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 손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들
*영국과 아일랜드 전쟁이 끝난 후 북부 아일랜드와 남부 아일랜드로 나뉘는 것에 대해 반대파와 찬성파 사이 내전이 일어난 1923년이 영화의 시대 배경이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 없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
살다 보면 구체적인 이유 없이 어떤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일랜드 이니셰린 섬에 살고 있는 주인공 파우릭(콜렌 파렐)과 콜름(브렌단 글리슨) 사이에 벌어진 일이 그렇다. 둘은 매일 바에 가서 흑맥주를 마실 정도로 친했다. 그것은 그들 일상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어느 날 파우릭은 맥주나 같이 마시자고 콜름을 불러내는데, 콜름은 이에 대꾸하지 않는다. 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파우릭을 투명인간 취급하기 시작한다.
파우릭은 콜름에게 왜 자꾸 바에 나오지 않는지, 대꾸는 왜 안 하는 건지 물으며 그와 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콜름은 질척이는 파우릭에게 네가 지루하다며 더 이상 의미 없는 시간을 같이 보내기 싫다고 말한다. 음악이나 짓고 한 줌의 평화를 느끼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싶다며 파우릭과 만남을 가지지 않으려 한다.
파우릭은 콜름을 이해하지 못한다. 파우릭은 좋은 음악을 남겨 이름을 남기는 것들보다 친구와 이야기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둘은 원래 달랐던 것인지, 갑자기 달라진 것인지. 어느 한쪽이 지금까지 참아왔던 것인지. 아무튼, 그들의 관계는 서서히 멀어진다.
갑자기 돌변한 콜름도 이해하기 어렵고, 끝까지 질척이는 파우릭도 이해하기 어렵다. 둘 다 극단의 태도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이해가 1도 안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어떤 순간엔 친구 보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다. 매번 나가는 술자리가 낭비라고 생각된 적도 있었다. 다른 이유로 친구를 서서히 멀리하던 친구도 있었다. 그런 친구를 어떻게든 보려고 계속 약속을 잡는 친구도 있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해가 되기도 하는 게 인간관계 아니던가.
파우릭이 콜름의 집에서 잠깐 가면을 쓰는 장면이 나온다. 콜름 집의 가면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도 있다. 콜름이 평소 가면을 쓰고 관계를 맺어오다가 파우릭에 대한 스스로의 한계점이 무너져 파우릭을 멀리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지루하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한계점 말이다. 말하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오히려 가면을 벗고 파우릭을 대한 것이 솔직한 콜름의 모습 아니었을까. 파우릭은 가면을 벗고 자신을 대하는 콜름이 낯설고 이해할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손절
파우릭은 콜름의 집이나 바에 갔을 때 창문을 통해 콜름이 있는지, 기분은 어떤지 관찰하듯 살펴본다. 자연스러운 연출이라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창문은 둘 사이의 단절이나 거리감을 말하는 걸로 보였다. 대화로 상대방을 알아 가는 게 아닌 보는 것으로 상대방 상태를 파악하는 것. 이는 친밀함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다. 파우릭과 콜름이 창문을 두고 서로의 얼굴을 보는 장면을 생각하면 파우릭과 콜름이 이니셰린 섬에서 본토를 바라보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들의 모습은 개인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당시 아일랜드의 갈등을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하지만 창문을 통해 훌륭하게 연출했다고 생각한다.
콜름과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파우릭에게 콜름은 자신을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면 자신의 손가락을 자른다며 경고한다. 어쩜 이리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걸까.. 콜름의 단호한 경고에 파우릭은 심각성을 느끼지만 콜름의 잘린 손가락을 보기 전 까진 그의 말을 믿지 못했다. 결국, 콜름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파우릭 집 문에 던지는데. 파우릭은 잘려 버려진 그의 손가락을 그대로 둘 수 없다며 구두 상자에 담아둔다. 이후에도 파우릭은 콜름에게 계속 다가간다.
이에 콜름은 손가락 네 개를 더 잘라 파우릭 집에 던진다. 둘 다 각자의 입장만 내세운다. 갈 때까지 가버린 것이다. 손가락을 자른 건 파우릭과 절대 만나지 않겠다는 앞으로 그와 악수하지 않겠다는, 화해하지 않겠다는 표현 아니었을까. 손가락을 자른 행위도 아일랜드 내전을 의미하는 것 같다. 손바닥으로 악수를 하고 화해를 할 순 없으니까. 진정한 손절이 이런 것인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들도 있으니까
파우릭은 자신이 아끼던 당나귀가 죽어 있는 걸 발견한다. 콜름의 잘린 손가락이 당나귀 입에 들어가 있었다. 파우릭은 콜름이 당나귀를 죽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찾아간다. 콜름은 자신이 당나귀를 죽였다고 고백한다. 파우릭이 콜름의 한계선을 계속 건드려 왔던 것처럼. 이번엔 콜름이 파우릭의 한계선을 건드린 것이다. 이에 파우릭은 일요일 오후 2시 교회를 다녀온 뒤 콜름의 집을 태우겠다고 선언한다.
