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보기에 과대평가된 영화 10편.
영화를 보는 시각을 넓힐려면 호평과 더불어 악평도 같이 읽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여러 영화들의 악평들을 읽어보면서 스스로 영화 보는 시각을 갖춰가다가 이번 시간에 가볍게 (제 생각에 비해 과대평가된) 10편을 뽑아 저만의 비평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중경삼림
왕가위 감독, 1994
예술 영화에 현실과는 동떨어진 현학적인 대사를 즐겨 사용하는 감독은 왕가위 뿐만이 아니다. 고다르, 타르코프스키 등등.. 그런데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결점은, 그런 오글거리는 대사들을 아무렇지 않게 쓰면서도 (앞에 들었던 예에 비해) 영화의 톤은 지나치게 밝다보니 대사들이 서사에 녹아들어가지는 않고 관객을 감동시키고 가르치려고 하는 도구로 남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대사나 장면만 머릿속에 떠도는 몇몇 영화들은 그것에 가려져 좋은 메시지를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단점들을 보완하고 절제미를 끝까지 지킨, 미완성작이기에 더 빛나는 <화양연화>가 단연 왕가위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퍼니 게임
미하엘 하네케 감독, 1997
하네케 감독은 이 영화가 대중들이 즐겨 보는 스릴러에 대한 패러디라고 말한다. 그리고 필자는 보기 불편한 폭력적인 장면들을 계속 보여주면서 관객들한테 폭력은 찝찝한 것이라고 무조건적으로 낙인시키려고 하는 그 접근법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슈퍼히어로가 악당들을 때려부수는 마블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폭력을 좋아해서, 옳다고 생각해서가 아니고, 그 폭력의 개연성에 공감하며(예컨대 악당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대가라던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네케 감독은 폭력에 정당성이 어딨냐는 이상하리만큼 자만심에 가득찬 접근법으로 가르치려고만 하지 정작 그것에 대한 해결법을 제시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실제로 이 작품은 개봉 당시 누벨바그를 이끌었던 감독이자 비평가인 자크 리베트의 혹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정공법이 잘 녹아들어간 <히든>(2005)은 개인적으로 2000년대 최고작 10편에 뽑고 싶을 정도로 매우 좋아한다.
로제타
다르덴 형제 감독, 1999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을 때 본 같은 감독의 <내일을 위한 시간>이 감명깊게 다가왔어서, 그들의 이름을 처음으로 세계에 알린 <로제타>에 대해 꽤나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솔직히 좀 많이 실망했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자전거 도둑> 등의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명작들은 불행한 오늘과 더불어 불행을 암시하는 과거와 행복을 꿈꾸는 내일을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넌지시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숨통을 열어주는 동시에 현실의 쓴맛을 제대로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주인공의 심리를 보여주는 극심한 핸드헬드 촬영 기법으로 불행한 오늘의 주인공을 동정하기만 바쁘다.
다르덴 형제의 등장 이후 과거 독립영화계에서는 주인공 뒤에서 핸드헬드로 촬영하는 기법이 무분별하게 많이 사용됐다고 하던데, 그 점도 이러한 나의 비판과 일맥상통한다. "나는 힘들다"고만 말하는 영화는 가난 포르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추구하는 대담함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메시지를 던지는 <자전거 탄 소년>은 그들의 분기점이자 최고작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2004
영화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영화 볼 때 개연성을 많이 따진다고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장면을 쉽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뜨거운" 매체이며, 뇌 비우고 본다고 한다면 이런 장면들에 심취하기 바빠서 오히려 개연성에 너그러워지게 된다. (사실 몇몇 영화들은 설정 그 자체로 개연성을 구축하기도 하므로 그렇게 개연성을 따지는 게 불필요한 경우도 다반사다) 나는 그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예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만큼 좋은 예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난을 마법(혹은 그 유명한 OST)로 치유하거나 무마시키려는(노골적으로 말한다면 "퉁치는") 편의적인 접근법이 자주 사용되며, 갑자기 종전을 선언하는 후반부 장면에서는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하울이라는 인상적인 캐릭터와 그 OST 이 2개 말고는 칭찬할 요소가 안 보이는 영화.
지브리는 마법으로 쉽게 풀어내는 영화보다는, 보통 인간의 삶을 기반으로 초자연적인 요소를 이용해 마법적인 순간을 불어넣을 때 가장 빛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절정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다.
셔터 아일랜드
마틴 스콜세지 감독, 2010
추리할 만한 복선만 넣어두고 정작 폭우 속의 난파선마냥 어디로 흘러가야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은 없는 영화. 디카프리오와 러팔로의 연기 앙상블과 반전 등의 기본적인 구조는 꽤나 괜찮으나, 정작 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적 배경과 그 외적인 요소에 대한 묘사가 너무 부족하다. 과거의 <악마의 씨>부터 최근의 <유전>까지 대부분의 훌륭한 공포 영화들은 설정에서부터 천천히 관객을 옥죄어온다. 정보만 던져주고 풀어나가기 바쁜 영화에서 갑자기 보여주는 공포는 쉽게 휘발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둘러싼 수많은 환자들이 겪는 극심한 공포 혹은 불행한 이야기가 있었더라면 더더욱 무시무시한 섬의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리시맨>을 만든 감독의 전작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기대 이하의 영화.
