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원작 애니와 실사 영화 내용 비교
엠바고도 해제되고 해서 기억을 되살려 적어봤습니다.
빠진 부분 있을지도 모릅니다.^^
원작 보신 분들에겐 스포일러가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영화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스포일러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 달라진 오프닝
원작 애니의 오프닝에선 에릭 왕자가 탄 범선의 뱃사람들이 바다 속과 인어에 대해 노래하는 “신비한 바다 밑(Fathoms Below)”이 나왔는데, 영화 오프닝에선 그 노래가 안 나옵니다. 대신 뱃사람들이 인어처럼 보이는 물개(혹은 듀공)을 작살로 잡으려 하고, 바다의 왕 트라이튼에 대해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냅니다(원작에선 경외감을 가졌는데...) 시작부터 육지 인간들과 바다 왕국 사이의 갈등을 애니보다 강조하고 있죠. 한편 “신비한 바다 밑”은 영화 중간에 에리얼이 배 위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 파티를 구경할 때 에릭과 뱃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로 잠깐 나오긴 합니다.
2. 트라이튼왕과 딸들의 관계(세바스찬의 역할)
원작에선 오프닝에 이어 바다 왕국이 나오고 인어들의 왕 트라이튼과 그의 딸들이 소개되는 음악회 장면이 나오죠. 여기서 딸들이 “Daughters of Triton”을 부르는데... 이게 실사 영화에선 잘렸습니다.
영화에선 음악회가 아니라 바다 전체를 관장하는 트라이튼 왕과 7대양을 각각 지배하는 왕의 딸들(피부색, 인종이 다양)의 정치적 회합처럼 나와요. 트라이튼 왕의 딸들은 원작에선 노래 부르며 화장하는 모습으로만 나왔는데, 영화에선 (소설 설정에 따르면) 각자 초능력이 있는 리더들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그 능력에 걸맞은 활약 장면은 없습니다. 영화 중간에 인간들의 환경오염(!)으로 산호들이 망가진다고 투덜대는 장면은 있어요.
한편 에리얼이 딴짓 하느라 회합에 불참하는 전개는 애니와 같습니다. 그리고 음악회가 없어졌기 때문에 세바스찬은 궁정 음악가가 아니라 시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3. 이야기의 배경과 백인 왕자 캐릭터의 설정
실사판에선 주연배우 할리 베일리가 인어공주 에리얼 역으로 캐스팅돼서 논란이 커졌을 때, 유럽 배경의 안데르센 동화에서 흑인이 웬 말이냐? 라는 비판들이 있었죠. 영화에선 아예 배경을 카리브해 비슷한 곳으로 바꿔버려서 일단은 말이 되는 것처럼 설정을 바꿨습니다. 동양인 서양인, 백인, 흑인이 뒤섞인 언니들이 각자 해당 인종, 민족이 사는 바다를 다스리는 식이고, 에리얼의 담당 구역은 카리브해인 걸로 설명이 되긴 하네요.
그 에리얼 구역에 있는 인간 왕국의 사람들은 대부분 흑인이거나 흑백 혼혈들이 많고, 심지어 (원작엔 없던) 왕비도 흑인입니다. 사람들이 입고 있는 복장들도 <캐리비안의 해적> 같은 영화에 나왔던 것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에릭 왕자(그리고 일부 하인들)만 백인이라서 좀 튀어 보이는데, 그 왕자는 흑인 왕비와 죽은 선왕이 ‘입양’했다는 원작에 없던 설정을 추가했습니다. 이 왕자는 자신이 왕실 혈통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왕자로서 행동하기보다는 뱃사람으로서 모험을 동경합니다. 그리고 위험해진 바다 때문에 폐쇄적이 되어가는 자신의 왕국이 타문화와 더 적극적으로 교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4. 바다 왕국과 인간 왕국의 갈등
영화에서 자세한 상황은 생략했는데, 지나가듯이 하는 대사들로 바다와 육지 사이에 과거 큰 싸움이 있었고, 그 결과 트라이튼 왕의 부인, 그리고 인간 왕국의 왕이 죽었다고 나옵니다. 에릭의 친부모도 그 갈등에서 죽었고요. 이 부분은 자세히 다뤄야 에릭과 에리얼이 로맨스를 할 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원수지간 가문 사이의 금지된 사랑으로 흥미롭게 풀어갈 수 있을 텐데, 대충 그런 게 있었다고 소개만 하고 넘어갑니다. 영화의 후반부는 언제 그런 갈등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원작 애니 그대로여서, 차라리 애초에 그런 설정을 끼우질 말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5. 우슐라 캐릭터 설정에서 추가된 부분
바다 마녀 울슐라가 에리얼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에리얼이 금지된 사랑으로 아버지한테서 크게 꾸중 듣자 접근해 유혹하는 장면은 원작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영화에선 울슐라가 트라이튼 왕과 남매지간이었고, 한때 궁궐에서 살다가 쫓겨난 뒤 다시 권력을 잡으려고 한다는 설정을 추가했습니다. 거의 처음 등장할 때부터 사실은 에리얼이 목적이 아니라 트라이튼 왕의 지위가 목적이라는 야심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트라이튼 왕과의 남매 설정 부분도 잘 다루면, 인간 왕국과의 갈등까지 포함한 권력 투쟁극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 텐데, 마찬가지로 겉핥기식이어서 안 나오느니만 못했습니다. 원작 애니에선 울슐라가 마지막에 가서야 트라이튼과 담판하며 지팡이를 뺏는 장면이 나름의 반전이었는데, 그걸 미리 까보이기도 했고요.
