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그어살 2회차 관람은 이세계가 애니메이션 생태계라 생각하고 보았습니다.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주변 인물들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말을 들어서 2회차는 애니메이션 판에 비유해서 감상해보았습니다.
결과는 좋았습니다. 감상 중간 중간에 꽤나 흥미로운 부분도 많이 엿보여서 적어보았습니다.
엄마. 히사코. 히미. 전쟁. 불. 열정.
전쟁은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메세지 중 하나다. 전쟁의 아픔은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제작에 원동력이 되었다. 불에 타 죽은 엄마. 전쟁은 불로 표현이 된다. 그 불은 열정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불(열정)은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무시무시한 존재. 하야오의 열정은 주변 사람들을 꽤나 피곤하게 만들고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세계에서의 히미는 불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큰 할아버지가 준 능력인 불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세계(애니메이션 판)에서 히미에게 불(열정)의 존재는 소중한 것이다.
아이러니.
전쟁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음에도 아버지는 전쟁을 이용해 돈을 번다. 어린 아이인 마히토는 이런 아이러니를 벗어날 능력이 없는 어린 아이일 뿐이다. 하야오도 마찬가지다. 전쟁의 폐해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는 예술가지만 어쨌거나 그것으로 돈을 벌고 있다.
펠리컨. 실패한 제자들. 동화가들.
하야오의 제자가 되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펠리컨들. 무시무시한 경고문은 읽을 능력 조차 없다. 그만큼 꿈에 눈이 멀었다.
문에 들어선 이들은 곧 황폐해진 대지(지브리)를 떠나게 된다. 실제로 지브리에서 근무하다가 작품이 끝나고 떠난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들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기 위해 떠돈다. 그러나 안식처는 없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화하기 위한 곳은 지브리 뿐이다.
결국 돌아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기 위해 하늘로 떠오르는 와라와라들을 잡아 먹으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여기서 와라와라들은 신입 애니메이션 종사자들을 가리키는 거 같다. 다시 돌아온 펠리컨들 때문에 신입들의 자리가 사라진다.
그리고 불(하야오의 열정)에 타서 죽음을 맞는다.
여성 애니메이터들.
비중이 없어보이지만 이들은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는 존재다. 집을 관리하고 요리를 하며 아픈 사람들을 간호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위험한 상황에서 도움을 주는 고마운 조력자들이다.
돌이켜보면 지금이나 예전이나 안 보이는 곳에서도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소중한 존재가 아닐까.
자신이 상처준 여성 애니메이터. 나츠코. 새엄마.
최근에 하야오의 곁을 떠난 오랜 동료의 여성 애니메이터가 있다고 들었다. 나츠코를 그 분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문득 그 생각이 들어서 이런쪽으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마히토는 새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나츠코 씨'라고 부른다. 여성 애니메이터에게 열정(엄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안 나츠코(여성 애니메이터)는 상처를 입고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나츠코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금기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하고 있는가. 이것은 상처를 입은 여성 애니메이터의 아픔을 다시 끄집어내지말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도덕적으로 금기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히토(하야오)는 금기를 어기고 나츠코가 숨어 자고 있는 방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엔 수많은 종이가 걸려있다. 그녀가 작업한 수많은 작업물들이다. 그제서야 마히토(하야오)는 그녀의 수고를 깨닳는다. 종이가 얼굴에 붙고 떨어지자 피부에 트러블이 난다. 이것은 종이에 쏟아부은 노력을 뜻한다. 이때 엄마(열정)라고 부르면서 그녀의 노고를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생각하는 애니메이션 판의 이상향.
이세계(애니메이션 판)를 지키기위해 가족을 떠나 오랜 시간 동안 블록(애니메이션)을 쌓으며 지냈다.
그는 이세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피를 가진 마히토가 후계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수가 많은 앵무새에게도 자리를 넘겨주지 않으려 걷자며 말을 돌리는 등 이전부터 여러 행동을 취하며 회피한다.
마지막에서 미히(열정, 메세지)보다 마히토(하야오)를 더 중요시 하는 모습을 보인다.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불(열정)이 아니라 마히토(하야오의 재능)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이상향)를 유지하고 있는 본인의 블록은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렇게 큰 세계를 주무르고 있는 것이 아슬 아슬하게 세워진 블록이라니 말이 되는가? 그리고 하야오에게도 위태로운 블록으로 세계를 유지해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꿈일 뿐이다. 허무하게 단숨에 무너지고 만다.
양산형 작품을 만드는 제작사와 애니메이터들.
하야오처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극소수다. 양상형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애니메이션 판에 많은 비중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은 애니메이터 계를 지배하려 하고 일을 그르치게 된다.
그러나 현실 세계로 올때 그들은 귀여운 앵무새일 뿐이다. 마히토(하야오)를 속이려 하고 헤치려하는 사람들은 이제 없다. 이상향의 세계에서의 문제일 뿐이지. 욕심을 버리면 사실은 무해한 존재다.
하야오의 프로듀서. 아오사기.
프로듀서는 어쩔때는 교묘해야하고 약삭빨라야 한다. 감독의 시선으로만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서는 진행이 되지 않는다. 감독도 예상치 못한 곳을 바라보며 감독을 속여서라도 이끌어야 하는 존재다. 그것이 감독에게는 안 좋게 비쳐 마찰을 겪더라도 결국엔 도움을 주고 친구가 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오사기(프로듀서)는 블록을 가져온 마히토(하야오)에게 아직도 미련이 남았냐며 기가차한다. 결국엔 포기하듯 당신이 또 작품을 만든다면 같이 일하는 친구가 되겠다며 작별을 고한다.
이렇게 적어보니까 리뷰가 아니라 창작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근데 뭐 이런 잡생각하라고 만든 영화인 거 같고, 이 영화가 나오기만을 몇 년 동안 기다렸던 제가 너무 억울해서라도 이렇게 뽕을 뽑고 싶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인 9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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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좀 단편적으로 불의의 사고로 엄마를 잃은 사춘기 소년이 엄마의 자매를 새엄마로 맞아야 하는 상황과 그녀의 뱃속에 형제가 잉태 돼 있고, 그로 인해 느끼는 나츠코의 불안감/죄책감등으로 해석한 편이었거든요.
제 해석도 상황에 따라 일부 맞다고는 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글쓴 분의 해석이 더 잘 부합되는 것 같습니다.(특히 지옥문??의 경우)
하늘에서 떨어진 돌 > 창의성 / 이세계 > 창의력 안에서 펼쳐지는 애니메이션의 세계 / 돌 > 개인이 가진 창의력의 한계 / 돌을 건넴 > 미야자키가 후인에게 거는 기대 / 결국엔 무너지는 세계 > 지속될 수 없는 지브리 스튜디오와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 세계의 마지막 / 가지고 나온 돌 > 후인이 이어가는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 세계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확실히 미야자키가 최근 보이는 계속되는 은퇴번복과 지브리 스튜디오의 행보들과 부합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할게요!
전쟁미화같다는 평가들로 인해 달걀이 많이 깨졌던데, 저는 전쟁시기에도 유복하게 자란 감독의 어린시절을 오히려 가감없이 표현했다고 느꼈거든요.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면 굳이 축소하지도 확장하지도 않고 비판과 비난도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어요.
본인 스스로의 인생을 반추하면서, 본인 인생에서 또다른 페르소나에 가까운 지브리스튜디오 그 자체도 반추하는 영화였구나.. 싶습니다
덕분에 2회차를 색다른 느낌으로 볼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