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비상선언> - 담다가 흐르고 넘치는
<관상>의 감독님으로 기억하고 있는 한재림 감독님의 신작, <비상선언>을 보고 왔습니다. 사실 <비상선언>을 기대한 이유는 감독님도 있지만, 미리 예고된 쟁쟁한 출연진분들에게도 있습니다. 한 작품에서 각자 주연을 하실 분들이 한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이, 이 배우분들을 모두 한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그 사실만으로 좋은 경험일 것 같았기 때문이죠. 비록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출품되었던 것도 영화에 대한 기대를 크게 했습니다.
<비상선언>의 첫인상은 '참 조용한데 긴장감 있게 잘 만들었다'였습니다. <비상선언>의 초중반부에는 전개에 잡음이 없습니다. 재난 상황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 주려면 시간도 많이 들고 집중이 분산되는데, 영화가 이런 문제를 영리하게 헤쳐나갑니다. 필요한 부분에서는 개인의 이야기를 하고 필요한 다른 부분에서는 집단의 이야기를 합니다. 항공상의 테러의 대처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지상의 이야기도 생략하지 않고 차분하게 전개합니다. 이렇게 극 중 인물이 각기 할 일을 잘 하면서도 재난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재난영화는 흔치 않았습니다. 또 극중 악당 포지션의 테러범의 동기나 사연이 길게 늘어지지 않아 좋았습니다. 상황에 오롯이 집중해 몰입하게 만듭니다.
촬영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4dx를 보려다 어지러울까봐 일반관으로 봤는데, 일반관에서도 느껴질 정도의 박진감이 스크린에 잘 담겨 있었습니다. 특히 항공기 본체가 추락하거나 착륙하는 장면에서는 숨죽일 정도로 몰입감 있는 촬영이 돋보였습니다. 마치 4dx가 아닌데 진동이 느껴지는 아이맥스관에 있는 듯한 착각이.. 어질어질했습니다. 비행기의 구조를 이용한 장면도 영화를 다시 보게 했습니다. 비행기 창의 빛과 밖에 나타나는 풍경 등의 장면들이 무수한 재난 영화들에서 <비상선언>이 돋보일 이유를 만들어주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비상선언>의 문제점은 장점보다 더 심각한 곳에서 생겼습니다. 후반부의 전개가 그렇습니다. 잘 가던 박진감 있는 재난 영화에 갑자기 사회적 메세지가 툭 툭 던져지기 시작합니다. 사회적 메세지가 영화에 녹아드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문제는 이것이 서사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어 극의 흐름을 깼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사는 탈출을 외치는 처절한 재난이지만 메세지는 윤리를 묻고 희생을 묻습니다. 무조건적인 착륙을 선언했다며 안도되는 상황이 다시 고비로 흘러갈 것 같긴 했지만, 그것이 일본 군대의 과격한 공격이라는 것에선 갸우뚱했습니다. 어딘가 이상하다 느낀 이곳부터, 잘 어울려 병행되는 것만 같던 지상과 하늘의 이야기가 심하게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영화에서 급기야 희생을 자처하는 인물이 나타나고, 희생을 자처하는 승객들이 출현하며 영화가 완전히 방향을 틉니다. 한 사람의 희생은 그동안 쌓아온 긴박감과 인물들의 노력을 묻어버리고 희생을 자처하는 승객들은 비장하게 내뱉은 '비상선언'을 무색하게 만듭니다. 캐릭터와 상황에 대해 과감한 전개로 박진감 있게 끌어오던 영화의 모든 과정이 아쉬워진 것 같았어요. 이 감정은 영상통화 장면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그렇게 와닿지 않는 장면이 수십 초 동안 이어집니다. 공동체의 정신과 협의의 수단으로 문제를 차분히 해결해야 할 지상에서는 개인이, 개인의 의견을 듣고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하늘에서는 공동체가 그 역할을 도맡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결국 <비상선언>은 초중반에 영리한 진행으로 얻은 장점으로 유망한 영화가 되었었는데, 후반부에 급격한 추락으로 아쉬운 영화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액션과 재난의 상황에서의 긴장감은 좋았지만.. 사회적 메세지에 대한 장면을 줄이고 재난 본연의 상황에 더 집중했더라면- 혹은 갑작스러운 장면을 줄이고 러닝타임을 더 길게 가져갔더라면- 더 좋은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수정 전의 감독판이 너무 궁금해집니다. 아마 우리가 '갑작스럽다'고 느낀 장면들의 해답이 모두 거기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비상선언>은, 그 동력이 너무 약했던 것 같습니다.
2.5 / 5.0
해피페이스
추천인 2
댓글 1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아이돌 출신 배우 임시완이 차세대 탑배우로 비상(飛上)했음을 선언(宣言)하는 영화가 되어버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