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FF] 야밤에 고기집에서 이상일 감독님 만난 이야기
지금 생각해도 너무 우연적으로 맞아떨어지고 감독님을 알아본 저도 너무 신기해서 놀랍기 그지 없었는데,
홍상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참.. 정말 우연과 운명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하하..
난생 처음으로 영화제에서 GV가 아닌 사석에서 감독님을 만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어제 밤 11시 30분...
이창동 다큐멘터리를 보고 저와 제 친한 동생 둘과 영화관 근처, 술 마실 식당을 찾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이창동 : 아이러니의 예술>이 너무나도 좋아서 그 흥에 취해 빨리 어디 자리잡아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
그래서 숙소와 가까운 극장 근처에 늦게까지 문을 여는 음식점 위주로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점을 찾으며 이창동 감독님을 만난 사람들이 있다며, 다른 사람들과 전주에 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동생들과 나누며
"야.. 우리는 이창동 감독님 언제보냐.. 하다 못해 다른 분이라도 보고싶다"하며
신세한탄과 부러움 섞인 말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특히 이번 영화제는
이창동 감독님이 주인공급으로 비중과 인기가 엄청나기 때문이죠.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식당을 찾던 도중, 작년에 전주 영화제에 왔던 한 동생이 어느 고기집에 앞에 멈추더니
"여기 내가 저번에 왔던 곳인데, 나쁘지 않아. 갈래?"
라는 권유에.. 이상~하게 정감도 가고, 맛집일 거 같은 묘한 분위기에 이끌려 주저 않고 바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고기집 이름이 지금 가물가물해서 나중에 기억나면 따로 올려보겠습니다)
가게에 들어오니 저희를 제외한 두 그룹이 가게에 있었습니다.
사람도 많지 않고 영화 얘기 씐나게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화장실 간 동생 한 친구를 제외하고
나름 씨네필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한 동생과 단 둘이 남아 어떤 음식과 술을 마실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저 멀리에 있던 한 그룹이 눈에 띄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제 귀가 일본어에 반응 해서 그 그룹에 시선이 같던 거 같습니다.
그 그룹에는 세 명의 여성분 (이 세 분은 통역사이셨습니다)과 남자 한 분이 계셨는데,
평소에 많이 찾아봤던 이미지의 남자분이 계셨습니다.
저는 나무위키나 네이버 정보로 감독님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보거나 깨알 같은 정보,
사진들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거기 딱! 저어어ㅓ엉말 절묘하게 이상일 감독님이 아주 편하게, 통역사 분들과 술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처음엔 뭐지 싶었는데, 한 10초 고민하다가 확신이 들었습니다.
전주, 일본어, 인상, 통역사.. 모든 아다리가 떨어져 맞는 이 절묘함...
종종 히로세 스즈 배우님 관련된 이야기도 들려오는 거 같고 이거 뭐... 아 맞구나 그러면서 옆에 있는 시네필 동생을 붙잡으며
"영화 분노랑 악인 찍은 감독! 이상일 감독님 맞다.. 히야아..."라고 하는데, 이 친구는 영화를 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감독님을 본 저희는 놀랐고, 화장실 갔던 동생이 돌아와 이야기를 꺼내니 그 친구도 놀라며.. 용기를 내 사진이나 뭐... 싸인을 받아오라고 막... 다들 어쩔 줄 몰라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고민됐던 건 저는 감독님의 시간을 방해하는 건 아닐지 조심스러웠습니다.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계신데, 피해를 끼쳐 분위기를 망치는 건 아닐지, 인사를 드리더라도 나가실 때 인사를 드리는 게 맞지 않을까 고민했습니다.
때마침 막걸리와 고기가 도착해 음식과 음주로 시간을 보내는데, 역시.. 감독님께 시선을 뗄 수 없었습니다.
유랑의 달을 예매하지 못한 상태여서 한이 서릴 정도였고, 이대로 전주에서는 승산없는 전투를 마치고 가는 건가 싶었습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또 놓칠 것인지... 내적 갈등만 켜켜이 쌓여가던 찰나에 끝내 용기를 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맥주병과 소주병이 좀 쌓여있는 이상일 감독님의 테이블에 가서 수줍게..
"저 혹시 이상일 감독님 맞으신가요..?" 하며 다른 통역사 분들과 이상일 감독님께 여쭤보니
한국 통역사 분이 너무 달갑게, 어떻게 아셨냐, 감독님 알아보는 사람도 있구나 하셨습니다.
저는 보잘 것 없는 일본어로 "감독님의 엄청난 팬이다.."라며 팬심도 밝히고..
주변에 계시던 일본어와 영어만 가능하신 통역사분, 일본어와 한국어가 가능하신 일본 통역사 분도
이걸 알아본다고? 하시면서 놀라시기도 하시면서 동시에 감독님을 바라보며 즐거워 하셨습니다.
감독님의 어떤 영화가 제일 좋냐, 이번에 유랑의 달 보러 왔냐, 감독님 어떻게 알아봤냐.. 하며
소소한 토크를 하다가 조심스럽게 사진 찍을 수 있을지 부탁드렸는데, 통역사 분들이
감독님을 떠미는 느낌으로 '한 번 찍어요~'하시면서 사진을 찍어주셨습니다.
감독님도 처음엔 정중하게 거절하셨던 거로 아는데, 어느샌가 제 옆에 멋지게 포즈를 잡고 사진 찍기에 응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하다며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한 마디를 남기고 자리에 돌아오니..
난 이것만으로 이번 전주는 만족한다~ 하며 자급자족을 했고... 싸인을 받지 못한 것은 너무 한이었지만,
감독님께 방해되지 않게, 감독님을 만나뵐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GV를 위해 방문하신 거 같았는데, 저는 멀찍이서 이상일 감독님의 일상적인 모습을 힐끔힐끔 볼 수 있었던
그 순간들이 앞서 얘기했던 홍상수 영화 같기도 하고... 우연과 운명으로 가득한 순간이여서
가장 뜨겁고 행복했던 밤이었습니다..
<2022 전주에서.. 이상일 감독님과 함께한 한 젊은이가>
P.S 이상일 감독님과의 만남이 끝나고, 바로 자리로 돌아가 긴장이 풀린 저는
동생들과 신나게 술을 마시며 아무렇지 않게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와 한국영화 얘기를 나눴답니다.
영화를본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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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분노]의 이상일 감독님 만나셨다니 대박이네요.
저도 전주 갈 뻔 하다가 못 가고 온라인 상영작 보는 중인데 부럽습니다..ㅠㅠ
유랑의달예매는 성공하였으나 시간때문에 GV참석해야하느냐 아님 박하사탕을 보러 이동해야하나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는중인데..ㅠ.ㅠ
너무 뜻깊었습니다..! 다들 즐거운 영화관람되세요!!
이런 걸 영화같다고 하나요? ㅎㅎ
무인도 아니고 일상속에서 만나는건 더 뜻깊은거같네요
유랑의 달 취켓팅 꼭 성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