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 <존 오브 인터레스트> 극찬, <쉰들러 리스트> 이후 최고
스티븐 스필버그,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자신의 <쉰들러 리스트> 이후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라고 부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가 개봉한 지 30년이 지났다. THR에서 그 영화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구술” 자료를 올렸다. 리암 니슨, 마틴 스콜세지, 스필버그의 인터뷰가 담겼다.
스필버그는 그 영화를 자신의 최대 업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음이 그 영화에 대한 그의 가장 사적인 발언인 것 같다.
“제가 만든 영화 중 최고입니다. 앞으로 더 나은 영화를 만들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입니다”
2022년 9월에 나는 100명에 가까운 영화 평론가들에게 스필버그의 최고 영화를 꼽아달라고 설문조사를 했다. <죠스>가 1위였고, <쉰들러 리스트>는 2위였다. 나는 언제나 <쉰들러 리스트>가 스필버그의 최고 작품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결과에 상당히 놀랐다.
<쉰들러 리스트> 이후 홀로코스트에 관한 “영화들의 폭발적 증가”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사울의 아들> 그리고 현재 작품상 후보에 오른 조나단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 등이 있다.
스필버그는 자신의 1993년 걸작 이후 글레이저의 영화를 홀로코스트를 다룬 최고 작품으로 꼽았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제 영화 이후로 본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입니다. 특히 악의 평범함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THR 기사에는 모두 다 다루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내용이 아주 많다. 특히 감명 깊었던 것은 80년대와 90년대에 커리어의 끝자락에 있어서 어떤 프로젝트도 승인받지 못한 전설적인 감독 빌리 와일더(선셋 대로, 이중배상)와 관련된 것이다.
“빌리는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우리는 종종 구내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곤 했는데, 빌리가 ‘난 더 이상 영화를 못 찍어. 지난 30년 동안 내가 해왔던 게 더 이상은 안통해. 유머가 달라졌어. 각본을 읽고 메모를 하고 아이디어를 내도 1940년대와 50년대에는 훌륭했을 아이디어지만 지금은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아”
그로부터 몇 년 후인 1992년에 와일더가 스필버그에게 전화를 걸어 중요한 부탁이 있다면서 직접 만나자고 급히 요청했다.
“그리고 그분이 앰블린의 제 사무실로 찾아와서는 ‘내가 방금 책을 읽었는데, 그걸 자네가 소유하고 있다지. 쉰들러 리스트 말이야. 그건 내가 미국에 오기 전에 경험했던 일이야. 거기서 난 모두를 잃었어.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데, 자네가 판권을 가지고 있다더군. 내가 감독하고 자네가 프로듀스해줄수 있을까?’라고 물으셨어요. 저는 그분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죠. ‘빌리, 저는 3주 뒤에 크라쿠프로 떠나요. 배우들도 모두 캐스팅됐어요. 스태프들도 다 고용했고요. 2월 말부터 촬영을 시작할 거예요’. 빌리는 할말을 잃었고 저 역시 그래서 그냥 손을 내밀었는데 빌리가 제 손을 잡아줬어요.”
와일더의 마지막 작품이 1981년의 <버디 버디>였던 점을 감안하면 놀랍도록 비극적인 일이다. 업계의 누구도 그를 원하지 않았고, 그는 “볼장 다 본” 상태로 스필버그와 같은 이들을 위해 각본을 다듬는 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쉰들러 리스트>가 촬영되고 완성된 뒤, 스필버그는 그의 감독 친구들을 불러서 상영회를 가졌다. 스콜세지는 “나는 그 작품에 크게 감탄했다”고 말했다. 로만 폴란스키는 “나는 분명 스필버그만큼 잘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더 적절하게도 와일더는 “그들은 최고를 손에 넣었다. 그들은 더 나은 적임자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는 절대적으로 완벽하다”
(출처 월드 오브 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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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글 감사합니다. 할리우드 리포터 기사 나중에 꼼꼼히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