한편 울슐라가 에리얼의 목소리를 뺏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 추가됐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트라이튼 왕의 딸들에겐 각각 초능력이 있다는데, 에리얼에겐 인간들을 유혹할 수 있는 ‘사이렌의 목소리’가 있다고 하고, 인간이 된 뒤 그 목소리로 왕자에게 접근하면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게 만들지 않겠느냐, 그러면서 목소리를 빼앗는다고 나와요.
그리고 울슐라가 에리얼이 서명한 (사기) 계약서를 가지고 트라이튼 왕의 지팡이 빔 공격을 막는 게 원작에서 참 간지 넘쳤는데, 실사 영화에서 바뀐 연출은 그보다 못했습니다.
6. 원작 노래에서 바뀐 가사들
이 부분도 영화 공개 전부터 논란이 됐죠. 디즈니 르네상스 시기의 명작사가 하워드 애쉬먼(1950~1991)이 쓴 원작 애니의 인기 노래들 가사를, 21세기에 맞춘다는 명목으로 고쳤습니다.
울슐라가 에리얼을 유혹하면서 부르는 노래 “불쌍한 영혼(Poor Unfortunate Souls)”에서 “남자들은 수다쟁이 여자들을 따분하다고 생각해. 땅 위에선 한 마디도 안 하는 게 좋아”라고 말하는 부분. 그리고 후반부에 세바스찬이 부르는 “입 맞춰(Kiss the Girl)”에서 “아무 말도 필요 없이 그냥 키스해”란 부분 등이 바뀌었습니다. 소녀들이 목소리 내는 걸 억압해선 안 된다는 게 변경된 이유입니다.
7. 추가된 노래
오래전에 고인이 된 하워드 애쉬먼 대신 새로 투입된 작사가 린마누엘 미란다의 신곡들이 추가됐습니다 왕자가 자길 구해준 미지의 여인(에리얼)을 찾으려 애쓰다가 부르는 노래 “거친 미지의 바다”, 그리고 에리얼이 인간이 된 뒤 육지 생활을 보면서 부르는 노래 “처음으로”입니다. 목소리 잃은 에리얼이지만 내면적으로 부르는 식으로 연출됐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전자는 좀 생뚱맞았고, 후자는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래퍼이기도 한 아콰피나를 바닷새 스커틀 역으로 캐스팅해서인지 스커틀이 세바스찬과 짧게 랩을 하는 “그 소문(The Scuttlebutt)”이란 곡도 추가됐습니다.
8. 삭제된 슬랩스틱 코미디 장면
전체적으로는 심각한 이야기인 원작 애니에서 웃음을 줬던 코미디 장면들이 실사 영화에서 대거 삭제됐습니다. 에리얼이 “저곳으로(Part of Your World)”를 부를 때 혼자서 몸개그를 하며 망가지는 세바스찬 장면, “저곳으로(reprise 버전)”가 다시 나올 때 세바스찬의 턱이 땅에 닿을 정도로 벌어지던 장면(실사판의 세바스찬은 턱이 아예 없죠.), 상어에게 쫓기는 플라운더의 다채로운 표정들(역시나 사실적인 물고기로 디자인되면서 불가능해진 부분), 결정적으로 세바스찬이 인간 세상에서 마주친 프랑스인 요리사 루이가 “Les Poissons”을 부르고, 세바스찬이 식칼 등을 피해 도망치는 장면은 통편집. 그리고 막판에 스커틀과 그가 이끄는 바다 생물들이 바네사(울슐라가 변신한 모습)를 사정없이 공격하는 장면 역시 간소하게 축소됐습니다. 실사판의 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빠졌다고 하네요. 실사 <인어공주>가 재미없어진 큰 이유 중 하납니다.
9. 에리얼의 역할 강조
에리얼이 에릭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 인간 세상을 더 배우고 싶고, 인간 세상에 가고 싶다는 욕망에 대해 계속 이야기합니다. 원작에서도 그러긴 했지만, 영화에선 인간과 인어의 갈등이 더 심해진 상황이라서 에리얼이 더 적극적으로 보이죠. 언니들이 인간들을 욕할 때도 인간들이 다 나쁜 건 아니라고 옹호합니다. 그리고 “입 맞춰” 장면에서 원작에선 세바스찬이 왕자에게 에리얼의 이름을 살며시 알려줬지만, 영화에선 에리얼이 몸짓으로 어찌어찌 왕자에게 자기 이름을 알려주는데요. 그걸 또 찰떡같이 알아듣는 왕자 쪽이 더 대단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바다 마왕이 된 울슐라에게 치명타를 가하는 건 왕자가 아니라 에리얼로 바뀌었습니다. 공주를 구해주는 왕자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영화의 주장으로 보였습니다.
10. 여성주의, 다문화 다인종 찬양
원작의 엔딩에선 인간 세상에 귀한 딸을 시집보내는 트라이튼 왕의 모습이 애틋해 보였는데, 영화판에선 트라이튼 왕이 “인간이 되기 위해 목소리를 잃을 필요는 없다.”며 딸을 격려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왕자와 모험을 떠나는 에리얼을 환송할 때 흑백, 라틴, 동양인 등 다인종 인어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응원합니다.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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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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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변경과 예상 못한 변경이 많군요
여러 정보 감사합니다. 지금 영화계에서 지지하는 바가 뭔지는 알겟는데
굳이 원작 다 뾰샤가며 무지개색으로 만들어야하는진 항상 의문 입니다.
새로 작품을 만들어서 표현하면 정말 좋겟는데
추억은 추억대로 원작 그대로가 좋다고 봅니다.
동성애 캐릭터가 없는 게 의외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