파우릭은 오후 2시가 되자 콜름의 집에 찾아간다. 불 지를 준비를 하다 창문을 통해 콜름이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한다. 하지만, 파우릭은 집을 불태우기 위해 멈추지 않는다. 콜름은 집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집은 불탔고 파우릭이 불에 타버린 콜름의 집을 다시 찾았을 때 콜름은 해변가에 그의 강아지와 있었다. 콜름은 보이지 않게 집 밖으로 나온 것 같다. 파우릭은 친구를 잃었고, 당나귀도 잃었다. 같이 살던 여동생도 이니셰린을 떠났다. 콜름도 친구를 잃었고, 손가락과 집을 잃게 되었다.
파우릭은 해변가에 서 있는 콜름에게 다가갔다. 파우릭의 눈빛은 이전과 다르다. 아일랜드 본토에선 총성이 들리지 않는다는 둥 그냥 넘기지 못하는 일들도 있는 거라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 둘의 관계가 복원될 희망은 없어 보였다. 이렇게 영화는 끝난다.
이니셰린의 벤시
검색하여 찾아보니 가족 중 누군가의 죽음을 예언하는 여자 유령을 벤시라고 한다. 이니셰린 섬에서 죽음을 예언하는 여자 유령. 영화에서는 늙은 여인으로 나온다. 살아있지만 산송장처럼 보이기도 하는. 극 중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예언하듯 기운을 풍기지만 그녀가 예상한 죽음과 실제 죽음은 달랐던 것 같다.
콜름이 극 중에서 작곡하는 노래의 제목이 이니셰린의 벤시다. 벤시가 죽음을 의미하니 섬의 죽음을 의미하는 노래로 봐도 될 것 같다. 총성이 울리지 않았던 이니셰린에서도 사람은 죽었으니까. 손가락 잘린 손으로 콜름이 연주를 지휘할 때 피가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이런 함의로 봤을 때 이니셰린의 벤시는 아일랜드 내전으로 인한 죽음을 의미한다.
이니셰린은 단절의 공간이다. 직접적인 전쟁 위험으로부터는 안전하지만 죽음이 발생한 공간이다. 주인공을 포함해 이니셰린의 몇몇 주민들을 보면 뉴스와 가십에 집착하고 폭력을 일삼는 사람도 있다. 총칼로 인해서만 사람이 죽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파우릭과 콜름
관계가 틀어진 개인들을 나타내는 캐릭터다. 동시에 아일랜드 내전 당시의 북/남 아일랜드 사람들로 볼 수도 있다. 각자의 입장만 주장할 뿐,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수용하지 못하는 캐릭터이며 당시 내전을 일으킨 아일랜드 사람들로 볼 수 있어 보인다. 콜름의 경우는 내전으로 지쳐 더 이상 세상의 일은 관심 가지기 싫고 한 줌의 평화를 원하는 소시민들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종교
영화에 노골적으로 예수상이 많이 등장한다. 아일랜드 공화국이 되길 원하는 천주교계와 영국과 결속을 원하는 개신교 사이의 당시 갈등을 보여주고자 십자가나 예수상을 보여준 것 같았다. 이들은 종교적으로도 갈등이 있었으니까. 아일랜드는 지금까지도 영토와 종교 갈등이 있다고 한다. 1968년-1998년 북아일랜드 분쟁 기간 동안 3천 명이 넘는 사망자들이 있었다고 할 정도니까. 과거의 사태를 예방하고자 북아일랜드 전역에는 100여 개의 보호벽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https://youtu.be/bnfQAFMcZ2E
개, 말, 당나귀
영화에 동물들이 많이 나온다. 이니셰린 사람들에게 이동 수단이 되기도 하고, 생업을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외로운 섬에서 같이 생활하는 동반자이기도 하고. 시선을 조금 틀어볼 땐, 파우릭과 콜름의 관계로 인해 발생한 희생을 의미한다. 좀 더 넓게 보면 아일랜드 내전으로 인해 발생한 무고한 희생으로 볼 수도 있다.
경찰
이니셰린의 경찰이다. 술꾼이고 아들을 폭행하기도 한다. 돈이면 사람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폭력적이고 비정한 인물이다. 아일랜드 내전이나 시대의 폭력을 의미하는 인물로 봐도 된다.
경찰 아들 도미닉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행동도 조금 특이해 보인다. 하지만, 가장 순수해 보이기도 하는 인물이다. 경찰관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다. 죽은 파우릭의 당나귀와 마찬가지로 무고한 희생을 의미하는 캐릭터로 볼 수 있다. 다른 인물들의 상황을 관찰하는 역할도 한다.
파우릭의 여동생 시오반
똑 부러지는 캐릭터다. 파우릭과 다르게 할 말은 한다. 가장 상식적으로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일반의 소시민이기도 하면서. 죽음의 그림자가 깔린 이니셰린을 벗어나는 유일하게 이상을 꿈꾸는 캐릭터다. 내전이라고 모두가 우울해하며 미래를 그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파우릭과 콜름 두 주인공의 이해하기 어려운 관계처럼 아일랜드 내전도 일반인들이 봤을 땐 왜 벌어진 건지 알 수 없는, 이해하기 힘든 비극 아니었을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우울한 내용과는 대조적으로 아일랜드의 풍경은 기막히다. 기회가 있다면 꼭 극장에서 관람하길!
해변의캎흐카
추천인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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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복잡한 인간관계와 역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부족한 글 정독해주셔 감사합니다.
아일랜드는 다음에 꼭 한번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에서 보여지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