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 스포일러 리뷰
방금 막 플래시를 보고 왔습니다. 사실 에즈라 밀러 배우분의 이슈로 상영 전부터 불안불안하고, 잘 모르는 감독님의 작품이라 걱정되는 마음을 가진 채 영화를 관람했는데요. 솔직히 말해서 기대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DC에서 제대로 된 오락영화를 뽑아 냈네요. 경쟁자인 MCU의 작품들은 부진한 모습들을 보여주며 세계관 속 서사가 쌓여가면서 관객들의 피로를 유발하는 반면 지금 시점에 나타난 플래시는 DC 세계관에 대한 약간의 리부트 & 제대로 된 오락거리를 선사하면서 만족감을 주는 느낌이네요. 가벼운 기대를 하고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최고의 경험을 즐길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긍정적으로 볼 요소들이 굉장히 많아요. 이 영화의 장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1. 오락영화로서 완벽한 톤
DC의 캐릭터들은 항상 신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슈퍼맨은 말할 것도 없고 원더우먼, 배트맨, 아쿠아맨 모두 강인하고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존재라는 생각이 들죠. 플래시는 유일하게 그 반열에 들지 않으면서 유머러스하고 가벼운 분위기를 가져갑니다. 이 가벼운 분위기 속에는 우리가 여지껏 DC에서 봐왔던 저스티스 리그 속 발가락 농담마냥 처참한 유머가 아니라 진짜로 웃기고 공감할수 있는 유머가 들어가 있고, 극을 이끄는 플래시에게 찰떡같이 들어 맞습니다. 배리 앨런은 선한 마음씨를 지닌 약간 어설프고 부족한 면모를 지닌 인물이라 존재 자체만으로 활기가 불어 넣어집니다. 영화 초반부 등장하는 말 많은 종업원, 자신들의 팬, 직장속 동료들, 18살 배리의 룸메이트들 등 누구와 만나도 케미가 터지죠. 이건 유한 성격을 지닌 배리 앨런에게만 국한되는 말은 아닙니다.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그 무자비한 폭력을 선보이는 배트맨도 어딘가 귀여운 모습이 있고, 잠깐 등장하는 밴 애플렉의 배트맨은 정의의 올가미에 걸려 자기 치부를 드러내며 술술 뱉어내며 아쿠아맨은 술에 꼴은채 걷다가 나자빠집니다. DC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확실하게 영화의 무드를 잡을 줄 알고, 캐릭터들을 활용할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을 가장 많이 느낀 게 주인공에게 연민이 느껴진다는 것임니다.
2. 주인공에게 연민을 지닐 수 있다
앞서 말했듯 DC의 캐릭터들은 너무 신적이라 그 인물에게 연민을 주기 힘듭니다. 맨 오브 스틸에서는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 슈퍼맨이 실수를 저지르도록 만들었지만.. 그렇게 좋은 결정은 아니었죠. 배리 앨런은 조건에 완벽히 부합하는 인물입니다. 여자도 만나 본 적 없고, 직장에서는 푸대접받고, 어딘가 움츠러들어 있고, 아이들을 아끼고, 자신의 좁은 집 안에서 법의학을 공부하며 아버지의 누명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쏟아 붓습니다. 게다가 영화의 발단은 배리 앨런이라는 인물이 '나의 죽은 어머니를 되살리기 위해' 일어납니다. 이야기에 몰입하기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에게 이입하고 연민의 감정을 느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DC의 캐릭터들 중 이보다 더 관객들에게 격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호소력이 있는 캐릭터는 없었습니다. 여지껏 DC의 히어로들 중 아쿠아맨은 모험을 하기에 바빴고, 원더우먼은 멋있거나 우아한 모습 보여주기에 바빴으며, 배트맨은 잘 설명조차 되지 않았죠. 살짝 어설프고 뭔가 놀리고 싶은 이 청년은 오락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이 사랑할 만한 주인공으로서 완벽합니다.
3. 노웨이홈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플래시는 멀티버스라는 주제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그에 걸맞게 정말 수많은 이스터에그를 기지고 개봉 전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이 주연급으로 등장한다는 정보까지 나왔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인지하면 영화를 관람하기 전 '진성 팬들만 아는 이스터에그들 속에서 나만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장면이 나오는 거 아니야?' 라는 우려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드라마 '플래시'와 관련된 이스터에그가 있나 그런 걱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그런 걱정을 불식시키고 플래시는 그냥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실제로 저는 그냥 지금까지의 DC 작품들 + 모던 에이지 배트맨 1편만 본 수준인데도 너무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슈퍼맨이나 고전 영화? 속 복장의 플래시, 슈퍼걸과 함께 등장하는 슈퍼맨 등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스터에그도 있었지만 영화를 보는데 큰 지장이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노웨이홈을 보려면 스파이더맨의 세 시리즈를 다 봐야 하는 거냐며 불만이 있던 사람들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플래시는 그런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솔직히 노웨이홈도 그런 비판을 받을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너무 만족스럽게 영화관 밖을 나올 수 있었고 DCEU의 마무리를 플래시같은 영화가 지어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정사로 취급되지 않고, 더수스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고 있는 작금에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환호하며 반길 DC의 영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 분위기를 이어가며 마블과 디시가 영화로 선의의 경쟁을 벌일 수 있게 되면 좋겠네요.
p.s 마블도 분발 좀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