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사무라이 무덤이 있는 마을 (1996) 긴다이치 코스케의 바스커빌가의 개. 스포일러 있음.
바스커빌가의 개가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호러모험극이라고 불리워야 할 것처럼,
이 영화 여덟사무라이마을도 이런 성격이 강하다.
우선 사건의 규모가 아주 크고, 2대에 걸쳐 있으며, 모험의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
여덟 사무라이 무덤 마을은 1977년 그리고 1996년 영화화가 되었다. (1951년판은 보지 못했다).
1977년판은 유명하고 완성도가 높기는 하지만, 사실상 호러모험극이다. 막판에는 뜬금없이 귀신영화(!)가 된다. 1977년판에서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영화 마지막에 나타나 형식적으로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단역이다.
1996년판은 이치가와 곤이 감독하고 추리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긴다이치 코스케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후지tv영화라서 예산의 작고 배우들의 퀄리티가 좀 약하다. 그렇다고 해서 졸작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치가와 곤이 워낙 대감독인 탓에, 영화는 상당한 수준이다.
1970년대 일본영화들의 특성 - 엽기적이고 화려하고 그로테스크하고 잔인하고 강렬한 영화를 보려면 1977년판을 추천한다. 영화를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극단성도 갖고 있는 것이 이 1977년판이다.
1996년판은 원작 추리소설에 대해 더 충실한 추리영화를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전쟁에 패배한 여덟 사무라이들이 산 넘고 물 건너 도주하다가 어느 마을에 도착한다. 추레한 흔적의 그들에게
마을은 환대한다. 오랜 고초 끝에 받은 환대에 감격한 사무라이들은 마음을 놓고 잔치를 즐긴다.
하지만, 비겁한 마을사람들은, 사무라이들을 안심시켜놓고 그들을 잔인하게 죽인다. 사무라이들이 갖고 있던
군자금 보물을 노린 것이다. 사무라이들은 처절한 저주를 마을사람들에게 퍼붓는다. 그 저주탓에
마을의 촌장가문은 계속적으로 미치광이 살인마가 나와서 마을사람들을 몰살시킨다.
무서워진 마을사람들은 그제서야 사무라이들의 시체를 거둬 무덤을 만들어주고 그들을 신으로 받든다.
그런다고, 살해당한 사무라이들의 한이 풀어질까? 저주는 계속된다.
마을은 여덟 사무라이 무덤 마을이라고 불리운다. 낙인같은 이름이다. 그 마을사람들이 저지른 비겁한 범죄는
마을이름에 낙인처럼 붙어서 그들을 억압한다. 그 마을사람들은, 자기 조상이 비겁한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또 사무라이들의 저주를 무서워한다. 폐쇄적이고 미신이 강한 마을에는, 저주와 잔혹 그리고 광기와 살인이라는 강한 분위기가 떠돈다.
벌써 호러모험극으로는 딱인 무대다.
저주받은 마을촌장 다지미가에 진짜 "저주받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미친 살인마가 나타난다.
분노조절장애, 사이코패스, 광기, 살인마, 공포와 폭력에 기반을 둔 권력자 등 당신이 알고 있는 나쁜 것을 다 갖다붙여도 적용될 그런 사람이다. 다지미 요조라는 사람인데, 길 가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하고 다짜고짜 자기 집 창고에 가두어두고 강간한다. 여자의 비명소리가 며칠 동안 울려퍼져도 마을사람들은 두려워서 감히 접근도 못한다.
하도 강간당하다 보니까 여자도 자포자기하고, 곧 아이를 낳는다. 그러다가 여자는 다른 마을로 도망간다.
다지미 요조는 화가 나서 일본도와 사냥총을 들고 하룻밤 동안 스무명이 넘는 마을사람들을 학살한다.
그리고, 그는 사라진다. 경찰들이 샅샅이 수색해도 찾을 수 없다.
오랜 세월이 흘러 다지미가에서는 대를 이을 자손이 없어지게 된다. 가만 있다가는, 집안 재산이
다른 가문에게 넘어가게 생겼다. 다지미가에서는 요조에게 강간당한 여자가 낳은 아들을 찾는다. 이 아이는, 비누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타츠야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어려서 돌아가시고, 고아나 마찬가지로 자랐다.
