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4
  • 쓰기
  • 검색

[고급리뷰] 그어살 (★★) "스토리텔링과 비주얼텔링의 불일치가 과대평가를 무너뜨리는 순간"

영화에도른자
5333 8 4

(지금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이미지가 없습니다. 고치면 이미지는 그때 첨부해 볼게요.)

 

간단히 요약하면 그어살은 미야자키 후기 작품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바람이 분다의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이야기와 주제의 불일치는 하울, 장면 사이의 떨어지는 연결성은 포뇨, 자전적인 이야기에 얽매인 것은 바람이 분다에 가깝죠. 이 때문에 센치행까지의 지브리를 기대하고 간다면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 3개랑 취향이 맞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사실 미야자키 감독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부터 스토리텔링과 비주얼텔링이 불일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센치행 이후의 작품들을 보면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 각본을 통해 '들려주고 싶은 것', 주제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이 따로 노는 감이 있어요. 정확히는 이 때부터 평화나 공존 등 후세에 전달하고 싶은 주제를 작품에 끼워넣는 데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울은 사랑 이야기, 반전(反戰) 이야기, 영화 속 이야기가 전부 따로 노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그어살에서 이 문제가 극도로 심화되었습니다.

 

우선 그어살이 그리 환상적이라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영화의 초반부는 지나치게 태평양 전쟁이라는 현실과 결부되어 있어요.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환상의 세계일 텐데 이쪽으로 들어서기까지 너무 길면서도 무거운 시간이 걸립니다. 게다가 이쪽 파트는 전쟁 피해자인 마히토의 어머니와 전쟁으로 돈을 버는 마히토의 아버지만 중점적으로 묘사되어서 이 장면들은 딱히 주제를 전달하지 않는 '임시적으로 빈' 공간이 되었습니다. 마히토가 최대한 빨리 왜가리를 따라 탑으로 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이였네요.

 

비주얼적으로도 분석해 보면 분명히 작화는 좋은데 왠지 모르게 지브리의 전작들보다 인상이 얕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시퀀스마다 공간이 따로 노는 감이 강한 데다, '와라와라'를 제외하면 이 세계의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기도 어렵기 때문일 겁니다. 앵무가 있다고요? 앵무는 인간을 잡아먹는 생물이라는 설정이 붙은 데다 디자인적으로 꽤나 단순하면서도 멍청...해 보여서 심리적으로 그러한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후반부의 스토리텔링에도 문제가 있는데, 하울에서도 드러난 '후반부에 몰아서 주제 전하기'가 이번에도 등장합니다.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주제를 녹이는 게 아니라, 일단 그려 놓을 거 다 그리고 후반부에 작위적으로 주제를 풀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산실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이야기들은 산실에 들어가고 인물들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순간 모두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면 이 인물들의 관계가 일관된 주제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세계의 주인을 만나면서 아까의 이야기랑 상관이 없는 새로운 주제를 또 풀어 버리거든요. 돌이켜 보면 산실에서 드러난 인물들의 관계는 세계의 주인과 대화하여 정립되는 주제와 연관성을 찾기 어려울 뿐더러, 둘 중에 하나가 없어도 나머지 하나가 그다지 무리 없이 성립됩니다. 심지어 두 개의 주제는 키리코와 겪었던 모험 이야기를 빼 버려도 각자 나름대로 성립이 돼요.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었던 건 역시 앵무 대왕입니다. 이 인물이 초반부와 후반부를 모두 망쳤습니다. 일단 앵무 대왕은 너무 노골적으로 히틀러와 도조 히데키를 모티브로 삼고 있습니다. 거장이라 불리는 인물의 알레고리가 고작 이 정도라니요. 모노노케 히메에서 보았던 깊은 스토리텔링을 통한 주제의식 전달은 사라지고 오직 대놓고 '얘 전쟁 추축국 지도자예요'라고 묘사하는 인물을 툭 던지는 선에서 끝나요. 인간을 잡아먹던 앵무는 그 순간부터 노골적으로 독일+일본 군인들이 됩니다. 

