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 없는 전쟁 히로시마 사투편 (1973) 실록 야쿠자. 스포일러 있음.
야쿠자에 대한 영화인데, 실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장군의 아들류 조폭 미화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김성수감독의 아수라와 닮았다.
결함을 가지고 자기 욕망에 충실한 수컷들이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식이다.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는데,
마초적이고 잔인 폭력적인 영화로서는 이 이상 가는 영화가 드물 것이다. "수컷냄새가 물씬 풍기며 잔인 폭력적이고
등장인물들이 벌거벗었다"하는 말이 딱 어울리는 영화다. 그런데, 이것을 찬양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것의 공허성과 얄팍함을 까는 영화다.
신사적이거나 예의, 양심, 규율같은 것이라고는 없는,
욕망을 바깥으로 환히 드러내고 뻔뻔하게 다니는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고 하면서 결국 파멸로 끝난다.
별 것 아닌 일로 야쿠자의 법도를 어겼다며 죽이고,
사소하게 다투다가 죽이고,
자기 이익을 위해 다투다가 (협상으로 해결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죽여 버린다.
윗사람의 살인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가 십수년을 허비하는
젊은이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지만, 야쿠자들은 자기들끼리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칭송하며
서로 서로 자화자찬한다. 관객들이 보기에 어리석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의리니 법도니 하는 것은 다
공허하고 자기들 욕망을 미화하는 것이다. 피식 웃으면서 자기들끼리 야쿠자의 법도를 찬양하고
사나이의 용기를 찬양하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본 편에서는 야마나카 세이지라는 전설적인 야쿠자 킬러가 주인공이다.
내로라하는 야쿠자 두목들을 암살하고, 히로시마를 떠들썩하게 만들며 야쿠자 항쟁을 일으키던
무시무시한 또라이 오오토모 카츠토시를 총 하나로 거의 죽여서 은퇴하게 만든다.
죽은 이후에도 존경을 받는 전설적인 야쿠자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그는 어리석게 야쿠자에게 이용 당하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야쿠자들 자기들끼리는 엄청난 업적을 세우고, 야쿠자의 법도를 한 몸에 구현한 영웅으로 떠받들지만,
관객들 눈에는 "저 어리석은 놈......"하는 말이 나오게 한다.
카지 메이코가 야쿠자 오야붕의 조카딸로 나와서 야마나카 세이지와 사실혼 관계를 맺는다.
영화가 시작하면, 젊은 천둥벌거숭이 야마나카 세이지는 원래 독종으로 행세하며 원한 있는 사람들은 다 죽일 것처럼 카리스마를 보인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마음 약하고 혼자라서 늘 외롭고 사람을 해치는 것도 벌벌 떨면서 못하는 사람이다. 남편이 카미카제로 전사한 영웅적인(?) 사람의 아내인 카지 메이코는 딸 하나랑 외롭게 산다.
카미카제 전사자의 아내라고, 재혼도 못하게 주변사람들이 눈치를 준다. 카지 메이코와 야마나카 세이지는
할 수 없이 사실혼 관계만 맺는다. 외로운 야마나카 세이지는 카지 메이코와 그 딸을 극진히 사랑하고 아낀다.
그렇다면 야쿠자생활도 접고 가족만을 위해 살아야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천길 낭떠러지 위에서 외줄 타는 듯한
야쿠자 킬러생활도 하면서 동시에 패밀리맨으로서 생활도 한다. 가족을 위해서만 살아야 하는 외로운 고아가
어떻게 자기 생명을 내놓고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킬러역할을 한단 말인가? 야쿠자의 의리라는 이해 못할 공허한
가치에 사로잡혀 킬러역할을 하고 다니다가 결국 가족과 헤어지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그의 일생이다.
그 야쿠자 의리라는 것도, 야쿠자 오야붕이 야마나카 세이지를 이용해먹기 위해 속이고 기만하는
그것에 평생 놀아난 것이다.
야마나카 세이지가 죽자, 야쿠자들은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며 그를 기린다.
젊은 야쿠자들은 말조차 조심스럽게 그를 칭송한다. "그가 야쿠자두목들을 총 한자루로 암살하고
야쿠자 항쟁을 혼자서 막았다"하는 겉보기에 화려한 업적(?)만 남는다.
하지만 그의 무덤은 아무도 찾는 이 없어, 비석도 깨지고 땅이 움푹 패였다. 그는 참 어리석고 비극적인 일생을 산
순박한 고아였다. 그렇게 독하게 굴고 폭력을 휘두르고 한 것도 외롭고 의지할 곳 없어 그랬던 것인데,
사랑하는 가족이 생긴 다음에도 왜 그렇게 야쿠자의 의리라는 별 것 아닌 족쇄에 자신을 묶었던가?
영화가 굉장히 거칠고 날 것 그대로이고 에너제틱하다. 아드레날린이 화면 바깥까지 풀풀 풍긴다.
시리즈 다섯편을 다 보아야 하나의 사건이 완결된다고 하니, 이 한편만 가지고 뭐라 하기에는 좀 그렇다.
영화가 참 이상하다. 슬렁슬렁 실록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박진감 넘치고 나중에 다 보고나면
구성이 단단하다. 허술한 것처럼 보이는데, 다 보고나면 구성이 단단하고 할 말만 딱 명료하게 난 느낌이다.
배우들도 막 난리법석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는데, 다 보고나면 프로페셔널들이 프로페셔널한 연기를 한 것 같은
느낌이다. 볼 때는 야쿠자들이 막 난동을 벌이면서 정신이 없는데, 다 보고나면 주제의식이 명료하다.
추천인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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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 없는 전쟁 시리즈 보는데... 진짜 상남자의 끝장을 보여주기 때문에 일본이 저랬던 시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랍죠. 일본 중장년층이 한국 누아르 영화들 보면서 향수에 젖는 게 이해가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