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보고 (분석 / 스포O)
0.
개인적으로 <미드소마>, <킬링디어>, <아네트> 등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그중 <미드소마>를 연출한 아리 에스터 감독의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봤습니다.
영화를 고대하던 입장이라 최대한 많은 부분을 다룰 거라 스포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 유념 부탁드립니다.
1.
영화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주인공 ‘보’의 출생부터 시작해 죽음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오프닝부터 ‘보’의 험난한 출산과정을 그려내는데, 범상치 않은 건 일반적인 연출과 달리 태아 시점에서 출산과정을 그려냈다는 겁니다.
출산을 하게 되면 보의 ‘모친’은 아기를 바닥에 떨어뜨린 것 아니냐, 왜 아기가 울지 않냐, 아기를 어디로 데려가느냐 등 짧은 순간에 자식에 집착이 심한 모친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고요.
(아마 아리 에스터 감독의 작품-특히 단편까지-들을 봐왔다면 작품의 톤앤매너를 금세 받아들일 겁니다)
2.
그렇게 산만한 오프닝씬 뒤로 현재 정신과 의사와 주인공의 상담씬이 차분하게 펼쳐집니다.
거기서 영화의 출발점인 ‘주인공이 모친을 만나러 간다’는 정보를 대화를 통해 관객에게 던지고, 나아가 편집증이 심한 주인공의 캐릭터를 단시간에 드러냅니다.
여기서 눈 여겨 보면 좋을 건 주인공이 오랜만에 모친을 만나러 가는 이유인데, 그건 부친의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친의 생일은 곧 부친의 기일이기도 한데, 출생에 대한 축복과 죽음이 꼭 동전의 앞뒤면처럼 붙어 있는 셈이죠.
또한, 의사가 약을 처방하면서 ‘꼭 물이랑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영화 내내 물이 빈번하게 등장하며 꽤나 중요하게 쓰입니다.
(편집증이 심해 외출도 힘든 주인공이 처음으로 외출을 감행케 된 것도 약을 먹어야 하는데 수도관이 고장나서 약과 먹을 물이 없어서 물을 사러 가기도 하죠)
추가로 초반을 보면 도심 가운데 옥상에서 한 남자가 뛰어내리는데 사람들은 촬영하기 바쁘고 뛰어 내리는 장면이 있는데, 굉장히 기괴한 상황이며 임상수 감독의 <하녀>의 초반 한 장면이 번뜩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3.
음악 사용이 잘 쓰여서 분위기를 더욱 기괴하게 만드는 데 한 몫 합니다.
초반에 낭만적 배경음악과 난잡한 도시의 소음이 공존하는 등의 사용이나 중후반부에 인상적으로 쓰이는 음악들을 보면 더욱 그렇죠.
점프컷의 사용도 적재적소로 쓰이는데, 보의 편집증을 영화적으로 보여주는 데 제대로 기능합니다.
가령 음악은 틀지도 않았는데(라고 보의 관점에서는 보이죠) 이웃이 시끄럽다고 쪽지를 남기고 벽을 두드리고 하는 장면을 보면 점프컷으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굉장히 잘 묘사함을 알 수 있죠.
(영화가 전적으로 편집증을 앓고 있는 보의 관점에서만 진행되어서 정확한 판단은 어렵지만 추측건대 보는 음악을 크게 틀었을 것 같고 마트 캐셔에게도 욕을 했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아예 그런 상황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고요)
보가 집 열쇠를 잃어버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상황은 아리 에스터 감독의 단편 <Beau>의 그것이 디졸브돼서 단편을 보셨다면 좀 더 흥미로운 요소로 다가오겠네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난잡한 도심 상황이나 사람들에게 빼앗긴 집안 상황 등을 보면 실제 사건이라기 보다 보의 정신상태를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4.
주인공이 모친을 만나러 가는 여정을 그린 로드무비를 주인공의 편집증이 제약을 주고 있었다면, 러닝타임의 30분 째 모친의 사망이라는 사건으로 로드무비를 촉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편집증을 제약이 아닌 로드무비를 다루는 도구로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는 ‘죄책감’입니다.
그건 극 초반부 주인공이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죠.
이 얘기는 결말부와 같이 다뤄야겠네요.
로드무비답게 여러 군데를 배경으로 삼는데 주인공이 공간을 이동하는 방식은 차에 치여서 기절했다가 깨어나거나 GPS 장치 무력화로 인해 기절했다가 깨어나거나 어딘가에 부딪혀 기절했다가 깨어나는 등 항상 기절을 하고 기억일지 망상일지 현실일지 모를 장면 뒤에 공간 이동이 붙습니다.
