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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애스터로이드 시티 1회차 후 해석

찹쌀찹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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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eroid_city_17.png.jpg

 

 

 

 

<연극>

최근. 아니, 지금까지 나온 웨스 앤더슨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해석할 여지를 많이 남기는 여백이 많은 영화였습니다. 단순히 '잡지'라는 매체를 영화로 그대로 옮긴 <프렌치 디스패치>와 다르게 이 영화는 '연극'이라는 매체를 연출의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전작과 비슷한 전개 양상을 보여줌에도 많은 분들이 난해해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1회차로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많았습니다.


<연기>

배우들의 연기는 이견의 여지없이 훌륭했습니다. 화려한 출연진을 뽐내기로 유명한 감독이지만 배우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연기를 하기 힘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도 생각됩니다. 그만큼 과잉된 감정을 절제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제이슨 슈워츠먼과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는 굉장히 인상 깊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제이슨 슈워츠먼의 눈빛 연기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혼자만 영화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못지않은 스칼렛 요한슨의 열연도 찬사 받아 마땅합니다. 이렇게 촉촉하고 섬세한 배우였나요? 확실히 슈퍼 히어로 무비스타로 기억되기에는 아까운 배우입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연극의 제목임과 동시에 배경이 되는 도시의 이름입니다. 소행성이 떨어져 생긴 거대한 크레이터가 명물인 어찌 보면 아주 보잘것없는 소도시에 불과해 보이지만 심심치 않게 경찰이 총격을 벌이며 범죄자와 카 체이싱을 벌이기도 하고, 이따금씩 원자폭탄이 터지는 수상한 동네입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작가인 콘래드 어프가 구현하고 싶었던 예술적 세계의 극한이라고 보이기도 하죠.
"인생은 연극이다"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인간의 삶을 투영한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황량하지만 어느 정도 마을로서의 구색은 갖춘 작은 도시. 그 속에서 평범한 일상을 초월하는 정신 나간 사건들. 이것은 마치 웨스 앤더슨 본인의 내면을 투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화적이면서 기묘한 잔혹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테이스트의 세계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소행성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외계인과 소행성>

웨스 앤더슨은 절제된 특유의 카메라 워크로도 유명하죠. 그중에서도 팬(가로)과 틸트(세로)만을 극단적으로 고집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틸트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가 광활한 사막 지대이기에 세로 시각선을 움직이게 할 요소가 없긴 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연출적인 의도라고 보이고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외계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주선이 처음으로 수평적인 구도를 뚫고 하늘에서 침투한 요소이기 때문이죠. 시각적인 충격을 동반한 우주선 즉, 외계인의 등장에는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계인은 행사 중에 나타나 소행성을 슬쩍 가져가곤 일주일 뒤에 다시 슬쩍 돌려주고 사라졌습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돌려준 소행성을 보고 장군은 이런 말을 합니다.

"이런, 그냥 품목을 분류한 거잖아!"

소행성 뒷면에는 외계어로 쓰인 이상한 문자가 쓰여있었죠. 품목을 분류했다? 그 소행성의 품목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주에서 내려와 우주의 존재에게 명명된 이 소행성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여기서 외계인의 존재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기가 콘래드 앞에서 펼친 연기, 그리고 마지막 마고 로비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나오듯 오기의 아내는 죽어서 외계인과 만났다고 묘사됩니다. 아니, 그냥 외계인이라고 말했죠. 외계인은 우주에서 온 존재. 우주는 뭘 상징하죠? 네, 바로 꿈과 이상입니다. 대기권 밖의 세상이 자신의 집 같다던 두 꼬마 아이 어떻게 됐나요? 모든 인간이 꿈꾸는 저 하늘 위에는 사랑이라는 우주. 우주라는 사랑이 존재합니다. 황량한 평원에 큰 구멍을 낸 저 소행성. 도시의 이름조차 소행성으로 짓게 만든 저 돌덩어리의 품목은 바로 '사랑'이었던 거죠.



