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키초 러브호텔> 욕망이 농익는 곳, 가부키초 러브호텔
여자친구님의 구인으로 <가부키초 러브호텔>을 봤습니다. <내 남자>가 IPTV 직행이라는 소식을 들은 터라 <가부키초 러브호텔>도 왠지 극장에서 보기 어려울 것 같고, 이 영화를 연출한 히로키 유이치 감독과 혜나 역으로 분한 이은우 배우와 함께하는 GV도 예정되어 있다고 해서 꼭 참여하고 싶었던 시사였는데, 구인해 주신 여자친구님께 거듭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영화는 소메타니 쇼타가 연기한 토루가 점장으로 있는 가부키초의 아틀란타 호텔(사실상 모텔)을 주배경으로 6개 정도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상하게 <심야 식당>이 생각났는데요. 깊은 밤, 심야식당에 마스터와 손님들이 어우러지며 각각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듯, 아틀란타 호텔에 의뭉스러운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모여 내제되어 있던 욕망과 사연들을 풀어내기에 그러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인물들을 보면 현대 일본인의 모습, 그리고 일본 사회의 현실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섹스리스 부부의 증가,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쓰나미 재해, 가장들의 구조조정 위기, AV 산업, 꿈과 현실의 괴리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모습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쓰나미를 기점으로 사회의 부조리와 여러 위기 현상들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성토하는 메시지들이 포함된 작품들이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인데, 어떻게 보면 이 작품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을 수 있는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극중에서 약간 뜬금없이 소위 혐한, 일본에서 재일동포들을 쫓아내야 한다는 극우세력들의 시위 현장을 혜나가 가로질러가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궁금한 점 중에 하나였는데, 히로키 유이치 감독은 혜나 에피소드에 이은우 배우와 한국 남자 배우를 기용해서 인지, 토루와 함께 일하는 직원 중에 김 군이라는 한국인 캐릭터를 넣었고, 토루가 김 군의 컵 신라면을 뺏어먹는 장면이 나오며, 혜나의 에피소드를 보여줄 때, 전광판에 한글 자막이 나온다거나 한글로 된 광고 간판이 나온다던지 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자체에 어떤 의도나 함의가 있었던 건 아닌 것 같고, 어떻게 보면 한국 관객들을 위한 팬서비스의 형식으로 미장센을 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이 작품 또한 <내 남자>처럼 IPTV로 직행한다고 합니다. 이번 기회에 극장에서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에는 인상적인 장면과 대사도 많습니다. 시골에 살던 토루의 가족이 대지진 피해를 겪은 후, 부모님이 계속해서 일을 하지만 나아지지 않는 생활 속에서 돈을 벌겠단, 성공해야 겠다는 일념으로 토루의 여동생이 상경하여 AV배우가 된 채, 토루에게 “자신이 살던 곳과 다르게 이 곳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 투성이”라는 식의 대사를 합니다. 자연재해를 입은 지방 소도시의 사람들은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는데, 마치 다른 나라처럼 풍성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수도권의 사람들을 보며 느꼈을 허탈감, 또 그것이 그녀를 부모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직업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AV 배우의 길로 가게 만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쉽게 돈을 벌고 있는 토루의 동생이 “이젠 돈 없이는 못 살겠다”며 한숨을 쉬는 모습에서 자본이란 게 사람을 얼마나 쥐락펴락하고, 때론 초라하게 만드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히로키 유이치 감독의 말에 따르면 혜나의 에피소드에서 두 남녀가 욕조에서 감정을 나누는 롱테이크 신이 극중의 모든 인물을 꿰뚫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이 장면에서 혜나는 남자에게 “나를 씻겨줘, 그러면 내가 했던 것들이 씻기겠지? 라고 말합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사요나라 가부키초>입니다. 한국 제목을 <가부키초 러브호텔>이라고 지은 건, 2차시장에서 어필하기 위한 저의로 이해는 되나, 단순히 ”러브호텔“이라는 자극적 단어에 집중하려는 느낌이 강해서, 영화의 본질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한국 제목을 정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사요나라 가부키초>인지 마치 유레카! 라는 생각이 드실 정도로 원제의 적절함을 깨달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하나하나 가부키초의 애틀란타 호텔을 졸업한 인물들, 그들의 궁색함이나 욕망의 비루함이 완벽히 씻겨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잠재되어 있는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고, 일대의 일탈을 경험한 그들은 적어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보다 더 값진 인생의 교훈을 얻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장문의 리뷰 감사합니다
영화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네요
시사회에 응당 참석하셨어야 할 분과 함께 하게 영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