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해외 첫(?) 리뷰,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
시티온파이어의 폴 브램홀이라는 비평가 리뷰를 옮겨봤습니다.
https://cityonfire.com/12-12-the-day-2023-review/
첫 리뷰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찾아본 바로는..^^;
아무튼 호평입니다. 한국영화 전문가라고 하는 분이네요.
감독: 김성수
출연진: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정만식, 정해인, 남윤호, 정동환
러닝 시간: 141분
폴 브램홀
한 국가가 혼란과 트라우마의 시기를 겪을 때, 그 감정이 집단적으로 처리되고 문제의 사건이 예술에 반영되기 시작할 만큼의 생생함을 잃는 시점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는지 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1953년 휴전으로 한국전쟁이 끝난 뒤 이만희 감독의 1963년 작품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처음으로 그 전쟁을 스크린에 담아내면서, 관객들은 10년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전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최근 한국영화는 1980년부터 1988년까지, 군사 독재자 전두환 치하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를 겪었던 1980년대 격동의 10년을 돌아보고자 하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장선우 감독의 <꽃잎>(1996),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 등에서 그 시기를 다룬 적이 있지만, 한국 역사상 가장 추악했던 시기 중 하나를 주류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은 (의도적으로 연결한 것은 아닌) 최근 세 편의 작품들이다. 우민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2020)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기까지 40일간을 다뤘다.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2017)는 1980년 5월 전두환이 수백 명의 민주화 시위대에 무차별 사살을 명령한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장준환 감독의 <1987>(2017)은 마침내 전두환의 몰락을 가져온 1987년 민주화 시위와 한국 최초의 진정한 민주 선거를 다뤘다.
문제는 박정희가 암살당한 지 47일 만인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이 숙명적 쿠데타를 통해 권좌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가 아직까지 없었다는 점이다. 전두환이 한국에서 가장 욕을 먹는 인물 중 하나이며(실제로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 개봉할 당시 그는 살아 있었고, 2021년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012년에는 광주 학살의 피해자 후손이 그를 죽이기 위해 팀을 꾸린다는 내용의 소원 성취 스릴러 <26년>의 소재가 되기도 했으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2023년에 드디어 <서울의 봄>에서 그 주제를 다루게 되었다. 이 영화는 <남산의 부장들>의 박정희 암살 사건과 바로 이어서 진행되며, 전두환이 그 사건 수사를 지휘하기 위해 영입된 인물로 등장한다.
감독 김성수(<무사>, <중천>(제작))는 <서울의 봄>을 통해, 2017년 <아수라>에서 호흡을 맞췄던 황정민(교섭,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정우성(강철비 2,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과 다시 만났다. 황정민이 전두환 역을 맡았고, 정우성은 서울의 방어를 책임지는 수도경비사령관이자 쿠데타에 맞서는 마지막 소수의 인물을 연기한다. 14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의 이 영화에서 오프닝 30분은 12월 12일을 앞둔 장면들을 설정하기 위해 영리하게 쓰였고, 나머지 러닝타임 대부분은 쿠데타가 벌어진 9시간 동안을 다루는 데 전념한다.
김성수 감독은 <남산의 부장들>처럼, 주연배우들이 스크린에 선사하는 카리스마와 중후함이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는 걸 알고 있는 듯, 소재에 대한 진지한 접근법을 취한다. 그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묘사되는 역사의 한 단면을 관객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도 있었을 텐데, 이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가진다. 관객을 이해시키려고 시간을 들이는 설명 장면이 없어서 걸리적거리지 않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박정희 대통령) 암살 장면을 보지도 못했는데, 그 암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논의하는 데 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지 의문이라는 점에선 부정적일 것이다.
