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히, <바빌론> vs <거미집> 더 훌륭한 영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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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사랑한다고 해서, 영화감독이 되었다고 해서 영화 찍는 일이 즐거울 수만 있을까.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것으로 생각해 보자면, 꼭 그렇지만 않은 것 같다. 이 영화에 나오는 송강호의 김 감독처럼 영화를 다 찍고 나서 갑자기 결말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럼, 영화 관계자들을 하나부터 끝까지 설득해야 하는 수고는 당연해진다. 그러다 보면 반대 의견도 있고, 겉에선 찬성하지만 뒤에 가선 왜 그러는지 이해 못 하겠다고 터놓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또, 영화 촬영은 왜 이렇게 매끄럽지 않은 것인지 우당탕탕 작고 큰 사고의 연속이다. 그런 일들로 인해 영화 완성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도,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장애물들을 넘어 영화 촬영을 완성했을 때 맛보는 쾌락과 성취! 그런 이야기가 담긴 영화가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이다.
<바빌론>과 <거미집>의 공통점 그리고 미세하지만 커다란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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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데미언 셔젤의 <바빌론>이 떠올랐다. 영화를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고. 등장인물들의 특징이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바빌론>의 주요 인물이면서 전성기를 지나 어떻게든 과거의 영광을 유지하고자 하는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잭 콘래드는 송강호가 연기한 김 감독을 떠오르게 하고. 스타 배우 반열에 오른 마고 로비가 연기한 넬리는 크리스탈 정수정의 한유림을. 이러저러한 잡일을 하면서 성공 욕구를 보이는 디에고 칼바의 매니를 보면 전여빈의 신미도가 떠오른다. 잭 콘래드를 각성시키는 평론가는 극중 송강호 김 감독의 선배 감독을 연기한 정우성의 신감독으로도 보인다. 뭐, 100% 대응되는 캐릭터들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대응시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두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다사다난(多事多難)이다. <바빌론>에서는 할리우드에서 영화 한 편이 완성되기까지 또는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져 왔는지 '역사'를 보여준다. 영화 초반부 난교 파티 장면이나 영화 촬영 중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몇몇 장면들이 그렇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실제 시간도 흐르면서 할리우드의 역사가 깊어짐을 실제 보여준다. <거미집>에서도 영화 촬영 중 배우들의 스캔들 이야기나 국가 기관의 검열 등 많은 일들이 영화판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하다. 이 과정들을 거쳐 지금까지 영화판이 이어졌고 영화가 있어왔다는 것을 두 영화는 보여준다.
그러나, 공통점 안에 차이점이 존재한다. <바빌론>은 할리우드 영화판의 여러 측면과 입체적 인물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서사 자체에 시간의 흐름이 녹아 그 자체로 할리우드 영화판의 역사를 대변한다. 반면, <거미집>은 거미집이라는 영화를 완성하기 위한 인물들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한국 영화사의 특정 시기의 특징만 보여준다. 즉, 영화판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시간의 깊이와 시각의 넓이가 다르다. *<바빌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계급을 상징하기도 한다. <거미집>에는 영화 특성상 계급적 상징은 없다.
IMDb - 등장인물들이 지니는 계급 상징성이 바빌론엔 있다.
