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4
  • 쓰기
  • 검색

[영화리뷰] 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 2023)> : 판사님, 고양이가 쓴 리뷰입니다

바비그린
1748 5 4

 

 

*모든 이미지 출처: 영화 <추락의 해부>

주의: 영화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란 말을 많이들 합니다. 네, 오늘 다룰 영화 <추락의 해부>의 주인공 '산드라'도 마찬가지죠. '산드라'가 일궈놓은 모든 것은 남편의 죽음으로 산산조각 나기 시작합니다. 고립된 산장에서 죽은 남편, 같이 있었던 건 시각장애를 가진 아들과 산드라, 자기 자신 뿐. 당연스럽게도 남편의 죽음은 자살이냐 타살이냐의 기로에 놓이고, 타살이라면, 유력한 용의자는 한 명으로 압축되겠죠.

법정에서 산드라의 수많은 비밀들이 발가벗겨지고, 극의 시작까지만 해도 '철의 여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산드라의 추락이 시작됩니다. <추락의 해부>는 인생에서 맞닥뜨린 어느 한 사건이 각 개인들을 어디까지 내몰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추락>>의 해부

법정에서 밝혀지는 산드라의 비밀들은 자못 충격적입니다. 숨겨왔던 성적 지향, 불륜을 저질렀던 과거. 게다가 기존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남편은 싸우는 장면을 녹음까지 해 놨죠. 하필 그 녹음엔 산드라가 결국 참지 못하고 폭력을 저지르는 장면이 기록되고 말았습니다. 방청석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산드라의 아들이 모든 것을 듣고 있었죠.

법정은, 참으로 잔인한 공간입니다. 사건을 심리하기 위함이라는 목적 아래 아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 모든 개인의 내밀한 것들이 까발려집니다. 결국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핵심 요소는 산드라가 무죄 판결을 받아내느냐를 넘어, 이겨도 이기지 못하는 법정싸움의 잔인함, 그 안에서 한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라 하겠습니다.

법정은 어지간하면 이겨도 이기는 것이 아니죠. 아주, 아주 잘 해야 본전입니다. 산드라는? 사실상 다 잃었죠 뭐.

감독은 산드라에게 무죄판결을 줍니다. 만세. 산드라는 감옥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산드라는 이제 정말 행복할 수 있겠죠?​

그럴리가요. 지난한 싸움을 함께해 준 변호사 '뱅상'과 산드라의 쫑파티에서, 어라라? 흐르는 묘한 기류. 할거야? 할거야? 키스 할 거냐고?!!!!!! ................. 안 하죠. 뱅상도 결국 산드라를 완전히 믿지는 못한다는 암시입니다.

아들 '다니엘'은요? 더 노골적이죠. 무죄판결을 받고 당장 집에 득달같이 달려가겠다는 엄마에게 피곤하다뇨 이런 후레잣.... 이 아니죠.

산드라는 감옥은 피했지만, 의심의 지옥은 피하지 못했습니다. 추락은 끝난 게 아니었네요. ​

더불어, 여기서 추락하는 것은 산드라 뿐만이 아닙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산드라의 아들 '다니엘'의 이야긴데요. 제가 프로불편러인지 모르겠으나, 영화는 지속적으로 법정싸움 와중 '다니엘'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꼬집습니다.

아마 보신 분들은 '다니엘'의 증언 과정에서 다니엘에게 가해지는 불편한 압력을 충분히 느끼실 수 있었을 겁니다. 게다가, 한국어 자막 기준으로, 판사가 다니엘을 불러 한 말은 충격적이었는데요. "다음 재판에선 험한 말이 오갈 것이다"란 경고를 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다니엘에게 다음 재판에 불참할 것을 권하면서 판사가 한 말은

"너를 신경쓰지 않고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야"

??????!!!!!???????@@@!!!@!!!

