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22
  • 쓰기
  • 검색

2월 21일 개봉작 <벗어날 탈 脫>을 연출한 서보형입니다.

싸보타지필름
2983 20 22

 

 

 

 

 

 

 

 

 

 

 

 

 

 

 

 

 

 

 

 

 

 

안녕하세요 <벗어날 탈 脫>을 연출한 서보형입니다.

 

불교에는 선문답이라는 묘한 대화법이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스님들 사이 혹은 아직 깨치지 못한 스님과 깨친 스님 사이에 문답이 이루어지는 형식인데, 대부분 동문서답처럼 보입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라는 질문에 ‘마른 똥막대기’라고 대답하는 식입니다.

 

어떤 스님이 운문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모든 부처가 나온 곳은 어디입니까?”

운문 스님이 답합니다.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

 

동쪽 산이 물 위로 간다는 뜻입니다. 왜 운문 스님은 이런 알쏭달쏭한 말을 했을까요? 선문답에서 말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익히 알면서도 ‘동산수상행’이란 말이 가진 시적 이미지가 저는 좋았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산이 물 위를 가다니요. 상상해 보면 무척 재밌는 그림입니다.

 

어느날, 저희 집 아파트 근처를 산책하는데 새벽에 비가 왔었는지 물웅덩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무심결에 물웅덩이를 지나가면서 그 속에 비친 아파트를 보았습니다. ‘어? 아파트가 움직이네?’ 물론 움직이는 것은 저지만, 나를 잊고 눈에 보이는 실상 그대로를 묘사하자면, 분명 아파트가 물 위를 갑니다. 운문 스님도 아마 제자와 걸으시면서 물 위에 비친 산을 보지 않았을까요? 분별심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산도 아파트도 물 위를 갑니다.

 

제가 본 가장 재밌는 선문답을 한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깨달음이 뭔지 묻는 젊은 스님의 말에 깨친 노스님은 밥상을 엎었다고 합니다. 질문할 때마다 밥상을 엎어서 젊은 스님은 밥상머리에서는 질문을 하지 말아야지 합니다. 치울 때마다 곤욕이었으니까요. 다음 공양 때 젊은 스님은 질문을 꾹 참고 조용히 밥을 먹었습니다. 그러자 노스님이 왜 질문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깨치지 못한 스님은 또 밥상을 엎으실까 봐 질문을 못하겠습니다고 합니다. 그러자 깨친 스님은 이번엔 내가 밥상을 엎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여 젊은 스님은 노스님이 못 미덥지만,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질문을 합니다.

 

“깨달음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깨친 스님은 밥상을 엎으려고 상 다리를 쥐는데, 깨치지 못한 스님은 워낙 이골이 나 있어서 재빨리 반응을 해 밥상을 온몸으로 움켜쥡니다. 밥상을 엎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둘은 대치 상황이 됩니다. 깨치지 못한 스님은 말합니다.

 

“스님, 밥상은 죄가 없습니다!”

“밥상도 죄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젊은 스님은 악에 받쳐서 외칩니다.

“왜 그렇습니까!!!”

노스님도 소리를 지르며 되받아치십니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순간, 젊은 스님은 벼락에 맞은 듯 온몸에 힘이 풀려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어김없이 이번에도 밥상은 엎어집니다. 하지만, 젊은 스님은 큰 파도를 맞은 듯 아주 시원해집니다. 비로소, 젊은 스님은 미혹에서 벗어납니다. 엎어진 밥상 앞에서 젊은 스님은 노스님에게 큰절을 합니다.

 

재밌지 않나요?

 

이 이야기는 사실 그냥 생각이 나서 한번 지어봤습니다. 그래도 선문답의 핵심을 담고자 했습니다. <벗어날 탈 脫>도 아마 같은 마음으로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이 이런 게 아니겠냐고 저는 아직 믿고 있습니다.

 

<벗어날 탈 脫> 이 2월 21일에 개봉했습니다. 21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된 이후에 3년 만인데요. 독립영화 주류가 선호하는 주제도 표현방식도 아니어서 개봉지원금조차 받지 못 한 채 어렵게 개봉했습니다. 개봉관 수가 턱없이 부족한데 그마저 개봉 주가 지나면 반 토막 나지 않을까 해요. 이런 상황이 너무 아쉽습니다.

 

이 영화는 꼭 극장에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이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에서 “시네마토그래프는 움직이는 이미지와 소리로 쓴 것(écriture)이다” 라고 말했듯이, 이 영화의 색, 앵글, 카메라의 움직임과 사운드에 상당한 공을 들였습니다. 또한 주연을 맡아주신 임호준 배우의 말을 빌리자면, 본 적이 없는 전무후무한 영화니까요.

 

다양한 GV 행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2월 23일에는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 후 박우재 음악감독의 거문고 공연도 있습니다.

 

꼭 극장에서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벗어날 탈 脫 메인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TzJCDF9Xif8&t=3s

싸보타지필름
0 Lv. 186/400P

徐輔炯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20

  • Kaz
    Kaz
  • 해리엔젤
    해리엔젤
  • 타미노커
    타미노커

  • Joopiter
  • 행복한봉도네
    행복한봉도네
  • 셜록
    셜록
  • SOON_CINE
    SOON_CINE
  • 클랜시
    클랜시

  • 옥수동돌담길
  • ML
    ML
  • 슈하님
    슈하님
  • 사보타주
    사보타주

  • sf매니아
  • 선우
    선우

  • 샌드맨33
  • 카란
    카란
  • kmovielove
    kmovielove

  • 이상건
  • 킹치만귀여운걸
    킹치만귀여운걸
  • golgo
    golgo

댓글 22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1등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링크해주신 예고편도 잘 보겠습니다.

