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 손녀에게 C학점을 준 교수에 대한 변명...
히치콕 손녀에 관한 에피소드가 여러 영화사이트에서 눈에 띄네요. 이 글에는 '평론가들은 왜 알지도 못하면서 작가의 의도를 마음대로 해석하느냐' 하는 비판적 댓글들이 아주 높은 빈도로 따라 붙습니다. 작가가 그런 의도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고 부정함에도 평론가들은 자신들의 해석을 굽히지 않는다는거죠.
사람들은 명료하고 확정적인 답을 찾길 원합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영화에서 '감독의 내심의 의도' 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의미가 있을거라고 봐요. 만약 감독의 진짜 의도를 잘못 읽은 영화과 교수들이나 평론가들에 대한 비난이 정당하다면 영화 감상은 단순한 감독의 생각 맞추기로 전락해버릴 것입니다.
1년전 쯤인가 영수다 상의원 편에서 김태훈씨가 "고수씨는 가위질 하는 움직임이 크고 시원시원하고 한석규씨는 바느질이 꼼꼼하고 섬세하다.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의도된 연출이냐?"고 고수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듣고보니 캐릭터를 정확히 포착한 해석인 거 같다고 놀라워 합니다. 금요일엔 수다다 프로그램에서도 이동진 평론가가 감독 초대 코너에서 "~~의도로 하신건가요?" 하고 물으면 감독님들이 "그런 의도로 찍은 것은 아니지만 이동진씨의 해석을 들으니 그 쪽이 더 마음에 드네요. 다른 자리에서는 그런 의도로 찍은 장면이라고 말하고 다녀야겠습니다." 하면서 웃는 장면이 종종 나옵니다.
이런식으로 작품은 작가의 의도 하나로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사람의 생각을 자유로이 표현하는 가운데 그 생각들에 따라 변화하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기도 하며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영화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 평론가들의 평론이고 또 소소하게는 영화 게시판 동호인들의 주관적인 감상평들이라고 생각해요.
히치콕 손녀의 사례에서도 가령 히치콕이 손녀에게 현기증은 몇년전 놀이동산에 갔을때 추락하는 듯한 놀이기구의 느낌에서 모티브를 얻어 구상한 작품이라고 했다고 칩시다. 손녀는 히치콕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현기증은 놀이동산에서 느낀 고소공포증을 표현한 작품" 이라고 레포트를 씁니다. 과연 이것이 교수가 원한 정답이고 더 이상의 해석은 원작자의 의도를 무시하는 과잉해석일까요?
만약 히치콕 손녀와 같은과를 다니는 학생이 상업주의 영화의 흐름에 휘둘리지 않고 작가주의를 지킨 히치콕의 생애, 그리고 편집증, 정신분열증, 노출증과 훔쳐보기에 대한 히치콕 감독의 지대한 관심 같은 컨텍스트를 기반으로 "현기증은 전후 냉전이데올로기의 정신분열증을 표현한 작품" 이라는 완성도 높은 레포트를 썼다고 칩시다. 제가 교수라면 정답에 가까운 히치콕의 손녀가 아니라 후자쪽 학생에게 A학점을 주고 싶었을 겁니다. 히치콕의 손녀는 정답을 맞췄지만 그 정답을 도출해내는 과정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평가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저는 한편의 영화가 수십가지의 방향으로 해석되고 궁극적으로 관람객 개개인에게 각자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 감독의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평론가들은 그 수십가지의 가능성 중에 몇가지 굵직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길잡이들 일겁니다. 설령 그 방향이 최초 감독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과 다르다 할 지라도 새로운 길의 개척 가능성을 제시하는 행위 자체가 영화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원작자에게 직접 듣고 쓴 작품의도에 C학점이 부여되었다는 사실만 강조하는 이 글이 영화가 줄 수 있는 다양한 해석가능성을 무가치한 것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것 같아 마뜩치 않네요.
