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스포) <헤어질 결심> 2회차를 하면 보이는 것들, 해야'만' 보이는 것들. (feat. 흥행부진과 개연성)
저는 극장에서 n회차를 거의 하지 않는데요.
<헤어질 결심> 흥행 부진과 관련한 글이 쏟아지던 어젯밤
<매드맥스> 이후 처음으로 <헤어질 결심> 2회차를 하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아주 좋게 봤기에 2회차를 하면 보이는 것들이 숨은그림찾기처럼 즐겁고 재밌었어요.
예를 들어, 엔딩씬에 서래가 모래를 파던 청록색 버킷이 까마귀를 묻어줄 때 사용된 거라던가,
부산 경찰서 회식씬에서 벽에 걸린 사자바위 해변 그림이라던가(이거 발견하신 분 계신가요?? 너무 짜릿했어요!),
호미산에서 해준이 서래씨를 400일 기다렸다고 외칠 때 앞부분 정안과의 잠자리 이후 정안이 '우리 16년 8개월(?) 동안 계속 좋았지?' 물을 때 뭘 그런 걸 다 세고 있냐고 핀잔 주던게 생각나면서 아, 서래에 대한 해준의 마음이 저렇게 변했구나, 박찬욱 감독님이 단어 하나 하나 신경썼다던 게 저런 부분이구나 애틋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2회차를 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아, 처음 볼 때 이해가 잘 안 됐던 것들이 이렇게 표현되서 그랬던 거구나' 하는 부분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야기를 완벽하게 따라가기 위해 펼쳐놓은 정보가 누락되기 쉽게 간접적으로 표현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일례를 들면,
저는 두 번째 보고서야 정안과 해준에게 아들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장면은 초반부 이포의 집과 정안을 소개할 때 벽에 걸린 정안의 원전 기사 스크랩 위에 두 사람의 대화로 표현되거든요.
처음 볼때 저는 시각정보인 '원전 완전 안전'이 재밌어서 거기에 집중해 있었는데,
두 번째 보니 그 장면 끝에 조그맣게 교복 입은 소년의 사진이 스쳐지났다는 것,
그리고 사진 위에 둘의 대화로 '수학 올림피아' '주말에 못 온다' '나 닮아서 이과' 라는 간접적인 정보가 전달되더라고요.
'우리 아들' 정도의 목적어조차 나오지 않아서 시각정보에 집중하면 이미 간접적인 청각정보 만으로 둘에게 아들이 있다는 정보는 쉽게 흘려버리게 되는 거였습니다.
이러한 간접적 대사 표현은 '세련된' 느낌을 주는 장점이 있지만
정보량이 100% 전달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치명적 단점이 생깁니다.
이러한 장면은 이후에도 적지 않게 발견이 되는데요,
아들이야 있건 없건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문제가 없는데 그게 '수사파트'에서 자주 보인다는 게 문제였어요.
다음 예는 철썩이의 첫 취조 장면으로,
이 장면에서 전달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정보는 '철썩이가 호신을 죽였다' 거든요.
저는 처음 볼때 서현우 배우의 연기가 너무 재밌어서 거기에 홀린듯 보다가 속으로 '와 정말 연기 잘 한다. 사투리도 잘 쓰고 너무 재밌어!' 라고 생각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보니까 어머니의 죽음과 호신에 대한 원한에 대해 줄줄 읊어대던 철썩이가 마지막에 가서야 '이런 내가 임호신 하나 못 죽이겠냐'는 대사를 하더라고요.
여기서도 아차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정보가 정신없이 재미있는 대사 뒤에 미괄식으로 붙으니 힘이 약해졌던 겁니다.
대사 자체도 간접적인 구술입니다.
'이런 내가 임호신 하나 못 죽일 거 같느냐'고 반문하니 '그래서 죽였다는 거야? 안 죽였다는 거야?' 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는 거죠.
그에 반응하는 김신영의 반응도 간접적으로 화를 내는 정도니 '분위기 상 죽인 것 같다' 로 결론을 내게 되는 겁니다.
'예! 내가 임호신을 죽였습니다!' 라는 말로 시작하고 뒤에 그 이유를 읊는 거랑은 관객에게 전달되는 정보량이 분명 다르죠.
호신이 정안에게 부재중 전화를 건 것도 처음 볼 땐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 라는 질문이 스쳤지만 다음 이야기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더는 파고 들지 못하고 넘겼던 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두 번째 보니 수산시장에서 네 사람이 만난 씬 마지막 부분에 단서가 있더라고요.
호신이 정안에게 명함을 준 장면 이후 화면은 시선을 교환하는 서래와 해준의 클로즈업으로 넘어가는데
두 배우의 얼굴이 교차하는 위로 호신이 정안에게 '명함 주세요' 라고 (볼륨까지 낮춰) 얘기하는 게 들리더라고요.
첫 관람 땐 둘 사이 오가는 미묘한 시선과 감정에 집중하느라 못 들었던 겁니다.
한 번에 소화하기엔 너무 버거운 양의 많은 정보가 과잉으로 들어간 거죠.
