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 아는 후배, 그리고.

영화, 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현실이어서 오히려 무덤덤해진 영화였습니다.
다음 소희.
아마도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던 바를 신랄하게 겪으며 살아온 터라, 오히려 별다르지 않게 느껴졌던 모양입니다.(아마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많이들 놀라실지도.)
비슷하며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래 전 알았던 전화응대 업체가 있었습니다. 여기는 대표와 여직원들이 20명 정도가 팀이 되어서 여러 회사의 하청을 받아 일을 하던 곳입니다. 때론 고객 응대를 맡을 때도 있었지만 골프장 상품권 또는 특정 회사 상품권 같은, 유가증권을 판매하는 계약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면 희한하게도 이곳에 개인 정보가 몇 만 건씩 함께 들어오더군요.(제가 매우 싫어했던...)
판매를 위해 (상대 측에서 만나주면 상품권을 사주겠다는 회유로)만남도 불사하지 않다 보니, 급기야 이 집단은 몸을 팔아 상품권을 판다, 라는 이상한 소문까지 돌더군요. 이러한 오해가 결국 가정에까지 번져 불화로 번지는 일도 보았더랍니다.(대표도 직원들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영화를 보며, 이들은 "이전 소희"인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스치더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암에 걸려 죽은 친구의 마지막 직장이었습니다.
아는 후배이야기입니다.
이 후배는 어느 영화에서 "나 **나온 여자야!", 그래서 짐작할 수 있는, 최상위 대학을 나왔습니다. 당시 각광을 받던 게임 업계에 입사를 했지요. 게임 회사 중 최고라는 그곳에. 누구나 부러워했습니다. 많은 연봉만으로도 딱 설명이 되는, 소위 꿈의 직장. 물론 저는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입사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배를 알았던 이유가 영화였거든요. 대학을 졸업하면 영화를 할 줄 알았던 후배라.
한 5-6년 흘렀나 봅니다.
어느날 그 후배의 학교 선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영화사 PD로 일하던 분인데,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그 후배에 대해 물었습니다.
자살, 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자살은 자살인데, 자신이 게임 회사를 다니며 습득한 지식으로 그와 관계된 모든 웹상의 흔적을 지워버렸다는 겁니다. 흔히 하는 인스타나, 쿠키로 남을 수 있는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기지 않은 채 아무도 모르게.
그의 사망한 모습은, 심지어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발견이 되었다고 합니다. 자살로 종결하려던 경찰에게 부모님께서 받아들일 수 없다, 수사를 해달라, 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휴대폰까지도 해지한 뒤여서 어떤 근거도 찾아낼 수 없습니다, 라며 경찰조차 고개를 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직장 내에서 성희롱과 갑질로 의심할 수 있는 몇몇 논란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주변인들은 거의 알고 있었던 듯했고, 힘들게 얻은 (최고의)직장에 성공이라는 일념으로 대부분 모르쇠로 참고 넘겼다고 합니다. 그게 터진 것 같다, 울며 전화가 왔을 때 제대로 응대해 주지 못해 한이 된다, 라며 (후배의 선배는)흐느끼더라고요.
그는, "현재의 소희"였을까요.
구의역 9-4번 칸에는 아직도 추모의 꽃이 놓입니다.
고공 크레인에서 농성하던 분들은, 그저 인간답게 살고 싶다, 라는 말로 자신의 의견을 갈무리하지요.
다음 소희, 그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거창하거나 자신을 논의거리 삼아 무언가로 발전시키려는 논제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을 거고요.
오늘 뉴스를 보며 여러 사건 사고에 경악한 것도 사실입니다. 할 말은 많지만 익무의 규칙을 존중하기에 적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하나 하고 싶은 말은, 이전 소희였든, 현재의 소희였든, 그리고 누군가 다음 소희라는 끔찍한 상상을 욱여넣으면서도, 이들은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아주 보통의 사람이었다는 점 하나는 짚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보통의 사람은, 오늘도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려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다음 소희.
다음 소희가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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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그 후배라는 분 얘길 보니 가슴이 무거워지네요.

무시로 생각이 납니다. 영화 보며, 선연하게 떠오르더라고요.

한편의 소설 잘 보았습니다
필력이 좋으십니다^-^

오늘도 행복하고 좋은 일 가득한 날 되십시오.

오늘도 좋은 날 되셨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