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의 문단속 (2023) 아쉬움과 속삭임. 스포일러 있음.
스즈메의 문단속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일본판이다.
평범한 여고생 스즈메는 자전거를 열심히 타고 학교에 가다가 배낭을 메고 걸어오는 어느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가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한 스즈메는 자기도 모르게 그를 따라간다. 스즈메는 폐허가 된 마을 한가운데 서 있는
문 하나를 발견한다. 그런데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이상하게 화려하고 황홀한 세계가 넓게 펼쳐져 있다. 그녀는 문 곁 땅바닥에 꽂혀 있는
이상한 돌 하나를 발로 차게 되고 이를 들어올려 살펴보다가 무심히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후 일어나는 것은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스피디하고 기상천외한 모험이다.
상당한 호흡으로 에니메이션이 시작하자 마자 관객들의 마음을 잡아채지만, 매너리즘도 상당히 느껴진다.
주인공 여고생이나 바닷가 마을, 남주인공 쇼타와 스즈메가 만나는 장면들도 모두 감독 전작들과 유사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쇼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시계를 든 토끼 포지션인데, 스즈메와 쇼타 간에 생명을 걸어도 좋을 열렬한 사랑이 금새
생겨나는 것도 좀 무리수 같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감정선을 구축해내고 그들의 감정에 어떤 필연적인 원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했을 것 같다. 사실 이 영화는 연애물이 아니다. 스즈메와 쇼타 간 관계는 좀 더 어떤 근원적인 인간적 관계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너무나 공포스럽고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나머지 공포의 대상을 넘어서서 신적인 존재로까지 받아들여지는 지진을
쫓아 방방곡곡을 함께 헤멘다. 여기서 싹트는 그들 간 관계가 로맨스일까? 나는 좀 더 근원적인 휴머니즘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연애물과 지진을 쫓아가는 주제는 따로 노는 감이 있다.
애니메이션은 느닷없이 로드영화로 바뀐다. 이것도 신선했다. 좁은 바닷가 마을에서 단조롭게 살아가던 스즈메가 신비한 남자
쇼타를 만나고 이상한 문을 발견하고 갑자기 신비한 고양이를 쫓아 일본 전국을 헤메고 다닌다. 그리고 로드영화로서 이 애니메이션은
상당히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새롭고 낯선 세계가 끊임없이 펼쳐진다는 로드무비 특유의 분위기도 잘 살렸고,
계속 등장하는 새로운 지역의 풍광이나 거기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취같은 것도 잘 느껴지게 하였다. 계속 스즈메 앞에 등장하는
각 지역의 인물들 묘사도 충실하고 개성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에서 이 영화는 부실하다. 이 영화는 지진이라고 하는 그 주제를 잘 살리지 못한다.
감독의 전작 너의 이름은에서 그토록 잘 살렸던 운석 낙하의 공포와 자연재해의 생생함이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생생함을 줄이고 동화화한 느낌? 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나 원전 폭발로 불가마가 된 도시를 스즈메가 걸어가는데 공포는 커녕
몽롱함과 센티멘털리즘으로 충만한 그림엽서 그림같은 공간으로 느껴진다. 그러니까, 일본인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외국인은 공감하지 못한다는 평이 나온다. 이 애니메이션에 공포라고 하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인이라서 가지는 생활감정인
공포를 가져야 이 애니메이션을 이해한다는 것은 악평이다. 공포를 이 애니메이션 주제로 만들고, 지진을 안 겪은 외국인들도 그
공포를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했어야 하지 않을까?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관객들이 알아서 애니메이션 바깥에서 가지고 와서 빈 곳에 채워넣어라 같은 식의 어프로치는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일본의 민속신앙을 소재로 썼다는데, 이것이 굉장히 얄팍하다. 똑같이 민속신앙을 가지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거대하고 풍성하고 화려하고 다채로운 세계를 만들어낸 것과는 천지차이다.
요석이었던 고양이 요괴 캐릭터가 얼마나 빈약한가? 비슷한 성격의 일본 전통 신을, 미야자키 하야오는 모노노케 히메에서 얼마나
미묘하고 모순적이고 신비한 존재로 그려냈던가? 지진을 막는 요석이 문 앞에 박혀 있다 정도 가지고 민속신앙까지 갈 것은 없을 듯하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풍성한 디테일이 부족한 것 같다. 특히 쇼타를 비롯한 다른 등장인물들은 거의 캐리커쳐 같다. 휙 그려내서 특징만 잡아냈다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장점도 있다. 그것은 바로 동시대성과 생활감각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기만의 장엄하고 화려하지만 동시에
현실로부터 유리된 것 같은 공간을 만들고 애니메이션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생생한 동시대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분명 우리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그 사람들이다. 시집 못가고 늙어가는 노처녀 이모나 싼값에 산 중고 명품차를 타고 다니는 만년 시험생, 말썽꾸러기 아이들을 돌봐 줄 보모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미혼모 술집 마담 등. SNS로 연결된 사회를 그려내는 것도
효과적이었다.
추천인 7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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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평범한 애니메이션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 애니메이션이 거장 퀄리티를 갖고 있음은 몇분만 보아도 분명히 느껴집니다. 호불호 여지는 있을 지언정 볼 가치는 충분히 있습니다.
막무가내로 나아가는 판타지는 감독 본래의 의도보다도 더 멀리 가버린 듯 했어요.
서사적으로 틈틈이 깨져가는 스토리라인이 예쁜 작화와 몽환적인 OST에 감히 가려질 순 없겠죠.
신카이 마코토, 정말 좋아하는 감독인데 이번 작품으로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좋게 보신 분들도 있어서 다행이에요.
앞으로 더 좋은 영화 활동을 보고 싶어서요 ㅎ 스즈메 많이 기대했는데..
전 오늘 영화를 보고 왔는데 갑작스러운 러브노선에 ?? 라는 생각과 그 서사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네요.
신비로웠던 뒷문의 세계, 지진을 미화한 것도 동의합니다. 폐허가 된 지역에 대한 공포 지진에 대한 공포가 잘 공감이 안되서 아쉬웠어요
하지만 1번 더 볼려구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