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8
  • 쓰기
  • 검색

[불금호러 No.74] 백설공주의 호러버전 - 스노우 화이트

다크맨 다크맨
4453 10 8

1.jpg


스노우 화이트 - Snow White: A Tale of Terror (1997)
백설공주의 호러버전

 
어릴 적에 읽은 동화 속 이야기들은 언제나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림 형제의 원작 동화들이 실제로는 잔혹하고 음울한 이야기였다는 사실은 이제 널리 알려져 있죠. 마이클 콘 감독의 <스노우 화이트>는 바로 이런 원작이 품고 있던 이야기의 어두운 본질을 호러 영화 스타일로 되살려낸 작품입니다. 시고니 위버, 샘 닐과 같은 쟁쟁한 배우들의 참여는 <백설공주>의 진정한 '잔혹동화'가 탄생하는 데 든든한 밑바탕이 되었지요.
 
이야기는 프레드릭이 임신한 아내와 함께 성으로 돌아가던 중 뜻밖의 사고를 당하면서 시작됩니다. 깊은 숲속에서 릴리가 세상의 빛을 보는 순간, 그녀의 어머니는 생명의 불꽃이 꺼지게 됩니다. 세월이 흐른 뒤, 릴리의 아버지 프레드릭은 클로디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클로디아는 진심으로 릴리와 따뜻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만, 릴리는 끊임없이 거리를 두며 삐뚤어진 행동으로 그 마음을 외면합니다. 둘 사이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냉랭해지고, 결정적으로 클로디아는 릴리로 인해 자신의 뱃속 아이를 잃게 되면서 깊은 복수심의 늪에 빠져들게 됩니다.

 

1200x675.jpg

 
<스노우 화이트>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중세의 음산한 고딕 호러 분위기에 있습니다. 디즈니가 정성스레 빚어낸 밝고 순화된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결을 지닌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영화 속에 살아 숨 쉽니다. 디즈니 버전에서 난쟁이들이 귀엽고 코믹한 백설공주의 든든한 조력자로 그려진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각자 품은 상처와 결함을 가진 현실적이고 어두운 인물들로 새롭게 해석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백설공주인 릴리의 묘사인데, 그녀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일삼는 싸가지 없는 밉상 캐릭터로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계모인 클로디아입니다. 그녀는 소중한 아이를 잃은 깊은 상실감과 고통, 치유되지 않는 슬픔을 안고 서서히 릴리에게 복수하려는 어둠의 길로 접어듭니다. 클로디아의 이러한 심리적 변화는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디즈니 애니의 마녀가 단순히 일차원적인 악역에 그쳤다면, 클로디아는 관객의 동정심마저 이끌어내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섬세하게 그려집니다.
 
클로디아가 처음부터 순수한 악의 화신이 아니라,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깊은 상실감에 휩싸여 점차 어둠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속에 연민과 지지의 감정을 일으킵니다. 특히 클로디아가 거울 속에 비친 또 다른 자아와 나누는 대화 장면은, 정신 분열과 내면의 어둠을 섬세하게 표현한 시고니 위버의 압도적인 연기로 잔혹 동화로서의 이야기에 단단한 뼈대를 세워줍니다. 시고니 위버가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Snow-White-A-Tale-of-Terror-1997-14.jpg

 
<스노우 화이트>의 아쉬운 점은 릴리와 함께하는 일곱 난쟁이가 여섯 명의 건장한 광부와 단 한 명의 난쟁이로 변모한 설정입니다. 이 인물들은 각자 나름의 사연과 아픔을 품고 있지만, 깊은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기엔 역부족입니다. 일곱 중 한 명은 릴리를 강간하려고 하고, 여러 명이 클로디아의 저주로 인해 죽게 됩니다. 이런 설정들은 디즈니 애니와 비교하면 굉장히 흥미로운 접근인데, 안타깝게도 황당함을 자아내는 릴리의 뜬금없는 로맨스 전개로 망가지죠.
 