마약밀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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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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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공지글에 바이코딘님께 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이신지 잘 이해가 안가네여ㅋ
(교수도 자기만에 답을 정해놓고 그 안에 가장 근접한 학생들의 레포트를 높게 평가하겠지만 )
그런데 요즘은 히치콕 현기증을 놀리동산에 느낀 고소공포증을 느끼게 해주는 끝내주는 상업영화라는 식에 레포트가 더 참신하고 오잉! 하는 독특한 시선을 보여 줄것 같아요
그만큼 이 현기중에 대한 영화도 정신분석학적 해석에 틀이 박혀 그것이 정답처럼 굳어져 맴도는 분위기라 ㅎ
듣고보니 일리있는 말씀입니당ㅋ
제가 사실 이 글을 쓰려고 마음 먹은 것은 인셉션에 관한 놀란 감독의 인터뷰 때문이에요. 놀란 감독이 인셉션은 확정적으로 해피엔딩이며 코브는 현실에 복귀한 것이 맞다고 인터뷰에서 밝혀 버렸습니다. 그 후로 코브가 인셉션 임무에 실패하여 영원히 림보에 빠져버렸다는 해석은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자취를 감추어 버렸죠. 놀란 감독이 왜 그런 의도를 밝혀버렸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코브가 마지막에 도달한 곳이 림보였는지 현실이었는지 알 수 없었듯이 관객들이 영화상영시간동안 스크린 속으로 빠졌다가 복귀한 현실이 과연 진짜 현실인지 아니면 아직 영화속 가상현실인지 확신 할 수 없다는 점이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매력중 하나라고 생각했거든요. 감독이 의도를 밝히며 '림보설'은 힘을 잃어버렸지만 그 전에 림보설을 지지하던 평론가나 동호인들의 의견이 무의미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오히려 그런 반대의견 때문에 영화의 의미가 더욱 풍부해지기도 했었는데 말이죠. 개인적으로 놀란의 인터뷰는 관객들의 상상력을 제한해버린 경솔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도 결론에 답을 말해달라고 해서 그래 결론은 이거다 말해준건가요 ㅎ 인셉션 결말이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긴 했죠. 전 당시 꿈은 이어진다 투 비 컨티뉴로ㅎㅎ
창작자라면 자신의 작품이 자신이 만들었을 때의 의도로 읽히기를 바랄 겁니다. 이렇게 저렇게 햇으니까 이 부분에서 이렇게 느끼면서 마지막에는 딱!!! 하고 느끼겠지? 하고 말이죠.
물론 이 예측범위를 벗어날 때도 있고 거기에 생각치 못한 의미들이 부여될 때가 있습니다. 그것 또한 창작자가 누리는 즐거움이겠죠.
그러나 그 범위가 너무 크면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이 곡해당한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럼 답답하지 않을까요?
아니 왜 자꾸 그렇게 읽는거야...... 그건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죠.
놀란은 그런 부분에서는 어떤 창작자의 고집을 부리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애매하게 끝을 맺긴 했지, 그런데 그래도 그건 해피엔딩이다!!
자기 작품 속 주인공이 아뜩한 세월을 헤매다가 현실에 도착하고, 그 순간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잖아요.
그런데 림보설은 인셉션의 모든 러닝타임을 그냥 지옥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저는 만약 주인공이 끝내 행복해지고 만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많은 사람이 그걸 지옥이라고 받아들인다면 그걸 좀 고쳐주고 싶기도 할 것 같아요.
내내 헤맸는데 그게 다 뻘짓입니다. 아 시발 쿰 이라는 전개를 전 정말 안좋아하거든요. 그건 여태 몰입한 사람들의 감정을 기만하는 트릭 같기도 하구요.
팽이는 일종의 맥거핀이고 거기에 안절부절할 수는 있겠지만 행복을 의심하진 말아라, 라는 어떤 창작자의 곤조같은 게 아닐까요 ㅋ
예전에는 수능 지문 같은 걸 가져와서 다음 중 작가의 의도는 이라고 묻는 문제에 그 작가는 사실 마감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는 이야기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건 뻘짓이다 문학교육 엉망이다 이런 물타기 하는 게 진짜 싫었어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글 잘쓰셨네요. 격하게 공감합니다.
