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 리뷰 - 멀티버스, 작품이 되다
플래시의 첫 단독 영화이자 DCEU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영화, 그리고 개봉 전부터 엄청난 호평과 기대를 받은 영화 '플래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에는 못 미쳤다 해도 충분히 좋은 영화입니다. 특히 본작에서 가장 짚고 넘어가야 할 요소가 바로 멀티버스라는 소재의 활용인데, 지금까지 개봉한 영화들 중 멀티버스 소재의 활용이 가장 훌륭한 축에 속합니다. '플래시'에서 멀티버스 소재는 팬 서비스와 서사적 완성도 양면에서 제 몫을 충분히 다합니다. '노 웨이 홈'이 팬 서비스에 집중하기 위해 서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했고, '닥스 2'의 서사적 완성도는 유니버스 내부의 여러 방해물 때문에 완전히 실현되지 못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마이클 키튼 배트맨의 재등장은 그 시절 배트맨 영화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훌륭한 경험을 선사해 줍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시절 배트맨 영화를 모르는 관객들이라 할지라도 몰입이나 이해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조드 장군이 재등장하고 '맨 오브 스틸'을 오마주한 시퀀스도 많으니 '맨 오브 스틸'을 보면 좋지만, 안 봐도 상관없습니다. 다른 DCEU 영화 역시 몰라도 됩니다. 팬 서비스가 메인 메뉴를 침범하지 않고 오직 서비스에만 그치도록 한 좋은 활용법인데, 서비스의 질마저 만족스럽습니다.
서사적 측면에서는 시간여행 역설과 결정론(운명)이라는 멀티버스와 엮기 좋은 소재를 가족이라는 보편적 정서와 엮어 훌륭하게 풀어 나갑니다. 플래시는 부모님을 구하려고 과거로 되돌아가지만 다른 멀티버스로 떨어지면서 상황이 꼬이게 됩니다. 여기서 플래시가 부모님을 구하거나 또는 구하지 못하게 되려면 이를 납득시킬 만한 설정이 필요한데, 이를 결정론과 연관시켜 시간선을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여 내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때로는 지적으로, 때로는 감성적으로 각본의 선을 넘나드는 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스포 방지를 위해 여기까지만 설명하겠)
단순 히어로물의 구축 측면에서도 멀티버스는 제 역할을 다합니다. 히어로물에는 기원, 성장, 고뇌, 각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미 저스티스 리그에서 등장했던 플래시의 기원과 성장은 다루기 어렵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원래 세계의 배리 앨런이 또 다른 배리에게 능력을 주고 미숙한 그를 성장시키며, 지나쳐 버린 히어로의 기원과 성장을 자연스럽게 다시 보여 줍니다.
또 이야기를 진행시키며 시간선이 꼬였음을 설명하기 위해 원래 배리를 먼저 고뇌하게 만들고, 모든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른 배리의 고뇌와 각성을 시간선 속에서 설명해 냅니다. 히어로물로도 멀티버스 영화로도 특별할 것 없지만, 언제나 반길 만한 소재들이 섬세하게 합쳐지니 결국 특별해집니다. 플래시라는 캐릭터 자체도 에즈라 밀러의 1인 2역 너드 연기로 인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자칫하면 늘어질 수 있는 이야기에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불어넣습니다.
단점은 역시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던 CG 문제입니다. 시간선 내부의 CG는 연출이 워낙 시각적으로 훌륭해서 그냥 코믹스적 표현이겠거니 하고 넘어갔지만, 초반부 병원 장면은 아예 미완성 수준이고 그 외에도 약간씩 배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본작의 하이라이트인 조드와의 전투도 배경이 너무 휑해서 상대적으로 박진감이 떨어집니다. 또한 작중에서 조드와 슈퍼걸은 각본을 위한 도구로 희생된 편에 가깝습니다. 이 둘이 작품에 필요한 이유는 그들이 크립톤인이라 인간 플래시와 배트맨이 그들의 싸움에 제대로 개입하지 못한다는, 결정론(운명)이라는 개념의 도구적 의인화일 뿐입니다.
조금 더 살펴보자면 우선 원래 배리가 다른 세계로 넘어가야 하다 보니 초반부 시퀀스는 약간 불필요한 감이 있으면서도, 생각보다 깁니다. 벤 에플렉의 배트맨은 훌륭한 액션 시퀀스를 선보였지만 결국 다시 만날 일 없는 인물에게 긴 시간을 투자한 셈이고, 플래시의 병원 장면은 CG도 미완성인데 장면마저 늘어집니다. 멀티버스로 넘어간 뒤부터는 분량이 잘 배분되어 즐기기 좋았지만, DCEU의 리부트가 급하게 결정되었다는 주장에 힘을 싣듯 우리가 기대하던 DCEU의 화려한 붕괴는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정말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DCEU의 팬이든 아니든, 본작은 히어로물로써 보여 줘야 할 대부분의 것을 익숙하면서도 특별한 방법으로 선보입니다. 멀티버스를 다루는 유니버스의 최종장이라는 말에 사전 지식이 적은 관객으로써 소외될 것을 우려했는데, 오랜만에 단독으로도 완전히 즐길 수 있는 유니버스 영화가 등장한 것 같아서 행복합니다. 호들갑을 떨 만큼 완벽한 영화는 아니였지만, 무너지는 DCEU의 마지막 자취는 무너지고 있는 MCU에게 조금은 커다란 과제를 선사하고 떠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에도른자
추천인 8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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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보기 전에 궁금해서 스포 우려가 있음에도 여러분들의 감상평 찾아보고 있습니다.
정말 기대됩니다.
(초반 CG만 좀 참고 보면) 기대에 부합하는 좋은 영화일 거예유
글 잘 읽었습니다 ^^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대부분이 동감되네요!
멋진 리뷰 잘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CG는 그래도 애썼다 싶은 생각이지만, 절대적으로 봤을 때 다른 블록버스터들보다 아쉬운 건 사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