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6
  • 쓰기
  • 검색

(스포) 애스터로이드 시티 1회차 후 해석

찹쌀찹쌀떡
8147 7 6

 

asteroid_city_17.png.jpg

 

 

 

 

<연극>

최근. 아니, 지금까지 나온 웨스 앤더슨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해석할 여지를 많이 남기는 여백이 많은 영화였습니다. 단순히 '잡지'라는 매체를 영화로 그대로 옮긴 <프렌치 디스패치>와 다르게 이 영화는 '연극'이라는 매체를 연출의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전작과 비슷한 전개 양상을 보여줌에도 많은 분들이 난해해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1회차로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많았습니다.


<연기>

배우들의 연기는 이견의 여지없이 훌륭했습니다. 화려한 출연진을 뽐내기로 유명한 감독이지만 배우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연기를 하기 힘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도 생각됩니다. 그만큼 과잉된 감정을 절제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제이슨 슈워츠먼과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는 굉장히 인상 깊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제이슨 슈워츠먼의 눈빛 연기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혼자만 영화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못지않은 스칼렛 요한슨의 열연도 찬사 받아 마땅합니다. 이렇게 촉촉하고 섬세한 배우였나요? 확실히 슈퍼 히어로 무비스타로 기억되기에는 아까운 배우입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연극의 제목임과 동시에 배경이 되는 도시의 이름입니다. 소행성이 떨어져 생긴 거대한 크레이터가 명물인 어찌 보면 아주 보잘것없는 소도시에 불과해 보이지만 심심치 않게 경찰이 총격을 벌이며 범죄자와 카 체이싱을 벌이기도 하고, 이따금씩 원자폭탄이 터지는 수상한 동네입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작가인 콘래드 어프가 구현하고 싶었던 예술적 세계의 극한이라고 보이기도 하죠.
"인생은 연극이다"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인간의 삶을 투영한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황량하지만 어느 정도 마을로서의 구색은 갖춘 작은 도시. 그 속에서 평범한 일상을 초월하는 정신 나간 사건들. 이것은 마치 웨스 앤더슨 본인의 내면을 투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화적이면서 기묘한 잔혹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테이스트의 세계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소행성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외계인과 소행성>

웨스 앤더슨은 절제된 특유의 카메라 워크로도 유명하죠. 그중에서도 팬(가로)과 틸트(세로)만을 극단적으로 고집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틸트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가 광활한 사막 지대이기에 세로 시각선을 움직이게 할 요소가 없긴 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연출적인 의도라고 보이고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외계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주선이 처음으로 수평적인 구도를 뚫고 하늘에서 침투한 요소이기 때문이죠. 시각적인 충격을 동반한 우주선 즉, 외계인의 등장에는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계인은 행사 중에 나타나 소행성을 슬쩍 가져가곤 일주일 뒤에 다시 슬쩍 돌려주고 사라졌습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돌려준 소행성을 보고 장군은 이런 말을 합니다.

"이런, 그냥 품목을 분류한 거잖아!"

소행성 뒷면에는 외계어로 쓰인 이상한 문자가 쓰여있었죠. 품목을 분류했다? 그 소행성의 품목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주에서 내려와 우주의 존재에게 명명된 이 소행성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여기서 외계인의 존재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기가 콘래드 앞에서 펼친 연기, 그리고 마지막 마고 로비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나오듯 오기의 아내는 죽어서 외계인과 만났다고 묘사됩니다. 아니, 그냥 외계인이라고 말했죠. 외계인은 우주에서 온 존재. 우주는 뭘 상징하죠? 네, 바로 꿈과 이상입니다. 대기권 밖의 세상이 자신의 집 같다던 두 꼬마 아이 어떻게 됐나요? 모든 인간이 꿈꾸는 저 하늘 위에는 사랑이라는 우주. 우주라는 사랑이 존재합니다. 황량한 평원에 큰 구멍을 낸 저 소행성. 도시의 이름조차 소행성으로 짓게 만든 저 돌덩어리의 품목은 바로 '사랑'이었던 거죠.