 

그러면 어쨌든 이 인물을 통해 반전(反戰) 메시지를 전달해야겠죠? 세계를 앵무가 지도하겠다는 일념 아래 탑을 부수며 세계를 멸망시키는 어리석음으로요. 그런데 정작 이 메시지는 아까 얘기했던 '임시적으로 빈' 초반부의 이야기와 따로 놉니다. 분명히 초반부에는 일본의 전쟁 피해자들과 전쟁 사업가들이 묘사되었어요. 하지만 후반부에 앵무 대왕이 세계를 멸망시켰는데, 정작 현실의 전쟁 사업가들은 돈을 벌고 있죠. 또한 반대쪽 세계에서 일본이 멸망시킨 세계와 현실 세계에서 미국에게 죽은 피해자는 위치상으로 모든 면에서 일치하지 않아, '앵무 대왕의 어리석음으로 일본 국민들이 고통받았다'는 연결고리를 작품 내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전쟁 사업가와 앵무 대왕 중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으며 앵무들도 여전히 잘 살고 있거든요.

 

물론 미야자키 감독이 우익적 사상과는 정반대되는 인물이라는 건 잘 알고 있죠. 이 작품도 그럴 의도가 아니였다는 건 미야자키의 작품관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모두 알 겁니다. 그런데 작품 외적 정보를 모두 배제하고, 작품 내적 정보로만 해석한다면 일본은 일방적인 전쟁 피해자라는 상당히 무서운 해석으로도 연결지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번 작품의 주제 전달 능력이 떨어졌다는 의미이죠. 그래서 이번 작품을 우익적 해석으로 받아들인 관객들에게 '바람이 분다' 때와는 달리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한 겁니다. 의도가 어찌 되었든 관객들이 그렇게 받아들였고, 작품 내적으로 한정해서 심각한 곡해가 아니라면 작품은 그렇게 되어 버립니다. 영화는 결국 관객들을 위한 것이니까요.

 

결론적으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이름값에 의해 상당히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전적 이야기라는 측면을 빼고 보면 모든 요소가 따로 놀거든요. 이미 거장의 자전적 이야기이지만 그것을 빼고 보아도 매력적인 '파벨만스'를 접한 적이 있기에 더욱 부각되는 측면입니다. 물론 40년을 했으면 자전적 이야기 하나 만들 수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 이전에 작품에서 다루고 싶었던 게 자서전 외에도 너무 많았던 게 아닐까요? 

영화에도른자
12 Lv. 14167/15210P

https://www.instagram.com/luka.movie/ (도른자의 인스타도 한 번씩 방문 부탁해요옹)

[ ★★★★★ 영화 목록 ]

 

TOP 13. 애프터썬

TOP 12. 마더

TOP 11. 너와 나

TOP 10.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TOP 9. 안녕, 용문객잔

TOP 8. 서브스턴스

TOP 7. 콘크리트 유토피아

TOP 6. 괴물

​​​TOP 5. 하나 그리고 둘

TOP 4. 기생충

TOP 3. 바빌론

TOP 2. 버닝

TOP 1. 헤어질 결심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8


  • 유군택

  • 가가메롱

  • 김만오
  • DontStopMeow
    DontStopMeow
  • 리언하트
    리언하트
  • Robo_cop
    Robo_cop
  • golgo
    golgo
  • 사보타주
    사보타주

댓글 4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1등

사실 '하울의 움직이는 성'도 개봉 당시에 평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가 나중에 추억 보정 좀 껴서 과대평가된 사례이긴 합니다. '벼랑 위의 포뇨'도 그렇고... 물론 명작이라 평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미야자키 작품 중에서 제일 까이는 쪽을 꼽는다면 보통 저 둘이였죠.

