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즈마(번개) (1952) 나루세 미키오 다카미네 히데코의 홈드라마. 스포일러 있음.
나루세 미키오와 다카미네 히데코가 만든 영화인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 1960년대 걸작영화들 가령 마부, 혈맥, 쌀, 오발탄 등과 비교해서 뭐가 나은지 모르겠다.
네번 결혼해서 각기 다른 남편과 아이를 낳은 어머니 밑에서
살아가는 아들 딸들이 주인공들이다.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는 다르다.
이것은 어떤 상징인가? 이들 간에 지지고 볶고 하는 내용이 이 영화를 이룬다.
다카미네 히데코는 여행 가이드 투어를 한다. 그녀는 손 잡고 가는 노부부를 보면 부러워한다.
뭐 화려한 사랑 이런 것에 굶주린 것이 아니라, 착실한 사람을 만나서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이 작은 꿈조차도 현실에서 이루기 어렵다. 콩가루같은 가정 때문이다.
둘째 딸은 결혼을 했다가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는 바람에 친정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 둘째 딸이 받은 남편 사망보험금을 가족들이 노린다.
막내딸은 가게를 열게 돈을 대달라고 하고, 동생은 사업 상 자금이 필요하다고 하고,
심지어는 남편의 불륜녀까지 연락해 와서 돈을 나눠달라고 한다.
죄다 돈을 뜯어먹겠다는 가족들뿐인데, 마음 착한 둘째딸은 돈을 여기저기 뜯긴다.
이런 광경을 보는 다카미네 히데코는 분통이 터진다. 가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족이 아닌 것도 아닌
그런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사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네 명의 남편과 결혼해서 각 남편과 아이를 낳은 어머니다.
다카미네 히데코의 동생은 자기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상점주인과 결혼하라고
다카미네 히데코에게 강요한다. 바람둥이로 소문난 남자인데, 누나신세 망치는 것쯤은 안중에도 없는동생이다.
바람둥이도 나카미네 히데코에게 반해서 매일 찾아와 괴롭힌다. 나카미네 히데코에게 반했다고 해서 다른 여자들을
정리한 것도 아니다. 지금도 이런데, 결혼한 후라면 어떻겠는가? 다카미네 히데코는 격렬하게 반항한다.
다카미네 히데코는 자기 친구를 이층에 세 들인다. 집세도 제때 못내는 가난한 친구다.
투잡을 뛰면서 열심히 사는데도 가난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다카미네 히데코는 집세를 제때 못내도 이 친구가 좋고 부럽다. 친구가 방에 없을 때에는 그 친구의 방에 몰래 간다.
벽에는 친구가 그린 그림들이 붙어있다. 다카미네 히데코는 이 그림들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가족들은 돈도 안되는 그런 친구에게 왜 세를 내주느냐고 비난한다. 다카미네 히데코와 가족들은 접점이 없어도 너무 없다.
결국 다카미네 히데코는 가족들을 버린다.
혼자 독립해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새 세상이 보인다. 낡은 굴레와 질곡을 벗어버리고 나니 세 세계가 그녀 앞에 열린 것이다. 이웃집 건실한 청년과도 친해진다. 다카미네 히데코의 조그만 꿈을 이루어줄 성실하고 순박한 청년이다.
자기를 찾아온 어머니에게 다카미네 히데코는
"세상에 어떤 여자가 네 남자와 결혼해서 각 남자와 아이를 낳느냐? 난 낳음을 당했다"하고 원망한다.
묘하게 요즘 사회상과 겹치는 것이 많은 영화다.
가족 중 하나가 돈이 생기자 승냥이처럼 달라붙어 뜯어먹으려는 가족들이나,
딸의 고통의 근원이 되는 왜곡된 가족관계를 물려준 어머니나
낳음을 당했다고 어머니를 원망하는 딸 등. 데이트 폭력이나 성희롱 등도 다카미네 히데코를 괴롭힌다.
하지만 이 영화의 분위기는 암울하고 어둡지 않다. 당시 일본사회는 전후 처참한 상황으로부터 회복해서 서서히 비상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다카미네 히데코도 자기 길을 개척해서 성공으로 향할 것이라는 밝은 암시가 있다.
제 자리에 쭈그려 앉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다카미네 히데코 가족에게는 과히 밝은 전망이 보여지지 않지만 말이다.
1950년대 초반 일본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살아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속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점점 더 적극적이 되어가는 다카미네 히데코의 모습을 그린 것이 이 영화다.
나루세 미키오의 연출스타일이 좀 낡고 평범한 것 같다.
"무특성의 특성"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까? 당시에는 첨얘한 사회문제를 그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와서는 굉장히 평이해 보인다. 하지만, 나루세 미키오와 다카미네 히데코 콤비는 이로부터 몇년 뒤부터 부운,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흐르다 등 걸작 멜로드라마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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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외적으로 씁쓸한 기분 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