<흑백의 현실, 컬러의 연극>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작중 현실 장면들이 어땠는지 기억하실 겁니다. 전부 흑백에다가 장면들에선 오묘한 이질감이 듭니다. 저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현실 장면을 연극처럼 연출했다고 느껴집니다. 나레이터의 존재, 좁은 화각, 연극에서 많이 쓰이는 조명 연출, 날려버린 색감, 등이 그 이유죠. 오히려 연극 장면이 진짜 현실처럼 느껴지게 연출됐습니다.  감독 특유의 다채로운 색감 활용,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감정을 가까이서 조명한다거나 탁 트인 광각 화면을 많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주 의도적으로 보입니다. 바로, 현실과 연극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죠. 덕분에 관객들의 입장에서 흑백의 감정선은 다소 무디게, 컬러의 감정선은 굉장히 섬세하게  다가오게 됩니다. 영화에서 자세하게 다뤄지지 않은 두 가지의 의문점이 있습니다. 오기 스틴백과 콘래드 어프(작가)의 관계. 미지 캠밸과 슈버트 그린(연출가)의 관계입니다. 아주 단편적인 정보만 부여됐지만 그들이 서로 예사 관계가 아님을 보여주죠. 컬러의 인물과 흑백의 인물 간의 커뮤니케이션이자 작품 외적 인물과 내적 인물 간의 커뮤니케이션 입니다. 그럼 감독은 왜 이렇게 컬러와 흑백, 연극과 현실을 대비시켰을까요? 저는 바로 이 이유가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죽은 아내의 사진>

극의 3막, 존스 홀(오기 스틴백)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세트장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곤 영화 내내 실내 세트장처럼 표현된 현실의 방들을 지나 처음으로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곳에서
죽은 아내의 역을 맡았던 마고 로비를 마주하게 되죠. 오기가 콘래드의 앞에서 했던 독백의 내용을, 원래라면 극의 일부여야 했을 그 장면을 둘은 재현합니다. 엄마를 만나 외계인을 만났느냐는 우드로의 질문에 오기는 그녀의 사진을 찍어왔다고 하죠(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대사가 자세히 기억이 안 나네요 맥락만 이해해 주세요) 훌륭한 회상 장면인데 왜 빠졌을까 오기가 묻자 그녀는 러닝타임 때문일 거라고 답합니다. 아까 연극은 인생에 비유됐다고 말씀드렸죠? 러닝타임은 곧 우리 삶에 주어진 시간의 은유입니다. 감독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인생은 구구절절한 슬픔의 시간을 담기에는 연극처럼 짧다는 겁니다. 오기에겐 그저 그녀를 추억할 사진 한 장이면 충분했으니까요. 위에서 언급한 각각의 두 장면이 설명이 부족한 이유. 그게 바로 이것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영화의 막바지에 콘래드는 연극의 순회공연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나옵니다. 저는 영화의 시점이 콘래드가 이미 죽은 다음이라고 보입니다. 존스 홀이 아닌 오기 스틴백은 콘래드가 남기고 간 세계 속에서 해답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는 답을 찾았을까요?

"잠에 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

잠은 곧 꿈이고 이 영화에서 꿈은 곧 사랑을 의미했습니다. 즉, 저 말은 사랑을 해야 상실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사랑을 해야 상실을 하고 상실을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오기가 흑백으로 찍은 컬러 세계의 인물을 품고 있는 것처럼, 그 역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존스 홀이 답을 찾을 차례입니다. 흑백의 인물이 창조한 컬러의 세계 속에서 말이죠. 이런 극중극과 현실이 대비되는 영화에선 대개, 극에서 깨우친 진리로 앞으로의 미래를 살아가는 자세를 조명하며 끝이 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반대입니다. 현실이 아닌 연극에서 끝이 나죠. 그는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떠납니다. 사랑의 도시를 떠나, 저 넓은 사막의 수평선 너머로 사라집니다. 긴 꿈을 꾸었네요. 이젠 그도 깨어날 시간이 왔나 봅니다.

 

 

 

 

 

 

오랜만에 두번 보고 싶어지는 영화였습니다. 2회차를 하면 놓쳤던 부분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거고 감상이 바뀔 수도 있겠지요. 그건 그거 나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도 그냥 한 명의 흥미로운 의견 정도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7