왜 그 광부와 사랑에 빠지는 건지, 너무나 급작스러운 전개인데다가, 릴리는 이미 자신이 사랑하고 결혼을 허락한 상대가 있었음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돌발 행동을 보여주죠. 애초에 클로디아가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기에 릴리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희미해질 수밖에 없지만, 캐릭터 묘사의 허점이 너무 많아 인물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스노우 화이트>는 그림 형제의 원작이 간직한 이야기의 어둡고 잔혹한 진실에 충실하게 다가선 영화입니다. 1997년 당시의 기준에서는 호러적인 색채가 강하게 느껴졌지만,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보니 강렬한 공포와 자극적인 비주얼보다는 원작 동화의 어둠을 진지하게 파고든 이야기와 캐릭터의 심리적 변화가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영화가 지닌 여러 결점들이 눈에 띄게 드러나지만, 시고니 위버의 압도적인 연기력이 그런 단점들을 상당 부분 희석시켜 주는 효과를 발휘한 것 같습니다.

 

2.jpg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사랑스럽고 환상적인 <백설공주> 이야기와는 달리, 불길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진정한 잔혹 동화의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면 이 영화는 분명 색다른 경험과 재미를 선사해줄 의미 있는 선택이 될 것입니다.


덧붙임...


1. 극장 개봉용으로 제작된 영화이지만, 케이블 방송사 쇼타임을 통해서 공개가 되었습니다. 이 결정으로 인해 TV 부문 에미상과 배우조합상에 시고니 위버가 후보로 오르는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2. 시고니 위버는 사악한 여왕 역할을 맡고 싶었던 이유로, 왕이 어리석게도 왜 그런 잔인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클로디아가 동정심이 가는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시고니 위버가 진심으로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계모를 표현했기 때문인 것 같군요.


3. 시고니 위버는 자신의 끔찍한 마녀 분장을 즐겼다는군요. "촬영 중간 중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게 정말 즐거웠어요. 샘 닐은 그걸 정말 싫어했죠. 제가 다가가서 쓰다듬으면 엄청 불편해 했어요."라며... 소감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4. 백설공주인 릴리 호프만의 역할은 원래 알리시아 실버스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캐릭터였다고 합니다.


5. 이 영화의 몇 가지 요소들은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여왕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남자 형제가 나오고, 백설공주는 그 위기에서 탈출하죠. 그리고 까마귀가 두 영화에서 악을 상징하는 요소로 그려집니다.
 

다크맨 다크맨
99 Lv. Max Level

외길호러인생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10


  • ayo

  • 비둘기야밥먹자꾸꾸
  • NeoSun
    NeoSun
  • 카란
    카란
  • Sonatine
    Sonatine
  • 도삐
    도삐
  • BeamKnight
    BeamKnight
  • 콘스탄트
    콘스탄트
  • 호러블맨
    호러블맨

  • min님

댓글 8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아주 옛날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다시 보고 싶네요.

10:14
25.03.21.
profile image 2등
아니 시고니 위버 누님이 나오시다니 @@~ 백설공주 호러버전 보고 싶네요
10:44
25.03.21.
profile image

시고니 위버가 마녀 분장을 하고
샘 닐에게 장난을 쳤다고요?

싫어할 만도 하죠.;;;;