이것이 진정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인권의 나라 프랑스가 맞습니까? "네가 상처받을까봐 걱정돼"가 아니라 방해되니 꺼지라는 식의 표현. 무기력한 약자에게 가해지는 시스템의 폭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 네? 아, 아닙니다 판사님. 고양이가 키보드를 건드려서요. ㅎㅎ

또한 영화에서 충분히 드러납니다만, 다니엘은 자신이 실제 '목격한 것'을 증언하지 않았습니다. '목격했다고 믿기로 한 것'을 증언했죠. 즉, 다니엘은 엄마를 구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위에서 언급했듯 '다니엘'이 엄마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했다는 겁니다. 네, 추락한 것은 산드라만이 아닙니다.

프랑스어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말에서 '목격'은 '봤다'는 의미를 포함하죠. 다니엘은 애초에 볼 수가 없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어쩌면 후반부에 다니엘이 어떤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감독은 영화의 설정에서부터 이미 힌트를 주고 있었네요. ​

 

추락의 <<해부>>

영화는 생각보다 그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전달합니다. 초반부, 변호사 뱅상이 가던 차를 멈추고 산드라에게 한 대사를 기억하시나요?

"이제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는 당신에 익숙해져야해요."

네. 아주 대놓고 스포를 했죠? 내가 보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나는 명백히 다릅니다. 상술했듯 법정싸움은 정말 무엇으로 뒤집힐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 사건과 아주 조그마한 연관이라도 있어 보이는 것들은 죄다 소환됩니다. 나의 모든 행적들은, 내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고 왜곡되지요.

다시, 마침내 이 법정싸움은 산드라가 유죄냐 아니냐를 넘어 '내가 보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나' 중 어느 것이 맞느냐에 대한 싸움이 됩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질문입니다. 과연 '내가 보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나,' 무엇이 정답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감독과 같은 생각이신가요?

법정은 참으로 신비한 공간입니다. '나'보다는 내가 아닌 제 3자, 즉 판사, 검사, 변호인들이 나라는 사람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며 공격하고, 방어하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법정이란 공간 아래 '나'는 타자화됩니다. 말 그대로 '해부'당하는 거죠. <추락의 해부>를 표현하기에 그야말로 더없이 최적의 공간입니다. 차가운 벌판 한 가운데 고고하고 외롭게 서 있는 산드라 그 자체인 별장에, <추락의 해부>의 장 그 자체인 법정.

키야, 쥐스틴 트리에 감독님?? 정말 영화 설계 한 번 치밀하게 잘 했네요. 1따봉 추가해드립니다.

 

미친듯이 영화를 캐리하는 산드라 휠러

배우들의 연기도 미쳤습니다. 특히 산드라 역할을 맡은 배우 산드라 휠러의 놀라운 연기력이 이 영화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요. 나도 몰랐던 제 3자의 눈으로 본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실시간으로 망가져가는 산드라의 추락을 정말 훌륭하게 표현했습니다. 법정에서의 표정 연기가 대박이구요, 후반부 '뱅상'과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라기보다 사실상 독백) 부분은 정말 엄청난 연기의 절정이니 꼭 보시길 권합니다. 마치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이야기(Marriage Story, 2019)>를 다시 보는 듯한 소름!!

오늘 <추락의 해부>이야기는 '일단' 여기까집니다. 사실 언급한 것들 이외에도 영화엔 더 탐구할 요소들이 가득합니다. 어쩌면 이 리뷰는 앞으로 몇 가지를 더 수정하고, 덧대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 아카데미 후보에 주르르륵 이름을 올리기에 손색이 없는 대단한 영화였네요.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필관!! 추천드립니다.

 

 

 

 

 

블로그에 더 많은 영화의 리뷰들이 있답니다 :)

 

https://m.blog.naver.com/bobby_is_hobbying

 

 