10:51
24.02.22.
profile image
오..시간이 되면 꼭 보고 싶네요!
응원합니다🙌🙌
11:30
24.02.22.
profile image
임호준 배우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영화를 대하는 마음이 맑고 올바른 배우님이라 기억이 생생하게 남습니다.
독립 영화임에도 역설적으로 많은 독립 영화관에서 볼 수가 없네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상영관이 너무 적어 안타깝습니다.
꼭 극장 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영화 기대할게요!
14:59
24.02.22.
SOON_CINE
임호준 배우는 찐배우입니다. 극장에서 같이 인사 나눌 수 있으면 좋겠네요!
17:57
24.02.22.
profile image
직접 설명하는 것이 아닌 어떤 비유로 대답하는 게 참 재밌네요. 꼭 보도록 하겠습니다!
16:57
24.02.22.
행복한봉도네
논리보다는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꼭 극장에서 봐주시길!
18:06
24.02.22.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내가 좀비?]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3 익무노예 익무노예 2일 전13:23 1426
HOT [조커: 폴리 아 되] 호불호 후기 모음 4 익스트림무비 익스트림무비 5일 전12:44 21609
HOT 에릭 로메르의 영화철학 1 Sonatine Sonatine 22분 전15:29 121
HOT 부산국제영화제 야경의 핫스팟은 역시 상영작 포스터 4 샌드맨33 11시간 전04:11 974
HOT '조커: 폴리 아 되' 미국 극장가의 진풍경(19금) 7 golgo golgo 3시간 전11:56 1917
HOT [맥팔레인] 마블 코믹스 (울버린 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 ... 2 호러블맨 호러블맨 45분 전15:06 176
HOT 부천만화축제 레트로 장터 올해도.. 3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1시간 전14:13 371
HOT 다 미쳤네요, [지옥2] 한현정의 직구리뷰 6 시작 시작 2시간 전12:58 1298
HOT '룩백' 국내 관객 25만 돌파! 2 하드보일드느와르 2시간 전13:38 337
HOT 넷플릭스 ‘전란‘ 비하인드 영상 2 NeoSun NeoSun 3시간 전12:14 394
HOT <에이리언: 로물루스> 관객 200만 돌파 4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3시간 전12:21 517
HOT '단다단' 아마존 프라임 일본 1위! 2 하드보일드느와르 4시간 전11:32 607
HOT 제임스 건, '조커 2'에 대한 간섭이 전혀 없었다... 5 NeoSun NeoSun 4시간 전11:22 1047
HOT 키아누 리브스, 프로 자동차 경주 데뷔 3 NeoSun NeoSun 5시간 전10:44 657
HOT 30년 만에 다시 만난 아담스 패밀리 2 시작 시작 5시간 전10:16 741
HOT 코폴라 감독 [조커: 폴리아되] 호평 6 시작 시작 5시간 전10:15 1383
HOT ‘조커 2’ 북미오프닝데이 2천만달러, ‘모비우스’ 수치 유사 3 NeoSun NeoSun 5시간 전10:14 662
HOT 고마츠 나나 The Fashion Post 📬vol.1 e260 e260 8시간 전07:33 758
HOT 박보영 조명가게 2 e260 e260 8시간 전07:31 1387
HOT [란마 1/2] 엔딩영상 공개 2 중복걸리려나 14시간 전01:36 700
HOT 니콜라스 빈딩 레픈과 마동석 2 Sonatine Sonatine 15시간 전00:33 2078
1153385
image
Sonatine Sonatine 22분 전15:29 121
1153384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35분 전15:16 160
1153383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45분 전15:06 176
1153382
image
NeoSun NeoSun 47분 전15:04 184
1153381
image
cwolff 57분 전14:54 142
1153380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1시간 전14:13 371
1153379
image
톰행크스 톰행크스 2시간 전13:41 181
1153378
image
하드보일드느와르 2시간 전13:38 337
1153377
image
시작 시작 2시간 전12:58 1298
1153376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2:33 529
1153375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2:30 327
1153374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3시간 전12:21 517
1153373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2:16 169
1153372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2:14 394
1153371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2:10 196
1153370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2:08 318
1153369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3시간 전12:03 407
1153368
image
golgo golgo 3시간 전11:56 1917
1153367
image
하드보일드느와르 4시간 전11:32 607
1153366
image
하드보일드느와르 4시간 전11:31 445
1153365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1:29 288
1153364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1:22 1047
1153363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1:11 599
1153362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0:58 388
1153361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0:52 360
1153360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10:44 657
1153359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10:26 290
1153358
image
시작 시작 5시간 전10:16 741
1153357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10:16 384
1153356
image
시작 시작 5시간 전10:15 1383
1153355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10:14 662
1153354
image
시작 시작 5시간 전10:04 688
1153353
image
이안커티스 이안커티스 7시간 전08:51 574
1153352
image
e260 e260 8시간 전07:33 758
1153351
image
e260 e260 8시간 전07:32 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