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조커: 폴리 아 되(Joker: Folie A Deux), 2024> : 함정에 빠져버린 영화
*이미지 출처: 영화 <조커: 폴리 아 되>, <겨울왕국2>, <레 미제라블>, <알라딘>
우리는 왜 영화를 볼까요?
제 경우에 영화는, 잠시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하루의 고단함을 잊고 다른 세계의 다른 인물이 가진 다른 서사를 보며 푹 빠져있다 보면 스트레스에 민감한 내 멘탈이 조금 회복돼 있는 걸 발견하죠. 그래서 제 경우에는 사실 서사와 캐릭터의 매력에 조금 더 촛점을 두고 영화를 감상하는 편이고, 음악, 액션, 화면 연출 등에는 좀 관대한 편입니다. 예컨대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의 경우, 저와 함께 감상한 친구는 장르의 맛이 달아났다며 혹평했지만 저는 그 진한 여운이 남는 드라마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조커: 폴리 아 되>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문제는 호평과 혹평, 어느 한 쪽으로 평가가 일치하는 것이 아닌 호불호가 매우 갈리는 영화가 되었다는 것이고, 따져보자면 혹평이 좀 더 우세한 것 같네요.
저는 이 영화를 호평합니다. 타당한, 멋진 서사와 결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앞서 말했듯 서사를 주요 기준으로 점수를 두어도, 이 영화는 분명 놓쳐버린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뮤지컬과의 융합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는 것인데요. 다른 부분의 평가는 이미 수도 없이 영상과 글이 나와 있으니, 저는 이 부분에 촛점을 맞춰 보겠습니다. 시작할까요?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게 하는 질문,
"이럴거면 왜 조커인가?"
이 영화는 아서 플렉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아서 플렉의 이야기로 끝났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영화는 전작 <조커>의 후속편이라기보단, 전작과 합해 온전히 <가엾은 아서 플렉 이야기>라는 영화 한 편으로 보는 것이 옳죠. 아서 플렉은 조커가 되지 못한 조커고, 이는 전작의 '개리'가 재등장하는 순간 이미 예고 돼 있었습니다.
전작 <조커>에서 조커가 죽인 사람들을 볼까요? 자신을 무시하는 길거리 패거리 양아치들, 자신을 늘 조롱하고 핍박하던 극단의 불량한 동료,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이끌지 못한 어머니, 그리고 "머레이 프랭클린". 조커의 살인은 그 정도의 지나침과 옳고 그름을 떠나 항상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는 전작에서 극단 동료 중 유일하게 자신에게 잘 해준 "개리"를 죽이지 않은 데서 드러납니다. 조커의 살인의 이유는 "광기"가 아닌 "복수" 였죠. 즉, "조커"가 죽인 사람들은 모두 "아서 플렉"에게 잘못했던 사람들이고, "조커"는 "아서 플렉"일 때는 할 수 없는 자신의 복수를 대신하는 가면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조커는 아서와 다른 사람일 수가 없었죠.
광기에 미친 조커가 탄탄한 서사까지 갖췄다?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이러한 탄탄한 서사에 힘입어, 전작 <조커>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지금까지 '원작 만화와 다양한 매체에서 다뤄온 조커'와 '아서 플렉의 조커'는 분명 달랐음에도 지금까지의 조커가 가진 "광기"의 이미지가 너무 강한 탓에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아서가 복수를 딛고 이를 광기로 승화시킨 것으로 착각했다는 것이죠.
복수는 인간적입니다. 광기는 그렇지 않죠. 인간성을 배제합니다.
아서 플렉은 여전히 인간이었음에도, 우리는 이를 조커의 광기로 착각했고 결국 조커가 광기가 아닌 인간성을 보여준 이 속편에서 실망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 착각은 어찌보면 감독이 의도했거나 혹은 감독의 실수이므로, 우리가 다르게 알았던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조커는 분명 'DC코믹스의 캐릭터 조커'를 모티브로 했으며, 이 조커는 광기를 에너지로 움직입니다. 따라서 감독이 의도했든 아니든 이 조커는 DC코믹스의 조커와 애초에 결이 다릅니다. "이럴 거면 왜 굳이 조커를 가져다 썼냐?"는 비판은 그래서 타당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DC코믹스의 팬은 아니어서 그런지... 이 이야기 자체는 퍽 맘에 듭니다. 조커가 되고자 했으나 조커가 되지 못한, 그럼에도 수많은 조커들을 잉태한 아서 플렉의 불쌍한 인생. 멋진 한 편의 서사시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저조차 동의할 수밖에 없는 실수를 했습니다. 아까 언급했듯, 뮤지컬과의 융합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입니다.
이럴 거면 왜 뮤지컬을 했나?
저는 수많은 사람들과 오히려 다른 점을 지적하겠습니다. DC 코믹스의 팬이 아니니 "이럴거면 왜 조커인가"란 질문은 안 하겠지만, 이럴 거면 왜 뮤지컬을 했는지는 진지하게 궁금합니다.