두 영화의 주인공은 동일하다. 영화판에 등장하는 대니나 넬리, 잭 콘래드가 주인공인 것처럼 <거미집>의 주인공도 김 감독이나 다른 영화판 인물들이다. 넓게 본다면, 영화감독 자신인 데미언 셔젤과 김지운을 주인공으로 볼 수도 있다. 근데, 여기도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영화감독이 투영되는 인물의 유무다. <바빌론>에서는 데미언 셔젤 감독에 대응하는 직접적인 인물은 없다고 생각되는데, <거미집>에서 송강호의 김 감독이라는 인물엔 김지운 감독이 어느 정도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초반 송강호의 김 감독이 영화 촬영과 영화에 대해 가지는 고뇌를 보여준 부분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바빌론>과 <거미집>은 영화에 대해 각자의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장소를 뜻하는 공통점도 있다. 비유적으로 말이다. 바빌론은 한때 찬란했던 신화적인 고대 도시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이를 할리우드 영화판에 비유적으로 사용했을 뿐 영화에서도 실제 하는 장소는 아니다. 반면, 거미집은 영화판으로 비유되는 장소이기도 하면서, 영화 내에서 실제 하는 공간이다. 이 부분에서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바빌론>과 <거미집>의 마지막 장면에도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바빌론>의 숨은 주인공 대니가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는 장면과 <거미집> 송강호의 김 감독이 배우들을 데리고 자신이 완성한 영화를 보는 장면이 비슷하다.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을 오마주 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공통점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차이점은 존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대니는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데미언 셔젤이 될 수 있고, 배우, 영화를 만드는 스태프 또는 실제 영화를 보는 관람객도 포함될 수 있다.
IMDb - 시네마천국
하지만, 송강호의 김 감독의 경우엔 다르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상징한다기보다는 영화를 찍는 감독을 상징하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더 자연스럽기도 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상징하기 위해 이 장면에서는 송강호 김 감독의 표정이 적절하지 못하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찍고 난 김 감독의 감정을 보여주는 부분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송강호의 김 감독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상징하기 위해선 대니의 표정처럼 연출 되었어야 했다. 비슷한 연출이지만 실제로 보여주는 알맹이가 달라지게 된 것이다. 다른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각 영화가 누구를 위한, 누구의 이야기를 보여준 것인지 명확하게 표출된다.
*여담
<바빌론>에서 마고 로비의 넬리가 갓 연기 스타로 떠오르려는 지점, 넬리가 영화를 찍으며 신들린 눈물 연기를 보일 때 영화 세트장에 불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넬리의 연기를 담기 위해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을 지속한다. 이는 <거미집>에서 송강호의 김 감독이 영화 마지막 화재 장면에서 2층 구석에 감금된 등장인물들의 안전과는 별개로 불이 났음에도 촬영을 지속하는 장면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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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에서 거미집 촬영이 끝나고 난 뒤 모든 배우들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거미집 촬영으로 크고 작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나. 스케줄이 맞지 않아 불평하는 배우, 시나리오가 막장이라는 사람들, 검열 감시 공무원들, 주조연 배우들, 술 먹다 취해 감금당한 배우와 공무원, 영화의 완성을 위해 이들을 조율하는 스태프들, 쩐주까지. 다사다난한 일정이 끝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퇴근하는 배우들의 모습. 영화판도 일반 직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했고. 모두가 우러러보는 사람들이지만 그들 역시 나름대로 문제나 찌질함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 사회가 굴러가듯 영화판도 굴러간다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거미집>을 보고 나서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후기를 적으면서, 바빌론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생각하면서 생각은 달라졌다. 두 영화 모두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시네필들을 위한 영화가 둘 중 뭐냐고 꼽아야 한다면. <바빌론>이라고 생각한다. <거미집>은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감독의, 영화감독을 위한 영화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또는, 김지운 감독 스스로를 위한 영화인 것 같기도 하다. 두 영화가 영화를 이야기하는 시각이 다르다. <바빌론>은 영화라는 나무와 영화판이라는 숲을 잘 이야기했다면 <거미집>은 딱 한 그루의 나무만 다뤘다. 그래서 <거미집>에 <바빌론>보다 높은 점수 주기가 망설여진다.
그렇다고, <거미집>이 재미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유머 포인트 충분하고. 배우들의 열연이 빛나는 영화였다. 특히, 임수정과 크리스탈 정수정 배우의 연기는 기막혔다. 흑백 장면도 유용하게 세련되게 연출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배우들이 등장함에도 각자 담당한 부분에서는 소모적이지 않았고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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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캎흐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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