그리고 그 환상에 가까운 장면은 꼭 물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요.
(결말까지 보노라면 아마 저는 물의 특성 중 물의 반영하는 특성 때문에 그렇게 반복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5.
주인공이 처음 공간을 이동한 곳은 아들을 전쟁으로 잃은 가족의 집인데, 상실이라는 감정에 완전히 전복된 가정입니다.
눈 여겨 볼 건 이 가족의 딸이 죽은 오빠의 방을 페인트 칠하려고 하는데 그 때 페인트 칠하려는 건 기존에 자신의 색인 핑크색입니다.
이마저도 무의미함을 깨닫고 자살의 도구로 먹은 페인트의 색은 오빠와 그의 죽음, 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상징하는 파란색임을 알 수 있죠.
(이 집 시퀀스에서 CCTV로 플래시 포워드 기술이 쓰이기도 하죠)
6.
그 다음으로 공간이동을 하게 되는 곳은 숲의 고아들의 유랑극단입니다.
(여기엔 ‘지나치면 모자람보다 못하다’, ‘꿈을 찾으려면 무지개를 따라가라’ 등 의미심장한 문구들이 가득하죠)
여기서 주인공도 연극을 보게 되는데, 연극의 내용이 사뭇 주인공의 상황과 흡사하고 점점 연극과 주인공이 디졸브됩니다.
양친의 죽음으로 상념에 젖은 남자가 떠나고자 하지만 사슬이 묶여 있어 모험을 택하며 사슬을 끊어버리게 되고, 모험의 결과 가족이 생겼지만 다시 잃어버리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이 불행과 죄는 결국 주인공의 이기심 탓에 발생했다는 건데 사실상 이 긴 러닝타임의 이야기를 축약한 것과도 같죠.
의미심장한 나레이션도 잘 쓰였고, 연극적 요소를 적극 활용한 연출로 극의 환상성을 더욱 살려 굉장히 인상 깊습니다.
7.
러닝타임의 120분이 흘러서야 비로소 히치하이킹을 통해 모친의 집에 주인공이 도착하게 됩니다.
집 앞에는 보가 모친을 주고자 샀지만 유랑극단에 자신을 도와 준 여자에게 건넨 모자상이 큰 조각상으로 세워져 있고요.
130분이 되는 지점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유년시절 사랑한 ‘일레인’이라는 여자와 재회하고 ‘섹스’를 하게 됩니다.
이때 섹스씬은 다각도의 측면으로 볼 수 있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이 믿기로는 섹스하면 죽는다는 부계전통이 있으니) 보에게는 공포로, 일레인에게는 로맨스로, 관객에게는 코미디로 보이니까요.
문제는 후반 40분부터 이야기의 핸들을 돌리면서 시작됩니다.
부계전통대로라면 죽었어야 할 주인공이 죽지 않고 여자가 죽게 되고, 죽은 줄 알았던 모친은 사실 살아 있었다는 다소 느슨한 반전이 펼쳐집니다.
그러면서 모친의 리버스 오이디푸스가 강력히 드러나고 남자 성기 모양을 한 괴물을 직접적으로 등장시키는데 거대한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다소 버거운 양상을 보입니다.
여기서부터 주인공이 늘상 선택하지 않고 문제가 사그라들길 기다리며 죄를 피한 죄책감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데, 그게 너무 직접적이고 지나치게 반복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8.
이제는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는 게 무의미한 결말부에서도 물의 반영 이미지가 중요하게 쓰입니다.
(플래시 포워드로 예측됐던) 호수로 나룻배를 따고 도망친 주인공이 허상으로 만들어진 법정에서 그의 죄를 다투게 되죠.
거기서 불효자의 죄책감에 대한 과장된 항변과 심판을 연출하게 되면서 죄책감에 대한 테마에 느낌표를 찍는 셈이랄까요.
전체적으로 신경학적 로드무비로 볼 수 있어 어느 것 하나 현실에 발 닿지 않아 쉬이 몰입하기 어려운 데다 지나치게 과장하고 흥분해서 말을 하는 격이라 크게 와닿거나 아리 에스터 감독의 전작들처럼 마음이 크게 동요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 줄 평 : 죄책감에 대한 과장된 신경학적 로드무비
추천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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