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개봉기념으로 풀어보는 외계에서 온 우뢰매 이야기

스포있지만... 이 영화 나중에라도 찾아 보실 분 계시긴 한가요?^^
저는 요즘 외계+인 덕분에 종종 사람들 입에 (안 좋은 의미로)오르게 된 외계에서 온 우뢰매 시리즈를 실시간으로 보고 자란 세대입니다.
한때 한국 애니의 선구자였다가 이제는 슬슬 감추고 싶은 흑역사가 되어가는 김청기 감독의 1986년 작품이죠.
표절을 변명으로 일관하고, 심지어 한때 자신의 만든 최고의 IP이자 어린이들의 영웅 태권V를 사채업자 광고에 출연시켜 그나마 호의를 가졌던 팬들도 등돌리게 만든 행적들을 보면 파렴치하다는 말도 모자라지만, 그의 작품들을 보다보면 시류를 정확히 읽어내는 발군의 흥행감각이 있습니다. 마징가Z의 표절이 분명한 태권V에 태권도라는 요소를 넣어 차별화시키고 거기에 국뽕까지 얹어낸 것은 가히 천재적인 발상이었습니다. 덕분에 태권V는 소수이긴 하지만 충성도 높은 골수팬덤이 현재까지 존재합니다. 롯데리아가 한때 태권V피규어를 경품으로 꾸준히 민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에도 이런 천재적인 흥행사로서 김청기의 역량이 드러납니다.
때는 80년대, 미국에선 스타워즈가 대흥행하면서 SF블록버스터의 새장을 열었고, 일본에서는 파워레인저등의 특촬물이 활황이던 무렵입니다. 거기에다 기동전사 건담이라는 불세출의 명작이 슈퍼로봇과 리얼로봇의 경계를 허물고 애니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편견마저 허물던 시기이기도 했죠. 이런 시대의 요구를 김청기 감독은 빠르게 인지합니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를 통해 한국에서는 잘 시도되지 않던 '스페이스 오페라'를 '실사로' 도입한거죠.
당시 척박했던 한국 영화계의 상황을 생각하면, 외계에서 온 우뢰매는 당연히 아동용 작품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위해 스타워즈에서 가져온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틀에 저예산으로 제작이 가능한 일본의 특촬 히어로물을 끼얹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당시 최고의 개그맨 심형래를 끌어와 에스퍼맨이라는 히어로 캐릭터를 만들어냅니다.
이건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의 '스'자와 특촬물의 '특'자도 몰랐던 아이들도 심형래라는 '아이돌'을 보러 부모를 졸라 친구와 함께 코묻은 돈을 들고 극장을 찾았습니다. 정확한 집계가 안되던 시절이었지만 이 작품은 투입된 자본 대비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알려졌고, 이후 무려 6편의 극장용 후속작을 내게됩니다. 김청기 영화니만큼 당연히도(?) 주역 로봇 우뢰매는 표절이었습니다. 실사로 로봇을 만들어 찍을 돈도, 여건도 안돼서 로봇이 나오는 액션씬은 그부분만 2D애니메이션으로 처리했습니다. 지금보면 괴리감이 엄청나죠. 와이어 액션이랍시고 야외에서 찍은 씬은 와이어가 다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알리가 없는 아이들은 심형래-에스퍼맨과 우뢰매에 열광했습니다. 레오타드 쫄쫄이를 입은 여주인공 데일리는 누군가에게는 한국판 레이아 공주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김청기가 조악한 표절작을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을 속여서 팔아먹었다...라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우뢰매를 잘뜯어보면 은근히 장점도 많이 보이는 영화입니다. 일단 스토리가 히어로물의 정석입니다. 주인공의 고난, 각성, 지인의 배신, 조연의 희생이 스토리에 시의적절하게 잘 배치되어 있습니다. 에스퍼맨에게 초능력을 주는 등 물심양면 돕던 선한 조력자가 진짜 흑막이라는 반전도 꽤나 설득력 있고, 여태까지 애지중지 키워온 수양딸마저 죽이려한다는 흑막의 잔혹함은 당시 어린이들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에스퍼맨은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면 안되며, 변신장면을 들키면 변신이 취소된다는 재미난 기믹이 있어 심형래 특유의 슬랩스틱 코미디와 찰떡궁합을 이룹니다. 비록 와이어가 보일지언정 액션씬은 합도 잘맞고 무엇보다 재미있습니다.