이 영화는 거의 성스루(Sung-through: 음악 그 자체로 극을 이끌어 나가는 뮤지컬의 포맷) 뮤지컬 수준으로 뮤지컬 장면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성 스루 뮤지컬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뮤지컬 장면이 영화의 서사에 기여하는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극중 뮤지컬 장면은 거의 모두 아서 플렉의 환상입니다. 즉, 현실에서 아서와 리, 조커와 할리 퀸은 함께 노래하고 춤춘 적이 없습니다. 저는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뮤지컬 영화에서 감동받았던 때가 언제였죠?
말이 필요 없습니다. 민중의 노래를 부르며 탄압받던 국민들이 다함께 일어서고, 엘사가 오랜 고민과 문제의 답을 찾으며 자아를 각성하고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노래가 서사를 구성하며, 조화롭게 극을 이끌어나가 극의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냅니다.
반면에 아래 사례도 보실까요?
<알라딘>의 메인 타이틀 <Speechless>. 곡 자체는 명곡입니다. 음원으로 몇 번이나 반복해 들었죠. 그러나 저는 오히려 극중에서 이 노래의 연출이 살짝 아쉬웠습니다. 왜냐고요?
당당하게 <Speechless>를 부르던 자스민이 노래가 끝나니 다시 눈깜짝 할 새에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습니다. 즉 이 노래는 서사에 기여하는 노래가 아닙니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이 곡 나름의 기능은 있습니다.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극적으로 보여준다거나, 메시지를 전달한다거나. 실제로 <Speechless>는 워낙 노래가 잘 뽑히기도 했고, 뮤지컬 장면 자체는 매우 잘 나왔으며, 다른 볼거리들이 많았기에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커>는 다릅니다. "실제로" 리와 함께 노래하며 법정을 한 번쯤 뒤집었어야죠. 법정을 뒤집어 놓는 그 장면이 실제였어야 합니다. 하비 덴트의 얼굴을 반쯤 날린 것이 폭발이 아니라 조커의 한 방이었어야죠. 그로 인해 조커의 법정 공방이 더 꼬이고, 그럼에도 조커는 더 날뛰고... 법정 씬이 더욱 흥미진진했을 겁니다.
아니, 잠깐. 그럴 수 없습니다. 아서 플렉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최소한 법정에 있는 사람들은 아서 플렉 개인에게 잘못을 한 사람들이 아니고,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니까요. 법정에서 날뛰는 건 아서의 환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 영화가 자기가 판 함정에 빠졌다는 겁니다. 뮤지컬의 임팩트가 강하기 위해선 뮤지컬이 현실로 와야 하는데, 뮤지컬이 현실로 오는 순간 이 이야기는 감독이 의도한 아서 플렉의 이야기가 아닌 조커의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다.
뮤지컬을 설정한 순간, <조커: 폴리 아 되>의 호불호는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계관의 오리진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신화
다만 이러한 결말은 "고담 시티를 광기에 빠트린 1대 조커 아서 플렉의 신화"로 보면 이 이야기는 한 세계관을 여는 개인의 신화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아서 플렉의 죽음은 아서의 것일 뿐, 새로운 조커와 할리 퀸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며 고담 시티는 그야말로 혼돈과 악의 도가니가 되겠죠. 배트맨의 탄생은 이제 필연적입니다. 또 하나의 DC 유니버스의 탄생으로 매우 적합합니다. 이 말도 안되는 광기와 악을 잉태한 것이 누구보다도 가엾은 삶을 살았던 불쌍한 아서 플렉이라는 점은 그의 인생을 더욱 극적으로 돋보이게 합니다. 아마 이를 시작으로 새로운 DCU를 잘 끌어갈 수 있다면, 나중엔 조커 2부작의 평가까지 달라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 <조커: 폴리 아 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영화를 기다린 팬의 입장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이렇게 뜨거운 논쟁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웠습니다. 앞으로도 영화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조커: 폴리 아 되> 였습니다.
블로그에 더 많은 영화의 리뷰가 있습니다 :)
https://m.blog.naver.com/bobby_is_hobbying/223608872318
바비그린
추천인 9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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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제 영화보고 왔습니다.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아직 조커2를 보지 못했지만 조커2는 영화자체보다 관객의 반응이 더 흥미로운 영화인 듯 합니다. 오랜만에 조커2 덕분에 이런 좋은 비평글을 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저 역시도 영화에 관한한 전락의 방식이 맘에 들었고, 전편에 비하면 아쉽지만 나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뮤지컬 씬은 김밥 엽구리 터진 밥알 같아서 쉽게 집어먹기 꺼려졌고,
무엇보다 몇몇씬은 흐름의 맥을 끊어버리는 역활을 한데다 아쉽게도 아서의 서사가 지루해져버렸고,
짧은 순간으로 아서의 반성을 내밀어 버려서 자기반성의 설득력이 약해져버렸습니다
거기다 할리 퀸도 따지고 보면 노래하는 것 이외에 별 비중이 없는 역할인거죠
여러모로 속편이라기에 아쉬운 측면이 있으나,
또 영화 안밖으로 보는 재미는 남았고, 마지막의 반전?이 나름 신선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스피치리스.. 같은 이유로 그 장면이 와닿지 않았는데.. 잘 짚어주셨네요.^^
노래와 공연이 이야기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뮤지컬 아닌 뮤지컬 영화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