더 스퀘어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 2017
감독에게 있어 영화를 만드는 데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냉정함이다. 감독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눈이 멀어서 정작 가장 중요한 관객을 무시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겨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퍼니 게임>에서 비판하는 점과 일맥상통하다) 단순히 현대 미술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다면 왜 그것이 비판의 대상으로 선택되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은 있었어야 했다고 본다. 엘리트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허영심에 가득차 보인다는" 이유로 까내리기만 바쁜 영화가 예술 영화계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점은 포지티프와 까이에 뒤 시네마를 비롯한 여러 프랑스 매체로부터 직격탄을 받은 이유로 충분했다고 본다.
과연 올해 황금종려상을 받은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는 어떨지.. 좀 궁금해진다.
킬링 디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2017
칸 상영 당시에도 비평가들 사이에서 별 최고점과 최하점으로 극명하게 갈렸던 작품. 프랑스 매체에서는 별점 최하점을 퍼붓기도 했었는데 개인적으로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영화다. 한때 우리나라 비평가들이 <디워>에서 아리랑 노래가 삽입된 엔딩 장면을 혹평하면서 썼던 용어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장치로 구성된 신)가 있는데, 이 영화야말로 그 용어에 부합한다.
이 영화는 운명과 저주라는 테마에 휘둘려서 갑자기 편의적으로 모든 문제들을 전개시켜나가는 희한한 접근법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없더라도 감독 특유의 블랙 코미디 요소를 넣어서 흥미로운 지점들을 연출하려고 한 감독의 노력은 이해하겠으나 그래도 그 편의적인 접근법은 여전히 거슬릴 뿐이다. 일상적인 요소에서 종교와 신을 심도 있게 다루는 <밀양>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이다. 같은 감독의 작품 가운데에서는 남녀간의 사랑을 블랙 코미디로 다뤄낸 <더 랍스터>를 제일 좋아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2018
흔히들 말하는 "오타쿠" 문화에 대한 우상 숭배에 그치는 영화. 스필버그의 21세기 영화들에 대해 호평을 아끼지 않은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도 별점 최하점을 주며 혹평했던 이 작품은 과거의 대중 문화에 향수를 느낄 관객과 놀기만 바쁘지, 정작 그 문화와 접촉이 별로 없었던 관객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어보인다. (같은 이유로 <어벤저스 엔드 게임>도 명확한 한계를 가진 영화다) 대중 영화라 함은, 남녀노소 모든 대중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대중 영화계의 거장 스필버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느라 가장 기본적인 걸 놓쳐버렸다.
벌새
김보라 감독, 2018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우리나라의 여러 비평가들이 대만의 거장 에드워드 양의 이름을 거론하며 보내던 찬사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자신의 아들이 처음으로 내놓은 애니메이션 신작을 시사회에서 보다가 중간에 극장을 나와서는 한숨을 쉬며 "아직 애야.."라고 말한 바 있다. <벌새>가 그렇다. 진정한 휴머니즘이라 함은 감독 본인의 감상적인 시선은 내려놓고 모든 이와의 화합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여성끼리만의 집단폐쇄적인 연대에 막혀 그 이상을 바라보지는 못한다. 여전히 세상은 살기 힘든 곳이지만 우리는 우리 소신대로 우리를 위해 살아야만 한다고 말하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라는 걸작에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로 미성숙한 작품이다. 박지후 배우의 연기만 남은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존 왓츠 감독, 2021
"예습"이 없으면 흥미롭지 않은 영화는 기본적으로 오만한 영화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90년대 미국에서 살지 않았던 우리가 <펄프 픽션>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서울에서 살아본 적 없는 외국인들도 <기생충>을 재밌게 볼 수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익숙하지 않은 영화의 배경과 설정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개연성이 되기에 "익숙치 않은 설정"이 오히려 메리트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전에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영화들을 다 챙겨보지 않은 팬들에게는 "익숙함"만을 강조하며 이거 좋은 영화라고 설득하기만 바쁘다. 쉽게 말해서 스파이더맨을 이 영화로 처음 보는 관객에겐 별 관심 없는 팬 서비스 영화다.
심지어 그 팬 서비스 영화의 오락성도 이전에 나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눈부신 활공씬을 생각해보면 초라할 정도이다. (왜 굳이 날아다니는 씬을 그렇게나 멀리서 박진감 없이 찍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토비 매과이어, 앤드류 가필드, 톰 홀랜드 이 배우들을 데리고 그 정도로밖에 만들지 못한 존 왓츠 감독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별개로 나는 세 명 모두 좋은 배우들이라고 생각하고 그 가운데 홀랜드는 <파워 오브 도그>의 베네딕트 컴버배치처럼 마블 밖으로 나가서는 아직 명작을 만나지 못한 바람에 자신의 잠재력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글에 조금 수정을 해서 다시 올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은 환영입니다.
추천인 14
댓글 17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개인적으로 더 스퀘어와 레디 플레이어 원에 대한 감정은 저도 비슷합니다.
킬링디어는 좀 생각이 다르지만 중경삼림, 더 스퀘어는 공감가는 면이 있네요.
ㅎㅎ그래도 이런 시각 이런 글들 언제나 환영입니다!
나 이영화 재밌게 봤어요!!! 한마디만 쓰고 끝나는 인상비평이 넘쳐나는 요즘
이런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비평글을 쓰고 올리시는 것 자체가 참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말씀하신 영화들 중에서 저는 <벌새>에 대한 의견이 가장 공감되네요!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