다행히도 한국 역사에 익숙한 관객이 아니더라도, 황정민(전두광 역)이 육군참모총장(아이러니하게도 <남산의 부장들>에서 박정희를 연기한 이성민이 맡았다.)의 체포를 지시해 쿠데타가 시작되면 이야기를 쉽게 따라갈 수 있다. 그 뒤로 끊임없이 긴박한 대치 상황이 이어지고, 빈번하게 혼란이 지배하고, 군 내부에서 누가 누구의 편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그 사이에 황정민은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것을 점차 현실화시켜 나간다. 악당이 승리하는 피할 수 없는 결말, 그리고 이후로 수 년 동안 그가 얼마나 많은 불행을 초래할지 알고, 그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도 많았음을 확인하면서, 한국인이 아님에도 <서울의 봄>을 보는 동안 명백한 분노의 감정을 느꼈다.
황정민은 전두환의 외모를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하루 4시간씩 분장을 했지만, 실제 연기는 본질적으로는 다소 캐리커처에 가깝다고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쉴 새 없이 욕을 하고 킬킬 웃는 모습에서 <아수라>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악역 시장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실제 전두환은 강한 성격으로 유명했고, 스크린에서는 비호감 캐릭터로 표현된 것이 분명하다. 정우성이 연기한 사령관은 애초부터 황정민을 안 믿는 인물이고, 쿠데타가 시작되었을 때 개입을 꺼리거나 황정민의 편에 서는 다른 부대들과 부딪치며 답답한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캐릭터로 묘사되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박해준(브로커), 김성균(서울대작전), 김의성(외계+인), 박훈(공조 2: 인터내셔날) 등 쟁쟁한 조연들이 대거 출연하여 강렬한 열연을 펼친다. 그 시기의 정치 환경을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들처럼 여성 캐릭터들은 부족하며, 전수지(비상선언)가 정우성의 아내 역으로 여성 중 가장 비중 있게 나오는데, 여기서 비중이 크다는 건 3분 정도의 출연 시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김성수 감독이 대규모 출연진을 훌륭하게 다루었고, 모두가 비중과 상관없이 캐릭터에 전적으로 몰입하는 연기를 펼쳤기에 결코 불만은 없다.
오히려 각본상 내러티브에 좀 더 전형적인 주류 요소를 집어넣으려 했을 때 <서울의 봄>은 흔들린다. 2004년 작품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작품에서 140분 내내 다뤄질 법한 두 명의 친한 군인이 서로 다른 편에 서게 되는 스토리라인이, 이 영화에서는 5분 동안에 흥미롭게 소개되고 결론이 나기 때문에 감정적인 몰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현실을 회피하고 자신의 안위만 챙기려는 비겁한 국방장관 같은 캐릭터도 진부하고 일차원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김성수가 이러한 특정 클리셰에 시간을 적게 들인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데, 결과적으로 내러티브가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 유사 작품들이 자주 범하기 쉬운 신파 멜로드라마로 전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의 봄>의 주제는 스크린으로 다루기 까다로운 것이면서, 그 결말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향한 암울했던 8년간의 투쟁의 시작을 알리지만, 김성수 감독은 이를 묵직한 정치 스릴러의 틀 안에서 긴박감 있게 풀어냈다. 역사의 교훈으로서 중요하며, 영화적으로도 김성수 감독과 황정민, 정우성이라는 트리오가 다시 한번 만난 것이 반갑다. 2023년 최고의 한국 영화로 꼽을 수 있다.
폴 브램홀의 평점: 8/10
golgo
추천인 14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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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인 나는 뭐하는 놈인가
반성을 하게 만드는 외국인 평론가의 글이네요 ㅠ
잘 읽었습니다
"악당이 승리하는 피할 수 없는 결말, 그리고 이후로 수 년 동안 그가 얼마나 많은 불행을 초래할지 알고, 그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도 많았음을 확인하면서, 한국인이 아님에도 <서울의 봄>을 보는 동안 명백한 분노의 감정을 느꼈다."
외국인도 한국 관객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는게 놀랍네요. 그만큼 감독이 영화를 장 만들었다는 얘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