해야 할 선을 찾는다.
그에게 '정의'란 선을 살리고 악을 처단하는 것이다. 하늘에서 폭포수를 퍼붓듯이 악을 쓸어 버리는 것이다.
그는 선과 악은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가? 공자의 말씀을 또 인용해 보자.
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애지욕기생 오지욕기사)
旣欲其生, 又欲其死(기욕기생 우욕기사), 是惑也(시혹야).
사랑할 때에는 살기를 바라고, 미워할 때에는 죽기를 바라나니,
이미 살기를 바라고 또 죽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미혹이다.
<論語, 顔淵-10-02>
이 구절의 해석은 좀 오해가 있다. 대체로 '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애지욕기생 오지욕기사)'만 따로 인용하여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살리고, 미워하는 것은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이 구절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내가 사랑한다고 그 사람을 살리고, 내가 미워한다고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해석하여야 하며, 이것은 '미혹(惑)'한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선'이 되고, 내가 미워하는 것이 '악'이 된다면, 이 세상의 '정의'란 사람 수만큼 달라질 것이다. 내가 자의적으로 정한 기준대로 살리고 죽이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3. 내 안의 괴물이 이렇게 커졌다.
트래비스의 내부는 진공처럼 텅 비어있으므로 자신을 잡아줄 '절대선'을 외부에서 찾는다.
그는 그것을 베시에게서 처음으로 보았고, 베시가 믿는 정치적 신념과 그녀가 존경하는 팔렌타인 후보까지 모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방에 그들의 선거 캠페인 구호인 'We are the People'을 붙여두고, 팔렌타인을 우연히 만났을 때는 그를 지지하는 말을 한다.
그러나 베시가 그를 거절하고 차단하자, 그는 베시에게 '너도 남들과 똑같다.'며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그에게 베시와 그 일당들은 절대선에서 악의 무리로 강등된다.
보통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트래비스가 왜 팔렌타인을 지지했다가 갑자기 암살하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트래비스의 내면의 논리는 객관적 인과관계나 이성적 판단으로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는 애초에 정치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단지 베시를 좋아했을 뿐이다. 베시에게 등을 돌리고 나니, 팔렌타인을 암살하는 것은 단지 악을 처단하는 것이 되었다. 기왕이면 뉴욕 거리의 잡범보다는 유명세가 있는 적을 없애는 것이 더 좋은 것뿐이다.
베시 다음에 그의 눈에 띈 길거리 창녀 아이리스는 새로운 절대선의 후보가 된다. 이번에는 그녀를 악의 무리로부터 지켜줘야겠다는 강박을 가진다. 사실 아이리스는 트래비스의 도움을 전혀 원하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굳은 믿음을 바꿀 생각이 없다. 아니, 바꿀 수가 없다.
트래비스는 첫 번째 악인 팔렌타인의 암살에 실패하자, 두 번째 악의 무리로 향한다. 그는 아이리스가 일하는 업소로 쳐들어가 포주를 비롯해서 손님까지 죽여버린다.
트래비스는 무차별 총격 후에 만족한 듯, 장난스러운 듯한 미소를 짓는다.
트래비스는 갱들을 모두 죽이고 나서 권총으로 자살하려 했으나, 모든 총알이 소진되어 실패한다. 그는 손가락 총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겨누면서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만족스러운 듯, 천진난만한 듯 기묘한 표정이다. 이제야 꽉 눌린 것이 해소된 것 같다.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안에서 팽팽하게 버티고 있던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동시에 빠져나간다.
몸이 회복되고 나서 그는 다시 택시 운전을 한다. 어느 날 베시가 우연히 그의 택시에 타서 다시 만났을 때, 그의 표정은 이전과 다르게 뭔가 생기가 있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요금을 안 받고 휭 떠날 때, 좀 멋있기까지 했다.
미디어에서는 트래비스를 갱과 혈혈단신으로 싸운 영웅으로 포장한다. 트래비스의 방에는 전에 붙여놓았던 선거 캠페인 구호는 사라지고, 자신에 관한 신문 기사가 잔뜩 붙여져 있다.
텅 비었던 그의 마음은 이전에는 외부의 절대선을 찾았지만, 이제는 영웅적 거대자아로 채워진 것 같다.
"내 안에 이렇게나 큰 괴물이 자랐어."라고 아이리스에게 자랑스럽게 편지를 쓸 것 같다.
앞으로 트래비스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뉴욕의 밤거리에 조커의 미소를 지으며 나타날 것 같은 서늘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조커에 열광하는 또 다른 조커들이 전 세계의 밤거리에 나타나게 될 것 같다.
2500년 전의 경전의 말씀들이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보면, 1976년도 풍경이 2025년에도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놀랍지 않다.
"과거가 현재를 살리는 것." 이것이 고전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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