<흑백의 현실, 컬러의 연극>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작중 현실 장면들이 어땠는지 기억하실 겁니다. 전부 흑백에다가 장면들에선 오묘한 이질감이 듭니다. 저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현실 장면을 연극처럼 연출했다고 느껴집니다. 나레이터의 존재, 좁은 화각, 연극에서 많이 쓰이는 조명 연출, 날려버린 색감, 등이 그 이유죠. 오히려 연극 장면이 진짜 현실처럼 느껴지게 연출됐습니다.  감독 특유의 다채로운 색감 활용,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감정을 가까이서 조명한다거나 탁 트인 광각 화면을 많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주 의도적으로 보입니다. 바로, 현실과 연극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죠. 덕분에 관객들의 입장에서 흑백의 감정선은 다소 무디게, 컬러의 감정선은 굉장히 섬세하게  다가오게 됩니다. 영화에서 자세하게 다뤄지지 않은 두 가지의 의문점이 있습니다. 오기 스틴백과 콘래드 어프(작가)의 관계. 미지 캠밸과 슈버트 그린(연출가)의 관계입니다. 아주 단편적인 정보만 부여됐지만 그들이 서로 예사 관계가 아님을 보여주죠. 컬러의 인물과 흑백의 인물 간의 커뮤니케이션이자 작품 외적 인물과 내적 인물 간의 커뮤니케이션 입니다. 그럼 감독은 왜 이렇게 컬러와 흑백, 연극과 현실을 대비시켰을까요? 저는 바로 이 이유가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죽은 아내의 사진>

극의 3막, 존스 홀(오기 스틴백)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세트장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곤 영화 내내 실내 세트장처럼 표현된 현실의 방들을 지나 처음으로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곳에서
죽은 아내의 역을 맡았던 마고 로비를 마주하게 되죠. 오기가 콘래드의 앞에서 했던 독백의 내용을, 원래라면 극의 일부여야 했을 그 장면을 둘은 재현합니다. 엄마를 만나 외계인을 만났느냐는 우드로의 질문에 오기는 그녀의 사진을 찍어왔다고 하죠(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대사가 자세히 기억이 안 나네요 맥락만 이해해 주세요) 훌륭한 회상 장면인데 왜 빠졌을까 오기가 묻자 그녀는 러닝타임 때문일 거라고 답합니다. 아까 연극은 인생에 비유됐다고 말씀드렸죠? 러닝타임은 곧 우리 삶에 주어진 시간의 은유입니다. 감독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인생은 구구절절한 슬픔의 시간을 담기에는 연극처럼 짧다는 겁니다. 오기에겐 그저 그녀를 추억할 사진 한 장이면 충분했으니까요. 위에서 언급한 각각의 두 장면이 설명이 부족한 이유. 그게 바로 이것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영화의 막바지에 콘래드는 연극의 순회공연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나옵니다. 저는 영화의 시점이 콘래드가 이미 죽은 다음이라고 보입니다. 존스 홀이 아닌 오기 스틴백은 콘래드가 남기고 간 세계 속에서 해답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는 답을 찾았을까요?

"잠에 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

잠은 곧 꿈이고 이 영화에서 꿈은 곧 사랑을 의미했습니다. 즉, 저 말은 사랑을 해야 상실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사랑을 해야 상실을 하고 상실을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오기가 흑백으로 찍은 컬러 세계의 인물을 품고 있는 것처럼, 그 역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존스 홀이 답을 찾을 차례입니다. 흑백의 인물이 창조한 컬러의 세계 속에서 말이죠. 이런 극중극과 현실이 대비되는 영화에선 대개, 극에서 깨우친 진리로 앞으로의 미래를 살아가는 자세를 조명하며 끝이 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반대입니다. 현실이 아닌 연극에서 끝이 나죠. 그는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떠납니다. 사랑의 도시를 떠나, 저 넓은 사막의 수평선 너머로 사라집니다. 긴 꿈을 꾸었네요. 이젠 그도 깨어날 시간이 왔나 봅니다.

 

 

 

 

 

 

오랜만에 두번 보고 싶어지는 영화였습니다. 2회차를 하면 놓쳤던 부분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거고 감상이 바뀔 수도 있겠지요. 그건 그거 나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도 그냥 한 명의 흥미로운 의견 정도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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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이 모두가 미니어처세상입니다.
보는 내내 감탄사가 절로 나오던걸요.
영화가 양옆이 컷트당하던데 액자설정이라 그런거라네요.너무 재밌게 봤습니다.조금 난해하시던 분들은 간단하게 생각하시면 즐겁게 보실수 있을겁니다.저처럼.
04:39
23.06.29.
profile image 2등
쉽지 않은 영화인데...
이렇게 또 여러분들의 흥미로운 해석들 보니 재밌어지네요. ^^
07:42
23.06.29.
정말 멋진 해석입니다👍
영화 보면서 직관적으로 와닫는건 없었는데, 해석하신거 보고 되돌아보니 한층 더 대단한 영화 같습니다.
그리고 웨스 앤더슨만의 절제된 감정 표현들과 소소한 개그들이 너무 좋았네요.
19:14
23.06.29.
웨스 앤더슨 영화중 가장 어려웠지만 이렇게 보니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19:15
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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