시리즈가 계속되면 될수록 스케일이 커지며, 매 화 달라지는 다양한 외계인과 적, 아군의 메카닉을 보는 재미도 괜찮습니다(물론 당시의 기준...). 1,2편이 거의 지구에서만 이뤄지는 이야기였다면 3,4,5편은 무대를 우주로 넓혀 드디어 스페이스 오페라의 느낌 정도는 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합니다. 사실상 승리호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다룬 작품은 이게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채광고와 수많은 구설수로 이제 마음이 완전히 떠나간 태권V와 달리 우뢰매에게는 아직 미련이 남아 있습니다. 에스퍼맨은 아직 파워레인저가 들어오기 전 당시 아이들이 유일하게 마음을 줄 수 있었던 '우리 말을 하는 실사 히어로'였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심형래라는 당대 최고의 스타가 가진 아우라는 이 캐릭터를 그저 빨간 쫄쫄이를 입은 배나온 아저씨 이상의 무언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요즘 외계+인이야기가 나오면서 이 영화가 언급될 때마다 딴 건 모르겠고, 좀 리메이크나 해주면 좋겠다는 맘이 가슴 한 구석에 있습니다. 물론 새로 나오는 우뢰매는 과거의 그 표절 로봇이 아니어야 할테고, 에스퍼맨은 디 워 이후 심형래가 보인 수많은 추태(도박, 횡령, 직원 폭행등등)로 더럽혀진 아우라를 깨끗히 씻어낸, 완전히 새로운 인물상이어야 하겠지만 말이죠.
PS.
외계+인을 우뢰매와 비교하는 이야기가 나올때 왜 이건 빼먹지? 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슈퍼 홍길동이죠. 도술도 잘하고 하늘도 잘 나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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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전사 토비카케의 메카닉 디자인들은 지금봐도 최고인 것 같습니다.
우뢰매의 원본인 봉뢰응도 슈퍼비룡의 원본인 폭룡도 너무 멋졌죠.^^
그리고 김청기 감독이 은근히 스토리를 잘 씁니다.
84태권V는 지금봐도 인간과 창조물간의 애증을 잘 그려낸 작품이고, 우뢰매2편은 은근 공포물스런 맛이 일품이죠.
리부트 우뢰매.. 홍길동..
존버.. 🤣🤣

오리지널 태권브이를 마징가의 표절이라고 부르는 20여년 전의 여론이 과하게 퍼진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수퍼 태권브이(자붕글) 과 84 태권브이(완구만 다이야트론) 표절은 부정하기 어려운 과오죠.
왜 자꾸 사람들이 과거의 작품들을 비난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리지널 리티를 끌어오는지 모르겠어요.

극장에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ㅋㅋ
저한텐 영웅이었는데
이런 후일담?이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ㅂㄷㅂㄷ

몇년전에 리부트 한다면서 그래픽노블판 표지를 공개
하기도 했는데 슈퍼맨 트레이싱 한게 그대로 들키기도 했죠.


태권브이 필름 찾았다며 재개봉해서 보는데 내가 이런 영화를 좋아했단 말인가? 했던 기억이 ㅋㅋ
우뢰매 1편 반전이 꽤 충격이었죠.
셀 애니로 그려진 로봇의 활약은 당시 어린이들 보기에 어벤져스 못잖았습니다.^^
그 추억 때문에 구입한..슈퍼미니프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