갈수록 평론가들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있는 느낌인데 좀 안타까워요.
정말 훌륭한 지적이십니다. 님의 말씀대로 작품에 대한 해석이 원작자의 단 한 명에게만 고정된다면 그 누가 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고유한 시각을 개진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자연히 작품에 대한 무한한 해석이 차단 되서 결과적으로 문화가 엄청나게 허약해질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문명이라는 것이 사실은 해석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 아닙니다. 일례로 위대한 성현들의 철학들을 해석, 비판하는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철학, 사상을 창조해서 문명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히려 해석의 자유를 억압하고 오직 단일한 하나의 해석만 강요하는 문명은 자연스럽게 시대에 뒤떨어지고 종국에는 망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평론가를 핑계로 해석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극우 파시스트적인 생각에 물든 어리석은 네티즌들의 행태에 실로 화가 납니다. 그렇게 따지면 평론가 증오하는 네티즌들도 자신이 본 작품에 대해 일절 그 어떤 말도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작품에 대해 말을 순간 그 자신도 평론가의 위치에서 해석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평론과 비평의 가치를 제대로 봐주는 이런 글 좋아요~
글 너무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에 많은 부분이 공감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평론과 비평의 가치에 대한 논란을 떠나서 저는 굉장히 흥미로운 글이라 생각되네요 ㅎㅎ
어디서 봤는데
우리나라 문학시험에 어떤 시가 실렸는데,
시의 작가가 문제를 풀다 다틀렸다고 나온 기사를 어디서 본게 생각나 재밌네요..ㅎㅎㅎ
더불어 저는 평론과 비평의 가치를 알기에
저 교수나 관련 수업내용에 어느정도 비판적인 시선을 갖고있기는합니다.
굳이 점수, 학점을 메겨 다양한 관점을 제한하는 것이
영화를 감상하는 시선에 도움이 될까요?
'문화'에 한해서는 저런 수업방식은 조금 피했으면 하는데.
더불어 저는 평론과 비평의 가치를 알기에
저 교수나 관련 수업내용에 어느정도 비판적인 시선을 갖고있기는합니다.
굳이 점수, 학점을 메겨 다양한 관점을 제한하는 것이
영화를 감상하는 시선에 도움이 될까요?
'문화'에 한해서는 저런 수업방식은 조금 피했으면 하는데.
얼마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에 대한 정성일 평론가님의 평을 장시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요.
언급하시길 김기덕 감독과 대화시에 김기덕감독의 영화에 대한 해석을 하면 두분이 자주 싸운다고 언급하시더라구요.
요는 감독이 그런식으로 생각하고 만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영화를 보는 사람이 해석하기 나름이 아닐까 하고 알아들었습니다. 영화감독은 의도하지 않고 창작해 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술가라고 하시더라구요.
손녀분이 실제 히치콕 감독의 도움을 받아 레포트를 작성하기 보다는 본인 스스로의 생각만으로 작성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궁금합니다.
보는 관점과.재미는.개개인으.특성인데...
잘읽었습니다.^^
감독은 영화는 내놓은 동시에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관객의 영화라고도 하니..
다르게 볼수도 있는 관점은 있을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어떤 특정한 틀에 가둬두기보다는
자유롭게 생각할수 있는 여지는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히치콕 손녀가 잘못 했네요.
지가 느낀 그대로 써내면 되지 원작자 도움을 받는 자기 정체성 없는 짓을 하다니..
글 잘쓰시네요. 잘봤습니다 정말 격하게 공감하구요
http://dvdprime.donga.com/g5/bbs/board.php?bo_table=movie&wr_id=1102820&sfl=wr_subject&stx=%ED%9E%88%EC%B9%98%EC%BD%95&sop=and#view_head
http://m.extmovie.maxmovie.com/xe/movietalk/8242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