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 문화권에 속해봤던 사람으로서 윌 스미스 사태에 대한 시각과 아쉬운 점.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이후 한국에서 고등교육과정과 성인으로서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미국 국적자이긴 하지만, 부모님은 한국분이시기 때문에 군대를 다녀왔고 한국 국적도 취득했습니다.
오히려 인생의 비중을 보면 한국에서 살아온 날들이 훨씬 많네요.
이미 중년을 눈 앞에 둔 나이를 생각해보면 아마도 미국으로 돌아갈 일도 적어보이구요.
때문에 이번 아카데미 윌 스미스 사건에 관해서 미국의 분위기와 한국의 분위기가 다른 것이 이해되고,
솔직히 양쪽 반응이 모두 이해됩니다.
어떤 가치관에 대한 우선 순위나, 어떤 행위에 대한 심각성의 인식은 결국 문화권마다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전세계에는 각양각색의 역사와 문화를 지닌 커뮤니티들이 있습니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심각한 일들이 다른 곳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수도 있고, 그 반대급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아이에 대한 물리적 체벌이 당연할 수도 있고, 어떤 곳에서는 심각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혼전 순결이나 이혼이 큰 도덕적 흠이 될수도 있고, 당연한 권리인 곳도 있을 것입니다.
주취범죄가 가중처벌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감형사유가 되는 곳도 있을 겁니다.
결국 사회적 규범과 인식이라는 것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며,
결국 그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이번 일은 굳이 말한다면 미국 사회 구성원이,
미국 사회에서 합의된 사회적 규범에 비추어 봤을 때 미국 사회의 정상적인 대응을 심하게 넘어서는 행위를 했고,
그에 따라서 미국 사회 내에서 지탄을 받고 있는 일입니다.
만약 미국 사람과 한국이나 일본 같은 타 문화권 사람간의 사건이었다면,
문화 차이로 인한 충돌이기에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우며 조심스러운 일이었겠지만,
어쩌면 다행히(?)도 미국에서 미국 사람들간에 일어난 로컬한 문제일 뿐입니다.
물론 한 문화권의 정서와 가치관을 다른 문화권에서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고, 사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때문에 '미국은 우리와 참 다르구나', '나라도 윌 스미스 같이 행동했겠다',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면 전혀 반응이 달랐을 것 같다.' 내지 '나는 미국과 안 맞는다'거나
'미국 사회를 이해하기 힘들다'와 같은 발언은 충분히 한국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번 일에 대한 반응 좀 놀라고 아쉬웠던 부분들이라면
'미국 사회는 틀렸다. 잘못되었다.' 같은 뉘앙스의 발언이나,
미국 사회를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의미의 발언들도 서슴지 않고 나온다는 것이 무척이나 무서웠습니다.
물론 아무리 문화적 상대성을 고려해도 인정하기 힘든 부분들도 있습니다.
생명을 헤치는 일, 아이를 헤치는 일이나 소년병처럼 인권유린의 관습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인정 받는 것들에 반하는 행위들은 상대성을 넘어서 비판 받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만 이러한 보편적 가치라는 것은 쉽게 정하기 매우 어려운 부분이라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생명 존중이 보편적 가치라 하더라도, 낙태 문제나 안락사 문제와 같이 명확한 하나의 답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더군다나 미국 사회에서 합의된 장소에 따른 유머의 수위나,
크리스 락의 발언과 윌 스미스의 행동에 대한 경중의 간극 차이가 그러한 보편적 가치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한국에서는 해당 발언의 수위와 싸대기는 그리 큰 차이나지 않는 행동이라는 인식이 좀 더 보편적이지만,
미국 사회에서는 언어와 물리적 상해라는 행위의 심각성이나 위험성에 대한 차이를 훨씬 더 크게 인식하는 편입니다.)