19:41
23.10.26.
profile image 2등

이해할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불친절한 영화인 건 틀림 없겠어요.^^

21:54
23.10.26.
profile image 3등
저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크게 실망했습니다.
여기 저기 떡밥을 뿌려놓다가 마지막에 확 쓸어담느라고
이야기를 얼렁뚱땅 넘겨 버리는 전개가 영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22:19
23.10.26.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파문]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6 익무노예 익무노예 15시간 전11:36 1058
공지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 시사회에 초... 20 익무노예 익무노예 4일 전20:03 3104
HOT 2024년 12월 23일 국내 박스오피스 2 golgo golgo 2시간 전00:01 709
HOT 2024년 개봉 코믹북무비 로튼 리스트 1 NeoSun NeoSun 3시간 전22:49 401
HOT 총을 든 스님 간단후기 1 에에올 3시간 전23:19 442
HOT <동경 이야기(1953)> 단평 4 조윤빈 조윤빈 4시간 전22:39 440
HOT 서극 감독 무협영화 <사조영웅전: 협지대자> 첫번째 ... 10 손별이 손별이 5시간 전20:47 872
HOT 빌 클린턴이 뽑은 2024년 최고의 영화 4 카란 카란 5시간 전21:09 1746
HOT '오징어게임' 시즌2 보기전 시즌1 에 대해 알아야... 2 NeoSun NeoSun 8시간 전17:53 1994
HOT 고천락, 임가동 주연 <악행지외> 1월 11일 중국에서 ... 4 손별이 손별이 5시간 전21:26 519
HOT 제가 재미있게 본 팬 무비 2개 2 기다리는자 5시간 전21:20 599
HOT 일본 주말 박스오피스 TOP 10 (12/20~12/22) 5 카란 카란 5시간 전21:04 484
HOT 1933년 소설 '나이트버스' 실사판 '어느날 ... 3 그레이트박 그레이트박 5시간 전20:56 371
HOT 왓이프 시즌3 에피소드 1,2 리뷰(스포) 2 기다리는자 6시간 전20:18 570
HOT 힐링영화 대가족 ~! 6 노스탤지아 6시간 전20:04 379
HOT 호소다 마모루 감독 신작 <끝없는 스칼렛> 2025년 겨... 4 중복걸리려나 6시간 전19:52 946
HOT <타코피의 원죄> PV 공개 5 션2022 8시간 전18:23 507
HOT (약스포) 바운티호의 반란을 보고 3 스콜세지 스콜세지 8시간 전17:48 378
HOT 실사영화 "최애의 아이" 흥행실패 (일본) 6 호러블맨 호러블맨 10시간 전15:55 3003
HOT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우리들의 공룡일기> 후기 3 뚠뚠는개미 10시간 전15:53 525
HOT KBS2 '스즈메의 문단속' 더빙판 방영 예정 8 호러블맨 호러블맨 10시간 전15:50 1595
HOT 오징어게임2 월드프리미어 기념품들 2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11시간 전15:31 1518
1161614
image
손별이 손별이 33분 전02:11 85
1161613
image
손별이 손별이 1시간 전01:15 104
1161612
image
Opps 1시간 전01:12 85
1161611
normal
집에서만보다가 집에서만보다가 1시간 전01:01 95
1161610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00:40 266
1161609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00:24 218
1161608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00:13 270
1161607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00:02 234
1161606
image
카란 카란 2시간 전00:01 212
1161605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00:01 350
1161604
image
golgo golgo 2시간 전00:01 709
1161603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23:58 471
1161602
image
손별이 손별이 2시간 전23:58 159
1161601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23:57 192
1161600
image
에에올 3시간 전23:19 442
1161599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22:49 401
1161598
image
조윤빈 조윤빈 4시간 전22:39 440
1161597
image
Sonatine Sonatine 4시간 전22:25 205
1161596
normal
BeamKnight BeamKnight 4시간 전22:20 451
1161595
normal
와킨조커 4시간 전22:00 339
1161594
normal
와킨조커 4시간 전21:48 718
1161593
normal
Sonatine Sonatine 4시간 전21:47 380
1161592
image
손별이 손별이 5시간 전21:32 540
1161591
image
손별이 손별이 5시간 전21:26 519
1161590
normal
기다리는자 5시간 전21:20 599
1161589
image
카란 카란 5시간 전21:09 1746
1161588
normal
Sonatine Sonatine 5시간 전21:07 181
1161587
normal
RandyCunningham RandyCunningham 5시간 전21:05 342
1161586
image
카란 카란 5시간 전21:04 484
1161585
image
Sonatine Sonatine 5시간 전20:58 441
1161584
image
그레이트박 그레이트박 5시간 전20:56 371
1161583
image
손별이 손별이 5시간 전20:47 872
1161582
normal
기다리는자 6시간 전20:18 570
1161581
normal
노스탤지아 6시간 전20:04 379
1161580
image
중복걸리려나 6시간 전19:52 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