문제는 이 영화의 '수사' 파트를 담당하는 '서래 남편들의 죽음' 사건 자체가 간접적이란 겁니다.
특히 임호신의 경우는 서래가 철썩의 엄마를 죽여서, 그에 분노한 철썩이 임호신을 죽인다, 로 이어지는데요.
이걸 실현시키기 위해 '철썩은 엄마가 죽으면 호신을 죽인다' 라는 명제가 관객에게 단단하게 입력이 되어야 해요.
그런데 이 부분도 1회차 땐 제게 100% 완벽하게 입력이 되지 않았다는 걸 2회차 때 알게 됐어요.
이유는 철썩이 붉은 옷의 서래를 폭행한 후 '우리 엄마 죽으면 호신도 죽는다' 라고 명확히 말을 하는데,
이게 중국어라서 자막으로 처리가 돼요.
철썩의 분노한 얼굴과 직관적인 한국어 청각 정보가 같이 입력됐다면 그보다는 강하게 인지하게 됐을 것 같더라고요.
그 씬이 마쳤을 때 관객은 '이런. 철썩이 엄마 죽으면 서래 큰일나겠네' 라는 생각이 들어야 되는데 거기까지 못 가는 거죠.
만약 호미산에서 서래가 해준의 얼굴을 만지며 "내 손도 충분히 부드럽죠?" 하는 대사가 중국어고 한국어 자막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크기로 마음에 파고들지 않았을 거예요. 그만큼 청각정보는 중요해요.
'인물들이 굳이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가 100% 납득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관객들의 이유가 될 겁니다.
사건 해결과 인물 행동에 논리적 비약이 존재하거든요.
해준은 최연소 경장(? 직책이 생각이 안 납니다)을 할 정도로 직업적 자부심이 강한데,
손 한 번 만지고 립밤 간접키스 하고 데이트 좀 한 '범죄자' 때문에 살인사건 증거를 은폐하고 직업적 자아를 버린 후 붕괴된다,
라는 게 사실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따지면 갸웃할 수 있거든요.
'그런 사람도 있지' 와 '나도 그러겠다'의 차이라고 할까요.
보통의 느와르 영화 속 팜므파탈들이 강력한 육체적 매력으로 무장한 건 '저런 여자 앞에선 나도 그러겠다' 이고,
해준의 경우는 '저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입니다.
전자의 여성들과 다르기 때문에 서래에겐 비교불가한 '유니크'한 매력이 생기지만,
대신 전자의 '보편적으로 납득하기 쉬운 감정이라 설명이 필요 없다'는 장점을 버린 게 된 거예요.
서래의 경우도 그렇죠.
'굳이 죽을 사람을 왜 죽였냐'고 묻는 해준의 대사처럼 서래가 철썩이 엄마를 죽인 건 '해준에게 미결로 남기 위한' 결말로 가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행위입니다.
서래의 살인은 인물의 감정과 내적 동기 보다는 이야기의 진행을 위한 당위성이 더 크기에 영화에 올라타 이 영화가 이끄는 대로 즐겁게 유영하는 관객은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인물의 행동에 이유와 논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객들은 자꾸만 질문이 생기고 그러다보니 영화를 온전히 즐길 수 없게 되는 겁니다.
불호평 중에 '개연성이 부족하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재밌고 좋긴 했는데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는 이유도 그렇고요.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는 n회차 해야 더 많이 보이는 게 매력이죠.
그게 감독님의 고유한 연출력이고요.
'2회차를 하면 보이는 것들'은 일종의 보너스 같은 즐거움으로 대세에 영향이 없지만
'2회차를 해야만 보이는 것들'은 감상에 지장을 줄 수 밖에 없고
그런 부분이 전작들 보다 많은 게 '대중성'과 거리가 생긴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영화를 까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은데 아니에요ㅠ
아주 오랜만에 가슴 뛰는 영화를 만나 너무 기뻤는데 생각보다 흥행이 안 되는 걸 보고 곰곰히 생각하다 든 생각들입니다.
헤결 (일단) 백만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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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최연소 '경감' 일 겁니다
그리고 저도 해준하고 정안 사이에 자녀가 있는 건 알았는데, 아들이야 딸이야 궁금해 했었는데요. (언급하신 사진은 못 봤었네요)
거실에서 정안이 임호신 살해된 사건 ("니가 죽였냐 아님 같이 죽였냐~") 얘기하면서, 해준한테 임호신이 건 부재중 전화 표시를 보여줄 때,
아들
이주임
010-XXXX-XXXX (이게 저장안된 임호신 번호)
이렇게 통화목록이 보여지더라구요.
그제서야 아 아들이구나 싶었네요.
깨알같은 이주임 통화 기록도 보면서, 아 벌써 친밀한 관계인건가 싶었네요.
이름이 ‘철성’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래가 철성이 엄마를 죽인건 해준을 지키기 위해서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ㅋㅋ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된다고 느끼는 분이 계실 줄은 몰랐어요ㅎㅎ 이렇게 하나씩 살펴보니까 재미있네요
와... 정말 1회차로는 부족한 디테일들이 장난 아니네요.. 다른 분들 글 볼 때마다 놓쳤던 게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