미국 사회를 100% 이해해라 너네가 몰라서 그러는거다 혹은 한국도 미국 사회처럼 되어야 한다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틀림이 아닌 다름의 문제이고, 그 다른 가치관에 동의하진 않더라도,
다름 자체는 인정하고 존중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서 윌 스미스에 더욱 공감하고 동조하는 것은 당연히 자유입니다만,
그러한 의견을 강조하기에 위해 타 문화권을 비난하거나 비하하는 듯한 말은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옳고, 너희는 틀렸어.' '너희 문화는 잘못되었고 우매하다'라는 말을 쉽게 하는 것은
제국주의 시절 서구열강들이 보여줬던 끔찍한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추천인 60
댓글 25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미국은 유럽, 특히 유럽 대륙의 사고방식이나 문화와도 무척이나 차이점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에밀리 파리에 가다' 같은 미국식 유럽 판타지 장르들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게 정말 어렵긴 합니다.
님께서 드신 예의 반대로
폭행을 두둔하다니 상식이 없다나
신체 폭력을 제재하는 게 상식 아니냐?라는 글들도 만만치 않게 올라오는 걸 보면
나만 옳다는 생각을 저도 할 때가 많아서 더 노력해야겠네요.
각 인종별로, 또 지역이나, 출신 커뮤니티별로, 그리고 소득 수준별로 등 여러가지 커뮤니티들의 문화도 당연히 다 다르기 때문에 반응은 다를 수 밖에 없긴 할 겁니다.
다만 인종을 떠나서 전통적인 미국 상류층의 행사장 (미국 연예인들이 귀족은 아니지만, 사회적 지위상 상류층이라 봐야 맞을 것 같습니다.) 에서 정말이지 보기 힘든 모습이었기 때문에,
미국내 주류 언론들의 반응이 지금과 같은 것이 대체적으로 저는 이해 되는 것 같습니다
머리로는 100% 이해해도, 심정적으로 도저히 힘든 일들도 있구요.
그나마 저는 어릴 때 한국에 와서 '똑같은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를 수가 있는거지?' 충격을 받은 부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조금 더 조심하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속했던 문화권인 미국, 한국이 아닌 타문화권에 대해서는 또 나도 모르게 인정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구요.
하물며 이런 경험을 가져도 그러한데, 하나의 문화권에서만 나고 자란 사람이면 더욱 어렵고 난이도 높은 일일꺼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댓글이나 글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수 있는데도 무시하지 않고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대적으로 비호감 인물과 호감형 인물의 충돌이라 더욱 여론이 쏠렸을 겁니다.
그리고 크리스 락의 아시안 인종 차별발언 때문에 저도 무척이나 불쾌하긴 했습니다.
다만 이 사건의 경우 사건 당사자들의 과거까지 생각하기보다는 일어난 사건과 행위에만 집중하는게 객관적일 것 같아서 그러고자 노력해보았습니다.
너무 흑인들이 아시아계 차별한다는 프레임을 대입해서 확대해석하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자학을 하려면 본인이 흑인 스테레오 타입에 대해 조크하는 것이 깔끔했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 락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메시지가 모호했단 점에서 bad joke 이었다고 느꼈습니다.
우리의 기준에서 다른 문화권의 특성이 문제로 보일 수 있듯이 우리의 특성도 다른 문화권에서 바라봤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고봅니다.
아무리 머리로 안다고해도 문화상대주의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크리스락 그동안 개망나니 짓한거리 나이 똥구녕으로 쳐먹은건지 아직도 못고치고 있었다는걸 잘알게 되었습니다
의견은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다른걸 잘못으로 여기지만 않으면 한결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한미 양쪽 문화가 얼마나 다른가 체감이 많이 됐네요.. 개인적으로 크리스 락과 윌 스미스 모두 이 사건에서 잘잘못을 따지려면 과거 행동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용제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과거 잘못들까지 다 끌고 오면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 없고 진흙탕 싸움만 되니까요
하지만 아카데미가 윌 스미스의 남우주연상 박탈에 대해 의논할 거면 크리스 락에게도 징계를 내려야 할 것 같네요 어쨌든 예전에 시상식에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징계가 없었던 것도 맞으니까요
문화의 다름은 옳다 그르다 말하기 어려운 문제죠. 각 세계에서 체험을 통해서 나온 문화일테니까요. 이런 사건 사고에서 이해는 어려워도 생각 공유를 하고 배우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