  • 제피렐리

  • 이븐771

  • Dedicated

  • 즐거운인생
  • ReMemBerMe
    ReMemBerMe
  • 마이네임
    마이네임
  • golgo
    golgo

댓글 6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1등
이 모두가 미니어처세상입니다.
보는 내내 감탄사가 절로 나오던걸요.
영화가 양옆이 컷트당하던데 액자설정이라 그런거라네요.너무 재밌게 봤습니다.조금 난해하시던 분들은 간단하게 생각하시면 즐겁게 보실수 있을겁니다.저처럼.
04:39
23.06.29.
profile image 2등
쉽지 않은 영화인데...
이렇게 또 여러분들의 흥미로운 해석들 보니 재밌어지네요. ^^
07:42
23.06.29.
정말 멋진 해석입니다👍
영화 보면서 직관적으로 와닫는건 없었는데, 해석하신거 보고 되돌아보니 한층 더 대단한 영화 같습니다.
그리고 웨스 앤더슨만의 절제된 감정 표현들과 소소한 개그들이 너무 좋았네요.
19:14
23.06.29.
웨스 앤더슨 영화중 가장 어려웠지만 이렇게 보니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19:15
23.07.01.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HOT <스머프: THE MOVIE> 예고편 1 카란 카란 2시간 전00:03 517
HOT 2025년 2월 6일 국내 박스오피스 golgo golgo 2시간 전00:01 582
HOT 미치에다 슌스케, 중국잡지 <나이트(KNIGHT)> 화보 1 손별이 손별이 5시간 전21:49 366
HOT 판빙빙, 패션잡지 <정품구물지남> 화보(홍콩영화 복고... 2 손별이 손별이 5시간 전21:45 422
HOT 7월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3종 2 taegyxl 5시간 전21:26 1049
HOT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돌비 포스터 공개 2 시작 시작 5시간 전21:11 1140
HOT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팝업스토어(용산 아이파크몰 ) 4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6시간 전20:52 808
HOT 발렌타인데이 중국개봉 영화 5편(화양연화, 캡틴 아메리카, ... 4 손별이 손별이 7시간 전19:41 456
HOT [넷플릭스] 최근 8일간 추가된 2025/02/05~2025/06/27 공개 ... 2 deskiya deskiya 7시간 전19:19 809
HOT 브로큰 및 퇴마록 간단히 8 하늘위로 8시간 전18:44 1062
HOT [고독한 미식가] 마츠시게 유타카, 유재석 만난다...'... 2 시작 시작 8시간 전18:39 830
HOT (업뎃) 루벤 외스틀룬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이즈 다... 2 NeoSun NeoSun 9시간 전17:20 574
HOT <에일리언>시리즈는 역시 1(1979)이 최고인것 같아요 12 Balancist Balancist 9시간 전17:11 772
HOT '마이클' 디지털 코 포함 제작 예산 초과, 4시간 ... 2 NeoSun NeoSun 9시간 전17:02 677
HOT 한국에 온 고로상 6 카란 카란 10시간 전16:34 2053
HOT <간니발> 새로운 캐릭터 예고 영상 5 카란 카란 11시간 전15:30 913
HOT <서브스턴스> 40만 관객 돌파 3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1시간 전15:15 821
HOT 주윤발 신작 '당탐 1900' 로튼토마토 리뷰 2 golgo golgo 11시간 전15:12 709
HOT '검은 수녀들' 로튼토마토 리뷰 2개 2 golgo golgo 12시간 전14:55 1043
HOT '공동경비구역 JSA' 25주년 GV 사진과 오고간 이... 3 golgo golgo 12시간 전14:41 937
1165841
image
스콜세지 스콜세지 5분 전02:50 14
1165840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00:54 292
1165839
image
hera7067 hera7067 2시간 전00:16 128
1165838
normal
기다리는자 2시간 전00:11 228
1165837
normal
카란 카란 2시간 전00:03 517
1165836
image
golgo golgo 2시간 전00:01 582
1165835
image
hera7067 hera7067 3시간 전23:51 168
1165834
image
hera7067 hera7067 3시간 전23:42 277
1165833
image
선우 선우 3시간 전23:33 349
1165832
image
시작 시작 3시간 전23:22 447
1165831
normal
선우 선우 3시간 전23:18 547
1165830
image
GI 3시간 전23:02 281
1165829
normal
울프맨 4시간 전22:44 460
1165828
normal
그레이트박 그레이트박 4시간 전22:43 178
1165827
image
hera7067 hera7067 4시간 전22:27 441
1165826
image
hera7067 hera7067 4시간 전22:25 317
1165825
image
hera7067 hera7067 4시간 전22:22 208
1165824
image
손별이 손별이 5시간 전21:49 366
1165823
image
손별이 손별이 5시간 전21:45 422
1165822
image
taegyxl 5시간 전21:26 1049
1165821
image
시작 시작 5시간 전21:11 1140
1165820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5시간 전21:11 719
1165819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6시간 전20:52 808
1165818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6시간 전20:38 522
1165817
image
쾌남홍길동 6시간 전20:24 311
1165816
image
울프맨 6시간 전20:24 396
1165815
image
쾌남홍길동 7시간 전19:54 228
1165814
image
e260 e260 7시간 전19:53 231
1165813
image
e260 e260 7시간 전19:52 427
1165812
image
e260 e260 7시간 전19:52 417
1165811
normal
방랑야인 방랑야인 7시간 전19:42 400
1165810
image
손별이 손별이 7시간 전19:41 456
1165809
normal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7시간 전19:34 332
1165808
image
쾌남홍길동 7시간 전19:32 238
1165807
image
RandyCunningham RandyCunningham 7시간 전19:21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