그는 불길하고 저주받은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이 폐쇄된 마을로 돌아온다. 자기 뿌리를 찾는다는 생각에 흥분되어 있다. 돈보다도 이것이 더 중요하다.
타츠야가 이 마을에서 겪는 모험은 전형적인 고딕호러에 나오는 그것과 같다.
여리여리한 미녀들. 복도와 방들이 어지럽게 이어져 있는 음침한 대저택. 비밀통로, 출생의 비밀, 어딘지 그로테스크하고 불길한 일란성 쌍동이 노파들. 비밀통로를 따라 나갔더니 거대하게 끝없는 동굴. 미이라가 된 시체. 여덟 사무라이 전설과 일치하여 일어나는 연쇄살인. 타츠야는 자기를 도우러 찾아온 긴다이치 코스케와 이 모험들을 겪는다.
타츠야는 이 영화에서, 자기가 앞장서서 이 위기와 공포 그리고 죽음의 위협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역이다.
말하자면, 호러영화나 슬래쉬영화의 주인공 역할이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명탐정다운 예리한 직관력과 통찰력으로
이 신비로운 사건들 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파악해낸다.
그가 나서면, 수수께끼같고 신비로운 사건들도 진상이 파악된다.
사건의 진상은 추리소설에 흔히 나오는 진상이라서, 새로울 것 없다.
그래서, 사건의 진상보다는 타츠야의 신비하고 기괴한 모험부분이 더 강렬하고 재미있다.
아마 1977년판은 이 이유때문에 긴다이치 코스케의 추리부분을 극도로 줄이고, 호러모험영화로 방향을 틀었나 보다.
하지만,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여 추리하는 부분들도 상당한 재미를 준다. 역시 1996년판이 나는 더 마음에 든다.
이 영화의 아이덴티티는 추리영화이니까. 바스커빌가의 개에서 셜록 홈즈를 없앤다고 생각해 보라.
전설의 개가 등장하는 호러부분도 덩달아 재미없어질 것이다.
후지tv에서 만든 텔레비젼영화라고 해도, 부족한 것은 예산이지, 감독의 명연출이 아니다.
이치가와 곤 감독의 명연출은 놀랍다. 캐릭터들을 살리고, 마을의 불길하고 폐쇄적인 분위기, 병약한 미녀의 애절한 사랑과 그로테스크한 살인마의 슬래쉬무비, 긴다이티 코스케의 흥미진진한 추리과정, 범인의 의외성
다 잘 살린다. 찍은 것은 분명 후지tv 저예산 tv영화인데 말이다. 대예산으로 이것을 만들었다면 수작과 걸작 중간이다.
지금 와서는 이 영화를 제대로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 폐쇄적이고 미신적인 마을도 지금은 다 바뀌었으리라.
지금 여덟 사무라이 무덤 마을을 이야기해봤자 사람들은 공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마을이 지금 실제 있다면, 여덟사무라무덤 마을이라고 해서, 진작에 유튜브에 유명해지고 희화화 놀이공원화되었을 것이다. 폐쇄적이고 불길한 마을일 리 없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오히려 어떤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법하다.
** 이 영화에서 긴다이치역을 맡은 배우는, (후지tv영화인) 러브레터에서 남자주인공을 맡은 배우다. 아마, 당시 후지tv 영화의 단골주연배우였나 보다. 더 찾아보면, 그가 주연한 걸작영화들이 더 있을 지도 모르겠다.
추천인 7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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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거처럼 77년판은 마지막에 갑자기 이상하게 변해서 …이게
뭐지라고 혼자 갸우뚱한 기억이 있네요 ㅋㅋ
긴다이치도 평소 보던 긴다이치가 아닌 복덕방 아저씨같은 분이라 ㅋㅋ 몰입이 좀 안되던 기억이 있네요
저는 77년판을 미스터리물보다 호러물로 생각하고 봐서 더 좋았고요.^^
토요카와 에츠시는 러브레터 말고 바로 생각난 영화가 롤랜드 에머리히의 <미드웨이>에서 꽤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