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복수 3부작에 대해 (스포 O)

<기생충> 이전 가장 유명한 한국영화 한작품을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 <올드보이>가 먼저 언급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찬욱 감독님의 세계는 끝없고 정말 매번 진화하신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번 <헤어질 결심>을 보면서도 이 측면에서 많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처음 접한 박찬욱감독님의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이었고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건 역시 <올드보이>였습니다.
박찬욱 감독님 커리어의 가장 중심을 이루고 있는 작품 3개는 역시 복수 3부작 같습니다.
사실 복수라는 소재로 묶인 작품들이긴 하지만..
각 작품만의 개성은 매우 뚜렷하고 오히려 이렇게 묶이는게 조금 낯설다고 저에게는 보입니다.
확실히 <올드보이>, <복수는 나의 것> 2편과 <친절한 금자씨>를 비교하면 분위기가 확 다르죠. 정서경 작가님과의 협업때문일수도 있고 감독님의 연출 방식의 변화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친절한 금자씨는 이 3편중에 가장 개성이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특정 작품들을 묶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3편 모두의 특징은 분명해보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역시 차이가 크게 느껴집니다. <복수는 나의 것>이 저에게는 훨씬 건조한 잔혹함을 담아내었고 <올드보이>는 반대로 끓어오르는 잔혹함을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3편을 간략하게 훑어보자면..
<복수는 나의 것>
기대감은 가장 낮았던 작품이었는데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전체의 주요한 장면에는 거의 자리잡지 않는 배경음악은 오히려 이 영화만의 분위기를 완성시켰습니다.
영화를 보는내내 탄식이 몇번이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3편의 영화중 가장 씁쓸한 작품처럼 보입니다.
가장 사실적이고 동시에 가장 처절한 묘사가 특징인 작품입니다.
아이러니로 시작해 무수히 많은 아이러니를 거쳐 끝내 마지막 순간까지 예상하지 못한 아이러니를 관객 앞에 선보입니다.
누나의 수술을 위해 장기밀매 조직에 접촉했지만 배신당하고 버려져 끝내 적합한 장기 기증자가 나왔지만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게 된 류, 그는 결국 동진의 딸을 납치하게됩니다. 동진은 자신의 딸이 납치당해 살해당했기에 류를 추적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영미를 살해하고 복수를 위해 나아가면서도 순간순간 그 역시 모순을 범하고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됩니다.
영화 내부의 상황만 본다면 장기밀매단의 사기->동진의 딸 납치->류 누나의 자살->동진의 딸의 익사->류의 장기밀매단 살해->동진의 영미 살해->동진의 류 살해->혁명집단의 동진 살해 이런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하나의 사건에선 가해자-피해자의 구도였더라도 이 모든게 어느순간 뒤섞이고 점차 파국으로 다가갑니다. 자신의 복수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행동이 결국 다른 인물의 복수를 야기하게 되고 이 고리는 갑자기 끊어지지 않을 것 입니다.
사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스토리이다보니 보면서 장기밀매단이 사기를 치지만 않았어도..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우리는 한없이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끝없는 아이러니속에서 우리들은 그 일부만을 본 입장이기 때문이죠.
영화는 또 하나 '착각'이라는 소재를 빈번하게 활용합니다. 옆방의 고통속에서 내는 신음을 착각해 자위하는 옆방의 사람들, 사실 물은 깊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어릴적 기억에 의한 착각으로 허망하게 지켜본 류, 사실 스스로도 '착한 납치'라고 지칭할 정도로 유선을 케어했지만 의도적으로 보낸 울고 있는 유선의 사진으로 인한 착각 등 본인이 의도했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저 착각은 이 긴 과정을 일으킨 하나의 원인일 것 입니다.
이런식으로 진행되는 와중에도 역시나 박찬욱 영화의 특징인 부조리함도 남아있습니다.
-사연을 보낸 류가 납치범이었다는 사실에 경품 안보내도 되겠네 라고 말하며 안심하는 라디오 DJ
-자신의 딸의 부검은 소리 하나에도 고통스러워하지만 해고된 노동자의 자해행위를 볼때도, 류의 누나를 부검할때도 별다른 반응없이 오히려 지루해하던 동진의 모습은 이 영화의 테마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이 아닐까 생각이듭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류가 영미의 시체 옆에 서서 피흘리는 장면
-그토록 원했던 복수의 순간이지만 막상 바로 찌르지는 못하고 갈등하던 동진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건조한 잔인함을 선보이기에 가장 보기 힘들 작품입니다. 관객은 끊임없이 탄식하게되고 사실 근본적인 문제인 사회의 부조리함과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함께 투쟁해야할 인물들의 칼날이 서로에게 향하는 과정을 어찌할 수 없이 지켜보게 됩니다. 가장 날것으로 묘사된 박찬욱의 복수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드보이>
이미 검증받은 걸작이다 보니 개인적으론 스포당하고 본게 참 아쉬운 작품입니다. 결말을 모르고 봤으면 지금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왔을까? 싶은 아쉬움이 살짝 남네요. 내용을 일부 알고 봤지만, 보면서도 진짜 잘만든 작품이구나.. 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워낙에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장면들이 많기에 그런 장면들이 과연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는 장면일지 궁금했던 기억이 납니다.