바비그린
1 Lv. 518/860P

이퐁퐁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5

  • 과자머겅
    과자머겅

  • 즐거운인생

  • 이상건
  • golgo
    golgo
  • 해리엔젤
    해리엔젤

댓글 4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초반 변호사의 대사 참 섬뜩해요.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08:11
24.02.21.
profile image
저도 너무 잘봤는데
이런 리뷰 볼때마다 점점 더 재밌어집니다.
감사합니다.
14:49
24.02.21.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HOT 2024년 8월 31일 국내 박스오피스 3 golgo golgo 7시간 전00:01 1038
HOT 아나 데 아르마스 에스티 로더 향수 광고 3 카란 카란 9시간 전22:09 1119
HOT 실사 영화 근황 정리 6 기다리는자 9시간 전22:30 1731
HOT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를 보고 나서 (스포 O) - 요... 4 톰행크스 톰행크스 9시간 전21:55 1072
HOT 버스터 키튼이 영화에 미친 영향 2 카란 카란 9시간 전21:49 854
HOT 'Touch'에 대한 단상 2 네버랜드 네버랜드 10시간 전21:08 526
HOT 에이리언 : 로물루스 팝콘버켓 8 녹음이 녹음이 10시간 전20:44 1019
HOT 공포 프랜차이즈 <울프 크릭> 세번째 편 <울프 크... 4 Tulee Tulee 12시간 전19:09 597
HOT 리암 니슨-탈리아 라이더-노아 주프-휘트니 피크-잭 딜런 그... 2 Tulee Tulee 12시간 전18:45 396
HOT 판타스틱 4 테마곡, 인피니티 사가 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 4 기다리는자 13시간 전18:14 953
HOT 니콜라스 윈딩 레픈,내년 촬영 시작 예정인 도쿄 배경 영화... 3 Tulee Tulee 12시간 전18:47 788
HOT 만신^^ 감동이네요 2 진지미 14시간 전16:58 1121
HOT 이토준지연구책 도착 4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15시간 전16:13 735
HOT 수지 김우빈 커피차 인증 1 e260 e260 14시간 전16:47 666
HOT 노스포 너무 조용히 개봉한 '둠벙' 짧은 후기 4 골드로저 골드로저 13시간 전18:13 467
HOT 케이트 블란쳇, 정호연 '누군가는 알고 있다' 로... 3 golgo golgo 21시간 전10:19 3657
HOT ‘왕방울 눈·2등신 캐릭터’ 하츄핑 열풍…왜? 6 호러블맨 호러블맨 16시간 전14:52 1225
HOT [트위스터스] 누적 50만 10 호러블맨 호러블맨 16시간 전14:50 1097
HOT 미모가 저평가 되는 국내 연예인 13 totalrecall 17시간 전14:02 5110
HOT <원스>, 9월 19일 재개봉 1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8시간 전13:20 816
1149504
image
e260 e260 1분 전07:37 9
1149503
image
e260 e260 2분 전07:36 13
1149502
image
e260 e260 2분 전07:36 12
1149501
image
e260 e260 3분 전07:35 23
1149500
image
e260 e260 4분 전07:34 24
1149499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5분 전07:33 23
1149498
image
동네청년 동네청년 59분 전06:39 92
1149497
normal
비긴이게인 비긴이게인 4시간 전03:08 383
1149496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02:17 396
1149495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02:02 404
1149494
image
필름매니아 5시간 전01:59 256
1149493
image
하드보일드느와르 5시간 전01:39 293
1149492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01:26 337
1149491
normal
cwolff 6시간 전01:26 144
1149490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01:20 268
1149489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01:20 353
1149488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01:16 332
1149487
normal
H무비 6시간 전00:50 354
1149486
image
필름매니아 6시간 전00:42 455
1149485
image
golgo golgo 7시간 전00:01 1038
1149484
image
NeoSun NeoSun 8시간 전23:37 479
1149483
image
hera7067 hera7067 8시간 전23:15 243
1149482
image
hera7067 hera7067 8시간 전23:13 429
1149481
image
hera7067 hera7067 8시간 전23:11 148
1149480
image
hera7067 hera7067 8시간 전23:09 154
1149479
normal
기다리는자 9시간 전22:30 1731
1149478
normal
존윅 9시간 전22:20 844
1149477
image
카란 카란 9시간 전22:09 1119
1149476
image
톰행크스 톰행크스 9시간 전21:55 1072
1149475
normal
기다리는자 9시간 전21:53 453
1149474
image
카란 카란 9시간 전21:49 854
1149473
normal
BillEvans 9시간 전21:48 354
1149472
image
hera7067 hera7067 10시간 전21:28 303
1149471
normal
totalrecall 10시간 전21:13 301
1149470
image
네버랜드 네버랜드 10시간 전21:08 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