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양> 후기 - 샘물처럼 고요히 차오르는 맛 & TIP (노스포)

<애프터 양>은 제 마음으로 차츰 차츰 스며드는 영화였습니다. 익무 언론시사 덕분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의 여운도 좋았구요. 그래서 후기를 작성하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습니다.
이번 <애프터 양>은 감독님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더욱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가급적 코고나다 감독님의 <콜럼버스>(2017)을 보시고 <애프터 양>을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내용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감독님 특유의 스타일을 이해하면, 영화가 더 깨끗하게 잘 보일 겁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드리자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세계가
대화를 밀도 있게 들여다보는 볼록렌즈라면,
코고나다 감독의 세계는
멀리서 그들의 속살거림을 관조하는 오목렌즈입니다.
제가 본 코고나다 감독님의 영화 연출에서의 특징은
차분하게 읎조리는 인물
공간의 위치성과 구도의 미학
아름답고 섬세한 미장센
응시와 관조
이동이 적은 정적인 숏
주제로는
가족과 개인,
디아스포라와 정체성 등등이라고 생각합니다.
장편영화로는 이번 <애프터 양>이 두 번째 작품이기 때문에 규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저는 이러한 나름의 ‘결’이 매우 뚜렷한 감독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애프터 양>은 샘물처럼 고요히 차오르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은은하고, 때론 다정하며, 가끔은 슬픈 영화였습니다. 성긴, 여백이 가득한 대화와 타인의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에 한 점이 남게 되는 영화입니다. 마치 인물에 대한 사려 깊은 감독의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달까요. 그렇습니다.
<애프터 양>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가족처럼 함께 살고 있는 안드로이드 로봇 ‘양’이 작동을 멈춥니다. 가족들은 ‘양’을 고칠 방법을 수소문합니다. 그래서 양의 몸속에 있는 기억저장장치를 발견하게 되고, 그 기억의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가족처럼 지냈지만, 잘 몰랐던 ‘양’의 세계를 탐구하며 펼쳐지는 여러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위의 줄거리처럼 <애프터 양>은 단선적이지 않습니다. 복합적이고 교차적입니다. 홍보 문구에 나와 있듯이 SF, 기억, 상실, 윤리의 문제, 가족, 디아스포라, 동양문화 등등 여러 이야기들이 중첩되어 앞으로 나아갑니다. 단선적이지 않으므로 서사의 명확성을 추구하시는 분들께서는 갸웃하실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 여러 층위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감독님께서 이 이야기 속에 많은 질문들을 숨겨두셨다고 생각합니다. 극장을 나서면서 마음속에 질문들이 고요히 차오릅니다. 이러한 기분을 많은 분들께서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이 영화의 장점은 타인의 세계를 탐구해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그 방법이 SF적이라 신선했습니다. 마치 3D 혹은 VR을 보는 듯했고, 감각적인 미래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마주한 타인의 세계는 내가 알던 세계와는 사뭇 다른 세계입니다. 그래서 인물들의 움직임을 통해 나의 삶을 반추해 보게 하는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코고 나다 감독님 하면 아름답고 섬세한 미장센으로 유명한데요. 무척이나 차분하고 정적인 호흡감 아래 아름다운 미장센을 선보입니다. 파르랑거리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창문 너머의 따듯한 풍경들과 움직임들을 잘 포착해 스크린에 풀어놓습니다. 인물들은 속살거리고요, 그 대화를 관조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화면에 담아냅니다. 응시와 관조를 통해 우리는 질문들을 마음에 품고 돌아오게 됩니다.
코고나다 감독님은 현실에 딱 붙어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분은 아닙니다. 관조의 예술, 강한 공감이 아니라 거리두기를 통한 바라보기를 영화적으로 보여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명확한 서사와 심플한 플롯을 즐기시는 분들께서는 다소 의뭉스러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극장에서 <애프터 양>을 관람하신다면, 이전과는 다른 스타일의 영화적 감각을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추천 드립니다.
팁
1. 상영관은 아주 조용한 곳으로, 팝콘도 없는 곳이 있다면 더 추천
2. 큰 화면과 사운드가 무기, 이왕이면 밝은 화면으로
3. 엔딩크레딧의 음악을 끝까지 다 듣기
4. 잠을 충분히 자고, 컨디션 좋을 때 보기
5. 명확하고 짜임새 있는 서사를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6. 아름답고 섬세한 미장센에 푹 빠져보기
7. 감독에 대해 알고 보면 더 깊게 보인다. <콜럼버스>(2017) 보고 관람하기
P.S. 개인적으로는 돌비시네마로 보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돌비비전의 깨끗하고 밝은 화면으로 본다면 달리 보일 것 같았네요.
개봉후에 봤다가 푹빠져서 뒤늦게 후기들 찾아읽고 있네요. ㅎㅎ
콜럼버스를 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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