복수는 나의 것과 비교하자면 올드보이는 착실하게 엔딩의 반전을 위해 촘촘하게 설계된 느낌입니다. 작중 등장하는 메시지처럼 '왜 15년 동안 가둬둔것이 아니라 왜 풀어 준건지'를 관객이 잊고 있을때 후반부에 직접적인 대사로 환기시켜주는 것처럼 영화는 이미 예정된 단계를 밟아 진행되는 형태입니다. 영화가 제시하던 정보만을 따라가던 관객 입장에선 그래서 왜 이게 오대수를 15년동안 가두었을까?에 대해 단순하게 오대수의 잘못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클라이맥스의 순간에야 풀어준 이유에 대해 생각해봐라 라고 직접적으로 제시하며 관객 입장에서 영화 전체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복수는 나의 것>과 비교해서 확실히 친절한(?) 느낌의 작품이랄까요
오대수라는 인물은 오프닝부터 남들에게 소리치고 모든 행위의 책임을 남에게로 전가시키던 인물입니다. 경찰서에서 경찰관들에게, 사설감옥에서 관리자들에게 그리고 더 이상 탓할 상대가 없고 시간이 충분히 흐르며 자신 스스로를 괴롭히자 이우진을 그를 풀어줍니다. 역설적이게도 15년이라는 세월동안 자신에 대해 원한을 가질만한 인물을 찾았지만 그 과정에 이우진의 이야기는 전혀 없었죠. 그만큼 본인에게는 사소하고 그저 친구에게 한마디 던진 것이 길고 긴 세월을 지나 자신에게 칼날이 향하게 된 길고 길었던 복수의 과정이었을 것 입니다.
이우진은 철저하게 냉정하고 반대로 오대수는 시종일관 끓어오르는 캐릭터입니다. 모든 복수를 끝낸 이후에야 울먹이며 누나를 위해 뻗었던 손을 놓고 그 손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겨누는 총구로 바뀌어 자신의 손으로 시작된 복수를 결국 자신에게 끝냅니다.
참 생각할수록 독특한 작품인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스릴러의 문법을 따르는 듯 하면서도 중간중간 쉽게 만나본 적 없는 형태의 반전과 연출이 담겨있습니다.
플레인에서 나온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은 반정도 봤습니다. 분량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ㅋㅋ
본편이 120분인데 나머지 디스크들에 담긴 부가영상이 12시간 40분입니다. (올드 데이즈 다큐멘터리 포함)
분명 언젠가는 코멘터리까지 다 보지 않을까 싶은 작품입니다.
<친절한 금자씨>
물론 복수 3부작은 다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3부작 중에는 개인적으론 가장 취향에 덜 맞았던 작품입니다.
<올드보이>와 <복수는 나의 것>은 그래도 완전한 악인은 상대적으로 없어보였기에 더욱 몰입했지만 이 작품에선 철저하게 완성된 형태의 악인(백선생)을 징벌하는 형태로 진행되다보니 앞선 2편과는 다소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복수의 원인을 밝혀간다는 측면에서 <올드보이>와의 유사성은 일부 있지만 금자씨는 철저하게 조력자를 만나 복수를 꿈꾸는 집단을 확장시키는 것에 우선적인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남들 모두에게 친절했던 금자씨가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해 사실 그녀가 친절했던건 완전한 복수를 꿈꾸기 때문이었다라는 이유가 점차 밝혀지고 끝내 복수극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보면서 <복수는 나의 것>처럼 잔혹한 행위가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 앞에서 벌어지는 장면들 (류의 장기밀매 조직단 살해장면 - 금자씨의 자해장면)이 떠오르기도 했고, <올드보이>의 엔딩처럼 복수 이후의 허무함과 피해자 가족이 복수를 끝내고 그저 지친것처럼 나가는 모습의 겹쳐보였습니다.
말 그대로 박찬욱의 복수극중에서 복수 이후의 속죄와 구원이라는 키워드를 온전하게 담아낸 점이 참 좋았습니다.
정리하며..
3편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역시 복수 이후의 허망함 같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결과적으로 끊어지지 않는 복수의 과정을, <올드보이>는 복수를 위해 살아왔기에 막상 복수를 하고나자 자신의 삶의 가치가 없어져버린 인물에 대해 그리고 <친절한 금자씨>는 그렇게 분노하며 복수를 행하지만 막상 잠깐의 순간 이후 현실로 돌아와 계좌번호를 건네는 모습까지..
비현실적인 영화의 순간들에서 감독은 다시 현실세계로 인물들을 밀어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3편 모두 정말 극단적인 체험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론 감독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대중과 맞닿은 천재'라는 표현 같습니다. 주로 봉준호 감독님의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 할때 자주 이용되는 표현이죠. 예술영화-상업영화의 경계가 개인적으론 참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이런 작품들은 정말 한편한편이 소중해보입니다. 말 그대로 줄거리 자체가 흡입력 있어서 몰입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 속에 담긴 수많은 미장센과 연출 방식 그리고 남기는 의문들까지. 한편의 작품을 보고 단순하게 '재미있었다'라고 말하고 잊어버리는 영화가 아닌 끊임없이 생각해보고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보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영화들을 앞으로도 자주 만나고 싶습니다.
paul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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