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 2023)> : 판사님, 고양이가 쓴 리뷰입니다
*모든 이미지 출처: 영화 <추락의 해부>
주의: 영화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란 말을 많이들 합니다. 네, 오늘 다룰 영화 <추락의 해부>의 주인공 '산드라'도 마찬가지죠. '산드라'가 일궈놓은 모든 것은 남편의 죽음으로 산산조각 나기 시작합니다. 고립된 산장에서 죽은 남편, 같이 있었던 건 시각장애를 가진 아들과 산드라, 자기 자신 뿐. 당연스럽게도 남편의 죽음은 자살이냐 타살이냐의 기로에 놓이고, 타살이라면, 유력한 용의자는 한 명으로 압축되겠죠.
법정에서 산드라의 수많은 비밀들이 발가벗겨지고, 극의 시작까지만 해도 '철의 여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산드라의 추락이 시작됩니다. <추락의 해부>는 인생에서 맞닥뜨린 어느 한 사건이 각 개인들을 어디까지 내몰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추락>>의 해부
법정에서 밝혀지는 산드라의 비밀들은 자못 충격적입니다. 숨겨왔던 성적 지향, 불륜을 저질렀던 과거. 게다가 기존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남편은 싸우는 장면을 녹음까지 해 놨죠. 하필 그 녹음엔 산드라가 결국 참지 못하고 폭력을 저지르는 장면이 기록되고 말았습니다. 방청석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산드라의 아들이 모든 것을 듣고 있었죠.
법정은, 참으로 잔인한 공간입니다. 사건을 심리하기 위함이라는 목적 아래 아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 모든 개인의 내밀한 것들이 까발려집니다. 결국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핵심 요소는 산드라가 무죄 판결을 받아내느냐를 넘어, 이겨도 이기지 못하는 법정싸움의 잔인함, 그 안에서 한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라 하겠습니다.
법정은 어지간하면 이겨도 이기는 것이 아니죠. 아주, 아주 잘 해야 본전입니다. 산드라는? 사실상 다 잃었죠 뭐.
감독은 산드라에게 무죄판결을 줍니다. 만세. 산드라는 감옥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산드라는 이제 정말 행복할 수 있겠죠?
그럴리가요. 지난한 싸움을 함께해 준 변호사 '뱅상'과 산드라의 쫑파티에서, 어라라? 흐르는 묘한 기류. 할거야? 할거야? 키스 할 거냐고?!!!!!! ................. 안 하죠. 뱅상도 결국 산드라를 완전히 믿지는 못한다는 암시입니다.
아들 '다니엘'은요? 더 노골적이죠. 무죄판결을 받고 당장 집에 득달같이 달려가겠다는 엄마에게 피곤하다뇨 이런 후레잣.... 이 아니죠.
산드라는 감옥은 피했지만, 의심의 지옥은 피하지 못했습니다. 추락은 끝난 게 아니었네요.
더불어, 여기서 추락하는 것은 산드라 뿐만이 아닙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산드라의 아들 '다니엘'의 이야긴데요. 제가 프로불편러인지 모르겠으나, 영화는 지속적으로 법정싸움 와중 '다니엘'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꼬집습니다.
아마 보신 분들은 '다니엘'의 증언 과정에서 다니엘에게 가해지는 불편한 압력을 충분히 느끼실 수 있었을 겁니다. 게다가, 한국어 자막 기준으로, 판사가 다니엘을 불러 한 말은 충격적이었는데요. "다음 재판에선 험한 말이 오갈 것이다"란 경고를 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다니엘에게 다음 재판에 불참할 것을 권하면서 판사가 한 말은
"너를 신경쓰지 않고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야"
??????!!!!!???????@@@!!!@!!!
이것이 진정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인권의 나라 프랑스가 맞습니까? "네가 상처받을까봐 걱정돼"가 아니라 방해되니 꺼지라는 식의 표현. 무기력한 약자에게 가해지는 시스템의 폭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 네? 아, 아닙니다 판사님. 고양이가 키보드를 건드려서요. ㅎㅎ
또한 영화에서 충분히 드러납니다만, 다니엘은 자신이 실제 '목격한 것'을 증언하지 않았습니다. '목격했다고 믿기로 한 것'을 증언했죠. 즉, 다니엘은 엄마를 구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위에서 언급했듯 '다니엘'이 엄마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했다는 겁니다. 네, 추락한 것은 산드라만이 아닙니다.
프랑스어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말에서 '목격'은 '봤다'는 의미를 포함하죠. 다니엘은 애초에 볼 수가 없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어쩌면 후반부에 다니엘이 어떤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감독은 영화의 설정에서부터 이미 힌트를 주고 있었네요.
추락의 <<해부>>
영화는 생각보다 그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전달합니다. 초반부, 변호사 뱅상이 가던 차를 멈추고 산드라에게 한 대사를 기억하시나요?
"이제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는 당신에 익숙해져야해요."
네. 아주 대놓고 스포를 했죠? 내가 보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나는 명백히 다릅니다. 상술했듯 법정싸움은 정말 무엇으로 뒤집힐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 사건과 아주 조그마한 연관이라도 있어 보이는 것들은 죄다 소환됩니다. 나의 모든 행적들은, 내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고 왜곡되지요.
다시, 마침내 이 법정싸움은 산드라가 유죄냐 아니냐를 넘어 '내가 보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나' 중 어느 것이 맞느냐에 대한 싸움이 됩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질문입니다. 과연 '내가 보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나,' 무엇이 정답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감독과 같은 생각이신가요?
법정은 참으로 신비한 공간입니다. '나'보다는 내가 아닌 제 3자, 즉 판사, 검사, 변호인들이 나라는 사람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며 공격하고, 방어하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법정이란 공간 아래 '나'는 타자화됩니다. 말 그대로 '해부'당하는 거죠. <추락의 해부>를 표현하기에 그야말로 더없이 최적의 공간입니다. 차가운 벌판 한 가운데 고고하고 외롭게 서 있는 산드라 그 자체인 별장에, <추락의 해부>의 장 그 자체인 법정.
키야, 쥐스틴 트리에 감독님?? 정말 영화 설계 한 번 치밀하게 잘 했네요. 1따봉 추가해드립니다.
미친듯이 영화를 캐리하는 산드라 휠러
배우들의 연기도 미쳤습니다. 특히 산드라 역할을 맡은 배우 산드라 휠러의 놀라운 연기력이 이 영화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요. 나도 몰랐던 제 3자의 눈으로 본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실시간으로 망가져가는 산드라의 추락을 정말 훌륭하게 표현했습니다. 법정에서의 표정 연기가 대박이구요, 후반부 '뱅상'과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라기보다 사실상 독백) 부분은 정말 엄청난 연기의 절정이니 꼭 보시길 권합니다. 마치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이야기(Marriage Story, 2019)>를 다시 보는 듯한 소름!!
오늘 <추락의 해부>이야기는 '일단' 여기까집니다. 사실 언급한 것들 이외에도 영화엔 더 탐구할 요소들이 가득합니다. 어쩌면 이 리뷰는 앞으로 몇 가지를 더 수정하고, 덧대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 아카데미 후보에 주르르륵 이름을 올리기에 손색이 없는 대단한 영화였네요.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필관!! 추천드립니다.
블로그에 더 많은 영화의 리뷰들이 있답니다 :)
https://m.blog.naver.com/bobby_is_hobbying
바비그린
추천인 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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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