15:13
25.03.21.
profile image
와 이런 영화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기회 되면 한번 보고 싶어요~
20:47
25.03.21.
와우 엄청 궁금해요 좋은 정보 늘 감사해요
22:01
25.03.23.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로데오]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6 익무노예 익무노예 1일 전11:58 983
공지 [케이 넘버]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6 익무노예 익무노예 6일 전11:24 3652
HOT 조지 루카스, <제국의 역습> 속 요다의 “문법 비밀” 공개 1 카란 카란 4시간 전15:45 656
HOT '썬더볼츠' 로튼 후레쉬 88% - 해외리뷰 및 기사 3 NeoSun NeoSun 3시간 전16:52 801
HOT 조쉬 브롤린, 줄리아 가너 주연, 호러 영화 <웨폰스> ... 2 카란 카란 1시간 전18:54 354
HOT <썬더볼츠> 후기 - 이것은 "싼다"볼츠 내지... 4 곰크루즈 곰크루즈 2시간 전17:53 1084
HOT [오리지널 티켓] No.138 예고 2 무비티켓 3시간 전17:03 589
HOT 썬더볼츠 굿 3 사라보 사라보 2시간 전17:31 980
HOT 히어로판 인사이드 아웃, [썬더볼츠](스포X) 4 문어생활 4시간 전16:15 935
HOT 거룩한밤 데몬헌터스 후기 2 카스미팬S 4시간 전15:58 1884
HOT <썬더볼츠*> 관람 전 벼락치기 복습 자료 배포합니다 11 곰크루즈 곰크루즈 18시간 전01:47 3390
HOT '해벅' 넷플릭스 글로벌 1위로 폭발적 인기 2 NeoSun NeoSun 4시간 전15:35 801
HOT 마블영화 다 본 사람의 썬더볼츠 노스포 후기 8 hansol 4시간 전16:08 2338
HOT 파과 - 초간단 후기 8 소설가 소설가 5시간 전14:54 1619
HOT 프라임 비디오) 애시 - 초간단 후기 3 소설가 소설가 5시간 전15:01 600
HOT 재미있기엔 진지하고 진지하기에는 유치한 - 거룩한밤 데몬... 2 너의시간속으로 5시간 전14:44 1051
HOT 거룩한밤 간단후기(약스포) 4 영또 5시간 전14:37 1358
HOT 거룩한밤 데몬헌터스 씨네큐 굿즈 수령했습니다 1 카스미팬S 6시간 전13:50 497
HOT <썬더볼츠> 근래 마블 영화 중에서 제일 잘 뽑혔네요.... 11 무조건첫날봄 6시간 전13:46 2912
HOT 썬더볼츠* 맏언니의 빈자리가 너무 큽니다..ㅎㅎ 6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6시간 전13:38 2370
HOT <파과> 후기 10 뚠뚠는개미 7시간 전13:12 2497
HOT <썬더볼츠*>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파... 4 장료문원 장료문원 7시간 전12:52 1762
1174307
normal
드니로옹 24분 전20:00 195
1174306
normal
카스미팬S 31분 전19:53 165
1174305
normal
루니 40분 전19:44 248
1174304
normal
해롱해롱 해롱해롱 1시간 전19:24 498
1174303
image
e260 e260 1시간 전19:13 204
1174302
image
e260 e260 1시간 전19:13 249
1174301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1시간 전19:12 167
1174300
image
e260 e260 1시간 전19:12 121
1174299
normal
카란 카란 1시간 전18:54 354
1174298
normal
1시간 전18:47 278
1174297
image
접속영화여행 1시간 전18:31 384
1174296
normal
하늘위로 2시간 전18:12 781
1174295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7:55 280
1174294
image
곰크루즈 곰크루즈 2시간 전17:53 1084
1174293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7:46 336
1174292
image
사라보 사라보 2시간 전17:31 980
1174291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7:26 252
1174290
image
접속영화여행 3시간 전17:14 314
1174289
image
무비티켓 3시간 전17:03 589
1174288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6:55 269
1174287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6:52 801
1174286
normal
문어생활 4시간 전16:15 935
1174285
image
吉君 吉君 4시간 전16:10 303
1174284
normal
hansol 4시간 전16:08 2338
1174283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6:06 390
1174282
normal
카스미팬S 4시간 전15:58 1884
1174281
image
카란 카란 4시간 전15:45 656
1174280
image
jokerr jokerr 4시간 전15:39 270
1174279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5:38 317
1174278
image
jokerr jokerr 4시간 전15:35 337
1174277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5:35 801
1174276
image
jokerr jokerr 4시간 전15:32 502
1174275
normal
뚠뚠는개미 5시간 전15:22 660
1174274
image
카란 카란 5시간 전15:17 531
1174273
image
소설가 소설가 5시간 전15:01 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